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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사람을 키워 경제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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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10-1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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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강의 경쟁력 일군 스위스·핀란드·스웨덴을 가다, 그들의 국가경쟁력 원천은 무엇인가

경제규모가 작고 부존자원이 거의 없는 불리한 여건이란 점에서 우리와 별반 다를 게 없는데도 세계 최강의 경쟁력을 뿜어내는 원천은 무엇일까. 스위스(10위), 핀란드(3위), 스웨덴(8위)은 올해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매긴 국가 경쟁력 순위에서 상위 10개국 안에 나란히 올라 전통적인 강국인 독일(12위)이나 일본(26위), 영국(19위), 프랑스(25위)를 따돌렸다. 미국 테러사태에 따른 영향도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웬만한 외풍에는 끄덕도 하지 않을 정도로 이들 나라의 경제기반은 탄탄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들 국가의 경제규모는 우리와 비슷하다. 그럼에도 강한 경제력을 자랑하는 요인은 어디에 있을까. 미국 테러사태에 따른 충격과 긴장감이 채 가시지 않은 9월 중순 이들 나라를 다니며 취재하는 중 내내 머리를 떠나지 않은 이런 의문에 똑 떨어지는 답을 찾기는 어려웠다.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제시된 것도 가만히 따져보면 오히려 발전의 ‘결과’ 아닌가 하는 반문이 떠올랐다. 예를 들어 스위스의 경우 박사 과정까지 교육비를 모두 국가가 책임진다. 이같은 교육투자는 발전을 보장하는 요인이기도 하지만, 지금까지 이룬 발전의 결과없이는 현실에서 실행하기 어려운 정책일 터이다. 연구개발(R&D)투자를 비롯한 다른 요인들도 비슷하게 양면을 갖고 있다.


한국과 유럽 소국 비교
  한국 스웨덴 스위스 핀란드
인구(천명) 46,125 8,884(0.2배) 7,206(0.2배) 5,171(0.1배)
면적(㎢) 99,434 449,964(4.5배) 41,284(0.4배) 338,000(3.4배)
GDP(US $) 4,574억 1,886억(0.4배) 2,412억(0.5배) 1,183억(0.3배)
인당 GDP(US $) 9,628 21,230(2.2배) 33,470(3.5배) 22,880(2.4배)
수도 서울 스톡홀롬 베른 헬싱키

자료 : 국제통화기금(2000년 말)

어떤 외풍에도 끄덕없는 작지만 큰 나라

그렇다면 이들 나라의 발전은 전쟁의 참화를 겪지 않고, 유럽이란 물 좋은 시장 안에 들어 있는 ‘운칠기삼’(運七技三)의 행운일 뿐인가. 그 또한 정답이 되지 못할 것이다. 비슷한 행운을 발전의 기회로 살리지 못하고 저발전 상태에 머물고 있는 유럽지역 국가도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오슬오슬 소름이 돋을 정도의 초겨울 날씨를 보이는 가운데 도착한 첫 방문지는 베른 시내에 있는 스위스 경제부(SECO)였다. 우리나라로 치면 재정경제부격이다. 우리와 달리 정부 청사가 한곳에 모여있지도 않은데다 허름해 보이는 모퉁이 건물이어서 이곳이 경제부처 청사인가 하는 의심까지 들었다. ‘시계의 나라’라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약속 시각에 정확히 맞춰 나타난 데이비드 시즈 경제부 차관은 스위스경제의 여러 강점을 자신만만하게 역설했다. 완전고용에 가까운 낮은 실업률, 견조한 성장세 유지….

시즈 차관은 “스위스경제의 성공 비결 중 가장 중요한 것 한 가지를 꼽는다면?”이라는 물음에 “우리는 교육투자를 굉장히 많이 한다”라고 짧지만 명확하게 대답했다. 교육투자를 통해 고부가가치 상품을 만들어내는 바탕을 닦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는 결코 의례적인 말이 아니다. 스위스의 교육투자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2000년)에 따르면 스위스의 학생 1인당 교육투자는 미화 3만1658달러로 미국(3만408달러)을 제치고 1위였다.

교육내용 또한 직업과 관련된 현장실습 위주로 이뤄진다고 한다. 의무교육(중등교육)을 마친 뒤부터는 4분의 3 이상이 3∼4년간 도제생활을 경험한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자신이 선택한 직종의 기업에서 실제 업무를 체험하게 된다. 이런 현장형 직업교육 덕분에 졸업 뒤 곧바로 실무에 투입될 수 있다. 근로의욕, 조직몰입도에서 스위스의 노동력이 세계 최고 수준이란 평가를 받고 있는 것도 이런 교육시스템에 힘입은 바 크다. 스위스의 종업원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6만6317달러(IMD 2000년 조사)로 미국에 이어 2위 수준이며 실업률은 2% 안팎에 머물고 있는 사실에서도 이런 사정을 엿볼 수 있다.

사람에 투자해서 경쟁력 얻는다

핀란드, 스웨덴 역시 교육투자에 대한 열의가 대단하다. 국토의 3분의 2 이상이 산지인데다 변변한 자원도 없는 나라여서 ‘사람’을 키우지 않고는 먹고살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는 듯하다.

핀란드 교육은 초등학교 단계의 기초교육부터 성인을 위한 직업교육에 이르기까지 정부의 개입에 따라 체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미 지난 94년에 전문가위원회(Expert Committee)를 만들어 정보화사회에 대응하기 위한 인적자원 개발을 추진하고 있기도 하다. 이 위원회에서 2년에 걸쳐 수립한 ‘교육과 훈련, 연구에 대한 국가전략’에는 정보기술의 활용 방안과 구체적인 실행 프로그램이 담겨 있다.

핀란드 경제연구소 에틀라(ETLA)의 페카 일레 안틸라 이사(투자부문 연구담당)도 핀란드경제의 성공 요인으로 “모든 이들에게 평등한 교육 기회를 제공해 능력을 개발토록 한 것”을 첫손에 꼽았다.

북유럽의 맹주 스웨덴도 교육수준이 높은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특히 여성인력이 우수하며 성인교육이 활발한 것도 특징으로 꼽힌다. 이는 전통적으로 발명과 혁신을 상업화하는 데 일가견이 있는 스웨덴인들의 전통과 맞물려 19세기까지 빈곤한 농업국가였던 스웨덴을 오늘의 부국으로 만들고 있는 바탕이 되고 있다.

‘물건은 스웨덴인이 만들고 운반은 노르웨이인이, 장사는 덴마크인이 한다’는 속담이 있을 만큼 스웨덴 사람들은 발명에 소질을 보이고 있다. 그레이엄 벨이 만든 전화기를 개량해 손에 쥘 수 있게 만든, 에릭슨의 창업자 라슈마그너스 에릭슨도 그 한 예이다. 노벨의 다이너마이트를 비롯해 주사기, 지퍼, 프로펠러, 인공호흡기 등 셀 수 없는 발명품이 스웨덴 사람들의 머리와 손에서 나왔다는 사실에서도 이런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이는 창의성을 중시하는 교육풍토에서 나온 열매로 평가받고 있다.

스웨덴 정부는 평생학습계좌(Individual Learning Accounts) 제도를 도입해 내년 1월부터 시행할 계획이다. 이는 개인과 기업이 공동으로 기금을 조성해 평생계좌를 만들고 이를 이용하는 국민에게 과감한 세제혜택을 준다는 것을 뼈대로 하고 있다. 이를 통해 국민들이 스스로 재교육에 나서도록 한다는 것이다.

핀란드, 스웨덴경제의 눈부신 발전 배경에서 또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대학과 기업간의 산·학협동과 대기업·중소기업간 협력체제이다. ‘북유럽의 실리콘밸리’로 꼽히는 스웨덴의 시스타 사이언스 파크와 핀란드의 오타니에미 사이언스 파크가 모범을 잘 보여준다.

산·학, 기업간 협력체계 구축

사진/ 스웨덴의 에릭슨 관계자가 자체 생산중인 이동통신 장비(네트워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김영배 기자)
스톡홀름 북부에 있는 시스타 파크는 1970년대 초까지 군사훈련장으로 쓰였던 지역이다. 훈련장이 이전되면서 개발의 필요성이 제기됐고 때마침 무선통신과 관련된 여러 사업본부와 연구소 통합작업을 벌이던 에릭슨이 먼저 발을 들여놨다. 노키아, 모토로라와 함께 세계 3대 휴대폰 업체로 꼽히는 에릭슨의 첨단 기술력은 수많은 정보통신 업체들을 시스타로 끌어들이는 구심력으로 작용했다.

이 지역의 토지개발공사격인 시스타 파크(주)의 페르 안데르스 헤드크비스트 사장은 “사이언스 파크는 정부의 개발계획이 아니라 에릭슨의 주도로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헤드크비스트 사장은 “토지와 건물은 대부분 정부 소유로 돼 있지만 민간기업에 대한 특별한 지원은 없다”고 말했다.

시스타 파크에는 노키아,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최근 합병을 선언한 컴팩과 휼렛패커드 등 쟁쟁한 정보통신 업체가 700여곳이나 입주해 있다. 이들 기업이 보유한 세계 정상급 기술만도 350여종에 이르러 미국 실리콘밸리에 이어 세계 2위, 유럽지역에선 최대 첨단기술 단지로 꼽힌다.

핀란드의 오타니에미 파크는 헬싱키 서부 에스푸시(市)에 있는 과학단지로 1987년 1월 설립됐다. 휴대전화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자랑하는 노키아를 비롯해 80여개의 기업이 들어와 있으며 5천여명의 연구인력이 활동하고 있는, 북유럽 최대의 기업인큐베이터로 각광받고 있다. 핀란드에는 이런 사이언스 파크가 모두 19개에 이른다.

핀란드와 스웨덴의 사이언스 파크는 이공계 대학을 중심으로 연구소,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밀집해 협력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연구소의 기술과 기업의 사업성을 접목시키기 위한 것이다. 여기서 생긴 경쟁력은 나라 경제를 든든하게 떠받치는 버팀목이 되고 있다.

물론 이들 나라의 경제가 온통 장밋빛인 것만은 아니다. 인구 고령화에 따른 생산활동 인구의 감소문제를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데다 대외 의존도가 높아 세계경제 침체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스위스의 경우 미국과 유럽지역의 경기침체로 올해 성장률이 지난해 3.5%보다 크게 낮아진 1.5% 정도에 머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핀란드, 스웨덴경제를 받치고 있는 무선통신 업체 노키아, 에릭슨이 미국 정보통신(IT) 거품 붕괴에 따른 주가하락의 홍역을 톡톡히 치르고 있는 데서도 이들 나라 또한 전반적인 세계경제 불황에서 결코 예외가 아님을 엿볼 수 있다.

그렇지만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나라들답게 기본적으로 낙관론이 우세하다. 향후 사업 전망을 묻는 질문에 시스타 파크 관계자는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이 많지만 잘될 것으로 믿는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건강에 좋다”며 호기롭게 웃었다. 헤쳐나갈 난관이 많지만 자신있다는 태도로 비친다.

끝없는 연구개발, 불황을 기회로 삼아

이런 낙관론은 연구개발(R&D) 투자에 대한 강한 의지에서도 확인된다. 스웨덴, 핀란드의 GDP 대비 R&D투자 비중은 각각 3.9%, 3.1%로 나란히 세계 1, 2위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이들 나라는 연구개발 투자의 절반 가까이를 정보통신 산업에 집중하고 있다. 핀란드 정부는 경제위기 때 되레 R&D 투자를 확대하도록 민간기업을 독려한 것으로 유명하며 재정긴축이 불가피한 상황에서도 연구개발 관련 예산을 늘리기 위해 노사정이 사회보장 예산을 축소키로 합의한 전례도 있다. 핀란드 정부는 2004년까지 연구개발 투자 비중을 3.5% 수준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한 나라의 발전 요인을 섣불리 한 가지로 단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발전의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는 위험도 감안해야 한다. 다만, 우리나라와 비슷한 처지에 있으면서도 경이적인 발전을 이루고 있는 나라들의 예에서 공통적으로 추출된 핵심은 ‘사람’에 대한 배려와 투자이다.

취리히·헬싱키·스톡홀름=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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