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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벤처사기 원조를 사적화의 원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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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10-1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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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디지털 회생 발판 마련한 김용석 사장… 부도어음 회수·당좌거래 재개로 오명 벗겨내

사진/ 한국디지탈라인의 사적화의를 이뤄낸 김용석 사장. 그는 채권자들을 설득해 회사에 드리워진 정현준의 그늘을 걷어내고 있다.(박승화 기자)
“지나가는 말로 ‘나중에 한번 봅시다’ 했던 것인데 여기까지 왔네요, 허허.”

올해 3월 ‘황 회장’이란 사람한테서 한국디지탈라인(KDL)의 경영을 맡을 생각이 있느냐는 언질을 받았을 당시만 해도 김용석(39) 사장은 그러려니 하며 귓전으로 흘려들었다. 한국디지탈라인이 어떤 회사인가. 이른바 벤처사기사건의 ‘원조’로 꼽혀온 정현준의 회사 아닌가. 그런 회사를 맡았다가 무슨 낭패를 보려고, 하는 생각을 떨치기 어려웠던 것이다. 한국디지탈과 정현준이라는 이름은 지금도 벤처업계에서 무슨 사고만 터졌다 하면 경계의 선례로 늘 맨 앞자리에 오른다.

정현준에 당한 사람들의 간곡한 요청


황 회장의 말을 까맣게 잊고 있던 어느날 서울 압구정동에 있는 음반회사 아이스타뮤직 사무실로 7∼8명이 우르르 몰려왔다. 당시 인터넷 회사 틴존의 이사였던 김 사장은 아이스타뮤직의 주주(현재 2대 주주)이기도 했다. 강남지역에서 의류업을 하고 있는 황 회장을 알게 된 것도 아이스타뮤직에 투자하면서였다. 황 회장 소개로 그를 찾아온 이들은 한국디지탈 전 사장 정현준에게 사기를 당해 거액의 재산을 날린 명동 사채업자들이었다. 이들은 한국디지탈의 채권자 자격으로 김 사장에게 회사 경영을 맡아달라고 간곡히 요청했다.

여전히 선뜻 내키지 않는 가운데 마음에 약간 변화가 인 것은 채권자들의 기막힌 사연을 듣고서였다. 이들은 정현준 사기사건으로 전 재산을 날리고 길거리로 내쫓겼다. 반지하 월세로 주저앉은 경우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정현준과 공범 아니냐는 외부의 따가운 시선을 받아 고통은 이중삼중이었다. ‘박 여사’라고 불린 40대 중반의 한 아주머니는 이 일로 가정파탄상태에 빠져 두 차례인가 수면제를 먹고 자살을 시도하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동정심으로 회사 경영을 맡을 수는 없는 일. 김 사장은 몇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채무를 대부분 탕감해줘야 하며 채권자들을 더 모아와야 한다는 것. 이에 따라 며칠 뒤 논현동 한국디지탈 사무실에서 다시 모임이 이뤄졌는데 여기에 30∼40명의 채권자가 모였다. 그날 모임은 어수선했다. 회사 직원과 채권자 사이에, 또 채권자들끼리도 싸움이 벌어지고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울컥 화가 치민 김 사장이 ‘이러면 난 못한다’고 하자 일순간 조용해지긴 했지만 분위기는 냉랭했다.

우여곡절 끝에 한국디지탈의 경영에 참여키로 했음에도 대표이사를 맡기엔 아무래도 부담스러웠다. 이 때문에 그는 올해 7월 한국디지탈 대표이사 사장으로 취임할 때까지 줄곧 이사 자리에 머물렀다.

당시 회사는 참담함 그 자체였다. 임원들의 대부분은 정현준사건에 엮여 구속되거나 재판에 계류중이었다.100명을 웃돌던 직원은 뿔뿔이 흩어지고 관리직 3명만 초라하게 회사를 지키고 있었다. 그를 더욱 절망스럽게 한 것은 어음·수표발행 상태. 모두 108장이 발행됐는데 이 가운데 50∼60장은 소지자가 누군지도 파악되지 않았다. 발행된 전체 어음·수표에 해당하는 액수는 모두 1400억원에 이르렀다.

정현준만 털어내면 회사는 가능성 있어

사진/ 한국디지탈은 시스템통합업체로 새롭게 거듭나고 있다. 부도 상황에서 3명만 남았던 직원들도 차츰 늘어나고 있다.(박승화 기자)
이런 중에서도 김 사장은 한 가닥 희망을 발견했다. 한국디지탈 채무로 잡혀 있는 1400억원은 모두 정현준 전 사장 개인 용도로 조달된 것으로 회사에는 한푼도 흘러들어오지 않았던 것이었다. 다만, 회사 명의로 발행돼 명목상 채무자만 회사였다. 정현준은 회사 공식조직과는 별도로 다른 곳에 ‘비서실’을 차려놓고 한국디지탈 이름으로 어음·수표를 마구 발행해 자금을 끌어들였다. 이렇게 모은 돈으로 개인적인 채무변제, 회사 늘리기, 신용금고 인수, 돈놀이에 몰두했던 것은 이미 검찰 수사에서도 드러난 바 있다. 결국 한국디지탈이란 회사도 정현준 사건의 피해자 가운데 하나였던 것이다. 이를 거꾸로 얘기하면 한국디지탈이란 회사 자체는 가능성이 있다는 게 김 사장의 생각이었다. 실제, 정 전사장이 개인적으로 마구 발행한 어음·수표를 빼고나면 한국디지탈의 부채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부도 시점(2000년 10월)의 마지막달 직원 월급, 국민연금·의료보험 체납된 게 전부로 미미한 수준이었다.

김 사장이 떠올린 최적의 회생 방안은 ‘사적화의’였다. 한국디지탈의 처지에선 법정관리, 화의, 워크아웃 등의 통상적인 방법으로는 회생이 불가능해 다른 선택이 있을 수도 없었다. 사실, 부도난 회사가 부도사유를 해소하고 정상적인 회사가 되는 가장 빠른 길은 제3자 개입없이 채무자와 채권자의 합의에 따르는 사적화의 방식이다. 이는 전문가 집단에서도 정설로 굳어져 있는 상식이다. 문제는 성사 가능성. 채권자들의 이해관계가 각각 엇갈리는데다 1명의 채권자라도 합의를 해주지 않을 경우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방식이다. 상장(증권거래소)·등록(코스닥)업체 가운데 사적화의를 이뤄낸 선례가 지금까지 1건도 없다는 게 이를 잘 보여준다.

한국디지탈은 8월 중순에 이르러 결국 사적화의를 성사시키는데, 그에 이르는 과정은 가시밭길이었다. ‘정현준 회사’라는 이유 때문에 채권자들의 의혹을 불식시키는 게 여간 어렵지 않았다.

“그때 참, 별별 소리를 다 들었어요. ‘정현준 똘마니’, ‘조폭 세력’, ‘증시 작전세력’, ‘머니게임하는 놈’…. 어느 정도 예상한 바이긴 했지만 너무 힘들었습니다. 하루에도 수십번 아니 수백번도 넘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짓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에 밤잠을 설치기 일쑤였지요.”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10월10일 여의도 한양빌딩 10층 사무실에서 만난 김 사장은 잠시 회상에 젖어들었다.

김 사장이 구상한 사적화의의 얼개는 이랬다. ‘채무 99%를 탕감하고 나머지 1%를 주식으로 지급받는다.’ 예를 들어 한국디지탈(실제론 정현준)에 10억원을 꿔준 채권자의 경우 액면가 500원짜리 주식 1천만원어치를 받고 나머지 채권 9억9천만원에 대한 권리는 포기하는 것이다. 시스템통합(SI)업체인 한국디지탈의 특성상 자산이란 게 사람과 기술력이 전부여서 빚잔치를 해봐야 남는 게 없다. 채권자로선 한푼도 건지지 못하는 것보다는 1%라도 건질 수 있는 선택이 낫다. 더욱이 회사 정상화 뒤 1%에 해당하는 주식값이 오를 경우 채권 회수율은 더욱 높아질 수도 있다. 애초 황 회장을 통해 김 사장과 접촉했던 명동 사채업자들도 이런 셈법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채무 99% 탕감, 1%는 주식으로 지급

얼핏 보아 어느 채권자들이라도 사적화의에 동의해줄 듯한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100명을 웃도는 채권자 가운데 3분의 2가량은 의구심을 떨치지 못한 채 아예 얘기를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특히 개인 채권자가 아닌 신용금고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치부하며 상대조차 해주지 않았다. 경영진을 믿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정현준 전사장에게 된통 당한 뒤였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렇지만 김 사장은 직원들을 독려해가며 채권자들을 설득해나갔다. 회사가 살 수 있다는 확신에 찬 그의 태도에 채권자들의 반응도 조금씩 달라졌다.

채권자의 하나인 ㅅ신용금고의 이아무개 이사도 처음에는 “괜한 시간낭비일 뿐”이라고 딱 자르다가 태도가 바뀌어 결국 사적화의에 동의하기에 이르렀다. 나중에 이 이사는 김 사장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당신 정도의 열정과 성실성이라면 어쩌면 회사를 살릴 수도 있겠구나 싶더라, 그래서 동의해줬다.”

한국디지탈은 이에앞서 지난 6월 나라종합금융과 50억원에 대해 채무조정 동의서를 맺었으며 8월17일에는 동방신용금고와도 채무조정에 합의했다. 이렇게 하나둘씩 동의를 이끌어내 8월 중순 사적화의를 마무리지었다. 부도어음 가운데 법적 소송중이거나 도난신고된 27억원 상당의 어음을 뺀 전액에 대해 채권자들로부터 회사 정상화 뒤 주식으로 교환하는 조건으로 회수하고 사적화의 동의를 이끌어낸 것이다.

올10월들어 한국디지탈에는 또 하나의 낭보가 날아들었다. 하나은행 신사동지점을 통해 은행거래(당좌거래)가 재개된 것이다. 부도사유를 해소한데다 은행쪽으로부터 일정한 신용도를 인정받은데 따른 조처였다. 지난해 10월 부도로 당좌거래 정지를 당한지 꼭 1년만이다.

물론, 아직 한국디지탈은 갈 길이 멀다. 사적화의라는 전례없는 방식으로 빚을 말끔히 털어내 기초를 닦기는 했지만, ‘정현준 회사’라는 오명을 떨쳐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다. 더욱이 오는 10월20일께 열리는 코스닥위원회에서 퇴출심사를 받아야 할 처지이다. 자칫 코스닥등록 기업에서 탈락할 수도 있다. 이 경우 지금까지 쌓아온 탑은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도 있다. 김 사장은 코스닥등록 유지를 기대하고 있지만, 사적화의를 통한 정상화 추진의 전례가 없어 코스닥위원회는 결정을 주저하고 있다. 지난 8월 회의에서 최종 결정을 두달 미룬 것도 이 때문이다.

김 사장은 “코스닥위원회의 결정을 기다릴 뿐”이라면서도 “일이 잘 돼 내년쯤에라도 회사가 정상궤도에 오르면 훌훌 털고 미국에 공부하러 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회에 대한 기여도’를 중시하는 기업경영의 새 패러다임을 공부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우연찮게 한국디지탈과 인연을 맺은 김 사장은 전자계산학과(서강대 81학번) 출신답게 인터넷, 컴퓨터 소프트웨어 개발에 관심이 많다. 시스템통합업체인 대기업 계열사에 다니다 3년째인 89년 걷어치웠다. 아무리 봐도 비전이 보이지 않아서였다. 바로 그해 학생 시절의 ‘열정’을 살려 시민운동에 뛰어들었다. 경실련 창립멤버로 참여한 것. 이듬해엔 시스템통합 및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인 (주)한맥컴퓨터를 차려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경실련에선 정보교육원 초대 원장, 중앙위원과 상임집행위원 등을 거쳤다.

끈질긴 채권자 설득… 코스닥 퇴출될 수도

사진/ 정현준 전 사장은 벤처사기의 대명사로 회사에 치명상을 안겼다. 동방금고 불법대출사건으로 구속기소된 정현준씨.(한겨레 서정민 기자)
김 사장은 외환위기 와중에서 결국 한맥컴퓨터의 문을 닫긴 했지만 한국통신 시스템통합 관련 프로젝트를 맡는 등 굵직굵직한 사업을 성사시켜 기반을 닦았다. ‘먹고사는 데는 지장이 없을 정도로’ 돈도 벌었고 Y2K 대책협의회 위원(국무조정실), 한국정보문화운동협의회(대통령 자문기구) 사회분과 위원 등 대외활동도 활발히 벌였다. 지금은 시민단체를 떠났지만 인천지역 복지단체인 ‘내일을 여는 집’(사단법인) 운영위원으로 일하고 있는 등 소외계층에 대한 관심도 꾸준하다. 한국디지탈에서 받는 돈은 대부분 내일을 여는 집의 후원금으로 쓰이고 있다고 한다. 이채로운 경력에 오지랖 넓은 김 사장의 열정이 한국디지탈에서 어떻게 열매를 맺을지 주목된다.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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