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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민간자본 살판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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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10-24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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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이윤에 휘둘리는 땜질식 처방 난무… 정부는 뒷돈 대주고 소비자는 요금부담 늘어

사진/ 무분별한 공기업 민영화는 민간자본의 이윤을 보장할 뿐이다. 공기업 노조는 밀어붙이기식의 대책없는 민영화를 반대하고 있다.(이정용 기자)
“우리로서는 설명할 도리가 없다. (애초에 지역난방공사를 민영화 대상기업으로 선정한)기획예산처가 대답할 수 있을 뿐이다.”

지역난방공사를 왜 민영화하려는가, 라는 다소 엉뚱한 질문에 산업자원부쪽은 볼멘소리부터 했다. 이어 설명이 보태졌다. “막상 안양·부천의 지역난방을 LG파워에 매각하고보니 편익은커녕 요금인상 요인만 발생하고 소비자에게도 손해만 생기고 있다. 우리 부처로서도 이전에는 지역난방공사에 돈을 빌려주고 꼬박꼬박 이자까지 받아왔는데 민간에 매각한 뒤에는 되레 돈을 대주는 판이 돼버렸다.”

경영효율화 논리 파산날 지경 이르러


산자부가 이런 애궂은 처지에 놓인 내막은 무엇일까. 올해 안에 전국 10개 지사를 매각해 민영화를 완료해야 하는 한국지역난방공사는 그 첫 단계로 지난해 9월 안양·부천 열병합발전소를 LG파워에 매각했다. 전국 12개 지사 중 두곳을 미리 판 것이다. 지역난방을 인수한 LG파워는 곧바로 “난방요금을 60% 인상하겠다”는 안을 산자부에 제출했다. 이윤을 보장해 달라는 요구였다. 그러나 이는 지역주민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왔고 주민들은 ‘민영화 반대’ 플래카드를 내걸고 실력행사에 들어갔다. “민영화로 경영효율화를 꾀하면 정부는 재정적자 부담을 덜고 소비자에게도 요금인하로 이익이 온다”는 논리가 벌써부터 파산날 지경에 이른 것이다.

골치를 썩이던 산자부는 “60% 요금인상은 너무 과도하고 30% 인상만 허용해 주겠다”는 선에서 타협점을 찾았다. 그러나 요금인상이 불러올 주민들의 반발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고 결국 요금인상분을 정부가 대신 물어주기로 했다. 정부의 전력산업기반기금으로 LG파워의 이익을 보전해주는 편법을 쓴 것이다. 이에 따라 산자부가 올해 LG파워에 지원한 돈은 230억원. 산자부는 “LG파워가 자기들 잘못이든 아니든 정부가 운영하던 사업체를 인수해서 계속 적자를 보고 있을 때 (정부가) 마냥 모른 척하고 있을 수도 없지 않으냐”며 “그렇다고 LG파워가 공개입찰을 통해 인수한 것인 만큼 적자를 다 보전해주기도 어렵고, 이래저래 복잡한 사정이 있다”고 얼버무렸다.

물론 방만한 경영과 낙하산 인사로 얼룩진 공기업의 개혁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지역난방공사 사례는 일부 민영화 과정이 ‘경쟁을 통한 경영효율화’는커녕 민간자본의 이윤 보장에 휘둘리면서 특혜로 또다시 얼룩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역난방공사 민영화는 분당지역 주민들의 반대라는 벽에 부닥쳐 아예 잠정적으로 중단된 상태다. 안양·평촌지역에서 LG파워가 그랬듯, 민영화가 대폭적인 요금인상을 불러온다는 사실을 깨달은 분당지역 주민들이 먼저 들고 일어선 것이다. 분당 주민들은 지역난방공사가 분당 열병합발전소를 설치할 때 자신들이 보일러 설치비를 공사비부담금으로 떠안았던 것을 근거로 “주민을 제쳐놓고 민영화할 수 있느냐”며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지역난방공사노동조합 강경석 국장은 “지역난방 지사 중에서 투자비를 감안할 때 대폭적인 요금인상 없이 수익을 낼 곳은 별로 없다”며 “지역난방사업을 하면 수도권에 발전소를 지을 수 있는데 이를 노리고 민간자본이 지역난방 인수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지역난방 자체보다는 이를 발판으로 ‘전력’을 잡으려 뛰어들 거란 얘기다.

“독점에 따른 비효율을 없애 가격을 낮추게 될 것”이라는 민영화의 기대효과와 달리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민영화 대상기업은 지역난방뿐만이 아니다. 농수산물유통공사 산하 한국냉장 자회사인 노량진수산(주)은 10차례나 공개경쟁 입찰이 유찰된 끝에 결국 수의계약으로 방향을 틀었다. 지난 5월부터 매각작업에 들어간 노량진수산시장은 애초 교통요지에 자리해 있고 수도권 수산물의 40%를 처리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대기업들이 앞다퉈 참여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자 그동안 입질을 하던 대기업 유통업체들은 죄다 발을 뺐고 군소업체들만 입찰등록했으나 이들마저도 막판에 입찰보증금을 내지 않아 번번이 유찰되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입찰예정가가 애초보다 낮아지는 건 불을 보듯 뻔했다. 한국감정원의 노량진수산시장 자산가치 평가액은 애초 1750억원이었으나 유찰이 되풀이되자 농수산물유통공사는 감정가의 최고 20%까지 입찰예정가를 낮췄다. 헐값 매각 시비를 예고하는 대목이다.

공기업업 가치 추락… 정부는 손실보전 창구?

사진/ 누구를 위한 지역난방 민영화인가. 지역난방공사를 인수한 민간자본이 대폭적인 요금인상을 시도해 민원이 끊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번번이 유찰될 수밖에 없었을까. 여러 가지 사정이 얽혀 있겠지만, 매입조건으로 딸린 ‘시장기능 유지’가 민간자본으로서는 달갑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량진수산시장은 서울시로부터 허가를 받아 2004년까지 시장기능을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농림부는, 인수한 민간기업이 2004년 이후 시장기능을 포기하게 되면 산지 어민들이 크게 반발할 게 뻔하자 시장기능 유지를 인수조건으로 붙였다. 한국냉장노동조합 김흥식 위원장은 “민간자본이 시장기능을 유지하려면 상인들한테 임대료를 대폭 올리지 않으면 어려울 것”이라며 “그래서 애초 시장 인수에 눈독을 들였던 자본은 ‘딴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2만평에 이르는 노른자위 땅을 사서 아파트를 짓겠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는데 막상 시장기능 유지라는 조건이 걸리자 손을 떼고 말았다는 얘기다.

이 과정에서 불거진 게 한나라당 주진우 의원이 대주주로 있는 금진유통의 입찰 압력이다. 자본금 1억원에 불과한 금진유통이 입찰마감 10분 전에 단독으로 수의계약의향서를 밀어넣고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이 인수 경쟁자인 수협중앙회에 압력을 행사한 것이다. 이처럼 거듭된 유찰과 입찰비리 파문 속에 결국 노량진수산시장은 수협의 단독 수의계약으로 매각이 결정될 공산이 커졌다. 그러나 수협 역시 신규사업을 벌이지 않겠다는 약속 아래 올 들어 1조2천억원의 공적자금까지 받은 처지라 벌써부터 논란이 일고 있다. 김흥식 노조위원장은 “수협이 인수하더라도 나중에 더이상 유지하기 어렵다며 손을 떼려할 경우, 시장기능 유지를 위해 정부가 어떤 형태로든지 손실을 보전해줄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그렇다면 민영화로 경쟁을 도입하는 이유가 뭐냐”고 되물었다.

목표를 내년까지로 잡고 있는 한국가스공사 민영화는 갖가지 비판 속에서 ‘일부 민영화, 일부 공기업’이라는 어정쩡한 절름발이 형태로 계속 가고 있는 형국이다. 가스공사 사업은 해외에서 액화천연가스(LNG)를 사들여오는 도입·도매사업과 이를 국내에서 배관을 통해 공급하는 설비사업으로 나뉜다. 공사는 애초 지난 99년 도입·도매사업을 3개로 쪼개 2개는 민간에 팔고 하나는 공기업으로 남겨두는 가스산업구조개편안을 추진했다. 죄다 팔아버릴 경우 민간기업이 수익성이 없는 지역의 가스공급을 끊어버릴 수 있다는 우려에서 하나를 공기업으로 남겨둔 것이다. 그러나 “하나를 가스공사 자회사로 존치하는 것은 현재의 공적독점을 사적과점으로 바꾸는 데 그칠 뿐, 경쟁이란 말만 앞세웠지 사실상 3개 업체의 담합”이라는 비판에 직면한 가스공사는 지난 6월 전면 재검토에 들어갔다. 그리고 정기국회를 코앞에 둔 지난 9월, 민영화 일정에 쫓기던 공사는 별다른 대안을 찾지 못한 채 애초 방안을 그대로 밀어붙이기로 서둘러 확정해버렸다.

민영화가 소비자에게 주는 혜택이란 쪽에서도 가스공사는 곤혹스런 처지에 놓여 있다. 정작 소비자한테 혜택이 가려면 도매가 아니라 각 지역도시가스사들이 갖고 있는 소매부문을 경쟁시켜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LG, 대성 등 도시가스사들이 소매부문 경쟁에 강력 반발하면서 민영화가 늦춰지고 있다. 가스공사노동조합 배경석 국장은 “공사가 민영화를 추진하면서 마땅한 해결방법을 찾지 못해 민영화가 땜질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잘라 말했다.

게다가 “여러 개 회사가 좀더 싼값에 LNG를 도입·공급하도록 경쟁한다면 시장의 효율성이 높아진다”는 논리 역시 이미 맺어진 ‘장기도입 계약’이란 벽에 부닥쳐 있는 형편이다. 가스공사가 이미 해외 가스개발업체와 맺은 장기 도입계약은 7건(계약물량 연간 1698만t)으로 2007∼24년 사이에 계약이 끝난다. 도입·도매부문을 인수할 민간기업들은 이 계약을 그대로 이행해야 하고, 따라서 ‘좀더 싼값에’ 가스를 사들여와서 그만큼 싸게 팔 여지가 원천적으로 없는 셈이다. 대신 정부는, 해외 가스개발업체들이 “민영화 이후 장기계약이 깨어지는 것 아니냐”고 불만을 제기함에 따라 민간기업을 대신해 이들 해외업체들에 채무보증을 서야 할 판이다.

민간기업 이윤 보장해주는 민영화라니…

정부는 특히 가스사업을 인수하는 민간자본의 이익을 위해 국내사업판매권을 보장해주는 쪽으로 민영화 방향을 잡고 있다. 산자부는 “민간기업이 수요처를 확보하지 못해 LNG물량 도입계약을 이행하지 못하면 큰 손실이 날 수밖에 없으므로 기존 수요를 보장해줄 방침”이라고 털어놓았다. 국내 수요처인 24개 지역도시가스사들하고 함께 묶어서 이윤을 보장해주겠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에너지특별회계 자금이 들어가는 설비사업부문은 당분간 가스공사가 그대로 맡고, 그렇게 갖춰진 시설을 민간자본이 값싸게 이용할 수 있게 해주는 것도 포함된다. 민간자본의 이윤 보장 ‘장치’를 마련해주는 쪽으로 민영화가 뒤틀리고 있는 셈이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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