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찾아 30여곳에 원서낸 대학 졸업 취업준비생의 끝없는 수난과 불안
“꿈이요? 있긴 하지만… 일단 취직부터 해야죠!”
지난 8월 대학을 졸업한 박지연(22)씨는 방송작가나 기자 같은 글쓰는 직업을 갖는 게 꿈이었다. 어릴 적부터 ‘말보다 글이 낫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은연중 든 생각이었다. 그런 꿈을 갖게 된 데는 아버지의 영향도 컸다. 아버지는 나중에 교직으로 돌아서긴 했지만 본래 소설가 지망생이었다.
졸업 전까지만 해도 그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대학 다니면서 나름대로 열심히 실력을 쌓았다고 자부하고 있던 터였다. 그렇지만 현실의 벽은 너무나 높고 두터웠다. 사람을 뽑는 언론사가 몇 군데 있지도 않았던데다 어찌어찌하여 시험을 본 곳에선 쓴 잔을 마시고 말았다. 그러는 사이 어느덧 그에겐 ‘졸업생’이란 부담스런 딱지가 붙었다.
자신감은 사라지고 전쟁 같은 나날
“그게 졸업한 직후였으니까, 8월 어느날이었습니다. 무심코 도서관에 들어가려는데 ‘삐-삐-삐’ 요란하게 소리가 울리면서 빨간불이 들어오더군요. 학생증 유효기간이 끝났던 겁니다. 학교쪽에 부탁해서 유효기간을 늘리긴 했지만 기분이 묘하더군요. 졸업했다는 사실이 그때처럼 절실하게 느껴진 적이 없었습니다.” 졸업 뒤 생활은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 일자리를 찾기 위한 전쟁. 그에게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건 사치에 지나지 않았다. 맘에 들고 안 들고 따질 계제가 아니었다. 그는 요즘 아침 7시 일어나기가 무섭게 학교 홈페이지에 접속, 새로 들어온 일자리를 알아보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빨리 취업해야 한다는 조바심에 사람을 뽑는다는 공고만 뜨면 일단은 원서부터 내고 본다. 지금까지 무려 30군데도 넘는 곳에 원서를 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합격통지서를 받아보지 못했다. 면접까지 가서 미끄러진 경우도 있긴 했으나 대부분 1차 서류심사 단계에서 번번이 탈락하고 말았다. ‘사상 최악의 청년실업’, ‘서울대 공대생도 서류에서 탈락’. 이런 식의 선정적인 신문 기사에 위축감은 날로 더해만 갔다. 이른바 ‘서열’로 따지자면 박씨가 졸업한 ㅅ대학은 그래도 상위권에 든다. 그것도 인기학과라는 영문학과. 그럼에도 유례없는 취업대란 앞에선 별다른 무기가 되지 못한다. “한때 91학번을 두고 ‘저주받은 학번’이라고들 했잖아요? 졸업 시기와 IMF사태가 맞물린 세대라면서…. 그만큼은 아닐지 모르지만 우리 학번(97)도 참 운이 없는 것 아닌가 하는 부질없는 생각이 들어요.” 입학 때부터 먹고살 궁리를 했건만
군에 갔다온 남학생을 기준으로 할 때 91학번이 외환위기 와중에 졸업하면서 대책없이 사회로 내팽개쳐졌다면, 97학번은 외환위기와 함께 대학생활을 시작한 또다른 불행한 세대였다. 입학과 동시에 졸업 뒤에 먹고살 현실적인 궁리부터 해야 할 판이었다. 그의 대학생활은 낭만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
“뭐, 그렇다고 공부만 하고 살았다는 건 아니에요. 마음 맞는 선배들과 어울려 지리산으로, 경주로 놀러도 다니고 나름대로 재미있는 일도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학교생활은 전체적으로 빡빡했어요. 널리 퍼져 있는 소문대로 우리 학교 학사관리가 본래 타이트하거든요.”
고단한 학교생활이 실력을 키우는 데는 여러모로 많은 도움이 됐다. 전체 강의가 영어로 진행돼 영어라면 웬만큼 자신이 붙었기 때문이다. 하긴 고등학교 시절부터 영어에는 꽤 흥미를 느껴온 터였다. 다니던 학교(제주 중앙여고)가 ‘원어민(原語民)강사 시범학교’로 뽑혀 외국인과 어울려 공부하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이는 영문학과를 전공으로 삼은 인연으로 작용했다.
“학교 공부에 재미를 붙이고 그럭저럭 잘 적응해가는 중에도 힘들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4학년 2학기에 들어가는 지난해 한 학기를 쉬었습니다. 아르바이트도 하고 영어공부도 좀 더하고… 뭐, 그렇게 지냈지요. 그 때문에 올해 8월에야 졸업하게 됐던 겁니다.”
그가 아르바이트를 한 곳은 조그마한 무역업체였다. 영어로 이메일을 보내고 외국인한테서 걸려온 전화를 받아주는 정도의 단순한 업무였음에도 그럭저럭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다섯달이라는 짧지 않은 아르바이트 기간에 번 돈은 그뒤에 두루 요긴했다. 한달 반에 걸친 유럽 베낭여행을 다닐 수 있는 ‘실탄’이었으며 지금까지도 부족하나마 용돈으로 활용하고 있다.
교정의 은행잎이 샛노랗게 물들어 늦가을 정취가 물씬 풍기던 11월3일, 그에게도 한가닥 햇살이 비쳤다. 토요일이었다. 얼마 전 원서를 냈던 ㅎ은행에서 1차 서류를 통과했다는 소식을 전해온 것이다. 이메일과 휴대폰 문자메시지 양쪽을 통해 전해진 ‘낭보’에 박씨는 아주 오랜만에 마음이 따뜻해지고 자신감이 생기는 걸 느꼈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1차를 통과하는 데만도 무려 10 대 1의 경쟁을 치렀다.
고소득 자격증 취득자도 헤매는 마당에…
그렇지만 서류심사를 통과했다는 안도감도 잠시. 사흘 뒤에 이어진 실무자 면접 뒤엔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자신의 토익점수 900점대도 그다지 내세울 게 못되는 수준인데다 다른 분야에선 자신이 훨씬 뒤처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섯명 단위로 이뤄진 면접과정에서 경쟁자들은 “해외연수를 갔다 왔다”, “외국계 컨설팅회사에서 인턴으로 일했다”는 등 화려한 경력을 자랑해 그를 주눅들게 했다. 경쟁률은 또 좀 높은가. 1천명이 200개의 자리를 놓고 벌이는 5 대 1의 싸움이다. 다른 지원자들에 견줘 그다지 두드러질 것도 없는 터에 더욱이 여자라는 ‘약점’을 안고 헤쳐나가기에는 만만치 않은 경쟁이다. 나중에 이 은행 인력지원팀 관계자에게 전해 들은 바로는 200명을 모집한다는 인터넷 공고에 1만1천명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여기서 서류심사를 통해 추린 1천명 가운데 절반가량이 토익점수 900점 이상이며 공인회계사(CPA), 미국 공인회계사(AICPA) 자격증을 갖춘 지원자도 상당수 포함돼 있었다.
“물론 여자라는 점 때문에 피해를 입었다는 명백한 증거를 댈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주위에서 그런 경우를 종종 본 때문인지 여자라는 이유로 알게 모르게 취업 대열에서 밀려나는 것 아닌가 하는 피해의식을 갖게 돼요.”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ㅋ그룹 계열 6개사가 지난 9월 말 학교 교정에서 취업설명회를 연 자리였다. 다들 일자리에 목말라 있던 터여서 학생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었는데, 바로 거기에서 박씨의 친구(여자)가 어이없는 일을 당했다. 당시 가장 인기를 끌었던 무역관련 계열사의 담당자가 별 거리낌없이 “여자들은 뽑아놔봐야 몇년 있다가 금방 그만두더라”며 핀잔을 주는 것이었다. 이 담당자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여직원을) 해외영업쪽에 보내놓으면 잘 버텨야 5년 정도”라며 “결혼하고 애 낳으면 그만둘 것 아니냐”고 빈정거렸다. 말문이 막힌 박씨의 친구가 겨우 정신을 수습한 뒤 “아기를 낳으면 부모님께서 봐주시기로 했다”고 항변조로 얘기했지만 들은 척도 하지 않아 머쓱하게 물러서고 말았다.
또다른 친구도 여자라는 이유로 어이없는 일을 당했다. 그 친구는 토익 점수도 높고, 학교 성적도 괜찮은 편이었는데도 대기업 취직은 아예 포기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한 중소기업체에 원서를 제출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별도의 이력서 양식이 없어 문방구에서 구입한 약식 이력서에 경력을 써넣었는데 이게 말썽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회사 관계자가 전화를 걸어와 한다는 말이 “왜 키하고 몸무게는 쓰지 않았냐”고 따져 묻는 것이었다. “키 큰 것과 관련있는 일이냐”고 되묻자 이 관계자는 “뭐,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우리 회사는 발표할 일도 많고 해서…”라며 전화를 끊더라는 것이다.
박씨는 “여자로 태어난 게 무슨 죄도 아니고, 명시적으로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뿐이지 실제로 사회 전반에 그런 인식이 깔려 있다는 느낌이 들 땐 착잡한 기분을 떨칠 수 없다”고 털어놨다.
인문계라는 이유로, 여자라는 이유로
그가 전공한 영문학도 요즘 취업전선에서는 그다지 도움이 안 된다. “처음 원서를 받을 때부터 법정·상경계열로 자격을 제한하는 일은 예전에 비해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인기학과 위주로 사람을 뽑는 일이 많아요. 계열 구분없이 채용한다고 하면서도 꼭 상경계열 우대라는 식으로 말미에 단서를 붙이거든요. 알고 보면 ‘우대’가 아니라 그 분야로 ‘제한’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많이 드는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같은 과 친구들 가운데 어렵사리 취업에 성공한 애들은 대부분 경영학을 복수 전공한 경우가 많거든요.”
박씨가 졸업한 ㅅ대학 취업정보과 사무실 앞에 나붙은 모집 공고문에서도 이런 현실을 어렵지 않게 엿볼 수 있었다. 상경·법정계열로 응시자격을 제한한 모집공고가 무려 80여건에 이르는 반면, 인문·사회계열은 30건, 전공 무관 및 여학생 채용은 각각 50건, 20건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이 대학 취업정보과 관계자는 “간헐적으로나마 사람을 뽑는 데가 있다는 점에서 외환위기 직후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지난해보다 취업이 훨씬 어려운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졸업생 취업률이 70%를 약간 웃돌았는데 올해는 이보다 크게 떨어질 것 같아 걱정스럽다”며 “인터넷 원서접수가 일반화하면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더욱 뚜렷해지는 것도 특이한 점”이라고 말했다. 인터넷을 통해 각종 지표가 기계적으로 적용되기 때문에 이른바 비(非)인기학과나 학점이 낮은 경우 1차 서류심사에서 고배를 마시는 경우가 훨씬 많아질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ㅎ은행 임원면접을 앞두고 있는 박씨는 지난 11월8일 역시 금융기관인 ㄴ사에 원서를 냈다. ㅎ은행에 취직된다는 보장이 없는 마당에 마냥 기다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운좋게 선착순에 들지 못했다면 원서조차 구하지 못할 뻔했다. 박씨는 정유회사인 ㅇ사, 외국계 보험회사 ㅍ사에도 원서를 내놓고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다.
그래도 취업을 포기할 수는 없다
“아직은 나이도 있고, 한 1년쯤 늦는다고 인생에서 뭐 그리 대수인가 싶기도 해요. 그렇지만 올해만 지나면 ‘취업재수생’이 된다는 생각에 문득문득 착잡해집니다. 대학 4년 동안 뭘 했나 싶기도 하고…. 그래도 희망은 잃지 말아야겠지요?”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사진/ 기업들은 전공을 제한하거나 여성을 꺼리기도 한다. 박지연씨가 대학 게시판에 붙어 있는 모집 공고문을 살피고 있다.
“그게 졸업한 직후였으니까, 8월 어느날이었습니다. 무심코 도서관에 들어가려는데 ‘삐-삐-삐’ 요란하게 소리가 울리면서 빨간불이 들어오더군요. 학생증 유효기간이 끝났던 겁니다. 학교쪽에 부탁해서 유효기간을 늘리긴 했지만 기분이 묘하더군요. 졸업했다는 사실이 그때처럼 절실하게 느껴진 적이 없었습니다.” 졸업 뒤 생활은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 일자리를 찾기 위한 전쟁. 그에게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건 사치에 지나지 않았다. 맘에 들고 안 들고 따질 계제가 아니었다. 그는 요즘 아침 7시 일어나기가 무섭게 학교 홈페이지에 접속, 새로 들어온 일자리를 알아보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빨리 취업해야 한다는 조바심에 사람을 뽑는다는 공고만 뜨면 일단은 원서부터 내고 본다. 지금까지 무려 30군데도 넘는 곳에 원서를 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합격통지서를 받아보지 못했다. 면접까지 가서 미끄러진 경우도 있긴 했으나 대부분 1차 서류심사 단계에서 번번이 탈락하고 말았다. ‘사상 최악의 청년실업’, ‘서울대 공대생도 서류에서 탈락’. 이런 식의 선정적인 신문 기사에 위축감은 날로 더해만 갔다. 이른바 ‘서열’로 따지자면 박씨가 졸업한 ㅅ대학은 그래도 상위권에 든다. 그것도 인기학과라는 영문학과. 그럼에도 유례없는 취업대란 앞에선 별다른 무기가 되지 못한다. “한때 91학번을 두고 ‘저주받은 학번’이라고들 했잖아요? 졸업 시기와 IMF사태가 맞물린 세대라면서…. 그만큼은 아닐지 모르지만 우리 학번(97)도 참 운이 없는 것 아닌가 하는 부질없는 생각이 들어요.” 입학 때부터 먹고살 궁리를 했건만

사진/ "이번에는 청년실업자 대열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박지연씨가 대학 취업정보과에서 얻은 입사지원서를 작성하고 있다.

사진/ 여성 취업준비생들은 면접에 이르는 것도 힘겹다. 사진의 면접장에서도 다섯명의 참가자 가운데 한명만이 여성이다.
| 20대(20~29) 경제활동 참가율(단위:%) (자료 : 통계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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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7년 9월 | 12월 | 98년 12월 | 99년 12월 | 2000년 12월 | 2001년 1월 | 9월 |
| 66.4 | 67.2 | 64.8 | 65.0 | 64.8 | 65.2 | 6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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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졸업생들의 극심한 취업난 탓에 20대(20∼29살) 취업자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9월 20대 취업자는 398만5천명으로 지난 3월(394만명)을 빼면 외환위기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집계됐다. 20대 고용사정이 비교적 좋았던 지난해 7월의 423만명과 비교하면 무려 25만명이나 줄어든 것이다. 그런데도 20대 실업률은 대단히 낮게 잡힌다. 지난 9월 20대 실업률은 6.1%로 2월(8.5%) 이후 7개월 연속 낮아진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98년(11∼13%)의 절반 수준이며 지난해 10월(5.9%)을 빼면 외환위기 이후 최저치다. 실업률 통계와 현실이 따로 놀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실업률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것은 고용사정 악화로 구직활동을 포기하는 경우를 취업 의사가 없는 것으로 보고 실업률 통계에서 아예 빼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보여주듯 20대 경제활동 참가율은 점점 떨어지고 있다. 경제활동 참가율은 외환위기 전인 97년 9월 66.4%에서 지난 9월 63.9%로 2.5%포인트(74만명) 줄었다.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