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할까 말까도 고민이지만, 어떻게 할까도 고민이다. 무엇보다 대다수 사람들이 결혼을 위해 선택하는 결혼식. 많은 웨딩 관련 업체들이 ‘일생에 한 번’이라는 수사로 정신줄을 놓게 만든다. 사회적 비용도 만만치 않다. 결혼식에 드는 비용을 살펴보자. 2013년 한국소비자조사원의 설문에 의하면, 주택 마련을 제외한 1인당 결혼 평균 비용은 5198만원이다. 부부 평균으로 치면 1억 원을 넘겼다. 혼수 비용을 빼보자. 듀오휴먼라이프연구소가 작성한 ‘결혼비용실태보고서’는 신혼부부의 평균 예식 비용(식장대여료, 식대, 기타 부대비용 포함)을 1594만원이라고 발표했다. 쫓기듯 이뤄지는 1~2시간의 행사 비용임을 감안하면 미친 짓이다. 바람직하지 않다. 누구를 위한 결혼식이기에? 자원 낭비는 물론, 감수해야 하는 사회적 비용도 만만치 않다.
육아라고 다르지 않다. 내 아이 어떻게든 잘 키우겠다는 생각을 탓할 순 없지만, 과도한 비용을 들인다. 돈 들인 만큼 아이가 잘 자랄 수 있다면야 어떻게든 감수해볼 수도 있겠다. 문제는 아이들이 ‘사육’된다. 돈 들이는 부모의 욕심이 육아가 아닌 사육의 형태로 드러난다. 아무리 용을 써도 아이는 혼자 잘 자랄 순 없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아이는 놀아야 한다.
결혼으로 이뤄진 가족 이야기를 다루자면 다문화도 빼놓을 순 없다. 이 땅의 어엿한 노동 주체이자 삶의 주체로서 이주민은 한국을 이루는 하나의 요소다. 단일 민족은 이제 거짓임을 안다. 한국에는 세계인이 모여 산다. 차이를 인정하되 차별하지 않는 태도가 필요한 이유다.
지난 9월 18일, 서울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 스페이스 류에서는 이런 문제의식이 어떻게 사회적경제와 관계를 맺고 있는지 알려주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사회적경제 콘서트 <서울, 사회적경제 도시를 꿈꾸다>의 세 번째 시간. <사회적경제와 가족의 탄생 : 결혼과 가정>이라는 주제로 이경재 대지를위한바느질 대표, 이길원 다같이놀자공동육아협동조합 이사장, 전명순 마을무지개 대표가 시민들을 만났다.
결혼문화, 마을로 들어오다
대지를위한바느질(이하 대바늘)은 가수 이효리·이상순의 에코결혼식과 마을결혼식 등을 기획·진행하면서 결혼식과 합리적 소비, 윤리적 생산을 생각하게 만드는 사회적기업이다. 이날 이경재 대표는 성북에서 진행하는 마을결혼식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풀었다.
이 대표는 옷을 만드는 디자이너였다. 20대 귀촌도 했었다. 그 과정에서 환경 공부를 하면서 디자이너로서 가져야 할 책임과 역할을 고민하게 됐다. 한 톱 배우가 2500만 원짜리 웨딩드레스를 입었다는 기사가 화제가 되는 것을 보고 문제의식을 가졌다. 친환경 웨딩드레스를 만들었다. 이어 친환경 청첩장, 뿌리가 살아있는 부케, 유기농 음식, 공정여행 등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환경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결혼식을 사업화했다. 8년째 이어오고 있다.
그러던 2012년 겨울, 마을결혼식을 떠올렸다. 계기는 단순했다. 한 유명 한복집 대표가 자신을 찾아왔다. 그것을 통해 ‘강남’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되는 결혼 시장의 구조를 접했다. 소비자들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비용은 비용대로 과도하게 지불해야 했다. 심지어 결혼식 시간마저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는 구조. 결국 피해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결혼식을 치르는 당사자가 보게 돼 있었다. 획일적인 결혼식 문화를 바꿔보자고 마음먹었다.
“인생에서 가장 많은 소비를 해야 하는 것이 결혼식이다. 그리 중요한 날에 엄청난 소비를 함에도 순식간에 지나간다. 과도한 수수료를 내야하는 것이 지금의 결혼식이다.”
이 대표는 과거 우리가 어떻게 결혼했는지를 떠올렸다. 강남을 거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결혼식, 마을결혼식이었다. 주말에 비어있는 지역의 유휴공간을 활용하고, 지역에서 음식을 조달하는 등 지역 사람들이 함께하는 결혼식. 기회는 우연하게 찾아왔다. 에코결혼식을 생각하고 찾아왔던 커플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마을결혼식 구상을 말하게 됐다. 이들이 갑자기 마을결혼식을 하겠다는 쪽으로 마음을 바꿨다. 당초 6월로 생각하고 있던 결혼식 일정도 8월로 미루겠다는 말과 함께. 대바늘은 예기치 않게 마을결혼식을 준비하는 모드로 바뀌었다.
“8월31일을 결혼식 날짜로 잡고, 성북구청 강당을 식장으로 잡았다. 작은 신라호텔 분위기를 내보자면서 구청을 꾸몄다. (웃음) 성북 장수마을 할머니들이 메인 음식을 만들었다. 동네국숫집에서 잔치국수를 만들고, 만두집에서 만두를 가져왔다. 지역에서 모두가 함께 하는 콘셉트로 헤어, 메이크업, 꽃 등도 지역에서 활용했다. 수수료를 낮추는 효과를 거뒀다.”
성공이었다. 참여하는 누구에게 다 좋은 구조가 마련됐다. 과도한 결혼식 비용을 쓸 필요도 없었고, 시간 역시 충분했다. 지역 사회 또한 경제적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다음날 9월 1일, 이효리와 이상순의 에코결혼식까지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마을결혼식을 서울 전역에 뿌리느 것이 대바늘의 목표다.
“지금 우리의 계획은 마을결혼식으로 일단 성북에서 자리 잡는 것이다. 이런 결혼식이 있다는 것을 다른 지역에서 확산하면서 웨딩의 다양성을 보여주고 싶다. 우리의 목표는 0.5%다. 성북의 0.5%만 마을결혼식을 해도 155커플이다. 서울 전역에서 5년 안에 0.5%가 마을결혼식을 하면 3576커플이다. 마을결혼식으로 부자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도 한다. (웃음)”
마을의 모든 아이는 모두의 아이다!
다같이놀자공동육아협동조합(이하 다같이놀자)이 내건 기치는 ‘문턱 낮은 공동육아’다. 소득 차이로 인한 육아 소외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목적을 갖고 있다. 다같이놀자의 구조는 어린이집이라기보다 ‘육아 품앗이’다. 공동육아협동조합을 운영해보니 비용이 상대적으로 많이 드는 두 가지가 인건비와 급식비였다. 그렇다면 영리가 목적인 일반 어린이집에서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은 단순하다. 보육교사는 적게 아이는 많이, 그리고 질 낮은 급식. 다같이놀자는 달라야 했다.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다.
“지금 공동육아가 많이 알려졌는데, 기존의 많은 공동육아는 ‘그들만의 리그’다. 그러다보니 공동육아가 질 좋은 사교육으로 빠지는 경우도 많다. 이들은 아동 대비 교사 수가 많다. 유기농 급식도 한다. 고소득 부모만 보낼 수 있는 구조다. 그래서 바꿔보자고 생각했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전일 보육을 하자고 의기투합했다.”
다같이놀자는 2013년 5월 2일, 여섯 아이와 두 교사로 시작했다. 별도의 공간은 없었다. 고민하다가 한 조합원의 집에서 아이 여섯을 함께 지내도록 했다. 그렇게 한 달을 하니 해당 조합원의 집이 우스개를 보태 가정이 파탄 날 지경이었다. 방향을 바꿨다. 공간이 필요하다는 소문을 적극적으로 냈다. 다같이놀자가 있는 용산지역의 마을네트워크(용산마을넷)에도 하소연을 했다. 이전부터 용산마을넷 활동을 활발하게 한 것이 좋은 기회가 됐다.
용산마을넷에서 함께 활동하고 있는 한 단체가 자신들의 사무실이 3개월 동안 빈다며, 공과금만 내는 조건으로 활용하도록 해줬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을 실감한 순간이었다. 물론 이후로도 공간을 구하기 위한 노력은 이어졌다. 아이들에게 안정적인 공간과 보육 교사들도 충분히 잘 지내면서 먹을 수 있는 공간을 얻기 위해 마을공동체 지원사업에 공모했다. 선정이 됐다. 이 과정에서 다같이놀자 조합원들이 함께 깨달은 것이 있다.
“형식적인 틀보다 중요한 것은 관계가 먼저라는 생각이 들더라. 조합원이 13명인데, 세 가지 형태로 구성됐다. 아이를 맡긴 부모, 보육 교사, 아이를 맡기지도 보육하지도 않으나 취지에 동감하는 일반 조합원. 우리의 목표는 분명하다. 적자를 안 보는 것이다. (웃음)”
다같이놀자는 자신들의 이름에 충실하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 조합원들도 마찬가지다. 우선 그들은 공동육아를 통해 ‘아이들은 놀기 위해 세상에 왔다’는 것을 실감한다. 그래서 아이들이 충분히 놀게 한다. 이 이사장은 아이들을 놀게 하는 것이 영어 공부를 하는 것보다 더 창조적이 될 수 있다는 뇌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아이를 공원이나 놀이터에서 놀게 하면 아이 스스로 놀이를 개발한다는 경험담도 덧붙였다.
어른들이라고 노는 것에 빠지지 않는다. 아이들을 데리고 조합원들이 함께 당일치기나 1박2일로 놀러갔다. 자신들도 여러 이야기를 나누며 친해지고 관계가 깊어졌다. 이 과정에서 마을공동체나 협동조합에서 의사결정 구조를 어떻게 가져가고, 갈등이 생기면 어떻게 풀 것인지 자연스레 체득했다. 다같이놀자가 가장 주력한 것은 관계를 만드는 것이었다.
“공동육아를 하고 싶다는 사람들이 찾아오면 두 가지를 말한다. 마을과 함께하는 공동육아다. 그리고 우리는 보육비 분담에서 차등을 둔다. 소득이 많으면 보육비를 더 내고, 적으면 덜 낸다. 이 전제에 동의하는 사람을 조합원으로 받는다.”
다같이놀자에는 현재 공동육아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후원자가 스무 명 정도 있다. 이들은 물품이나 놀이 봉사 등을 한다. 가치에 동의하는 사람도 조금씩 늘고 있다. 다같이놀자는 공동육아라는 가치를 자신들뿐 아니라 널리 전파하고 싶다. 아이와 어른 모두에게 좋다는 것을 충분히 경험해서다. 이에 매달 셋째 주 토요일 한 시간씩 열린 놀이마당을 열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자족으로 끝나길 원치 않는다. 사람이 모이고 관계를 만들면서 지역사회 변화를 추구할 때 삶도 마을도 지속가능하다고 믿고 있다. 그것이 삶을 놀이로 만든다.
결혼이주여성들은 어떻게 자존감을 찾았는가
마을무지개는 은평구에서 결혼이주여성들이 한데 섞여 살고 활동하면서 일자리 창출과 사회안전망 구축을 지향하는 마을기업이다. 설립 4년이 지났다. 보조금 지원도 더 이상 받지 않는다. 많은 마을기업이 지원이 끊기면 폐업하는 경우가 속출한다. 그럼에도 마을무지개는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그 시작, 우연이 빚어낸 ‘한 장면’에서 비롯됐다. 전명순 대표가 말문을 열었다.
그는 40세까지 평범한 가정주부였다. 남편이 가져다주는 월급으로 집안을 꾸렸다. 자신은 논술 강사와 지역 봉사로 소일했다. 아들이 고등학생이 됐다. 아들이 보낼 고등학생 3년 동안 자신도 무언가 배우고자 시도한 것이 중국어였다. 2006년이었다. 마을에서 결혼이주여성을 상대로 한국어 교실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한국어를 배워주고 자신은 중국어를 배우고자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한 여성의 이야기를 만났다.
“3월 강좌가 시작되고 5월이 됐다. 열 명 남짓한 이주여성들이 좁은 교실에서 한국어를 배우다가 야외 수업을 하자며 소풍을 갔다. 그 소풍이 끝날 무렵, 한국에 와서 가장 힘들었던 하나를 얘기해보자고 했다.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 임산부가 남편이 자신에게 자기 나라로 돌아가라고 말했던 게 가장 슬펐다고 하더라. 충격이었다. 이런 아픔이 있는데, 그분들의 정서를 보듬을 수 있는, 내가 할 수 있는 뭔가를 하자고 결심했다.”
어쩌면 그것은 계시였다. 전 대표의 삶은 우연으로 빨려 들어갔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움직였다. 지역 도서관에서 이주여성들과 함께 <예쁘지 않은 꽃은 없다>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바느질, 노래 등 여러 프로그램을 시도했다. 한글교실을 넘어선 만남이 이뤄졌다. 다문화 관련 프로그램이나 사업은 이주여성들이 출석만 해도 성공한 것이라는 세간의 말을 넘어 90% 이상의 대단히 높은 출석률을 보였다. 전 대표도 이런 기회를 통해 이주여성들과 친해졌다. 이주여성들이 속의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부업할 것 있으면 알려 주세요.”
부업거리를 알아보러 다녔다. 그러던 와중에 또 하나의 계기를 만났다. 한 중국 여성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만만디’라는 단어에 대해 물었다. 자신이 잘못 알고 있었다. 신선하고 재밌었다. 다른 사람들도 알면 좋겠다는 생각에 <중국을 배워요>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아이들이 중국 요리와 중국어 등을 배울 수 있게 했다. 수강료 10만원 중 재료비 등을 제외한 나머지 8만원을 중국 여성에게 건넸다. 감격하며, 한국에 와서 처음 벌어본 돈이라는 말을 전했다.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베트남, 일본, 캄보디아 등의 수업이 만들어졌다. 이를 묶어 <함께 가는 아시아 여행>이 탄생했다. 아이들도 집중해서 즐겁게 들었다. 물론 한계도 있었다. 제대로 된 수입이 되기엔 부족했다. 전 대표의 고민은 깊어졌다. 그때 떠오른 것이 도시텃밭이었고, 마을기업 공모에도 붙었다. 사업명은 <다문화 여성과 함께 커뮤니티 비즈니스를 꿈꾼다>. 다문화 체험관 설치와 운영, 농작물 재배와 판매, 효소·김치 판매 등을 사업으로 꾸렸다. 운 좋게 650평짜리 땅을 쓰라는 허락도 받았다. 텃밭에서 가족들 간의 새로운 만남이 이뤄졌다. 이전에는 어떤 프로그램을 해도 나오지 않던 남편들이 텃밭을 하니 나오기 시작했다.
“이것도 3개월을 지나니 한계가 드러나더라. 노동력은 부족했고, 예산 편성에도 무지했다. 농작물은 우리를 기다려주지도 않고 상품화나 계량화 되지 않는 1차 가공품으로 수익을 얻을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 즐거움은 사라지고 일만 남더라. 수익금의 허와 실도 알게 됐다.”
이때 마을무지개가 선택한 것은 포기가 아닌 실패였다. 실패를 선택하는 대신 이윤의 극대화가 아닌 가치의 극대화를 꾀하기로 했다. 그야말로 장렬한 산화.
“자존심이었다. 한 중국 여성이 시장에서 파를 한 단 사려고 어렵게 연습을 해서 갔는데, 막상 말을 하니 사람들이 자신만 쳐다본다는 거라. 그 이후 시장에 가서 말을 안했다더라. 그랬던 여성이 자신을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아이들이 생기고, 자신에게 자부심을 가졌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또 하나는 성공한 마을기업의 모델만 있는 것은 아니니, 실패를 제대로 알려주자고 했다. 그해 12월 마을기업 사례 발표회에서 우리가 겪은 어려움 등을 말했고, 굉장히 많은 격려를 받았다.”
실패를 해도 가치를 찾았다고 생각했다. 아쉬울 것은 없었다. 마을기업 지원이 연장되리라 생각하지 않았는데, 노력은 마을무지개를 배신하지 않았다. 마을기업 지원이 연장됐다.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함께 가는 아시아여행>에 역량의 80% 가량을 집중했다. 나머지는 즐거움과 소통에 힘을 기울였다. 다문화 수업에 요리를 접목하고, 학부모를 강사로 발굴했다. 여러 곳에서 수업 의뢰가 들어왔다. 다문화 축제 체험단을 만들었다. 수익성의 발판이 됐다. 전년대비 수익금이 300% 늘었다. 농사의 즐거움도 찾았다. 체험학습도 유치했다.
길이 보이기 시작했고, 새로운 것을 계속 개발했다. 이주민과 선주민이 결합한 다문화 공연단 ‘컬러링’을 만들었다. 다문화도서관 ‘바오밥 나무’도 만들었다. 다문화가정의 사회안전망을 위해 ‘서울 다문화 가정 후원회’도 설립했다.
“이제 햇수로 9년째인데, 한 베트남 여성이 한 말이 내게 위로가 된다. 마을무지개를 만나기 전에 다문화 교육이 있다면 어디든 갔었는데, 집에 돌아올 때면 너무 쓸쓸했다고 하더라. 마을무지개를 만나고 다른 데 안 가고 여기만 와도 행복하다고 말하더라. (웃음) 우리는 지금 결혼이주여성이 14명 있고, 한국인 교사가 7명이 있다. 목표는 월평균 강사료 70만원을 받는 것이다. 지금은 그런 소박한 꿈을 갖고 있다. (웃음)”
마을무지개는 ‘비가 오지 않아도 뜨는 무지개’다. 한 여성이 어떤 계기 혹은 계시를 만나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고 다른 사람을 함께 좋은 자장에 넣었다. 그것이 사회의 차별적 시선을 조금씩 바꿔나가고 있다. 사소한 계기가 세상을 바꾸는 동력이 된다.
글. 김이준수(노동자협동조합 적정기업 ep coop)
사진. 이우기(사진가)
결혼문화, 마을로 들어오다
‘대지를 위한 바느질‘ 이경재 대표
다같이놀자공동육아협동조합 이길원 이사장
마을무지개 전명순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