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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양치질 검사, 칫솔에게 받으시라

스마트칫솔, 스마트팔찌 등 내가 일일이 챙기지 않아도
물건들이 알아서 정보 주고받고 나를 관리해주는 ‘사물인터넷’ 시대 경쟁 치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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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1-24 15:33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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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카치카, 갸르르 퉤~.”

어디 보자, 우리 아들 양치질 제대로 했나? 잠깐만요 어머니, 양치질 검사는 이제 칫솔에게 맡겨주시와요. 부모의 심정으로 입안 구석구석 칫솔질 상태를 파악해 알려주는 영특한 칫솔이 있거든요. 얘야, 게 무슨 변리바바 고깃값 뜯어먹는 소리냐? 정말이에요 어머니. 이런 게 대박이에요. 통일이 아니라.

설마? 현실이다. 지난 1월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소비자가전박람회(CES) 2014’에 등장한 ‘스마트칫솔’(사진) 얘기다. 이 녀석이 부모의 잔소리를 가로채려 들 심산이다.

콜리브리 스마트칫솔은 이름대로 양치질 상태를 알려주고 올바른 양치 습관을 기르도록 돕는 ‘똑똑한’ 칫솔이다. 사용 방법도 간단하다. 우선 스마트폰에 콜리브리 응용프로그램(앱)을 내려받고 회원 가입을 한다. 그런 다음 앱과 칫솔을 무선으로 연결한다.

이제부터 다른 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양치질에만 집중하시라. 칫솔은 양치 정보를 자동으로 스마트폰 앱으로 전송해준다. 칫솔모가 이나 잇몸의 어느 부위에 얼마나 접촉했는지, 어느 정도 힘을 가해 얼마나 오랫동안 칫솔질을 했는지 스마트폰은 고스란히 들여다본다. 제대로 닦지 않은 부위도 콕 집어준다. 통신은 근거리 통신 기술인 ‘블루투스’를 이용한다.

앱 하나로 칫솔 5개까지 한꺼번에 관리할 수 있으니, 자칫하면 온 가족이 꼼짝없이 볼모로 잡히게 된다. 앱이 시키는 대로 성실히 양치질한 사람에겐 칭찬 점수도 준다. 아이보다 칫솔질 못하는 부모들은 머잖아 망신살이 뻗치리니.

똑똑한 칫솔의 비밀은 ‘센서’에 있다. 가속계 센서(Accelerometer), 자이로스코프(Gyroscope), 지자기 센서(Magnetometer) 등이 주로 쓰인다. 가속계 센서는 방향이나 움직임을 감지하는 센서다. 스마트폰을 가로·세로로 움직일 때마다 화면 방향도 따라 바뀌는 게 이 센서 덕분이다. 자이로스코프는 회전이나 관성과 연관된 센서다. 지자기 센서는 일종의 나침반 역할을 한다. 이 센서들이 서로 보완하고 유기적으로 결합하면서 각종 움직임을 포착해 정보로 변환해준다. 올해 하반기부터는 욕실에서 이 칫솔을 만날 수 있다. 모델에 따라 100~200달러라고 하니, 쓸 만한 전동칫솔을 사는 셈 치면 부담도 적다.

어디 칫솔뿐이랴. 핏빗 스마트팔찌는 팔에 차고 있기만 하면 내가 하루 종일 얼마나 걸었는지, 칼로리는 얼마나 소모했는지 척척 일러준다. 내 핏빗 친구들의 운동량도 순위로 매겨 보여준다. 그러니 친구에게 뒤처지기 싫어 저도 모르게 더 열심히 걷고 운동하게 된다. 콜리브리 스마트칫솔은 이를테면 핏빗의 칫솔판인 셈이다.


프랑스 시티즌사이언스가 내놓은 옷도 흥미롭다. 이 회사는 섬유 모양 센서를 섞어 짠 천으로 만든 ‘디지털 티셔츠’ 시제품을 공개했다. 눈으론 좀체 구분하지 못하지만, 티셔츠엔 위성항법장치(GPS)나 가속계 센서가 심어져 있다. 옷을 입고 조깅을 하면 심장박동수부터 운동 거리, 이동 경로와 고도 등이 스마트폰에 뜬다. 내 동선부터 생체리듬까지 실시간 확인하고 관리해주는 건강 코치가 생긴 셈이다. 옷 하나만 걸쳤을 뿐인데.

인텔도 이번 CES에서 손톱보다 조금 큰 컴퓨터 칩(SoC) ‘에디슨’을 공개하며, 이를 활용한 사례로 아기옷을 선보였다. 아기옷에 부착된 ‘에디슨’은 아기의 기분부터 맥박이나 체온 같은 건강 정보까지 수시로 스마트폰으로 전달해준다.

내가 일일이 챙기지 않아도 물건들이 알아서 정보를 주고받고 나를 관리해주는 시대, 요즘 말로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걸음마나 겨우 떼는 수준으로 보였는데, 올해 들어 분위기가 달라졌다. 우리가 무심코 쓰는 생활 속 물건들이 저마다 두뇌 하나씩 달고 우리를 참견하려 드는 모습이다.

구글은 지난 1월13일(미국시각), ‘네스트’란 실리콘밸리 벤처기업을 인수했다. 가정에서 쓰는 자동온도조절기를 만드는 회사다. 온도조절기에 내장된 센서는 사용자의 생활습관을 분석해 시간별로 집 안 온도를 알아서 조절해준다. 구글은 이 회사를 품는 데 32억달러, 우리돈으로 3조3천억원을 현금으로 질렀다. 사물인터넷 시장에 노골적으로 젓가락을 푹 찌른 것이다. 기회를 노리는 자와 밀려나지 않으려는 자들의 ‘사물따먹기’ 싸움이 본격화됐다.

이희욱 <블로터닷넷> 기자 asadal@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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