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도 온라인 가상화폐인 비트코인으로 결제가 가능한 빵집, 커피숍, 헤어숍 등이 등장했다. 지난 1월7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건물에 “비트코인으로 임대합니다”라고 쓰인 광고 현수막이 걸려 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부터는 국내에서도 비트코인이 ‘화폐’로 쓰이고 있다. 인천시의 한 빵집을 시작으로 커피숍, 헤어숍, 학원 등 10여 개의 온·오프라인 매장이 비트코인을 결제 수단으로 인정한 것이다. 지난 1월7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한 3층짜리 상가 건물의 임대료를 비트코인으로도 받기로 한 부동산관리회사의 직원 강동철(가명)씨를 만났다. 국내 첫 ‘비트코인 임대료’는 그의 아이디어였다. 부동산 경기가 얼어붙은 상황에서 어떻게 해서라도 세입자들의 눈길을 붙들고 싶었다. 마침 투자 목적으로 비트코인을 모으고 있던 건물주도 찬성했다. 세입자가 원할 경우 165m²(약 50평) 상가의 월 임대료 1300만원(1층 기준, 보증금 1억3천만~1억5천만원 별도)의 전부 또는 일부를 비트코인으로 받기로 한 것이다. 비트코인으로 결제한 금액에 대해선 현금과 마찬가지로 세입자에게 세금계산서도 발급해주기로 했다. 비트코인 거래 수수료는 거래 금액의 1% 미만으로 신용카드 수수료(4~5%)보다 저렴하기 때문에 임대료 협상에 따라 건물주와 세입자 모두 이득을 얻을 수 있다는 게 강씨의 설명이다. 여기에 건물주와 세입자는 비트코인을 사거나 파는 과정에서 운이 좋으면 시세 차익을 누릴 수도 있다. “지난해 10월 평범하게 건물 임대 광고를 냈더니 두 달간 10건 남짓 문의 전화가 왔다. 그런데 비트코인 현수막을 내건 12월부터 한 달 사이에 50건 가까이 연락이 왔다. 그중 반은 비트코인과 관련한 문의였다.” 강씨의 경험담이다. 실제 그는 인터뷰를 하는 1시간 동안 2통의 새로운 문의 전화를 받았다. 그러나 비트코인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화폐보다는 투자 기능에 크게 치우쳐 있다. 앞으로 비트코인 가치가 천정부지로 치솟을 것이란 투자자들의 기대 심리 탓이다. 비트코인은 일본의 거래소인 ‘마운트곡스’ 기준으로 1월9일에는 1BTC당 956.99달러에 거래됐다. 지난해 11월 말에만 해도 1200달러를 웃돌았지만 얼마 못 가 중국 등이 규제 조처를 발표하면서 최근엔 주춤한 상태다. 그러나 2010년 7월에만 해도 0.05달러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가치가 폭발적으로 상승했다. 투자 넘어 투기에 가까운 과도한 확신 지난 1월7일 만난 직장인 황춘수(37·가명)씨는 인터뷰를 하는 중에도 스마트폰으로 비트코인 시세와 관련 국제 뉴스를 수시로 확인했다. 지난해 9월 미국에 거주하는 지인의 권유로 비트코인 투자를 시작한 뒤 생긴 습관이다. 여윳돈이 생길 때마다 조금씩 사들인 비트코인은 최근 30BTC(2670만원)까지 늘었다. 총수익은 1천만원이 넘는다. “비트코인은 발행 한도가 2100만 개로 제한돼 있다. 공급은 정해져 있는데 수요는 계속 늘어나니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다. 주식 투자를 했다가 수천만원을 날린 경험이 있지만 비트코인은 완전히 다르다. 10년 이상 장기 투자한 뒤 자식이 결혼할 때쯤 선물로 줄 생각이다.” 웹디자이너인 이창훈(32·가명)씨도 비트코인 투자에 대한 확신이 강하다. 처음부터 그런 믿음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는 일찌감치 2010년에 비트코인을 접했다. 호기심으로 인터넷상의 지하세계로 불리는 ‘딥웹’(Deep Web)에 드나들 때였다. 그곳에서 마약, 무기, 성인 동영상 거래에 비트코인이 활용되는 것을 봤다. 비트코인은 중앙 통제 기관 없이 개인 간 거래가 이뤄지는 덕에 어떤 정부도 쉽게 추적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손대서는 안 되는 ‘검은돈’이라 여겼다. 그러나 그 뒤 비트코인이 정상적인 결제 수단으로 변신하는 것을 보면서 투자를 결심했다. 지난해 12월에는 1BTC(당시 120만원)도 구매했다. “지금 1BTC가 100만원 정도지만 몇 년이 지나면 1억원까지도 갈 거라고 생각한다. 돈이 생기면 더 투자할 거다. 예전에 주식 투자를 할 때는 초단타 매매를 했지만, 비트코인은 전망이 확실하니 묻어두려고 한다.” 투자를 넘어 투기에 가까운 과도한 확신이다. 세금 탈루 등에 악용되기 쉬운 구조 비트코인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현상에 대해 금융 당국은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내부적으로 “화폐도, 금융상품도 아니다”라는 입장을 정리한 정도다. 그러나 다른 정부들은 비트코인이 새로운 화폐인지, 정상적인 금융상품인지에 대해 치열한 고민을 하고 있다. 세금을 제대로 걷기 위해서다. 독일은 비트코인을 금융상품으로 인정하고 자본이득에 대해 세금을 물리고 있다. 노르웨이도 비슷한 과세 방침을 발표했다. 그러나 현행법대로라면 한국에선 비트코인 매매에 따른 자본이득세를 매길 수 없는 것은 물론, 비트코인으로 결제된 상품·서비스에 대한 부가가치세·소득세 납부도 사업자의 선의에 기대야 한다. 가뜩이나 검은돈의 전력을 갖고 있는 비트코인이 세금 탈루 등에 악용되기 쉬운 구조다. 이에 대한 국세청 관계자의 설명은 이렇다. “지난해 11월부터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 가격 등락이 너무 심해서 세금 탈루 목적의 비자금 은닉 수단으로는 적절치 않아 보인다. 아직은 과세 역량을 집중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정체는 여전히 불분명하지만 그 존재만은 분명하다. 우리는 이 낯선 존재를 받아들일 준비가 얼마나 된 걸까. 글·사진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