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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보사 상장, 결단의 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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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08-2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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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이 마련한 실무 방안 공론화 방침… 시세차익 배분 놓고 이견 못 좁혀

(사진/생명보험회사의 기업공개 방안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사진은 지난해 8월 금융연구원이 마련한 공청회모습)
삼성·교보 등 생명보험회사의 상장(기업공개)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금융당국이 생보사 상장에 관한 실무 방안을 이미 마련해놓고 조만간 공론화하겠다는 복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생보사 상장은 크게 두 가지 점에서 금융계 안팎의 집중적인 관심을 끄는 사안이다.

하나는 이 문제를 두고 정부와 삼성이 한바탕 ‘격전’을 치르는 게 불가피해 보인다는 점에서다. 생보사 중 상장 대상은 삼성, 교보생명이 우선적으로 부각돼 있지만 관심의 핵은 역시 삼성생명이다. 삼성쪽이 업계쪽 논리개발에 앞장서고 있을 뿐 아니라 삼성생명 상장은 삼성자동차 부채 처리와도 밀접하게 연결돼 있어 이해당사자들이 많다. 여기에 상장 때 생길 자본이득의 배분을 둘러싼 정부와 삼성그룹간의 시각 차가 워낙 커 밀고 당기기가 치열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생보 상장 문제는 또 이근영 신임 금융감독위원장의 개혁성을 평가하는 잣대가 될 것이란 점에서도 눈길을 끈다. 지난 8월7일 개각에서 발탁된 이근영 위원장에게는 생보 상장이 자신의 실질적인 ‘1호 작품’이 될 공산이 크다. ‘현대사태’ 와중에 취임해 일을 치러냈으나, 현대사태 해결은 전임 위원장 시절에 짜여진 구도대로 이뤄져 자신의 색깔을 드러낼 계제가 아니었다.


정부와 삼성의 일대격돌 불가피

반면, 생보사 상장 문제는 정부의 방안을 확정하는 단계에서 몇 차례 연기되는 과정을 거치는 바람에 백지 상태에서 출발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신임 위원장의 의지에 따라 진로가 많이 달라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정부의 최종 방안에서 계약자 몫이 턱없이 적은 것으로 나타날 경우 신임 이 위원장의 개혁성이 도마 위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 신임 위원장에게는 여간 부담스런 과제가 아닌 셈이다.

애초 금감원 실무진에서는 생보 상장에 관한 최종 방안을 공론화할 ‘디-데이’(D-day)로 8월18일(금감위·증선위 합동간담회)을 잡아두고 있었다. 연구 용역을 맡긴 미국의 회계법인 ‘언스트 & 영’으로부터 지난 6월 초안을 받은 데 이어 8월 초에 최종안을 제출받아 검토를 끝낸 상태여서 더이상 미룰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다 지난 8·7개각으로 금감위원장이 교체된데다 신임 위원장이 현대사태로 경황이 없어 다소 미뤄지게 된 것이다. 물론 신임 위원장에게도 그동안의 경과나 문제점 같은 일반적인 개황은 보고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위·금감원이 갖고 있는 상장 방안이나 언스트 & 영의 보고서 내용이 장막에 가려져 있어 정부의 방침을 명확히 파악하기는 아직 힘들다. 다만, 금감원 안팎의 분위기에서 어느 정도 유추는 할 수 있다. 금감위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언스트 & 영의 연구 결과에는 큰 비중을 두지 않고 있으며 지난해 금융연구원과 생보 상장자문위원회에서 마련한 기준이 줄기를 이룰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전임 위원장 시절 윗선의 지시에 따라 외국계 컨설팅사에 연구용역을 맡기긴 했지만 국내 생보산업의 실정이 외국의 그것과는 확연히 달라 전수받을 경험과 노하우가 별로 없었다”고 평가했다.

생보사 상장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외국계 컨설팅사에 용역을 의뢰한 것은 올해 3월이었는데 맡길 당시부터 논란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헌재 위원장 시절이던 지난해 8월부터 금감위가 준비를 해와 올해 초 사실상 최종안을 확정한 상태에서 느닷없이 ‘외국계 컨설팅사에 용역을 맡긴다’는 절차가 끼어들었기 때문이었다. 이는 막강한 로비력을 자랑하는 삼성의 힘이 작용했다는 의혹을 낳았다.

계약자 몫을 몇 %로 할 건가

금감위 상장 기준의 줄기를 이룰 금융연구원 및 상장자문위원회의 방안은 상장 때 자본이득의 상당 부분을 계약자에 돌려주는 구조로 짜여져 있으며 지난해 두 차례에 걸친 공청회를 거쳐 마련됐다.

금융연구원 방안에 따르면 삼성·교보생명은 지난 89년과 90년에 각각 실시한 자산재평가에서 생긴 차익을 계약자 70%, 주주 30%의 비율로 분배했으나 두 회사는 계약자 몫 70% 중 40%만 배당하고 나머지 30%는 손실보전을 위해 내부 유보했다. 내부 유보된 금액이 삼성 878억원, 교보 662억원인데 이 돈은 당연히 계약자 몫이므로 주인을 찾아줘야 한다는 게 금융연구원 주장이다. 당시 방안을 발표한 금융연구원의 최흥식 부원장은 “현재 계약자 몫은 회사의 재무건전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계약기간과 납입보험료 등을 고려해 차등화하고 과거 계약자 몫은 공익재단에 출연해 사회복지나 공공이익을 위해 쓰여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연구원 방안대로라면 계약자 지분율은 대략 50%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현실적인 여건이 감안된 상장자문위원회 기준에선 20∼30% 수준으로 다소 완화된다.

이에 대해 업계쪽은 삼성·교보생명은 주식회사로 소유주가 주주인데 상장 때의 시세차익을 계약자에 배분해야 한다는 주장은 논리적으로나 법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맞서왔다.

난삽한 용어가 난무하는 양쪽간 논란의 배경에는 국내 생보산업의 특성과 상장을 둘러싼 특수한 역사적 경험이 똬리를 틀고 있다.

국내 생보사는 형식상으로는 주식회사지만 실질적으로는 상호회사의 성격을 띠고 있다. 무배당이 아닌 유배당 상품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현실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회사가 자산을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따라 계약자에 돌아갈 몫이 달라질(마치 주식에 따르는 배당처럼) 소지가 다분한 것이다. 여기서 회사의 실질적인 주인은 주주 못지않게 계약자라는 논리가 도출된다. 무려 50조원에 육박하고 있는 삼성생명 자산 중 주주의 실제 출연금은 40억원(납입자본금 5억원+자산재평가분)뿐이라는 사실도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또 지난 90년 상장을 전제로 실시한 자산재평가 결과 생긴 차익 중 계약자 몫을 제대로 나눠주지 않았다는 사실도 같은 맥락에서 풀이되고 있다. 그럼에도 업계쪽에선 법적으로 주식회사라는 논리를 들어 계약자 몫은 아예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굽히지 않고 있다.

“대주주의 결단이 있어야 풀린다”

사실 주식회사 형태인 생보사의 상장 문제는 기존 주주의 동의를 얻어야 풀릴 사안이다. 금감위는 생보 상장의 가이드라인을 만들 뿐이며 상장을 추진할지 여부는 해당 회사 소관이다. 삼성·교보가 숫제 하기 싫으면 그만인 셈이다. 그렇지만 삼성생명 상장 문제가 삼성차 부채 처리와 절묘하게 얽혀 있어 삼성쪽도 마냥 배짱을 부릴 수만은 없는 형편이다. 삼성은 삼성차 부채 해결용으로 이건희 회장의 삼성생명 주식 350만주를 삼성차 채권단에 넘겨준 상태여서 생보 상장이 이뤄져야 일이 수월하게 풀리도록 돼 있다. 또 세계적인 보험사가 잇따라 국내에 진출하는 등 경영 환경이 달라지는 추세에서 이미지 제고를 꾀하고 한 단계 도약을 위해선 기업공개를 언제까지 도외시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금융연구원 관계자는 “생보사 상장 문제가 풀리려면 대주주의 결단이 있어야 하며 금감위원장 또는 그 이상에서 나서 이건희 회장과 담판을 짓는 식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배 기자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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