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임직원들은 새벽 출근으로 몸살을 앓는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새벽에 출근하자 미래전략실과 계열사들까지 이를 추종해 벌어지는 진풍경이다. 이건희 회장이 서울 서초동 본사에 출근하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아시아경제
‘자율출근제’ 해봤자 총수가 새벽 출근하면… 창의와 혁신을 통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은 쉽지 않다. 삼성은 몇 년 전부터 이를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조직문화 구축을 위한 시도도 뒤따랐다. 아이디어만 좋으면 기존 업무에서 벗어나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자유롭게 도전할 수 있는 ‘창의개발연구소’ 신설(2011년), 출근 시간을 아침 6시~오후 1시 사이에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자율출근제’(2009년), 회사에 출근하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재택·원격근무제’(2011년), 복장 자유화(2008년), 창의적 인재를 뽑으려고 필기시험을 없앤 ‘창의 플러스 전형’(2011년) 등이 사례들이다. 하지만 아무리 씨가 좋아도 토양이 척박하면 풍성한 열매를 기대하기 힘든 법이다. 창의와 혁신이 꽃피려면 토양이 되는 기업문화, 지배구조, 임직원 인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창의와 혁신이 기업문화의 핵심 DNA로 내재화해야 한다. 군대식 상명하복의 분위기에서는 창의와 혁신의 꽃이 피기도 전에 시들 수밖에 없다. 배임·횡령 혐의로 실형 선고와 함께 법정 구속된 김승연 한화 회장의 수사 과정에서 총수를 신에 비유하고 절대적인 충성의 대상으로 묘사한 내부 문서가 발견됐다. 총수가 신으로 떠받들어지는 조직은 사이비 종교집단이나 조폭에나 어울리지, 창의와 혁신을 기대하는 기업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흔히 황제경영으로 불리는 한국 재벌의 기업문화가 비단 한화뿐일까? 삼성 임직원들은 요즘 새벽 출근으로 몸살을 앓는다. 이건희 회장이 새벽에 출근하고, 그룹의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과 계열사들까지 이를 추종해 벌어지는 진풍경이다. 삼성 임직원들은 사적인 자리에서, 특히 외부 사람과 있을 때 회사 얘기를 하지 않기로 유명하다. 20만 명의 사람들이 움직이는 거대 조직에서 왜 직장과 상사에 대한 불만이 없을까? 창의와 혁신은 억압되고 폐쇄적인 조직문화 속에서는 제대로 싹틀 수 없다.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나오려면 때로는 엉뚱할 수도 있는 자유로운 사고와 치열한 논쟁이 가능해야 한다. 비밀경찰식 내부 통제를 걷어내려면 먼저 조직의 속살을 다 드러내도 꺼릴 게 없도록 자정이 필요하다. 삼성은 최근 몇 년간 비자금 사건, 담합, 공정위 조사 방해, CJ 미행 사건과 상속소송 등 대형 스캔들이 줄줄이 터졌다. 국민이 드라마 <추격자>에서 악덕 기업 회장이 나오는 장면을 보다가 누구 회장을 그린 것 아니냐고 수군대는 일이 사라져야 한다. 윤리경영, 준법경영, 사회책임경영, 인간중심경영의 실천이 시급하다. 삼성 미래전략실의 한 고위 임원은 30여 년의 직장생활 동안 단 한 번도 여름휴가를 가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이는 총수와 회사에 대한 충성심의 증표가 될지 모르지만 창의와 혁신이 꽃필 수 있는 풍토와는 거리가 있다. 한국은 연간 노동자 노동시간이 2100시간을 넘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멕시코에 이어 두 번째로 길다. 하지만 한국의 노동생산성은 연간 1600시간 일하는 선진국에 훨씬 못 미친다. 중소기업·벤처 숨쉬려면 대기업 탐욕 버려야 창의와 혁신은 대기업 혼자만의 힘으로는 안 된다. 수많은 창의적인 중소기업, 벤처와 협업이 이뤄져야 한다. 1976년 애플이 처음 태동한 곳은 공동 창업자인 스티브 워즈니악의 차고였다. 국민의 경제민주화 요구가 아니더라도, 대한민국의 중소기업과 벤처가 숨을 쉬려면 대기업이 탐욕을 버려야 한다. 불공정 하도급 관행을 과감히 청산해 중소기업들도 기술개발과 우수인력에 과감히 투자할 수 있는 여력이 있어야 한다. 과연 이런 일들이 가능할까. 물론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기업의 중심인 총수가 바뀌어야 한다. 총수가 신의 경지에서 땅으로 내려와야 한다. 한겨레 경제부 선임기자 jskwak@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