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3일 서울 강남구 선릉로 한국비트코인 거래 사무소 ‘코빗’에서 유영석 대표가 세계의 비트코인 거래를 모니터로 살펴보고 있다.한겨레 김봉규
‘총과 패스워드’로 정부 자리 대체될 수도 오늘날 비트코인 열풍을 지탱하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우파의 경제 담론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사람들의 자유를 억압하고 정부를 무한정 키우기 위해 재정 적자를 천문학적으로 늘렸고,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도 헬리콥터로 돈을 쏟아부었으며, 이로 인해 미국은 실질적인 파산 상태에 놓였다거나 엄청난 인플레이션이 임박했다는 주장 말이다. 이러한 주장의 정치적 의도에는 동의하지 않더라도 그 경제적 함축에는 공감하는 사람이 매우 많다. 미국의 파산이나 무시무시한 인플레이션을 우려한다면, 달러화를 팔고 금이나 비트코인을 사는 게 합리적인 선택이 된다. 정리하면, 최근의 비트코인 열풍은 손쉽게 일확천금을 벌려는 투기적 욕망, 정보기술(IT) 발달에 기초한 혁신적인 지급결제 시스템에 대한 높은 평가, 보수적인 무정부주의의 유토피아를 실현하려는 꿈, 달러화에 대한 불신, 재정 적자 우려, 오바마에 대한 증오,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믿음 등 그 성격이 전혀 다른 여러 요소들이 기묘하게 뒤섞인 결과물인 것이다. 그렇다면 비트코인은 옹호자들의 믿음처럼 미래의 새로운 화폐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까? 그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쉽지는 않아 보인다. 우선, 비트코인의 가격 폭등 현상 자체가 문제다. 비트코인이 지급 수단의 역할을 제대로 담당하려면 그 가치가 떨어지지 않는 것 못지않게 계속 올라가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지속적인 가치 상승이 예상된다면 상거래에 이용하는 대신 유통에서 퇴장시켜 보유만 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이 확고한 신뢰의 닻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큰 문제다. 무언가가 화폐로 작동하려면 언제 어디에서든 누구라도 화폐로 받아들일 거라는 신뢰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그동안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었던 화폐는 내재적 가치를 지닌 금과 국가에 의해 통용력을 보장받은 법정화폐였다. 비트코인은 결제 수단으로 잘 작동할 수 있음을 입증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금처럼 내재적 가치를 지닌 것도 아니고 법정화폐처럼 국가가 그 사용을 강제하는 존재도 아니다. 더욱이 비트코인과 작동 메커니즘이 유사한 다른 가상화폐들도 얼마든지 출현할 수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비트코인이 여타 가상화폐들을 제치고 지급결제 수단으로 선택된다는 보장은 전혀 없는 것이다. 비트코인이 법정통화를 대체하는 데 성공하더라도 그때의 세상은 그리 멋져 보이지 않는다. 그곳에서는 IT의 발달로 인해, 정부가 발행한 화폐나 금융기관의 도움 없이도, 조건만 맞으면 원하는 걸 무엇이든 사고팔 수 있다. 국가의 시장 통제 또한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져 한 푼의 세금도 낼 필요가 없다. 조세와 적자 재정을 통해 공공재를 공급하고 소득 재분배를 꾀하며 통화정책을 통해 일시적인 경기 후퇴가 만성적인 불황이나 대공황으로 악화되는 것을 막았던 정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비트코인이 화폐의 역할을 전담하는 세상에서 정부의 자리는 ‘총과 패스워드’로 대체된다. 이곳은 자신의 능력에 따라 원하는 것을 익명으로 모두 이룰 수 있는 ‘강한 개인’의 천국이다. 이러한 극단적 개인주의가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려면 아주 확고한 개인윤리가 필요한데,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서 이러한 윤리를 기대하는 것은 몽상에 불과하다. 비트코인이 지배하는 세상의 귀결은 공동체의 붕괴일 가능성이 아주 높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진보적 성격 읽어내려는 순진한 기대 그러므로 비트코인의 실험으로부터 진보적 성격을 읽어내려는 일부 식자층의 낙관 섞인 기대에는 선뜻 동의하기가 어렵다. 대중의 참여와 협력에 기반한 개방형 네트워크 화폐는 많은 장점이 있는 게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금융기관의 권력에 균열을 가져와 소비자주권의 가능성을 키웠는데, 이러한 네트워크의 영향력이 앞으로 한층 커질 터이다. 하지만 비트코인 연결망 속에서의 개인들이 공동으로 이중지급을 막는다 할지라도, 이때의 참여와 협력은 단세포생물의 세포분열에 가까울 뿐 진정한 사회적 관계와는 거리가 멀기에 대자본에 악용될 여지가 크다. 공공선의 달성과 실물경제의 온전한 순환, 그리고 개성 존중이라는 가치에 비슷한 무게를 두려면, 국가 중심의 화폐 관계를 살아 숨쉬는 구체적 개인들 사이의 진짜 관계에 기초한 자생적 화폐 관계로 보완할 필요가 있다. 아직은 미미하지만 지역통화나 크라우드펀딩, 공유경제 등이 여기에 속할 것이다. 이들의 문제의식을 효과적으로 구현할 새로운 화폐·금융 플랫폼의 개발자, ‘진보적’ 사토시 나카모토의 출현을 기대해본다. 박종현 경남과학기술대 산업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