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암 엇갈린 초저금리시대의 풍경들… 이자소득자 눈물 짓고 금융권은 고객 차별
외환위기 직후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퇴직한 김정현(가명·42)씨가 통신회사 대리점을 차린 건 99년 6월께. 당시 김씨는 꾸준히 모아온 돈 8천만원과 아파트를 담보로 받은 대출 7천만원을 사업자금으로 들였는데 대출이자 때문에 허덕댈 수밖에 없었다. 그가 대출받을 당시 이자율은 무려 18.5%에 이르러 다달이 107만9천원의 이자를 물어야 했다. 여기에 사무실 경비를 빼고나면 경리직원 급여를 제때 주지 못할 정도로 시달렸다.
그러다 지난해 4월 대출금리 하락세를 틈타 재빨리 연 12.5%(월이자 72만9천원)짜리 대출로 갈아타면서 한숨을 돌렸다. 올해 5월 들어선 또다시 연 7.7%의 대출을 받아 월이자 부담을 44만9천원 수준으로 낮췄다. 사업을 시작할 때와 견주면 매월 63만원이나 줄일 수 있게 돼 대리점 운영에 활력을 얻고 있다.
모든 경제현상이 그렇듯 얻는 쪽이 있으면, 잃는 쪽도 있는 법. 낮은 금리 탓에 낭패를 겪고 있는 예도 많다.
금리의 소득재분배 효과 나타나
서울 중계동에 사는 임형식(가명·53)씨. 임씨 역시 외환위기 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퇴직했다. 하지만 사업에 뛰어들 엄두는 내지 못하고 이자수입으로 생계를 꾸려왔다. 초기에는 그런 대로 넉넉한 생활을 꾸릴 수 있었다. 그동안 모은 돈과 퇴직금을 합한 2억5천만원을 1년6개월짜리 특정금전신탁(연이율 17.5%)에 넣어 예치기간 세금을 물고도 다달이 284만3750원의 수입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후 사정은 딴판이었다. 지난해 8월 신탁만기 뒤 금리상승에 대한 기대감을 갖고 정기예금 6개월짜리로 다시 예치했는데 이미 이율은 8.2%로 떨어져 있던 터였다. 매월 280만원을 웃돌던 수입은 절반 수준인 147만8645원으로 줄어들었다. 올해 들어선 106만1천원 수준으로 다시 줄었다. 대학생인 딸과 군대 가 있는 아들의 학비를 생각하면 앞이 아득할 뿐이다. 이처럼 금리가 내려가면 돈을 빌려준 채권자는 이자소득 감소로 손해를 본다. 반면, 돈을 꾸어 쓴 채무자는 지불이자부담이 줄어 득을 본다. 이른바 ‘금리의 소득재분배 효과’다. 저금리는 채권자와 채무자의 명암을 가르는 데서 나아가 수익기여도에서 차이를 보이는 주요고객(VIP)과 일반 서민고객에 대한 대접이 극명하게 나뉘는 양상으로 이어진다. 물론, 주요고객에 대한 특별대우가 새삼스런 일은 아니지만 저금리 추세가 뚜렷해지면서 더욱 강해지고 노골화하고 있다. 금리 두께가 얇아질수록 이익을 낼 틈은 좁아져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들로선 세밀한 부분까지 고객별 기여이익을 따질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반면, 소액예금에 대해선 이자를 주지 않거나 되레 수수료를 물리는 움직임이 이미 현실화한 상태이며 대출이자의 격차도 넓어지고 있다. 조흥은행은 8월 들어 5억원 이상 예금한 고객 가운데 이익기여도가 높은 고객 250명을 뽑아 삼성의료원에서 종합건강진단(48만원 상당)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또 3억원 이상 예치자들이 가족 상(喪)을 당했을 때 20만원의 조의금과 조화를 전달키로 했다. 거액예금 고객이 많은 하나은행은 주요고객 전용 개인자산관리사(PB) 직원 배치 점포를 65개에서 올 연말까지 100개로 늘릴 계획이다. 이 은행의 자산관리사는 은행 상품은 물론 해외수익증권 투자에서 부동산·세무 상담도 해주고 있다. 한미은행도 연말까지 총 227개 전국 점포에 개인자산관리사 직원들을 배치해 거액우량고객에겐 1대1 금융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특히 5억원 이상 예금을 갖고 있는 고객에 대해선 총수익금의 5%를 환원해주는 특별 서비스도 검토하고 있다. 이에 반해 10만∼50만원 미만의 소액예금에 대해선 이자를 낮춰 지급하거나 아예 지급하지 않는 등 수익기여도가 낮은 고객은 푸대접을 받고 있다. 한푼의 예금이라도 끌어들여야 할 예전 상황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일반 서민고객으로선 여간 섭섭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예금이자가 떨어지는데도 예전에 받은 대출에 대해선 꼬박꼬박 이자를 물어야 할 처지라면 섭섭함을 넘어 억울함을 느낄 법도 하다. 왜 대출이자는 왕창 떨어지지 않는가
소액예금에 대해 이자를 지급하지 않고 대출이자는 기대만큼 떨어지지 않는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까.
이런 예를 들어보자. 똑같이 연이율 5.5% 만기 1년짜리 정기예금에 든 고객이 두명 있는데, 한 고객은 1억원을 맡기고 다른 고객은 10만원을 예치했다. 통장개설비, 인건비 등을 감안할 때 정기예금 한건을 취급하는 데 따른 업무처리 비용(ㅎ은행의 경우)은 1만4250원에 이른다고 한다. 조달금리를 감안한 마진폭은 0.69% 수준으로 추산됐다. 따라서 예금액이 1억원, 10만원인 두 고객에게서 생기는 이익은 각각 69만원, 690원 수준이다. 결국 ㅎ은행쪽은 1억원의 고객을 통해선 1년에 67만5750원을 벌어들인 셈이다. 반면, 10만원 짜리 정기예금에선 1만3560원의 손실이 발생한다. 은행들이 소액예금을 받지 않으려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은행권에는 상식처럼 굳어진 속설로 ‘2 대 8 법칙’이라는 게 있다. 고객 10명 중 은행에 득이 되는 고객은 2명에 지나지 않으며 나머지 8명은 거래를 할수록 되레 손해를 끼친다는 것이다. 예금이든 대출이든 거래 한건당 들어가는 인건비 등 경비는 규모에 상관없이 비슷한데 여기서 창출되는 수익은 거래규모에 따라 격차가 클 것이란 점을 감안할 때 일면 수긍이 간다. 이 때문에 금융기관들로선 수익을 많이 내주는 주요고객을 섬길 수밖에 없다.
은행권 전체를 대상으로 2 대 8법칙이 정밀하게 분석된 적은 없다. 다만, 조흥은행이 최근 고객별 수익기여도를 개략적으로 분석한 내부자료가 있어 이런 사정을 짐작게 해준다. 이 은행은 고객 927만6884명을 대상으로 올해 상반기 은행수익에 얼마나 이바지했는지를 따져보았다. 그 결과 상위 7%의 고객층이 은행수익의 80%를 내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전반적으로 39%의 고객이 은행수익에 기여하는 반면, 61%의 고객은 은행에 손실을 끼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2 대 8법칙에 일치하지는 않지만, 머릿수로 따져 절반이 훨씬 넘는 고객층은 은행에 오히려 손실을 끼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거래단위가 크다고 해서 모두 해당 금융기관에 꼭 득이 되는 건 아니다. 금리가 높던 시절에 든 예금은 단위가 클수록 은행에 부담이 된다. ㅎ은행이 올 6월 한달 평균잔액 1억원 이상인 고객 4만명을 대상으로 수익기여도를 분석한 결과 4천명을 웃도는 11.35%는 은행에 손실을 끼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 수익에 기여하는 고객 특별 대우
이 때문에 은행들은 최근 들어 예금액이나 재산의 많고 적은 데 따른 차이에서 나아가 은행의 수익에 얼마나 기여한지를 따져 신용을 평가하고 있다. 고객이 작성하는 정보에 바탕을 둔 개인신용평가시스템(CSS)에 머물지 않고 고객의 거래행태를 반영하는 행동평점시스템(BSS)을 도입하고 있다. 한빛은행은 올해중 BSS 도입을 목표로 현장 테스트를 실시하고 있으며 조흥은행은 이미 고객의 수익기여도를 산출, 마케팅에 활용하고 있다.
조흥은행 기획부 장용운 과장은 “입출금 거래 한건당 각각 934원, 1150원의 업무처리비가 드는 것을 비롯, 고객이 미처 느끼지 못하는 비용이 많다”며 “수익성을 중시해야 할 영업환경에선 고객 차별화 전략을 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장 과장은 대출금리가 곧바로 내리지 않는다는 비판과 관련해선, “금리가 인하되더라도 예전에 가입한 예금에 대해선 계약을 맺은 대로 높은 이자를 줘야 하는 처지에서 (신규대출이 아닌) 기존의 대출금리를 곧바로 낮출 수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저금리에 따라 엇갈리는 명암은 일반고객이 달라진 금융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씁쓸한 현실을 새삼 일깨우고 있다.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사진/ 초저금리로 인해 이자소득자들의 고민이 깊어가고 있다. 현재 은행 금리는 물가상승을 감안하면 실직적으로 마이너스이다.(임종진)
서울 중계동에 사는 임형식(가명·53)씨. 임씨 역시 외환위기 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퇴직했다. 하지만 사업에 뛰어들 엄두는 내지 못하고 이자수입으로 생계를 꾸려왔다. 초기에는 그런 대로 넉넉한 생활을 꾸릴 수 있었다. 그동안 모은 돈과 퇴직금을 합한 2억5천만원을 1년6개월짜리 특정금전신탁(연이율 17.5%)에 넣어 예치기간 세금을 물고도 다달이 284만3750원의 수입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후 사정은 딴판이었다. 지난해 8월 신탁만기 뒤 금리상승에 대한 기대감을 갖고 정기예금 6개월짜리로 다시 예치했는데 이미 이율은 8.2%로 떨어져 있던 터였다. 매월 280만원을 웃돌던 수입은 절반 수준인 147만8645원으로 줄어들었다. 올해 들어선 106만1천원 수준으로 다시 줄었다. 대학생인 딸과 군대 가 있는 아들의 학비를 생각하면 앞이 아득할 뿐이다. 이처럼 금리가 내려가면 돈을 빌려준 채권자는 이자소득 감소로 손해를 본다. 반면, 돈을 꾸어 쓴 채무자는 지불이자부담이 줄어 득을 본다. 이른바 ‘금리의 소득재분배 효과’다. 저금리는 채권자와 채무자의 명암을 가르는 데서 나아가 수익기여도에서 차이를 보이는 주요고객(VIP)과 일반 서민고객에 대한 대접이 극명하게 나뉘는 양상으로 이어진다. 물론, 주요고객에 대한 특별대우가 새삼스런 일은 아니지만 저금리 추세가 뚜렷해지면서 더욱 강해지고 노골화하고 있다. 금리 두께가 얇아질수록 이익을 낼 틈은 좁아져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들로선 세밀한 부분까지 고객별 기여이익을 따질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반면, 소액예금에 대해선 이자를 주지 않거나 되레 수수료를 물리는 움직임이 이미 현실화한 상태이며 대출이자의 격차도 넓어지고 있다. 조흥은행은 8월 들어 5억원 이상 예금한 고객 가운데 이익기여도가 높은 고객 250명을 뽑아 삼성의료원에서 종합건강진단(48만원 상당)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또 3억원 이상 예치자들이 가족 상(喪)을 당했을 때 20만원의 조의금과 조화를 전달키로 했다. 거액예금 고객이 많은 하나은행은 주요고객 전용 개인자산관리사(PB) 직원 배치 점포를 65개에서 올 연말까지 100개로 늘릴 계획이다. 이 은행의 자산관리사는 은행 상품은 물론 해외수익증권 투자에서 부동산·세무 상담도 해주고 있다. 한미은행도 연말까지 총 227개 전국 점포에 개인자산관리사 직원들을 배치해 거액우량고객에겐 1대1 금융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특히 5억원 이상 예금을 갖고 있는 고객에 대해선 총수익금의 5%를 환원해주는 특별 서비스도 검토하고 있다. 이에 반해 10만∼50만원 미만의 소액예금에 대해선 이자를 낮춰 지급하거나 아예 지급하지 않는 등 수익기여도가 낮은 고객은 푸대접을 받고 있다. 한푼의 예금이라도 끌어들여야 할 예전 상황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일반 서민고객으로선 여간 섭섭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예금이자가 떨어지는데도 예전에 받은 대출에 대해선 꼬박꼬박 이자를 물어야 할 처지라면 섭섭함을 넘어 억울함을 느낄 법도 하다. 왜 대출이자는 왕창 떨어지지 않는가

사진/ 은행권에서 홀대받는 고객들이 신용금고로 발길을 옮기기도 한다. 한 고객이 신용금고 예금을 위해 상담하고 있다.(임종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