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초저금리로 경제를 살린다?

373
등록 : 2001-08-22 00:00 수정 :

크게 작게

시중금리 줄줄이 내려도 경기회복은 감감… 물가불안에 구조조정 발목잡는 악재될 수도

사진/ 은행권의 금리인하로 시중자금이 기대 수익이 높은 곳으로 이동하고 있따. 사채시장도 저금리 추세이지만 이용자들이 꾸준한 편에 속한다.(이용호 기자)
서울 중구 남대문로3가 110번지 한국은행 15층. 이곳에 자리잡은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실에는 매월 첫주와 셋쨋주 목요일마다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이 쏟아진다. 전철환 한국은행 총재를 비롯한 7명의 금통위 위원들이 모여 금융시장의 물꼬를 결정짓는 정례회의가 열리기 때문이다. 이곳서 결정된 정책은 잔잔한 호수에 던져진 돌처럼 금융시장으로 넓게 퍼져나가 나라경제 구석구석으로 영향을 끼친다.

기업의 재무전략, 금융기관의 경영, 가계의 자산관리 방향 등 국민경제 전반을 흔들어놓고 있는 최근의 초저금리 추세의 진원지도 바로 이곳이다.

금통위는 올해 들어 2월과 7월, 8월 모두 세 차례에 걸쳐 금융시장에 파급력 있는 ‘신호’를 내보냈다. 콜금리 목표를 잇따라 낮춘 것이다. 특히 8월의 인하 조처는 7월에 곧이어 내려진 것인데다 그 결과가 기록적인 4.5% 수준이어서 금융시장 전반에 변화의 물결을 일으키고 있다.

콜금리 목표 낮추자 사상 최저금리 갱신


금통위, 콜금리 등 그다지 친숙하지 않은 용어에 무미건조한 숫자까지 덧붙어 체감도가 높지 않을 듯한데 금리의 기초부터 살펴보자.

금리(이자율)는 돈을 빌린 데 대한 대가이다. 대출금리는 우리가 은행에서 빌린 데 대한, 예금금리는 은행이 우리한테서 꾼 데 대한 보상인 것이다. 일반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 팔 때 가격이 있듯 돈을 빌려주고받는 금융시장에서도 일종의 가격이 형성된다. 금리도 일반상품과 마찬가지로 돈을 빌려줄 사람이 상대적으로 많으면 떨어지고 반대로 적으면 올라간다. 과일시장에서 과일이 풍작이면 값이 떨어지고 흉작이면 오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과일 값과 다른 점이라면 국민경제에 끼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정부나 중앙은행이 직접 규제하거나 시장개입을 통해 간접적으로 통제한다는 사실이다.

금리에도 갖가지 종류가 있는데, 한은의 콜(금융기관간 초단기대출)금리 목표가 방아쇠로 작용해 연쇄적으로 움직인다. 지난 8월9일 금통위가 콜금리 목표를 4.75%에서 4.5%로 낮춘 뒤 각종 금리가 줄줄이 내리는 모습에서 이런 연쇄고리를 엿볼 수 있다. 이날 금통위의 조처 뒤 대표적 실세금리인 국고채(3년)금리가 5% 아래로 주저앉았으며 기업들의 체감금리 지표인 회사채(3년) 수익률도 6%대 초반으로 낮아졌다. 뒤이어 시중은행들의 여수신금리 인하가 이어졌다.

한빛은행은 5천만원 이상 시장금리부 수시입출금식예금(MMDA)금리를 연 4.8%에서 4.5%로 낮췄으며 외환은행도 MMDA금리를 일괄적으로 0.2%포인트씩 인하했다. 서울은행은 3개월 이상 정기예금의 금리를 0.1%씩 낮췄다. 이에 따라 1년만기 정기예금금리가 연 5.7%에서 5.6%로 낮아졌다. 합병과정을 밟고 있는 국민·주택은행은 이에 앞서 1년만기 정기예금금리를 5% 아래로 낮춰 사상 최저기록을 세웠다. 이처럼 수신금리가 떨어지는 데 따라 가계대출금리도 잇따라 낮아져 6%대 대출상품이 나오고 있을 정도로 낮은 상태에 머물러 있다.

은행권의 금리인하는 시중자금을 기대 수익이 높은 투신·종금사로 옮아가게 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7월 투신사 수신은 13조3천억원이나 늘어나 99년 1월 이후 최대규모를 기록했다. 종금사 수신도 이례적으로 6천억원이나 늘어났다. 반면, 은행계정 수신은 4조6천억원 늘어나 전월(7조9천억원)에 비해 증가폭이 적었으며 특히 신탁은 전월(4천억원)에 이어 또다시 감소세(2천억원)를 보였다. 경제 주체들이 지난해까지는 금융기관의 안전성을 최우선으로 여겼지만, 이젠 달라졌다. 공적자금 추가투입에 따라 더이상 망하는 곳은 없을 것이라는 안심이 생겨 금리에 대한 민감도가 대단히 높아져 있다. 이는 한은의 금리인하가 시중금리를 매개로 뭉칫돈을 이리저리 옮기는 힘을 발휘하는 좋은 배경이 된다.

뭉칫돈 움직임 활발… 물가 자극 우려

한은의 콜금리 인하가 파급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총액한도 대출금리 조정(대출정책), 공개시장 조작(금융시장에서 국공채를 사고 파는 것), 지급준비율 변경 같은 유력한 수단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한은은 이런 정책수단을 통해 시중에 풀려 있는 돈의 양과 가격에 영향을 줌으로써 간접적으로 금리를 조절한다. 이로써 최종목표인 물가안정과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이끌게 된다. ‘콜금리 목표를 얼마로 한다’는 한은 총재의 말 한마디에 묵직한 힘이 실리는 건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은은 왜 이처럼 금리를 잇따라 낮추고 있는 것일까. 한은의 첫 번째 존재이유는 뭐니뭐니해도 물가안정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물가를 자극할 수 있는 금리인하는 한은에 부담스런 선택이다. 실제, 한은의 콜금리 인하에 대해 구조조정 없이 경기부양을 꾀하려는 정부 방침에 뒷북치는 꼴이라는 비난이 나오기도 했다.

한은이 금리인하를 꾀하고 있는 것은 시들시들한 실물경제를 살리려는 고육지책의 성격이 짙다. 생산 및 수출 실적으로 본 국내 실물경제는 지난해 수준을 밑도는 부진한 모습이다. 산업생산은 지난 4월 이후 4개월 연속 전월보다 줄어 6월에는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2.7% 떨어졌다. 이처럼 전년동기 대비 생산이 줄어든 것은 98년 10월 이후 처음이다.

수출도 3월부터 내리막길을 걸어 지난해 수준을 밑돌고 있다. 특히 지난 7월에는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무려 20%나 줄어들 정도로 부진했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경제가 전반적으로 어려워 앞날에 대한 전망도 어둡다. 4분기 이후엔 완만하게나마 경기가 회복세를 보이지 않겠느냐는 희망이 남아 있지만, 나라 안팎의 여건이 녹록지 않다.

이런 상태에서 금리를 낮춰 (기업의) 투자와 (가계의) 소비를 자극해 경기를 살리자는 게 한은의 의도이다. 금융연구원 박종규 연구위원은 “실질금리가 제로(0)가 될 정도로 금리를 낮추고 있는 데는 예금(저축)하지 말고 소비하라는 굉장한 메시지가 들어 있다”며 “통화정책 측면에서 중대한 실험을 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했다.

장기적으로 부실투자 이뤄질 수도

사진/ 정부는 금리인하로 실물경기 회복을 꾀하고 있다. 하지만 금리인하로 인한 기업투자 확대 등의 효과는 가시화되지 않고 있다.(이정용 기자)
한은의 이런 선택은 우선 물가불안감을 낳는다. 교과서적인 논리에 따를 때 금리인하는 총수요 증가로 이어져 물가상승으로 연결된다.

이에 대해 한은쪽은 내수·수출경기 부진으로 수요면에서 물가압력은 거의 없다고 풀이한다. 의료보험료, 수도세, 전기세 같은 공공요금과 환율이 오른 데 따른 물가상승분을 빼면 전반적으로 물가는 안정돼 있다는 게 한은의 해석이다. 따라서 금리인하에 따라 물가가 불안해질 개연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아파트 매매 및 전·월세 상승세 같은 불안요인이 있어 한은의 설명에는 논란이 남아 있다.

통화당국이 의도한 경기회복 효과는 어떨까. 콜금리 인하에 따른 시장금리 및 은행 여수신금리의 큰폭 하락에 힘입어 기업의 자금조달 여건은 개선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은행권에서 빠진 돈이 상대적으로 고수익이 기대되는 투신사 수신으로 대거 옮아가 회사채나 기업어음(CP)을 사들일 수 있는 바탕이 마련돼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정작 경기회복 효과는 아직 감감한 실정이다. 금리가 계속 떨어지고 있는데도 기업 설비투자나 가계 소비는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가계나 기업 모두 앞날에 대한 불안감에 휩싸여 있기 때문이다. 한은에선 금리인하에 따른 실물경기 회복 효과는 6개월 이상 시차를 두고 나타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예금생활자의 이자수입이 줄어 소비가 더 위축될 것이라는 전망이 맞서고 있다. 또 실질금리가 계속 마이너스(-)로 갈 경우 장기적으로 부실투자가 이뤄질 수 있다는 걱정이 고개를 든다. 워낙 싼 이자로 자금을 빌릴 수 있다보니 기업들이 큰 수익을 내지 못하더라도 적당히 하면 손해를 보지 않는다는 생각에 우선 빌리고 보자는 식으로 대출에 나설수 있기 때문이다.

뜻하지 않은 부작용이 나올 수도 있다. 우선 저금리로 인해 금융자산의 수익률이 낮아지면서 부동산시장으로 돈이 몰려 물가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 서울지역 소형아파트의 임대수익률이 연 12% 안팎으로 은행의 1년만기 정기예금금리(5%대)를 크게 웃돌고 있는 데서 이를 엿볼 수 있다. 여기에 금융기관의 수신금리가 큰폭으로 떨어져 노령층을 비롯한 이자생활자의 소득이 줄어 생계가 어려워지고 있다는 걱정이 덧붙는다. 정기예금금리 5%대에선 이자소득세 및 물가상승률을 감안할 때 실질이자는 사실상 제로 수준이다.

금리인하 조처와 관련한 시비는 기업 구조조정과도 맞물려 있다. 금리인하로 시중자금이 풀림으로써 한계기업의 퇴출이 늦춰지고 경제전반에 깔려 있는 먹구름이 걷히지 않는다는 논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

적절한 방향전환 통해 부작용 줄여야

한은 박재환 국장은 이에 대해 “현재의 구조조정문제는 금리를 지금보다 더 낮춰도 살아나기 어려운 기업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정리되지 않는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흥은행 경영연구소 노정휘 연구원도 “기업 구조조정은 ‘원칙’의 문제일 뿐 금리인하 및 이에 따른 경기부양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고 말했다. 금리인하와 구조조정은 대체관계가 아니어서 동시에 추진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다만, 금리인하 움직임이 구조조정 의지의 약화로 오해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인다.

박종규 연구위원은 “최근 통화당국이 금리를 인하한 것은 저축을 희생해서 경기의 지나친 하락을 막자는 극약처방”이라며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지거나 경기가 좋아지는 조짐이 나타나면 재빨리 방향전환을 해 부작용을 줄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