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렛팩커드의 컴팩 합병으로 격변 예고… 국내 관련업계도 파급력에 명암 엇갈려
9월 첫쨋주 전세계 주식시장은 미국 뉴욕에서 나온 한 기업인수합병(M&A) 소식에 화들짝 놀랐다. 주가도 요동을 쳐, 울고 웃는 기업들이 수두룩했다. 전세계 개인용컴퓨터(PC) 시장에서 3위의 제조회사인 휴렛팩커드(HP)가 세계 2위의 컴팩을 흡수한다는 발표 때문이었다. 두 회사는 지난 9월4일(현지시간) 뉴욕증시가 마감한 뒤 “컴팩주식 1주당 휴렛팩커드 주식 0.6325주를 교환하는 방식의 합병안을 양쪽 이사회에서 승인했다”고 전격 발표했다. 주식교환과 함께 휴렛팩커드가 컴팩의 주주들에게 1주당 약 19%의 프리미엄까지 얹어주기로 해 합병비용은 모두 200억달러, 우리돈으로 무려 25조8천억원에 이른다. 지난 99년에 발표된 AOL과 타임워너의 합병규모(1500억달러)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컴퓨터업계의 합병으로서는 사상최대이다.
사상 최대 컴퓨터업계 합병의 거대한 파장
두 회사가 합치면 전세계 160개국에 14만5천명의 종업원을 거느리고 연간 매출액 870억달러에 이르는 초대형 종합컴퓨터회사가 탄생한다. 지난해 매출 900억달러로 업계 1위를 기록한 IBM이 바싹 긴장하게 됐다. PC시장에서는 미국의 델 컴퓨터를 제치고 단연 점유율 1위에 올라서게 되며, 컴퓨터 서버나 프린트 스캐너, 개인휴대단말기(PDA) 등 주변기기 시장에서도 막강한 시장영향력을 갖게 된다. 두 회사는 합병 뒤 회사 이름은 휴렛팩커드, 대표이사 및 최고경영자(CEO) 역시 칼리 피오리나 휴렛팩커드 회장이 맡기로 합의했다. 컴팩의 CEO인 마이클 카펠레스 회장에게는 실권이 없는 회장 자리를 주기로 했다.
휴렛팩커드와 컴팩의 합병은 당장 대규모 감원을 예고한다. 피오리나 회장은 합병계획 발표 뒤 기자회견에서 “아직 합병 뒤의 청사진을 그리지 못했다”면서도 “하지만 2004년까지 3년 동안 25억달러의 비용절감 목표를 세워뒀다”고 밝혔다. 중복되는 사업과 인력을 조정하겠다는 얘기이다. 두 회사는 올 들어 세계 컴퓨터시장의 침체가 가속화돼 수익성이 나빠지자 이미 대규모 인력감축을 단행했다. 컴팩이 8500명, 휴렛팩커드가 6천명을 정리했다. 여기에다 이번 합병에 따라 25억달러의 비용절감 목표를 달성하려면 다시 각 8천∼9천명씩의 인력감축이 불가피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심지어 합병효과를 회의적으로 보는 일부 전문가들은 “인력감축말고는 합병효과를 기대할 게 전혀 없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뉴욕증시에서 투자자들의 반응도 냉담했다. 합병이 발표된 다음날 나스닥에서 휴렛팩커드 주가는 하룻만에 19%나 떨어졌고 컴팩 역시 10% 이상 떨어졌다. 휴렛팩커드는 막대한 인수비용이 가뜩이나 나빠진 재무구조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컴팩의 경우 합병을 하더라도 취약해지고 있는 제품 경쟁력이 개선될 가능성을 찾을 수 없다는 분석이 많아 주가를 떨어뜨렸다. 합병을 마무리하기까지 미국와 유럽의 독점규제 당국으로부터 받는 압박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주가하락의 요인이었다. 일부 품목의 과도한 독점적 지위를 해소하지 않으면 합병승인을 받기 어렵고, 그렇게 되면 합병에 따른 시너지효과는커녕 오히려 손해만 보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렇지만 두 회사의 합병은, 세계 컴퓨터시장은 물론 전체 정보기술(IT)산업에 일대 지각변동을 몰고 올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특히 PC시장은 본격적인 구조조정 국면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시장조사회사인 가트너 데이터퀘스트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지난 2분기 전세계 PC 판매대수는 3040만대로 전년 같은 기간에 견줘 1.9%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PC 판매대수가 감소한 것은 15년 만에 처음이다. 판매감소세는 업계 2위인 컴팩이 14.4%, 휴렛팩커드는 18.8%로 더욱 두드러졌다. PC업계는 90년대 내내 연평균 15% 이상의 높은 판매신장률을 누려오다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한파를 맞고 있다. 잘 나갈 때만 생각해 경쟁적으로 확장해놓은 설비가 하나둘씩 놀기 시작하고, 수요를 살리기 위해 경쟁적으로 판매가격을 낮추다보니 수익성 악화를 초래한 것은 당연하다. 그야말로, 과잉투자와 과잉판매경쟁이 PC업계의 제 살을 갉아먹고 있는 셈이다. 베어스 스턴스의 애널리스트 앤드루 네프는 “두 회사의 합병은 PC산업의 회생을 위한 자연스런 움직임”이라며 앞으로 또다른 PC회사들의 짝짓기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칼리 피오리나 휴렛팩커드 회장도 “IT산업 전체가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컴팩과의 합병은 주도권을 되찾을 수 있게 해준다”며 ‘뉴 휴렛팩커드’가 “앞으로 몇년 동안 IT산업의 지형을 바꿔나갈 것”이라고 당차게 말했다. 반도체업계 울상 짓고 PC 제조사는 환영
국내에서도 HP-컴팩의 합병에 따른 명암이 뚜렷이 갈리고 있다. 우선 메모리반도체와 컴퓨터부품 제조회사들은 울상을 짓고 있다. 반도체 경기는 PC업황에 큰 영향을 받는다. 합병에 따른 거대 PC 제조회사가 등장하면 생산조절을 할 게 뻔하고, 가격협상에서도 반도체 공급업체로서는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의 주가가 HP-컴팩의 합병선언 직후 곤두박질친 배경도 이 때문이다.
국내 PC 제조회사들은 대체로 두 회사의 합병을 반기는 분위기이다. 이번 합병을 계기로 앞으로 다른 회사들의 인수합병과 전략적 제휴가 이어져 새로운 판이 짜여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휴렛팩커드를 통한 대미수출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삼보컴퓨터는 ‘큰 호재를 얻었다’는 게 안팎의 평가이다. 삼보는 전체 PC 판매물량의 35% 이상을 휴렛팩커드에 ODM(주문자디자인생산) 방식으로 납품하고 있어, 앞으로 시장지배력이 커진 합병 휴렛팩커드가 주문물량을 늘릴 경우 큰 혜택을 볼 수 있다. 나머지 국내 PC회사들은 수출보다는 내수비중이 압도적으로 커 HP-컴팩의 합병을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전세계 컴퓨터산업과 IT산업에 일게 될 지각변동이 어떻게 전개될지에 대해서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삼성증권은 “이번 두 회사의 합병계획이 자금 여력이 있는 업체를 중심으로 전세계 IT산업 전체가 새로운 틀로 재구축하는 도화선이 될 수 있다”며 “국내에도 컴퓨터, 통신장비, 반도체 등 부품업계에까지 격변을 몰고올 것이며 앞으로 추가로 1∼2개 업계의 개편이 발생하는 시점이 IT 경기의 바닥을 지나가는 포인트”라고 판단했다.
박순빈 기자 sbpark@hani.co.kr

사진/ 사상 최대의 컴퓨터업계 합병. 칼리 피오리나(왼쪽) 휼렛패커드 회장과 마이클 카펠레스 컴팩 회장이 합병을 발표하고 있다.(SYGMA)

사진/ 휼렛패커드와 컴팩의 합병으로 전세계 IT 산업의 지형이 크게 바뀔 전망이다. 휼렛패커드 본사 전경.(AP 연합)
휴렛팩커드와 컴팩의 합병은 당장 대규모 감원을 예고한다. 피오리나 회장은 합병계획 발표 뒤 기자회견에서 “아직 합병 뒤의 청사진을 그리지 못했다”면서도 “하지만 2004년까지 3년 동안 25억달러의 비용절감 목표를 세워뒀다”고 밝혔다. 중복되는 사업과 인력을 조정하겠다는 얘기이다. 두 회사는 올 들어 세계 컴퓨터시장의 침체가 가속화돼 수익성이 나빠지자 이미 대규모 인력감축을 단행했다. 컴팩이 8500명, 휴렛팩커드가 6천명을 정리했다. 여기에다 이번 합병에 따라 25억달러의 비용절감 목표를 달성하려면 다시 각 8천∼9천명씩의 인력감축이 불가피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심지어 합병효과를 회의적으로 보는 일부 전문가들은 “인력감축말고는 합병효과를 기대할 게 전혀 없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뉴욕증시에서 투자자들의 반응도 냉담했다. 합병이 발표된 다음날 나스닥에서 휴렛팩커드 주가는 하룻만에 19%나 떨어졌고 컴팩 역시 10% 이상 떨어졌다. 휴렛팩커드는 막대한 인수비용이 가뜩이나 나빠진 재무구조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컴팩의 경우 합병을 하더라도 취약해지고 있는 제품 경쟁력이 개선될 가능성을 찾을 수 없다는 분석이 많아 주가를 떨어뜨렸다. 합병을 마무리하기까지 미국와 유럽의 독점규제 당국으로부터 받는 압박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주가하락의 요인이었다. 일부 품목의 과도한 독점적 지위를 해소하지 않으면 합병승인을 받기 어렵고, 그렇게 되면 합병에 따른 시너지효과는커녕 오히려 손해만 보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렇지만 두 회사의 합병은, 세계 컴퓨터시장은 물론 전체 정보기술(IT)산업에 일대 지각변동을 몰고 올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특히 PC시장은 본격적인 구조조정 국면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시장조사회사인 가트너 데이터퀘스트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지난 2분기 전세계 PC 판매대수는 3040만대로 전년 같은 기간에 견줘 1.9%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PC 판매대수가 감소한 것은 15년 만에 처음이다. 판매감소세는 업계 2위인 컴팩이 14.4%, 휴렛팩커드는 18.8%로 더욱 두드러졌다. PC업계는 90년대 내내 연평균 15% 이상의 높은 판매신장률을 누려오다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한파를 맞고 있다. 잘 나갈 때만 생각해 경쟁적으로 확장해놓은 설비가 하나둘씩 놀기 시작하고, 수요를 살리기 위해 경쟁적으로 판매가격을 낮추다보니 수익성 악화를 초래한 것은 당연하다. 그야말로, 과잉투자와 과잉판매경쟁이 PC업계의 제 살을 갉아먹고 있는 셈이다. 베어스 스턴스의 애널리스트 앤드루 네프는 “두 회사의 합병은 PC산업의 회생을 위한 자연스런 움직임”이라며 앞으로 또다른 PC회사들의 짝짓기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칼리 피오리나 휴렛팩커드 회장도 “IT산업 전체가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컴팩과의 합병은 주도권을 되찾을 수 있게 해준다”며 ‘뉴 휴렛팩커드’가 “앞으로 몇년 동안 IT산업의 지형을 바꿔나갈 것”이라고 당차게 말했다. 반도체업계 울상 짓고 PC 제조사는 환영

사진/ 컴팩 본사 전경.(AP 연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