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가 28일 오전 국회에서 여당이 제안한 기초연금법 개정안 수용 여부를 논의하려고 비공개로 열린 의원총회장으로 향하는 동안 회의장 들머리에서 국민연금바로세우기국민행동 등 시민단체 대표자들이 기초연금법안에 반대하는 팻말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둘째, 정부가 새정치연합 지도부의 의견을 반영했다는 ‘절충안’의 효과는 일시적이다. 정부안은 국민연금에 오래 가입할수록 기초연금이 더 삭감되므로 저소득 장기가입자가 고소득 단기가입자에 비해 기초연금을 덜 받는 형평성 문제를 지닌다. 이러한 비판을 무마하기 위해 정부는 국민연금 수령액이 30만원 이하인 노인에게는 가입 기간과 무관하게 20만원을 지급해 저소득 장기가입자들이 감액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보완책을 마련했다. 정부가 절충안이라고 이름을 붙인 이유다. 고소득 단기가입자가 더 이익 과연 향후 대다수 노인에게 해당될 국민연금 연계와 전체 노인의 2%(12만 명)에 적용되는 보완책을 섞은 게 절충일 수 있을까? 주고받은 몫의 크기가 너무 다르다. 게다가 이 보완책은 시간이 흐를수록 효과가 사라지는 미봉책일 뿐이다. 앞으로 국민연금이 성숙할수록 가입자들의 연금액은 높아질 예정이다. 대부분이 30만원(현재 가치)을 넘기에 기초연금에서 감액당하게 된다. 저소득 장기가입자와 고소득 단기가입자 노인 사이의 형평성 문제가 되돌아 생길 것이다. 어찌된 일인지 정부가 제시한 절충안의 수용 여부를 논의하는 자리임에도 새정치연합 의원총회에서나 안 대표의 반대 토론에서나 이에 대한 지적이 없다. 검토 없이 정부 절충안에 협력했다는 이야기다. 셋째, 기초연금은 당장은 20만원으로 오르지만 이후에는 현행 기초노령연금보다 금액이 작아지므로 엄격히 평가하면 이번 연금 개혁은 ‘개악’이다. 현행 기초노령연금이 법 취지대로 단계적으로 오른다고 가정하면, 약 8년 뒤부터는 오히려 기초노령연금이 유지되었을 때의 예상액보다 기초연금이 작아진다. 이는 조만간 노인이 될 50대 베이비부머뿐만 아니라, 남은 노후 기간을 감안하면 현재 노인들에게도 연금 손실을 의미한다. 기초연금의 인상 기준이 현행 가입자 평균소득(A값)에서 물가로 바뀐 탓이다. 정부의 공식 전망 수치에 따르면 물가상승률은 소득증가율의 절반에 불과하기에 물가와 연동되는 기초연금 인상 속도도 그만큼 더뎌진다. 이는 또 하나의 중대한 공약 위반이다. 박근혜 후보의 대선공약집에 기초연금액은 ‘국민연금 가입자 평균소득(A값)의 10%’로 명시돼 있다. 어디에도 20만원이라는 수치는 없다. 단지 현재 평균소득이 200만원이므로 기초연금이 20만원으로 논의되는 것이다. 공약에 따르면, 10년 뒤인 2024년에는 평균소득이 약 400만원으로 오르니 기초연금도 40만원이 돼야 한다. 하지만 정부가 인상 기준을 소득에서 물가로 바꾼 까닭에 10년 뒤 기초연금은 약 30만원에 머물고, 금액 격차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커진다. 2030년대 말에는 소득 연동이면 80만원이어야 할 기초연금이 40만원으로 반토막 난다. [%%IMAGE2%%]정부는 5년 주기로 노인 생활수준, 소득, 물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조정하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4년간 물가에 맞춰온 기초연금을 갑자기 크게 올리거나 내리기 어렵다는 점에서 사실상 물가 연동과 다름없다. 정부 스스로도 여러 설명 자료에서 기초연금이 물가와 동행해야 하는 이유를 밝히고 있다(심지어 정부의 기초연금 설명 수치도 뒤죽박죽이다. 정부는 향후 기초연금 감액폭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재정추계는 소득 연동으로 발표했다. 복지 전문가들도 정부안의 수치를 이해하고 검증하기 어렵게 된 이유다). 거짓말 밝힐 기회 내버린 야당 넷째, 박근혜 대통령의 기초연금 공약의 진실이 장막 뒤로 숨게 되었다. 아직까지 국민 대다수는 기초연금 공약이 ‘모든 노인에게 20만원 지급’이었는데 당선 이후 재정의 어려움으로 축소 수정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지난해 말부터 애초 공약이 ‘국민연금 연계 차등지급’으로 설계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이를 주목한 몇몇 언론의 취재에 황우여 새누리당 원내대표, 기초연금 공약을 설계한 안종범 의원,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 모두 애초부터 공약이 ‘차등지급’이었다고 인정했다. 선거 직전에 발표돼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공약집 재정소요 자료에도 모든 노인에게 지급하는 데 필요한 재정의 59%만 책정돼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기초연금 공약 문구가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의 통합 운영’으로 명기된 심오한 속뜻도 비로소 드러났다. 당시는 주목하지 못했지만 선거 3일 전에 열린 TV토론에서도 박근혜 후보는 “그것(기초노령연금)을 국민연금 체제에 포함시켜서 그렇게 되면 비용도 줄일 수 있고”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박근혜 후보는 정작 모든 거리 현수막에 “모든 어르신에게 기초노령연금 2배 인상” “어르신에게 20만원”만 적었다. 모두에게 20만원을 준다고 공약을 소개하는 언론 보도에도 정정 요청을 하지 않았다. 유권자들이 모두에게 20만원을 주는 내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말이다. ‘국민연금 연계 차등지급’이라는 진실을 고의로 숨긴 것이다. 이러면 기초연금 공약은 당선 이후 ‘공약 수정’이 아니라 당선을 위해 공약 실체를 속인 ‘허위 사실 공표’에 해당한다. 안타깝게도 안 대표는 이 문제를 규명하는 데 나서지 않았다. 끝내 정부안 통과에 협력함으로써 기초연금 공약의 진실을 규명할 기회까지 내버린 셈이다. 결국 안 대표는 문제투성이인 기초연금안 통과에 사실상 최대 조력자 역할을 했다. 안건의 실체와 의미를 제대로 따지지도 않았다. 이런 게 대형 사고를 낳는 부실 공사다. 기초연금이 지방선거에 미칠 유불리는 주목했지만 미래 국민연금에 줄 악영향은 진지하게 다루지 않았다. 정부가 제시한 절충안의 수용을 의원들에게 강요할 뿐 그 효과가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점검하지 못했다. 물가 연동이라는 중대한 설계도 변경이 가해졌음에도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지난 대선에서 허위 사실 공표가 있었다는데 진실 규명에 관심을 보이지도 않았다. 어떻게 책임지겠다는 것인가 이렇게 세계 연금 개혁 역사에 ‘졸속 심의’의 대표 사례로 기억될 만한 일이 대한민국에서 벌어졌다. 정치적 결단이라고? 고령화 시대 연금제도를 이리 서둘러 처리하는 나라가 어디 있는가? 집권당이 공약을 허위로 홍보하고 국민연금에 대한 신뢰를 훼손해도, 물가 연동으로 미래 연금액을 대폭 삭감해도 이를 그대로 용인하는 정당이 보편복지 야당인가? 책임지겠다고? 연금제도 불신은 커지고 나의 노후는 더 불안해지는데, 어떻게 책임지겠다는 것인가? ‘새정치’ 단어가 가엾다. 오건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