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대 사회학과 강사였던 유소희씨는 2012년 2학기 교양과목 ‘현대 대중문화의 이해’에서 〈한겨레〉와 〈한겨레21〉의 기사와 칼럼을 수업 보조자료로 나눠줬다가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됐다. 1심·2심에서 벌금 100만원을 선고받은 유씨는 대법원에 상고했다.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유소희: <한겨레>를 구독한다. 검사: 박근혜 후보에 관련해 우호적인 기사를 배부한 사실이 있나. 유소희: 수업 보조자료다. 그 내용이 (박근혜 후보에게) 우호적이냐 비판적이냐 기준이 아니었다. 검사: 그 기준은 무엇인가. 유소희: 영화나 인물 등 학생들이 잘 모를 새로운 내용이 소개돼 있으면 발췌했다. 검사: 특정 후보를 비난하는 신문기사를 학생들에게 나눠준 행위를 반성할 생각이 없나. 유소희: 특정 후보를 낙선시킬 목적으로 학생들에게 나눠준 게 아니다. 사회경제적 지식을 학생들과 공유하는 차원에서 배부한 것이다. 박근혜에 유리한 것 없으니 선거운동? 유씨는 당시를 떠올리며 “충분히 설명하면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문제인데 경찰과 검찰이 이해하지 못하니까 황당했다”고 말했다. 학생들도 유씨가 박근혜 후보에게 투표하지 말라거나 다른 후보에게 투표하라고 말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경찰은 일부 학생들의 부정적인 평가를 찾아내 몰아세웠다. “교수님이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키지 못하고 좌편향된 말과 자료가 많았다.” “신문 자료에 어느 일방의 대선 후보만을 비판하는 자료를 많이 나눠줬다. 이는 특정 후보에 대해 안 좋은 이미지를 형성하게 만들어 투표에 영향을 미친다.” “정치적 성향이 수업시간에 보여졌다.” 검찰은 결국 선거법 위반 혐의로 유씨를 기소했다. 구인호 변호사는 “언제부터 학생들의 강의평가를 듣고 교수를 처벌했는지 모르겠다”고 한탄했다. 구씨 등 변호사 19명이 선임계를 내고 공익 변론에 나섰다. 하지만 대구지법(2013년 12월)과 대구고법(2013년 3월)은 ‘유죄’(벌금 100만원)로 판결했다. “단순한 의견 개진이나 지지·반대의 의사표시라고 볼 수 없다. 수강생들에게 박근혜(후보자)에 대한 부정적 영향을 줘 낙선을 도모한다는 목적 의지를 수반한 능동적·계획적 행위로서 선거운동에 해당함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 특히 나눠준 기사 중에 박근혜 후보에게 유리한 것이 없고 다른 후보(야권 후보)를 비판하는 내용이 없었다는 점을 들어 선거운동이라고 못박았다. <한겨레> 기사와 칼럼이 졸지에 ‘선거홍보물’로, 그 기사를 읽은 독자 유씨는 ‘선거운동원’으로 전락했다. 구인호 변호사는 “유씨는 언론기관도, 정치평론가도,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선거관리위원도 아니다. 사회학자인 유씨가 강의시간에 대선 후보를 골고루 비판할 법적 의무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신성욱 변호사는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와 학문의 자유에서 한참 벗어난다”고 비판했다. 특히 유씨는 2012년 2학기 강의 때 10차례 정도 수업자료를 배포했는데 항소심 판결문은 그중 3개만 언급했다. 선거나 박근혜 후보와 관련 없는 나머지 자료는 애써 외면했다. 이 대목에서 궁금해진다. 선거법을 이토록 엄격히 적용하는 법원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는 어떻게 무죄판결을 내렸을까. 법원의 판단 근거를 보자. 첫째,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들은 사이버 정치활동을 계속적·반복적으로 해왔는데 (대통령) 선거 시기가 됐다고 해서 당연히 선거운동이 된다고 볼 수 없다. 둘째, 원세훈 전 원장이 특정 후보자를 지지 또는 반대하라고 명시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셋째, ‘선고 또는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에 해당할 여지는 있지만 목적성·능동성·계획성을 갖춘 ‘선거운동’으로 인정하긴 어렵다. 이러한 기준이라면 유씨도 무죄일 수밖에 없다. 첫째, 매 학기에 기사를 발췌해 나눠줬는데 그 활동이 (대통령) 선거 시기라고 하여 당연히 선거운동이라 볼 수 없다. 둘째, 유씨가 특정 후보자를 찍지 말라고 명시적으로 말한 사실이 없다. 셋째, 처음부터 선거운동을 할 목적이나 특정 후보를 낙선시키려는 계획이 없었다. 무엇보다 국정원의 정치활동은 불법이지만 유씨의 정치적 의견 표명은 합법이다. 그가 현 정권에 비판적이었다고 해서 형사처벌을 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강단으로 돌아가기 위한 험난한 길 유씨는 대법원에 상고했다. 헌법소원도 냈다. ‘벌금 100만원’을 두고 호들갑이라고 혹자는 말할 수도 있다. 유씨는 “학교로 돌아가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10년 넘게 유학생활을 하며 교단에 서는 꿈을 꾸었다. 뒤늦게 강단에 섰고 영남대는 모교라서 애착이 남달랐다. 그 후배가 ‘불순 강의’로 신고해 수사와 재판을 받고 있다. 지금은 강단에 설 수 없는 처지고, 대법원이나 헌법재판소가 (무죄로) 결단하면 돌아갈 수 있을지….” 말을 맺지 못한 채 유씨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