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참사로 세계경제 불확실성 증폭… 경기하강기에 위기 덮쳐 금융대란 조짐
테러공격에 붕괴된 세계무역센터(WTC) 빌딩은 미국 경제의 상징이었다. 단지 상징물이 아니라 실제로 미국 금융의 심장부이다. 미국이 세계 금융질서를 쥐락펴락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세계 금융의 심장부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뉴욕의 항만자본이 소유한 이 빌딩에서는 150여개 금융기관과 보험회사 직원 5만여명이 일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곳에 가해진 테러공격은 미국에 대한 상징적 타격에 그친 게 아니라 세계금융을 뒤흔들었다. 모건 스탠리, 캔터 피츠제럴드, 살로먼 스미스바니 등 세계 굴지의 금융기관 본부가 갑자기 사라지고 뉴욕 증시는 1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나흘간이나 문을 열지 못했다. 항공·보험·관광산업 등은 곧바로 매출이 뚝 떨어졌고, 내구소비재 제조업이나 대형 유통업체들도 테러참사 후폭풍권에 있다. 나흘 휴장 끝에 지난 17일 문을 연 뉴욕증시에서 이들 기업의 주가는 폭락했다.
무너진 경제, 전세계에 불안 감돌아
이런 직접적인 타격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복구될 수 있다. 폴 오닐 미 재무장관도 사건 바로 다음날 “테러참사가 경제에 미치는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와 긴급대책을 시행하고 있다”며 “미국 경제의 회복전망은 여전히 변함없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영국 국영방송 <BBC>의 경제담당 해설위원인 제프 랜달은 “좋게 해석하면 시장심리를 안정시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한 발언이고, 나쁘게 보면 세계 경제 실상과 전망과는 동떨어진 아주 바보 같은 소리”라고 평가했다.
이번 테러참사가 경제에 미치는 심각성은 미국은 물론 전세계가 경기침체의 수렁으로 빠져드는 형국에서 터졌다는 데 있다. 많은 경제전문가들은 ‘도처에 생채기가 나 있는데 소금을 뿌린 것’으로 비유한다. 미국 상공회의소의 토머스 노더휴 회장은 “이번 테러공격의 목표는 미국 경제”라면서 “이미 비틀거리고 있는 중환자에게 또 한 차례 치명적인 손상을 준 꼴”이라고 말했다. 이번 참사 이전부터 미국과 세계 경제는 동반침체의 징후가 보였다. 미국 신경제의 상징인 나스닥의 주가는 지난해 3월에 견줘 3분의 1 수준으로 주저앉았고, 구경제를 대표하는 뉴욕증권거래소의 다우존스공업지수도 올 들어 10%, S&P500지수는 20%나 하락했다. 일본의 닛케이지수는 사태발발 직전일인 지난 9월10일 17년 만에 최저수준으로 떨어졌다. 유럽도 런던시장의 FT100지수가 올 들어 20%나 떨어지는 등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주가하락보다 더욱 심상치 않은 현상은 골이 더욱 깊어지고 있는 미국 경기의 하강이다. 특히 실업률이 치솟고 소비가 뚜렷히 둔화하는 조짐을 보여 자칫 경기순환 과정의 일시침체가 아니라 본격적인 공황국면으로 치닫지 않느냐는 우려가 팽배해진 터에 이번 참사가 터졌다. 미국의 실업률은 올 들어 4.5%라는 저항선을 굳건히 지켜오다가 지난 8월에 갑자기 4.9%로 치솟았다. 8월중 산업생산은 전달보다 0.8% 하락했다. 미국의 산업생산은 11개월째 하락세인데, 이는 1960년 이후 처음이다. 특히 하이테크분야는 1년 전보다 생산이 7.2%나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또 미시건대학에서 지난 9월13일 발표한 9월의 소비자신뢰지수는 83.5를 기록해, 8월의 91.5에서 급락했다. 이 수치는 테러참사 이전의 조사를 바탕으로 한 것이어서 10월의 소비지수는 더욱 추락할 것이 확실해 보인다. 미국의 경제성장에서 소비가 기여하는 비중은 60%를 넘는다. 만약 실제소비가 미시건대학의 지수만큼 무너져내리면 미국 경제는 그야말로 마지막 구명줄을 잃는 것이나 다름없다. 소비위축은 기업의 매출과 수익부진을 초래해 대량 감원으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소비위축을 가져오는 ‘악순환의 소용돌이’가 바로 공황이다. 미국의 소비지수 추락 가속화의 영향
미국의 소비둔화는 단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 10여년 동안 구축된 세계 경제질서는 미국에서 경제위기가 발생하면 전세계 경제가 동시에 휘청거릴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세계 경제의 성장은 미국의 주가상승과 왕성한 소비지출에 기대왔다. 미국은 달마다 수백억달러씩 경상수지적자를 내는 국가이다. 미국 국민들은 자기의 소득에 비해 소비를 더 많이 한다. 7월 말 현재 미국의 총개인부채는 7조3천억달러에 이른다. 가구당 카드빚만 8523억달러이다. 이런 적자경제를 지탱할 수 있는 비결은 ‘의도적인 강한 달러’와 끊임없는 주가상승에 있다.
선진7개국(G7) 재무장관들은 95년 4월 환율협상에서 강한 달러 기조를 정착시키기 위한 협조개입정책에 합의한다. 그뒤 미국은 해마다 수천억달러씩의 경상수지 적자를 내는 대신 해외에서 유입된 자본으로 이 적자를 메워왔다. 물론 이렇게 유입된 자본은 대부분 뉴욕의 주식과 채권값을 끓어오르게 하는 불쏘시개 구실을 했다. 95년 4월 이후부터 올해 4월까지 전세계에서 미국으로 유입된 자본이 7조5천억달러이다. 해마다 1500조달러, 즉 우리나라 한해 예산의 20배에 이르는 돈이 해마다 전세계 각지에서 미국으로 흘러들어간 것이다. 일부는 미국 국민들의 헤픈 씀씀이에 동원되고 일부는 뉴욕의 월가에서 통제하는 세계 자원배분시스템에 편입된 것이다. 여기에 적당한 명분도 덧붙여진다. ‘정보기술혁명을 통한 끊임없는 생산성 향상으로 인플레이션 없는 고성장 지속’이라는 신경제 사이클이 바로 그 명분이다. 그러나 지난해 하반기부터 닷컴거품이 붕괴되기 시작한 뒤 신경제의 논리는 허구임이 서서히 입증되고 있다.
한신대 전창환 교수(국제경제학)는 “결국 지난 10여년 동안 일본과 유럽, 또 아시아 각국의 희생 속에 미국이 고달러 기조를 바탕으로 번영을 누려왔다”며 “이번 참사의 배경에는 이런 파괴적 불평등도 어느 정도 작용했다고 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전 교수는 “달러화의 거품이 자연스럽게 제거돼야 하는데 문제는 이 과정을 순조롭게 흡수할 수 있는 완충지대(버퍼)가 없다는 데 있다”며 일본과 유럽까지도 이미 미국이 지배한 경제질서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상황을 안타까워했다.
무풍지대 없어… 무너지는 월가의 신화
세계 두 번째 경제강국인 일본은 2분기 성장률이 마이너스였고 탄탄한 체질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아온 싱가포르와 대만도 올 들어 대무수출의 둔화로 마이너스 성장으로 치닫고 있다. 유럽지역도 마찬가지이다. 지난 9월13일 발표된 유로지역의 1분기 성장률은 0.1%에 불과했다. 2분기 성장률이 1.7%였음으로 감안하면 너무 가파른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갑자기 고달러 기조가 무너지면 세계 경제에 미치는 충격파가 너무 크다. 달러값이 떨어지면 미국 소비자들로서는 가만히 앉아서 소득이 줄어들고 수입물품의 가격도 올라가 소비를 더욱 줄여야 한다. 또 미국 증시에 잠겨 있는 자금들이 밖으로 빠져나오고, 전세계 주식투자자금의 약 70%가 달러표시로 되어 있어 각국 주가도 동반하락한다.
국제금융시장에서는 달러화의 하락세가 이미 시작됐다. 특히 테러사태 이후 뉴욕 증시의 폭락 우려와 2차 테러 발생 가능성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지면서 달러가치가 유로화 및 엔화에 대해 각각 6개월 만의 최저수준으로 떨어졌다. 투자자들은 달러표시 주식이나 채권을 팔아치우는 대신 금이나 국제원자재 현물과 같은 안전성 높은 자산으로 빠르게 자금을 옮기고 있다. 이런 달러화의 하락세는 전세계에서 ‘가장 안전하고 유망한 투자처’라는 월스트리트의 신화가 무너진 탓이 크다.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은 시장의 이런 동요에 즉각 대응방안을 마련하고 나섰다. 선진7개국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들은 테러참사가 난 바로 다음날 공동성명을 내 “세계 경제를 붕괴시키지 않도록 공동노력을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또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와 유럽중앙은행(ECB)는 지난 9월13일 총 500억달러 규모의 통화스왑을 체결하고 필요할 경우 즉각 동시 금리인하에 나서기로 합의했다. 통화스왑이란 상대국의 화폐를 합의금액 한도 안에서 언제든지 꾸어 쓸 수 있도록 하는 조처이다.
하지만 이런 통화정책의 공조가 단기적인 시장충격을 잠재울 수는 있지만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을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전남대 이채언 교수(경제학)는 “뉴욕 테러공격에 따른 국제금융시장의 불안과 교역의 둔화는 자연스럽게 터질 세계 공황을 앞당긴 것에 불과하다”라며 “미국으로서는 이 기회를 활용해 절대적 힘의 우위를 사람과 상품의 이동뿐만 아니라 자본의 이동까지 통제함으로써 자국의 경제적 타격을 최소화하려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 경제의 뿌리가 뽑히고 있다
환율과 금리, 주가 등의 요동이 수반되는 경제위기가 나타날 때마다 정책당국은 예나 지금이나, 또 선진국, 후진국 가릴 것 없이 실물의 펀드멘털(기초)은 괜찮은데 금융시장에서 투자자들이 과민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주장한다. 지금 미국도 마찬가지이다. 부시 미 대통령은 “테러범들이 세계무역센터를 붕괴시키기는 했지만 미국의 근본에 타격을 주는 데는 실패했다”고 말했다. 세계무역센터가 상징하는 미국 경제의 펀드멘털은 흔들리지 않았다는 얘기이다. 그러나 테러사태와 상관없이 미국 경제의 펀드멘털은 그리 튼튼하지 못한 게 현실이다.
일반적으로 주가의 적정수준을 평가수단으로 활용하는 ‘주가수익비율’(PER)이라는 지표가 있다. 기업의 순이익대비 주가의 배율을 계산해 기업의 내재가치보다 주가가 얼마나 높으냐를 따지는 것이다. 올 들어 세계 각국의 주가가 많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내재가치를 고려하면 아직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특히 미국의 주가가 그렇다. 주가에 거품이 잔뜩 끼어 있다. 8월 말 현재 S&P500 지수의 주가수익비율은 30을 넘는다. 미국 증시의 거품현상이 가장 극심했다는 1929년이나 1965년에도 평균 주가수익비율은 21에 불과했다.
많은 경제전문가들은 지금의 세계 경제사정이 1920대 후반의 대공황과 상당히 닮은꼴이라고 해석한다. “그때도 철도를 비롯한 수송기술과 통신의 발달 등으로 인플레 없이 고도성장이 지속되는 이른바 ‘신경제’라는 말이 유행했다. 연 4% 정도의 물가상승에 성장률은 4.7%를 웃돌았다. 1929년 대폭락 직전까지 주가도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이채언 교수는 “금본위제도가 붕괴돼 중앙은행이 통화정책을 통해 금융시장의 갑작스런 붕괴를 막는다는 점말고는 1929년의 대공황과 지금의 상황이 너무나 흡사하다”면서 “그러나 실물의 마이너스성장이 지속되면 통화정책으로 공황을 막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일본이 사실상 제로금리정책을 펴는데도 장기복합불황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이나 미국이 올 들어 7차례나 연방기금금리를 인하했지만 경기가 계속 내리막길로 가고 있는 게 대표적 사례이다.
1929년 대공황은 재현될 것인가
1920년대판 미국의 신경제는 다우존스공업지수를 1921년 60에서 1929년 8월 381까지 무려 600% 끌어올렸다. 그러나 그해 10월 주가 대폭락 이후 1932년 7월 다우지수는 42까지 곤두박질쳤다. 그뒤 미국 증시는 2차 세계대전과 1950년대 한국전쟁을 거치고 나서야 깊은 계곡에서 빠져나왔다. 지금 아프가니스탄과 중동지역을 휘감고 있는 전운은 미국 경제에 드리워진 공황의 그늘이 옮겨간 것일까?
박순빈 기자 sbpark@hani.co.kr

사진/ "미국에 신의 가호를!" 지난 9월 17일 뉴욕증권거래소의 개장을 앞두고 증권 거래인들이 투자자들의 애국심을 호소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AP 연합)
이번 테러참사가 경제에 미치는 심각성은 미국은 물론 전세계가 경기침체의 수렁으로 빠져드는 형국에서 터졌다는 데 있다. 많은 경제전문가들은 ‘도처에 생채기가 나 있는데 소금을 뿌린 것’으로 비유한다. 미국 상공회의소의 토머스 노더휴 회장은 “이번 테러공격의 목표는 미국 경제”라면서 “이미 비틀거리고 있는 중환자에게 또 한 차례 치명적인 손상을 준 꼴”이라고 말했다. 이번 참사 이전부터 미국과 세계 경제는 동반침체의 징후가 보였다. 미국 신경제의 상징인 나스닥의 주가는 지난해 3월에 견줘 3분의 1 수준으로 주저앉았고, 구경제를 대표하는 뉴욕증권거래소의 다우존스공업지수도 올 들어 10%, S&P500지수는 20%나 하락했다. 일본의 닛케이지수는 사태발발 직전일인 지난 9월10일 17년 만에 최저수준으로 떨어졌다. 유럽도 런던시장의 FT100지수가 올 들어 20%나 떨어지는 등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주가하락보다 더욱 심상치 않은 현상은 골이 더욱 깊어지고 있는 미국 경기의 하강이다. 특히 실업률이 치솟고 소비가 뚜렷히 둔화하는 조짐을 보여 자칫 경기순환 과정의 일시침체가 아니라 본격적인 공황국면으로 치닫지 않느냐는 우려가 팽배해진 터에 이번 참사가 터졌다. 미국의 실업률은 올 들어 4.5%라는 저항선을 굳건히 지켜오다가 지난 8월에 갑자기 4.9%로 치솟았다. 8월중 산업생산은 전달보다 0.8% 하락했다. 미국의 산업생산은 11개월째 하락세인데, 이는 1960년 이후 처음이다. 특히 하이테크분야는 1년 전보다 생산이 7.2%나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또 미시건대학에서 지난 9월13일 발표한 9월의 소비자신뢰지수는 83.5를 기록해, 8월의 91.5에서 급락했다. 이 수치는 테러참사 이전의 조사를 바탕으로 한 것이어서 10월의 소비지수는 더욱 추락할 것이 확실해 보인다. 미국의 경제성장에서 소비가 기여하는 비중은 60%를 넘는다. 만약 실제소비가 미시건대학의 지수만큼 무너져내리면 미국 경제는 그야말로 마지막 구명줄을 잃는 것이나 다름없다. 소비위축은 기업의 매출과 수익부진을 초래해 대량 감원으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소비위축을 가져오는 ‘악순환의 소용돌이’가 바로 공황이다. 미국의 소비지수 추락 가속화의 영향

사진/ 뉴욕 증시는 1차대전 이후 처음으로 나흘동안 휴장했다. 무너진 세계무역센터 인근에 있는 나스닥 시장의 야외전광판.(SYGMA)

사진/ 테러 여파가 전세계에 몰아치고 있다. 독일 프랑크프르트 닥스지수가 연일 폭락하자 시장 거래인이 당혹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