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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동북아 경제, 뭉치느냐 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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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10-3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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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오르는 한-중-일 3국간의 ‘자유무역협정’… 농업문제 해결이 가장 큰 딜레마

사진/ 미 국제무역위원회(ITC)로부터 직격탄을 맞고 비틀거리는 철강산업. 통상마찰 해소를 위해서는 동북아 경제협력체를 구축해야 한다는 논리가 힘을 얻고 있다.(이정용 기자)
지난 10월23일 새벽, 국내 철강업계는 ‘올 것이 왔다’는 당혹감에 휩싸였다. 이날 태평양 너머 미국으로부터 긴급 타전된 미 국제무역위원회(ITC)의 수입철강제품에 대한 산업피해 판정 소식은 가뜩이나 수출부진에 허덕이던 철강업계에 직격탄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다음날, 이번에는 바다 건너 일본쪽에서 반도체를 문제삼고 나섰다. 엔이시(NEC) 등 일본의 4개 반도체 생산업체가 한국의 삼성전자와 하이닉스가 메모리반도체를 덤핑수출하고 있다며 반덤핑 관세를 물려달라고 일본 정부에 요구키로 한 것이다. 갑작스레 닥친 양쪽의 조처로 한국경제를 먹여살리는 주력제품인 반도체와 철강 수출은 큰 타격을 받게 됐다.

안정적 수출시장 확보의 지름길

그렇다면 이런 통상마찰을 해소하고 안정적인 수출시장을 확보할 수 있는 길은 없는가.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37.7%다. 여전히 우리 경제가 수출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셈이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가 무역제한조처를 피할 돌파구 중 하나가 자유무역협정(FTA: Free Trade Agreement) 체결이다. 자유무역협정은 2개 이상의 국가들이 역내 무역자유화(원칙적으로 무관세)를 도모하는 지역통합으로, 일종의 지역주의적 경제블록이다. 지역적으로는 한·중·일 3국간의 ‘동북아 자유무역협정’이 현실적이고 실리적인 방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먼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지만, 우리가 동북아 자유무역협정을 맺고 있다면 이번 통상마찰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산업자원부 홍석우 무역정책과장은 “자유무역협정은 미국의 철강 수입규제가 주는 타격을 흡수하고 완충하는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한·일 양국간에 통상마찰이 일어날 요인도 훨씬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중·일 3국은 지난 99년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한·중·일 3국 정상회담’을 계기로 동북아 단일경제권 구축을 위한 첫발을 내디뎠다. 우선 각국 연구기관을 통해 통상, 금융 등 10개 분야에서 3국을 한 틀로 묶는 경제협력 공동연구를 진행하기로 합의했고, 일본과는 이미 한·일 자유무역협정이 공식 논의되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 9월에는 양국 업계의 의견수렴을 위한 ‘한·일 FTA 비즈니스포럼’이 열렸다. 게다가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기로 한 것도 동북아 자유무역협정 논의에 불을 붙이고 있다. 물론 중국이 아직 동북아 자유무역협정 논의에 적극 나서지는 않고 있지만 WTO 가입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을 공산이 크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정인교 박사는 “WTO 가입에 따른 관세인하가 완료될 2005년이면 중국도 동북아 경제협력체 구축을 본격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민간 학계와 기업에서도 발벗고 나섰다. 지난 12일, 지식인 및 기업인 300여명은 동북아지식인연대를 꾸려 “세계적으로 지역주의적 경제통합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으나 동북아에서는 아직 이렇다할 지역통합 움직임이 보이지 않고 있다”며 “동북아 지역협력 실현을 위해 노력하자”고 촉구했다.

“갈 길은 한참 멀다”

동북아 무역질서의 틀을 새로 짜는 ‘동북아 공동의 집’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전세계적으로 체결된 지역무역협정은 유럽연합(EU),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등 152개나 된다. 이런 가운데 일본은 조만간 싱가포르와의 자유무역협정 타결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WTO 회원국 중 지역주의에 참여하지 않는 나라는 우리만 남게 된다. 물론 우리도 칠레와의 자유무역협정에 매달려 있지만 농업강국인 칠레를 자유무역협정 상대국으로 잘못 골랐다는 비판이 일면서 주춤거리고 있는 상황이다.

세계적인 지역주의 흐름으로부터 홀로 된다는 것은 곧 시장 축소를 뜻한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정인교 박사는 자유무역협정에 한국이 참여하면 국내총생산은 0.84%포인트, 수출은 15.71%포인트 늘어나는 반면 우리만 불참할 경우 국내총생산은 -0.49%포인트, 수출은 4.21%포인트 줄어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동북아 경제블록이 갖는 중요성은 3국간의 높은 교역규모(무역의존도)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올 들어 8월까지 우리나라 수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중국 12.0%, 일본 11.3%로, 중국 수입시장의 13.5%, 일본 수입시장의 4.2%를 우리 상품이 점유하고 있다. 반면 같은 기간 우리나라 수입액을 보면 일본산이 18.8%, 중국산이 8.9%를 차지했다. 떠오르고 있는 거대한 시장인 중국은 더 말할 나위가 없고, 자유무역협정으로 일본의 비관세장벽까지 걷히면 그만큼 대일본 수출이 늘어날 수 있게 된다.

자유무역협정을 통해 단기 투기자본이 아닌 외국기업의 ‘직접투자’를 꾀할 수도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정인교 박사는 “한·중·일 자유무역협정 체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일단 협상이 시작되면 그동안 투자를 꺼리던 외국 기업들이 한국에 대한 투자를 앞당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시장과 중국시장에 무관세로 수출할 수 있다는 점을 겨냥한 외국기업들이 한국을 생산거점으로 이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그러나 동북아 자유무역협정 논의가 지금 어디쯤 와 있는가, 라고 물었을 때 대답은 하나로 모아진다. “갈 길이 아직 한참 멀다.” 우리 통상당국도 ‘연구 및 검토’ 이상의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다. 외교통상부쪽은 “(자유무역협정 체결에서) 중요한 건 우리의 산업 경쟁력이다. 일본, 중국에 어려운 업계는 크게 반발할 수밖에 없다. 경쟁력 있는 국가라면 자신있게 할 수 있지만 우리는 우선 내실을 기해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일본은 다소 적극적인 편이다. 일본 교토대학 오오니시 히로시 교수는 ‘한·일 자유무역지대의 경제적 효과분석’이라는 글에서 “한·일뿐만 아니라 중국을 포함한 자유무역협정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며 “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되면 한국의 경우 3국간 역내 무역비중이 지난 99년 20%에서 2015년 47%로 대폭 늘어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협정이 맺어질 경우 중국의 수출로 타격을 받는 쪽은 한국보다는 일본이 되겠지만 중국으로부터 일본으로 수출하는 상당수 기업이 중국에 진출한 한국 및 일본기업이 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일본-싱가포르 협상, 농업은 배제

사진/ 상하이에서 열린 제 13차 아펙 정상회의. 중국이 WTO에 가입하기로 한 것도 동북아 자유무역협정 논의에 불을 붙이고 있다.(AFP 연합)
한편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해온 후안강 교수(칭화대학교)는 지난 2월 <니혼게이자이신문>에 기고한 글(‘일·한·중, 홍콩이 자유무역협정을’)에서 홍콩까지 포함한 동북아 자유무역지대 구축을 주장했다. 그는 한국, 일본, 홍콩은 중국의 최대 무역파트너로서 서로 경제발전단계가 다르기 때문에 수직형 분업이나 협력이 쉽고 상호보완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특히 그는 평균관세율이 한국 7.4%, 일본 2.5%, 중국 2∼3%(중국의 관세율은 17%대로 알려져 있으나 실질적인 관세율은 훨씬 낮다는 주장이 많다)로, 자유무역협정으로 가는데 관세가 큰 걸림돌이 되는 건 아니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문제는 산업별로, 그리고 같은 산업 안에서도 무역자유화로 시장을 완전히 열었을 때 이해가 민감하게 엇갈린다는 점이다. 비교우위에 있는 품목도 있지만 열세에 놓인 취약한 분야는 국내 시장마저 일본과 중국에 내주는 꼴이 될 수 있다. 게다가 중국에는 우위라도 일본에 열세일 경우 복잡한 계산이 뒤따라야 한다. 우리 통상당국이 동북아 자유무역협정에 대해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한 채 주판알만 굴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손익을 따지는 과정에서 가장 큰 걱정거리로 등장하는 건 역시 농산물이다. 지난해 농민들이 휴대폰 수출과 마늘 수입을 중국과 맞바꿨다며 거세게 반발한 사례가 단적으로 보여준다. 농업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자유무역협정 추진이 실패로 돌아갈 공산도 크다. 그래서일까. 일본은 최근 싱가포르와 자유무역협정을 맺으면서 농업은 협상에서 배제했다. 무역협회 박진달 기획조사팀장은 “중국은 농산물이 강하고 일본은 제조업이 강하다는 점 등을 복합적으로 감안해야 한다”며 “먼저 구석구석 협력할 수 있는 부분부터 진행하면서 점차 자유무역협정으로 나아가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동북아 자유무역협정을 둘러싼 논의 구도 한복판에는 총론은 찬성하지만 각론에 들어가면 반대하는 목소리가 두텁게 흐르고 있다. 물론 자유무역협정이 경쟁보다는 ‘협력’을 뜻하긴 하지만 손익을 치밀하게 따지지 않을 수 없다. 당국도 먼저 치고나가 섣불리 협정을 맺었다가는 ‘몇몇 전투에서는 이기고 정작 전쟁에서는 지게 되는’ 위험을 우려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동북아 공동의 집’ 구상은 국민적 합의가 뒤따르지 않는 한 어렵다. 앞으로 더 많은 논의와 연구가 이뤄져야 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그리고 국민적 합의에는 경제적 이해는 물론 한·중·일 3국간의 침략과 지배, 수탈과 식민으로 얼룩진 과거를 넘어서야 한다는 과제가 함께 가로놓여 있다.

동북아 3국과 주요 경제권 비교 (1998)  자료 : IMF, IFS, November 1999.
동북아 3국 EU
(15개국)
NAFTA
(3개국)
한국 중국 일본 합계
GDP
(억달러)
321 967 3783 5071 7516 9529
무역규모
(억달러)
223 320 626 1169 4140 2254
인구
(백만명)
46 1240 127 1415 375 401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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