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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CJ그룹은 ‘경제비리 종합선물세트’ 수준의 협의를 받고 있다. 해외 비자금 조성, 탈세, 계열사 주가조작 등에 관한 의혹이 줄을 잇고 있다. 서울 중구 CJ그룹 본사의 로고 모습. 한겨레 김태형 기자
재계 논리 받아들여 솜방망이 처벌 되풀이 CJ그룹이 박근혜 정부에서 ‘검찰 수사 대상 재벌 1호’가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CJ그룹은 이미 2008년 비자금 조성 의혹으로 검찰 수사 선상에 오른 적이 있었다. 당시 이재현 회장의 차명자금을 관리하던 자금관리팀장 이아무개씨가 2006~2007년 170억원을 사채업자에게 빌려줬다 회수하지 못하게 되자 살인을 청부한 혐의로 기소된 게 계기가 됐다. 이 재판 과정에서 이 회장의 비자금 실체가 처음 드러난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가 판결문에 “이씨는 이 회장이 관리하던 자금 규모가 수천억원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이 회장의 차명재산이 드러남으로써 차명재산 관련 세금만 1700억원을 상회하는 금액을 납부한 점을 비춰보면, 이 회장의 차명재산은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고 적시하자 파문이 일었다. 당시 검찰은 이씨의 ‘비자금 파일’을 확보한 뒤 계좌 추적을 통해 이 회장에게 4천억원대의 차명재산이 있다는 사실까지 확인했다. 그러나 자금의 출처를 밝혀내지는 못했다. 그 뒤 검찰은 “선대(할아버지인고 이병철 회장)에서 물려받은 재산”이라는 CJ 쪽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비자금 수사를 흐지부지 종결했다. 2007년 말에 시작된 ‘삼성 비자금 특검’이 결국엔 4조5천억원에 이르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차명재산에 대해 “불법적으로 조성된 비자금이 아니고 이병철 선대 회장의 유산”이라며 면죄부를 준 것과 똑같은 결론이었다. 결국 CJ그룹 비자금의 실제 출처는커녕 규모 파악도 제대로 못한 채 수사가 마무리된 것이다. 그 뒤 CJ그룹은 비자금 의혹이 불거질 때마다 “국세청에 차명재산에 관한 세금을 자진 납부해 관련 의혹을 모두 정리했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현재 검찰은 CJ그룹이 차명재산을 정리하는 과정에 일부를 해외로 빼돌려 비자금으로 묻어놓았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물론 상당수는 국내 비자금으로 여전히 남아 있을 수도 있다. 사실 비자금 조성은 CJ그룹만의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검찰 수사가 뒤늦은 감이 있다. 이미 지금까지 상당수의 재벌 총수 일가가 각양각색의 방식으로 비자금을 조성했다가 들통나 곤욕을 치렀기 때문이다.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 회장은 2006년 회사 경비를 과다 계산하는 방법 등으로 1천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1999년 항공기 도입 과정에서 받은 1100억원의 리베이트를 빼돌려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기소됐다. 여기에 삼성전자·SK그룹·두산그룹·오리온그룹 등도 비자금 관련 수사를 받은 적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검찰이 총수를 기소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고, 법원에서 혐의가 인정되더라도 ‘1심 실형-항소심 집행유예-대법원 확정판결 뒤 특별사면’ 순서로 솜망방이 처벌이 내려지는 선에 그쳤다. 지금껏 국내에선 재벌의 비자금이 외국자본으로부터 회사 경영권을 방어하거나 정치권에 자금을 대는 불가피한 수단이라는 재계의 논리가 어느 정도 먹혀들었기 때문이다. 실제 정몽구 회장 변호인 쪽은 재판 당시 비자금의 사용처에 대해 “대부분을 정치자금과 근로자 사기 진작비 등으로 썼다”고 당당히 밝히기도 했다. [%%IMAGE2%%]국세청의 ‘CJ 봐주기’ 의혹도 다시 도마 위에 그러나 이번 CJ그룹의 해외 비자금 수사는 과거와 달리 검찰 수사 단계부터 속전속결로 진행될 것이란 예측이 많다. 박근혜 정부에서 진행하는 첫 재벌 수사인 만큼 검찰이 박 대통령의 눈에 들기 위해서라도 온 힘을 다해 수사에 나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특히 박 대통령은 후보자 시절부터 재벌 총수의 경제비리 엄단에 대해 강한 의지를 보여왔고, 세수 확보를 위한 지하경제 양성화 방안으로 역외 탈세에 주목해온 터라 검찰이 더 고삐를 죌 수밖에 없다. 지난 5월22일 검찰이 2008년 CJ그룹에 대한 세무조사를 했던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을 압수수색해 당시 관련 자료 일체를 확보한 것에는 여느 때와는 다른 검찰의 수사 의지가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 앞으로 검찰은 지금까지 수사한 자료와 국세청의 과거 세무조사 자료를 대조해가며 2008년 이후 CJ그룹이 해외비자금을 통해 얼마나 탈세를 했는지, 이미 납부한 1700억원의 세금은 적정했는지 등을 확인할 것으로 보인다. 한발 더 나아가 검찰은 당시 서울지방국세청이 검찰보다 먼저 CJ그룹의 차명재산에 대해 파악한 뒤 자진 납부 형식으로 1700억원의 세금을 받고도 검찰에 고발하지 않은 것이 ‘CJ 봐주기’에서 비롯됐는지도 따져볼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4년 전 CJ그룹은 국세청의 세무조사 무마 로비를 했다는 의혹을 산 적이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CJ그룹이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받을 당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친구인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이 이재현 회장을 위해 세무조사 무마 로비 의혹을 벌인 정황을 잡고 이 회장을 불러 조사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는 바람에 수사를 중단한 적이 있다. 자칫하면 CJ 비자금 수사가 국세청 로비 의혹 수사로 확대될수도 있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 국세청은 전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CJ그룹이 차명재산에 대한 세금을 납부할 당시 국세청장이던 한상률씨는 지난 5월22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검찰이 CJ를 수사하지 않았나. 원래 검찰이 수사 중인 사안을 국세청이 따로 조사하지는 않는다. 검찰 수사 결과 조세 포탈 혐의가 있으면 입건하고 국세청에 통보해 세금을 추징하면 되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만약 검찰이 CJ그룹의 불법 비자금 조성, 세금 탈루, 세무조사 무마 로비 의혹과 관련해 혐의를 입증해낸다면 이를 총지휘했을 가능성이 큰 이재현 회장에 대한 처벌 수위는 과거 다른 재벌 총수에 대한 재판 때보다 높을 전망이다. 최근 경제비리를 저지른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과거와는 달리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뒤 법정 구속된 전력이 있는 탓이다. “이번에 CJ가 제대로 걸렸다”는 분석이 CJ 안팎에서 나오는 이유다. 골목상권 침해 내수기업들 촉각 재계의 눈길은 오히려 ‘CJ 비자금 수사 이후’에 쏠려 있다. 검찰이 곧 비자금 수사를 다른 기업으로도 확대할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명박 정부에서 과도한 혜택을 받았다고 거론되거나 박근혜 정부의 국정철학인 경제민주화에 어긋나게 골목상권에서 영업 중인 내수기업들이 속을 태우고 있다. 한 식품회사 관계자는 “국내에 털어서 먼지 안 나는 기업이 어디 있겠나. 그러나 지금처럼 경제가 안 좋을 때 수출기업을 건들면 여론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검찰 눈엔 내수기업인 CJ가 만만하게 보였을 수도 있다. 더군다나 골목상권 침해 문제로 정권에 밉보인 이유도 있을 것이다. 우리 같은 내수기업들은 앞으로 검찰 수사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서보미 기자 cpri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