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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발품을 팔면 쪽문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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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11-14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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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실업자에게 권하는 취업대란 돌파구… 노동시장 채용패턴 읽고 호황직종 공략

사진/ 취업 기회를 잡으려면 노동시장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있어야 한다. 여대생들이 채용박람회장에서 설명을 듣고 있다.(박승화 기자)
비좁은 취업문, 하늘의 별따기, 바늘구멍, 박터지는 취업전쟁…. 취업시즌이 점차 끝물에 이르고 있는 요즘, ‘사상 최악의 청년실업’은 온통 이런 말들로 꾸며진다. 대졸예정자는 졸업장이 두렵다. 졸업장을 받는 날로 실업자 대열에 합류할 수밖에 없는 서글픈 처지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불황의 골이 깊어가면서 기업체마다 애초 잡았던 채용 규모를 크게 줄이거나 아예 백지화하고 있다. 주요 대기업들이 원서마감을 이미 끝낸 판이라 새로 입사원서를 넣을 만한 곳도 없다.

내년 2월에 4년제 대학문을 나서는 졸업예정자는 28만여명. ‘선배 실업자’인 기존 대졸자 12만명도 이미 좁은 취업문 앞에서 어두운 얼굴로 서성이고 있다. 이렇듯 대졸 취업전선에 서 있는 사람은 40여만명이지만 대졸 이상을 지원조건으로 붙인 일자리는 6만여개뿐이다. 나머지는 눈을 확 낮추거나 창업 등을 선택해야 실업자 신세를 면할 수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최근 조사를 보면, 최종학교를 졸업한 뒤 일자리를 얻기까지 평균 8.5개월이 걸린다. 경기가 바닥을 치고 내년 초부터 회복세로 돌아선다면 모를까, 아직 좋아질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취업전선의 활로는 없는 것일까?

경력자 중심 채용구조에 맞게 전략 세워


취업대란을 팔자려니 여기고 넋놓고 앉아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남아 있는 취업 기회를 붙잡기 위해 부지런히 발품을 팔고 여기저기를 기웃거려야 하는 건 물론이다. 특히 기업들이 대규모 공채보다는 인력 수급에 맞춰 수시채용하는 경향을 보이는 만큼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무작정 뛰기만 해서는 고생만 하다 말기 일쑤다. ‘처방’을 위해서는 노동시장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앞서야 한다.

우선 채용패턴의 변화를 읽는 게 중요하다. 가장 뚜렷한 변화는 경력자 중심의 채용구조다. 기업체마다 당장 써먹을 수 있는 경력직을 선호하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신입직원을 뽑아 오랫동안 교육훈련을 시키는 것보다 바로 활용할 수 있고 적응력이 뛰어난 경력자가 낫기 때문이다. 실제로 취업자 수를 보면, 30∼40대는 지난 97년 1081만명에서 지난해 1131만명으로 50만명 늘어난 반면 청년층은 97년 477만명에서 지난해 412만명으로 65만명이 줄었다. 신입사원을 뽑은 뒤 ‘키우는’ 방식에서 벗어나 현장 경험을 갖춘 인력을 채용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기업 관계자들은 “산업구조는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어 대학을 갓 나온 인력의 적응력이 떨어질뿐더러 이들을 새로 교육시킬 여유도 없다”고 말한다. 공채를 없애고 연중 수시채용으로 바꾼 LG전자는 채용예정 인원 중 30%를 경력자로 뽑기로 했다. LG전자 인력개발부 관계자는 “공채가 없어지고 수시채용이 정착되면서 신입사원보다는 경력자를 중시하고 있다”며 “특히 디지털과 정보통신 등은 전문가가 필요하기 때문에 경력자를 주로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채용패턴이 달라지고 있는 만큼 취업전략도 이에 맞게 고쳐야 한다. 예컨대 중소기업 등에 우선 취업한 뒤 경력을 쌓아 자신이 원하는 기업으로 진입하는 전략을 짜봄직도 하다. 어려울 때는 ‘돌아가는 것’도 길을 찾는 방법이다. 대기업에만 목매달고 허송세월을 하느니 탄탄하고 성장성이 있는 중소기업으로 눈을 돌려 자신을 갈고 닦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는 얘기다. 사실 “갈 데가 없다”고 하지만 청년실업사태의 와중에서도 중소기업은 사람을 못 구해 쩔쩔매고 있다. 중앙고용정보원의 취업알선망인 워크넷(www.work.go.kr)에 요즘 올라 있는 일자리는 10만4천여개로 대부분 중소기업쪽이다. 중앙고용정보원 직업연구팀 이상연 연구원은 “워크넷에 올라 있는 일자리의 80%는 고졸 이상이 대상인데, 여기에 접속하는 사람은 대졸자가 80% 이상”이라며 “하지만 대졸자의 경우 구직등록을 하지 않은 채 필요한 정보만 둘러보고 나가버린다”고 말했다.

중소기업도 경영합리화나 이비즈니스 분야가 급하기는 마찬가지다. 고급인력을 필요로 하는 중소기업이 많은 것이다. 인터넷 채용정보업체인 인쿠르트(www.incruit.com)의 이민희씨는 “구인등록을 하는 중소기업들을 보면 다각화 차원에서 많은 인재들을 필요로 하고 있다”며 “대졸자들의 경우 경력을 쌓는 차원이든 눌러앉아 자신의 꿈을 펼치든 중소기업을 적극 고려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실습 등 적응 프로그램 이용

사진/ 요즘 호시절을 맞은 유통·서비스쪽은 새로운 고용을 창출하고 있따. 패션MD는 전문 인기직종으로 입지를 굳혔다.(한겨레 곽윤섭 기자)
노동시장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도 있다. 중소기업청은 올 여름에 이어 이번 겨울방학에도 대학생 중소기업 실습근무(이하 중활)를 실시한다. 지난 여름에는 1128개 중소기업에서 대학생 3090명이 참여했다. 중소기업청은 “중활은 중소기업 취업기피 현상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라며 “자신이 취업하고 싶은 분야의 진로를 탐색하고 관심 업종에 가서 한번 일해봄으로써 취업을 준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겨울 중활은 11월 말까지 접수를 받은 뒤 12월 중순부터 내년 2월까지 기업체별로 이뤄진다. 두달 이상 중활에 참여하면 중소기업청이 참여 확인증을 발급해주기 때문에 나중에 취업할 때 어느 정도 경력을 인정받을 수도 있다. 대상은 재학생으로, 중소기업청 홈페이지(www.smba.go.kr)에 들어가 신청하면 된다.

일자리를 찾아 바삐 뛰어다니는 와중에서도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다. 직업과 기술이 눈부시게 빨리 변한다는 점이다. 요즘 경력자를 주로 구하는 정보기술(IT) 분야를 보자. 몇해 전 시티폰이 도입될 당시 정보통신 분야에 시티폰 기술자들이 넘쳐났으나 곧 휴대전화기가 등장하면서 이들은 모두 하루 아침에 일자리를 잃고 말았다. 이러다보니 기업들은 ‘언제든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사람’을 구하는 쪽으로 채용 관행을 바꾸고 있다. 고학력이 취업의 보증수표이던 때는 흘러간 옛날이고, 이제 적응력과 실무경험을 중시하는 것이다.

불황기일수록 ‘취업으로 가는 비상구’는 아무래도 경기가 그나마 살아 있는 곳일 수밖에 없다. 요즘 가장 성장하는 업종은 역시 유통·서비스쪽이다. 한국노동연구원 동향분석실 안주엽 박사는 “수출이나 제조업이 맥을 못 추고 있는 반면 내수산업이 그래도 성장하면서 고용을 창출하고 있다”며 “이를 고려해 취업전선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침체 국면에도 불구하고 사회 및 개인서비스업(전기·전자 수리업, 정보처리업, 컴퓨터운용 관련업 등)의 지난 2분기 고용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8.0%의 성장률을 보였다. 금융·보험·부동산서비스도 2분기 고용증가율이 지난해에 비해 8.5% 늘었다. 유통업계에서는 백화점, 할인점, 각종 프랜차이즈점의 신규 개점으로 내년 상반기에만 7천여명의 채용이 예상되고 있다.

요즘 유통·서비스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직종은 머천다이저(MD)다. MD는 상품의 기획·개발·생산·판매·재고처리 등 전 과정을 총괄하는 사람으로, 소비자의 욕구를 파악해 좋은 상품을 창조하거나 고르는 일뿐만 아니라 무엇을 강조해야 잘 팔릴 것인지까지 고민하는 ‘상품의 마술사’다. 인터넷 채용정보사이트인 잡코리아(www.jobkorea.co.kr)에 오른 MD 구인건수는 152건으로, 전자상거래 활성화를 타고 수요가 크게 늘고 있다. 잡코리아의 변지성씨는 “MD는 패션MD, 웹MD, 콘텐츠MD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 인기직종으로 떠오르고 있다”며 “입사할 때부터 MD로 들어가기는 어렵고 처음에는 일반 유통사원으로 들어갔다가 그 바닥의 시장흐름을 읽고 노하우를 쌓은 뒤 MD로 진출하는 게 대부분”이라고 취업에 이르는 길을 설명했다. 그는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유통업에서 도전해볼 만한 직종이 MD”라며 “백화점, 전자상거래, 온라인 동영상 콘텐츠, 인터넷게임 등에서 꾸준히 MD를 필요로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유통·서비스 분야의 머천다이저 각광

실제로 ‘카테고리 매니저’로 불리는 MD 30명을 채용한 인터넷 경매업체 옥션에 따르면 MD는 매출액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이곳의 MD는 경매에 내놓을 만한 물건을 골라 값싸게 사들인 뒤 경매에 내놓기까지 모든 것을 책임진다. 옥션 인사팀 관계자는 “채용한 MD는 주로 오프라인 유통에서 경험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며 “전문 MD를 확보하는 게 우리 회사 인력채용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그나마 취업 숨통이 트인 유통 분야 역시 어느 정도 경력이 쌓여야만 괜찮은 일자리를 얻는데 성공할 수 있다는 얘기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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