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30일 오후 서울 광화문 테라로사 커피전문점에서 김용덕 테라로사 대표(가운데)가 릭 페이저 푸드포파머스 설립자(왼쪽), 의 공동저자인 빌 메어스 미국 버몬트 공영라디오방송국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류우종 기자
김: 커피산업이 발전하면서 국내에서도 공정무역·유기농 커피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이 높아졌다. 그러나 커피업계에서는 여전히 공정무역·유기농을 마케팅용으로 내세우는 경우가 많다. 커피 산지나 생산자에 대한 깊은 생각 없이 돈을 더 내고 공정무역·유기농 제품을 소비하라는 식이다. 그러나 진실이 중요하다. 실제로 우리 업체도 3~4배 높은 값으로 커피를 사오지만 공정무역을 내세우지 않는다. 커피를 사오는 우리가 산지 사람들의 삶의 질을 위해 어떻게 할 것인지, 실제적인 도움을 어떻게 줄 수 있는지 고민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릭: 그 말에 동의한다. 공정무역·유기농 등 마케팅으로 보여주는 것보다는 실제 커피 농부들의 삶과 생산지의 변화를 어떻게 이끌어낼지 고민하는 게 맞다고 본다. 공정무역 인증 업체로서 이미지를 갖는 것보다, 공정무역으로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할지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 어떤 이들은 공정무역을 통해 적은 양의 커피를 사면서 ‘나는 공정무역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진실에 접근해야 한다. ‘소셜 프리미엄’ 지역 발전기금으로 쓰이도록 릭은 커피의 공정무역이 성립하는 데 필요한 요소로 세 가지를 꼽았다. 우선, 커피를 재배하는 소농과 협동조합을 꾸려야 한다. 단순히 농촌을 조직화하는 것이 아니라, 재정적 투명성을 높여 커피를 만든 농민들이 얼마나 돈을 버는지 보여주고 이들에게 이익을 남기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 공정무역으로 커피 매입의 ‘최저가격선’을 정해 국제적으로 커피 가격이 폭락해도 농민들이 기본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보장해줘야 한다. 셋째, 커피로 벌어들인 수익을 이른바 ‘소셜 프리미엄’(Social Premium)이라는 지역 발전 기금으로 쓰도록 유도해야 한다. 커피 농부의 개인적 수입도 필요하지만 해당 지역의 의료시스템, 길 보수 등에 일정 비용이 쓰이도록 해야 비로소 공정무역이라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김: 현재 한국 커피시장은 질적인 변화가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프랜차이즈가 잠식했던 빵집 영역에서 ‘윈도 베이커리’(동네 빵집)가 다시 부흥하듯, 커피 프랜차이즈도 빠른 속도로 없어질 수 있다. 세계적으로 커피시장은 원두커피가 70%, 인스턴트커피가 30% 수준이지만, 우리나라에선 여전히 인스턴트커피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북미·유럽에서 유행하는 캡슐커피를 거쳐 집에서 스페셜티커피를 마시는 홈커피 시장으로의 전환이 10~20년 사이에 일어날 것이라 본다. 커피산업이 또 다른 혁명기를 맞는 것이다. 릭: 미국 커피시장은 이원화돼 있다. 캡슐커피와 스페셜티커피 시장으로 나뉘어 계속 성장할 것이다. 가장 대중적이고 편리한 것은 캡슐커피로 꾸준히 양적 성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인텔리겐치아·스텀프타운 등 스페셜티커피 전문점도 빠르게 확장하고 있다. 이러한 업체들의 고급 커피를 맛본 소비자들이 다시 캡슐커피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김: 한국 커피시장이 양적인 면에서 미국을 따라갈 수는 없다. 그래도 소비자의 입장에서 커피 산지 사람들에게 우리의 진심을 보여줘야 한다. 우리나라 커피업계도 비싼 값에 커피를 들여오는 데 머물지 않고, 산지 농민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면 다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산지에 가서 커피만 사지 말고, 우리가 금융 지원도 할 수 있다. 이런 것이 또 다른 변화의 시작이라 생각한다. 우리의 진심을 보여줘야 한다 릭: 한국 문화에 대해 잘 모르지만, 요즘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미국·유럽·중국 등 다른 나라 사람들의 이야기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어떤 나라에 좋은 게 있으면 우리가 가져올 수 있는 세상이다. 커피산업도 마찬가지로, 산지 농민들의 상황을 이해하고 다른 나라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배우려 한다면 긍정적 산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정리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