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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디스플레이가 한국을 이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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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9-05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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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대신하는 차세대 간판산업으로 부상… 응용기술 확보·장비부품 국산화가 관건

사진/ 국내기업들의 디스플레이 제품들이 세계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초슬림형 40인치 PDP TV
올해 상반기 삼성그룹 내 반도체부문의 수출이 디스플레이에 역전당하는 ‘이변’이 벌어졌다. 반도체부문 수출은 31억 달러에 그친 반면 액정표시장치(LCD)나 모니터 등 디스플레이부문 수출은 삼성전자와 삼성SDI를 합쳐 모두 45억달러에 이르렀다. 우리나라 전체로도 디스플레이의 수출은 100억달러를 넘어서 반도체(96억9천만달러)를 앞질렀다.

반도체 가격하락에 따른 일시적 현상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전문가들의 견해는 다른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의 조경인 박사는 “디스플레이는 반도체 못지않은 한국의 주력산업으로 부상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한국을 먹여살릴 차세대 간판산업이라는 얘기다.

디스플레이 테크놀로지(DT: Display Technology)는 TV,PC, 휴대폰 등에서 영상과 문자를 보여주는, 쉽게 말해 ‘화면’을 만드는 기술이다. “정보를 전달하는 고속도로를 까는 산업이 IT라면 DT는 그 정보를 눈으로 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삼성SDI 이우종 부장) 각종 정보통신 기기의 운영시스템(OS)이 인간의 두뇌에 해당한다면 디스플레이는 이를 보여주는 ‘눈’이 되는 셈이다.

정보기기 화면을 얇고 화려하게…


그러나 디스플레이는 지금까지 단순히 완제품(세트)의 부속물 정도로 취급돼온 게 사실이다. 하지만 개인휴대단말기(PDA) 등 각종 모바일 기기의 출현으로 디스플레이는 세트를 능가하는 IT산업의 주력군으로 떠오르면서 오히려 세트의 진화를 선도하는 주도권을 쥐게 된 것이다.

실례로 올해 모니터시장에서 선풍적인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경박단소(輕博短小)한 박막액정표시장치(TFT-LCD)는 덩치 큰 PC모니터를 ‘노트’처럼 얇게 만들어낸 일등 공신이다. 차세대 이동통신인 IMT-2000서비스를 즐기려면 완전한 컬러의 동영상을 끊기지 않고 보여주는 유기EL(유기전계발광소자:형광성 유기화합물을 전기를 통해 발광시키는 것으로 화질이 좋고 제조공정이 단순화 차세대 평판디스플레이로 부상)이 있어야 한다. 두께가 10cm에 불과한 PDP의 탄생은 40인치 이상 대형TV를 벽에 걸 수 있게 해줬다.디스플레이 산업의 성장 잠재력은 현재의 시장규모와 성장속도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전자통신연구원에 따르면 DT산업은 매년 15%씩 성장해 2005년에는 세계시장이 899억달러 규모로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지난해(440억달러)의 두배가 넘는 규모이다. 2005년에는 세계 메모리시장(820억달러)보다 커지게 된다. 지난 수년간 국내 수출의 효자 노릇을 해온 메모리칩보다 DT시장이 커진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국내기업이 세계시장에서 삼성전자의 D램처럼 독보적인 위치를 확보할 가능성은 과연 얼마나 될까. 전세계 PC,TV, 휴대폰 등에 사용되는 화면 10개 가운데 2개는 한국산이라는 통계가 나와 있을 정도로 국내업체들은 이미 확실한 입지를 구축했다.

미국 시장조사기관인 디스플레이서치가 지난 2분기 세계시장을 조사한 결과 TFT-LCD는 한국산이 세계시장의 40.9%를 차지했다. 일본에 이어 2위다. 업체별로는 삼성전자가 1위고 LG필립스LCD가 그뒤를 바짝 쫓고 있다.

일반 TV와 PC모니터를 만드는 브라운관(CRT)은 한국이 독보적인 1위로 세계시장의 40% 가까이 점유한다. LG필립스디스플레이가 1위, 삼성SDI가 2위다. 완전평면TV 제조에 필요한 텐션(Tension)과 폼드마스크(Formed Mask)의 세계 표준을 거머쥐고 있을 정도로 기술력에서도 세계최고 수준에 올라와 있다.

대형 벽걸이TV의 화면을 만드는 플라스마 디스플레이 패널(PDP)은 LG전자와 삼성SDI가 선발주자인 일본업체를 바짝 따라붙은 상태다. 출발은 5년 정도 늦었지만 대형화기술에서는 일본업체들을 따라잡은 상태. 일본 NEC가 최근에야 61인치 PDP 패널을 내놓은 데 비해 LG전자는 60인치 PDP TV를 이미 시판중이다. 삼성SDI는 지난 4월 세계 최대인 63인치 PDP 패널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두 회사는 컬러 동영상을 볼 수 있는 휴대폰 액정화면 유기EL에서도 일본업체와 어깨를 나란히할 정도로 성장했다. 87년 유기EL소자를 개발한 미국의 이스트만코닥, 97년 녹색 유기EL을 상품화한 일본 파이오니아보다 늦게 참여했지만 양산시점을 놓고는 일본 ELDIS(파이오니아와 일본반도체연구소의 합작사)와 치열한 선두다툼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우리기업들이 안고 있는 숙제도 적지 않다. 우선 원천기술의 해외종속에 따른 로열티 부담을 낮추기 위한 응용기술의 개발이 필요하다. 문영탁 LG전자 차장은 “해외업체들이 원천특허를 가지고 있고 이는 20년간 유효하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로열티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LG전자는 국내 최초로 PDP 양산체제를 갖췄지만 일본 FHP(후지쓰 히타치 합작법인)보다 기술개발이 4년 늦은 탓에 원천기술에 대한 로열티를 주고 있다. 유기EL도 삼성SDI가 다음달 세계 최초로 양산에 들어갈 계획이지만 미국 코닥에 원천기술에 대한 로열티를 지불해야 하는 형편이다.

기술력 높지만 원천기술은 해외종속

사진/ 삼성이 시판하는 브라운관 절개도.
장비부품의 국산화도 시급하다. 디스플레이 업계가 장비와 부품을 일본에 의존하는 정도는 60%에 이른다. PDP의 전용유리는 일본 아사히글라스에서 사다 쓰고 있으며 TFT-LCD의 구동칩은 전량 일본산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해야 단순 조립생산 이상의 고부가가치를 확보할 수 있다.

현재 한국기업이 세계 디스플레이시장의 점유율은 22%(96억달러)수준. 전문가들은 2005년(전세계 DT시장 규모 890억달러 추정)께는 이보다 약간 높은 24%(218억달러)의 시장을 차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세계 디스플레이산업의 주도권을 놓고 각국이 치열한 경쟁을 예고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기업들이 어떻게 활약하느냐에 따라 IT강국으로서의 한국의 위상이 달린 셈이다.

이심기 기자/ 한국경제신문 산업부 s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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