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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내가 살 차, 저탄소차 지원금 받을까?

‘저탄소차협력금제’도 시행6개월 앞으로 다가왔지만 구체적인 기준은
확정되지 않은 상태… 업계 강력한 반발 뒤에는 대형차서 수익 보는 현대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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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6-17 13:04 수정 : 2014-06-18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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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환경회의는 지난 6월9일 ‘저탄소차협력금제도’의 공청회가 열린 서울 양재동 엘타워 앞에서 “제도 도입을 반대하는 자동차업계와 이를 대변하는 산업통상자원부와 기획재정부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이들은 “저탄소차협력금제도를 유예·무산시키기 위해 온갖 로비와 언론플레이를 하고 있는 자동차업계는 이를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내년에 자동차를 구매하려는 사람들은 올해 6월을 브라질 월드컵이 아닌 저탄소차협력금제도 논쟁으로 기억해야 할지 모른다. 자신이 사고 싶은 차값이 높아질지 낮아질지, 차값 때문에 제네시스 대신 쏘나타로 갈아타야 할지가 올 6월에 결정되기 때문이다.

지난 6월9일 서울 양재동 엘타워에선 ‘저탄소차협력금제도 도입 방안을 위한 공청회’가 열렸다. 저탄소차협력금제도는 기준치보다 이산화탄소를 적게 배출하는 자동차에는 보조금을 주고, 많이 배출하는 자동차에는 부담금을 물리는 제도다. 예를 들어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110g/km(2015년 기준) 이하인 그랜저 하이브리드는 차를 살 때 200만원의 보조금을 받지만, 이산화탄소 배출량(145g/km 초과)이 부담금 구간에 들어간 그랜저 2.4는 차를 살 때 75만원을 더 내야 한다. 연비가 좋아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적은 경차와 소형차 등은 대부분 보조금을 받거나, 돈을 더 내거나 받지 않는 중립 구간에 들어간다.

정부 연구기관끼리도 찬반 엇갈려

이는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내놓은 기준 시나리오에 따른 예일 뿐, 아직 구체적인 보조금·부담금 기준은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당장 2015년 1월1일로 시행 시기가 6개월여밖에 남지 않았는데 기준도 나오지 않은 것이다. 정부안이 확정되지 않으면서 관심이 집중된 공청회장은 정부와 자동차업계 관계자, 기자들로 인해 무척 혼잡했다. 결국 뒤편 홀을 더 넓힌 뒤 공청회는 15분 늦게 시작했다.

“공청회라면 통상적으로 합의안을 발표해야 하는데 합의안이 도출되지 않았다. 그만큼 의견 차이가 크다. 우리는 이견을 가지고 있는데도 슬라이드 2장에 5분만 발표하라는 것은 유감이다.”

발표에 나선 강광규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불만을 먼저 터뜨렸다. 앞서 발표한 조세재정연구원에는 30분의 시간을 주면서, 환경정책평가연구원에는 제대로 반박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정부는 저탄소차협력금제도에 대해 산업계의 반발이 커지자 조세재정연구원과 환경정책평가연구원, 산업연구원 등 국책연구기관 3곳에 공동연구를 맡긴 바 있다.


강광규 선임연구원은 “제도의 효과나 산업·재정 등에 미치는 주요 변수, 보조금·부담금 구간 및 요율에 대해 합의하지 못했는데 조세재정연구원이 중재안을 발표했다”고 말했다. 정부 입장을 주로 반영하는 국책연구기관 사이에서 다른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드문 일이다.

실제 조세재정연구원과 산업연구원의 발표에선 저탄소차협력금제도에 대한 부정적 분위기가 엿보였다. 홍승현 조세재정연구원 재정지출분석센터장은 제도 도입 효과 분석을 통해 “이산화탄소 감축 효과가 감축 목표의 35% 수준으로,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제도 운영 방식의 조정이나 추가적 정책 수단이 필요하다”고 했다. 또 “하이브리드차를 중심으로 일본차 판매가 크게 증가하고, 국산차는 부담금 부담이 더 클 것”으로 전망했다. 온실가스 배출 감축 효과도 적고 국산차 판매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산업연구원의 김경유 연구위원은 제도가 시행되면 수입차 판매가 증가하고 쌍용차와 현대차의 판매량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따라 구조조정된 쌍용차 노동자의 추가 복직도 지연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고가의 수입차(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적은 고연비의 차)들은 보조금을 받고, 소시민이 타는 국산 경차는 중립 구간으로 보조금을 받지 못한다”고 김 연구위원은 말했다.

연구기관 간 논쟁이 치열하자, 저탄소협력금제도를 법안으로 만들어 통과시킨 최봉홍 새누리당 의원은 공청회에서 분통을 터뜨렸다. “이 제도는 이미 법안으로 통과됐다. 자동차업계의 요청에 맞춰 환경부가 시행령을 보완하라는 것이지, 지금 제도를 도입하느냐 안 하느냐 갖고 말하는 자리가 아니다.”

그럼에도 자동차산업계는 이날 제도 철회까지 강하게 주장했다. 공청회 토론자로 나선 김용근 한국자동차산업협회장은 “자동차 가격에 정부의 보조금과 부담금이 개입하면 시장 질서만 교란된다. 저탄소차협력금제도는 철회할 것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저탄소차협력금제도는 시행 시기가 이미 한 차례 연기된 바 있다. 저탄소차협력금제도는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 7월 녹색성장위원회에서 도입을 결정하면서 본격화됐다. 2013년 4월 대기환경보전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며 2015년 1월 제도를 시행하기로 했다. 당초 2013년 7월 시행할 예정이었으나 통상 문제나 국내 완성차 업계의 준비기간 등을 고려해 유예했다.

경쟁력 떨어지는 국내 업체들 발 동동

저탄소차협력금제도를 도입하는 이유는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정부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수송 부문에서 이산화탄소 배출량 3420만t을 감소해야 하는데, 자동차 부문에선 1780만t을 줄여야 한다. 환경부는 이 가운데 9% 정도인 160만t을 저탄소차협력금제도로 자동차 수요를 이산화탄소 배출이 적은 차로 유도해 줄일 방침이었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당초 법안이 통과될 때 쌍용차는 반대했지만, 현대차의 반발은 거세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연재 환경부 교통환경과장도 “산업부와 쌍용차가 2015년으로 시행을 유예하는 조건으로 제도 도입에 동의해놓고 이제 와서 입장을 바꾸는 것을 이해 못하겠다”고 했다.

입장을 바꾼 자동차산업계는 제도 철회까지 압박하고 있다. 지난 6월12일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 대한상공회의소, 한국자동차산업협회 등 10개 단체는 정부에 건의서를 냈다. 이 단체들은 “산업정책과 환경정책의 조화를 통해 국내 자동차산업의 경쟁력이 강화될 수 있도록 저탄소협력금 규제 도입의 철회”를 건의했다.

저탄소차협력금제도를 둘러싼 관계자들은 자동차산업계의 강력한 반발 뒤에 현대차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공청회에서 송상석 녹색교통운동 사무처장은 “현대차가 법 개정 과정에서 동의해놓고 정부 정책을 입맛대로 틀어버린 사례가 많다”고 지적했다. 한 정부 관계자도 “현대차 국내영업 부문이 판매에 영향을 끼친다고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알고 있다. 에쿠스나 제네시스 등에서 이익을 보고 있는데, 값이 오르면 수요가 떨어지는 것에 대한 손실을 감당 못하겠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자동차는 소형차를 파는 것보다 중·대형차를 파는 게 훨씬 이윤이 크다. 자동차회사는 중·대형급 차의 비중이 73%를 차지하는 국내 승용차시장에서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는 셈이다. 자동차업계가 정말 저탄소차협력금제도가 소비자에게 부담을 주는 규제라고 걱정하는지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국내 완성차 회사마다 입장이 조금씩 다른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현대차 쪽은 “저탄소차협력금제도에 대해선 전경련에서 낸 건의서를 참고하라”며 입장 표명을 피했다. 제도 도입에 반대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랜저 디젤 등 신차 출시에 규제 권한을 가진 환경부와 대놓고 맞서기 어렵다는 분위기다.

소형차가 없는 쌍용차는 노조와 함께 제도 도입에 반대한다. 쌍용차 노조는 “현재 기술력 및 재원으로는 단기간 내에 관련 법규 대응이 전혀 불가한 상황이다. 부담금이 부과되면 내수 판매량이 60% 이상 감소해 결국 기업이 생존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반면 르노삼성자동차 홍보팀 관계자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건 회사마다 다 어렵다. 제도를 유예해버리면 어렵지만 준비한 회사는 뭐가 되느냐”고 했다. 르노삼성은 최근 준중형급 세단과 스포츠실용차(SUV)가 잘 팔린다.

“생존 위기다” vs “준비한 회사는 뭐가 되나”

공은 산업계의 반발에 밀려 환경부에서 기획재정부로 넘어간 상태다. 민상기 기재부 신성장정책과장은 “6월 안에 관계장관회의를 열어서 정부 방침을 결정하려 한다”고 했다. 민 과장은 “국책연구기관 용역 결과를 보면 이산화탄소 감축 효과가 적다고 나오지 않느냐. 제도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데 사회·경제적 논란을 일으켜야 하는지 의문이 있다. 법 취지는 2015년 시행이지만 모든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여운을 남겼다.

글·사진=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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