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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금리는 바닥에 오래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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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8-2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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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경제 불투명해 금리 전망 엇갈려… 경기회복 되더라도 고금리는 불가능

사진/ 일본의 제로금리정책은 실패한 정책으로 받아들여진다. 일본 도쿄 증권거래소.(이정용 기자)
“여기까지 금리를 내렸으니 이제 경기가 점차 회복될 것이다.” “아니다. 또 금리를 내리는 걸 보니까 경기가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는 뜻이다.”

초저금리시대를 맞은 요즘 금융시장에 조금만 귀를 기울이면 언제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언뜻 들으면 경기 논란인 듯하지만 사실은 금리 논란이다. 한국은행이 지난 8월9일 올 들어 세 번째로 콜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한 뒤 금융시장에서 ‘금리 바닥론’ 혹은 ‘금리 반등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하지만 금리인하에 대한 해석은 이처럼 양날의 칼마냥 정면으로 엇갈린다. 그리고 금리 전망이 경기에 대한 기대심리와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이 논란은 사실 경기 논쟁이자 동시에 금리 논쟁이랄 수 있다.

금리 바닥론·금리 반등론 정면으로 충돌


금리가 이제 갈 데까지 갔으니까 바닥을 찍고 되오를 것인가, 아니면 더 내려가야 바닥이 보일 것인가. 이는 손에 쥔 돈이 많든 적든 초저금리시대를 맞은 사람들이 갖는 초미의 관심사이지만 안타깝게도 말만 무성할 뿐 똑 부러진 대답을 듣기는 어렵다. 대답을 들어도 금방 긴가민가해지기 일쑤다. 이유는 금리 동향의 ‘신호’ 노릇을 하는 국내외 경제에 대한 전망이 엇갈리기 때문이다. 잇따라 금리를 내린 만큼 경기가 부양될 것이라는 기대와 얼마나 경제가 나쁘기에 금리를 자꾸 내리느냐는 불안이 시장에 ‘공존하는’ 것이다. 따라서 금리가 바닥이라는 확신은 경기가 회복세에 접어들었다는 뚜렷한 신호가 나타날 때 형성될 수 있다.

경기침체의 골이 더 깊어갈 경우 통화당국이 경기를 부추기기 위해 또다시 금리를 내릴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서울은행 자금부 서종한 부부장은 “경제가 회복단계에 진입한 것이 확인되기 전까지는 한국은행이 금리를 내려 돈을 더 풀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채권시장쪽에서는 9월 초에 통화당국이 또 한 차례 콜금리를 인하할 것이라는, 추가적인 금리인하에 대한 기대심리가 퍼지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은행 관계자는 “중앙은행이 금리의 마지노선을 정해놓고 금리정책 수단을 쓰는 것은 아니다”며 “경기회복 전망이 불투명해지고 경기가 더 나빠지면 금리를 다시 내릴 수도 있지만 약간 경기회복 조짐이 보이면 금리를 내릴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로서는 두가지 가능성을 다 열어놓고 있다는 얘기다.

반대로 금리가 조만간 반등할 것이라는 기대는 경기회복에 대한 예상 때문이라기보다 차라리 지금보다 더 낮은 금리는 경제성장에 큰 부담이 되기 때문에 ‘더 떨어질 여지가 없다’는 데서 형성되고 있다. 낮은 금리 수준이 왜 경제에 부담이 되는 것일까. 금리가 높다는 건 돈이 귀하다는 것이고 반대로 금리가 낮다는 건 그만큼 시중에 돈이 넘친다는 얘기다. 그런데 성장단계에 있는 경제라면 기업의 자금수요가 그만큼 많다는 뜻이고 따라서 시중에 돈이 넘쳐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자금수요와 시중 자금의 수급에 따라 적정한 수준의 금리를 가져야 하는 것이다. 통화당국도 “우리 경제는 여전히 성장하는 단계에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설사 지금의 금리수준이 바닥이라 하더라도 바닥, 하면 떠오르듯 금방 다시 치고 올라가는 바닥론은 아니다. 금융연구원 박종규 박사는 “실질금리가 제로인 만큼 지금 금리는 바닥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며 “그러나 조만간 치고 올라가는 바닥이 아니라 당분간 이 상태가 지속되는 바닥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금리 바닥론은 한국은행이 지난 8월14일 통화안정증권을 발행해 시중에 풀린 돈을 다시 거둬들이면서 무게가 실리기 시작했다. 채권시장 한쪽에서는 한은이 더이상의 급격한 금리하락을 막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것으로 풀이했다. 그러나 서울은행 자금부 서종한 부부장은 “이는 한은이 금리를 다시 높이자는 게 아니라 돈이 똥값이 되어 금융기관도 견디기 어려운 상황으로 치닫는 것을 우려해 일시적으로 조정하기 위한 의도”라고 분석했다. 지나치게 빠른 하락속도를 조절하자는 것이지 금리를 되돌리겠다는 뜻은 아니라는 얘기다.

제로금리 가능성은 0%에 가깝다

그렇다면 금리가 장기 하락세 국면으로 빠져들면서 우리도 일본처럼 제로금리로 갈 것인가. 금융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전망을 들어보면 “그럴 가능성은 거의 제로”다. 금융연구원 임병철 연구원은 “우리 경제는 아직 성장단계에 있기 때문에 제로금리로 간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며 “자금시장이 극도로 왜곡되지 않는 이상 일본처럼 0%금리로 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잘라말했다. 한국은행도 “제로금리로 가다가는 큰일날 수 있다”며 “우리 경제는 장기불황 상태에 빠져 있는 일본경제와 분명히 다르다”고 강조했다. ‘큰일난다’는 건 제로금리 수준까지 떨어져 은행에 돈을 묻어둬 봤자 이자가 한푼도 안 나올 경우 저축률이 떨어질 게 뻔하고 이는 미래의 잠재성장력을 잠식하는 사태로 이어진다는 걱정에서 비롯된다. 시장에서 금리 반등론이 고개를 드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잇단 금리인하가 경기진작을 위한 조처이지 제로금리에 가까운 초저금리를 통화당국이 정책목표로 삼고 있지는 않다는 사실이 금리 반등에 대한 기대를 낳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제로금리정책도 사실은 장기불황이 ‘강요’한 성격이 짙다. 장기불황에서 탈출하려면 소비를 부추겨 내수를 일으켜야 하고 이를 위해 금리를 0% 수준까지 의도적으로 내릴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제로금리정책은 경기 자극 효과를 거두지 못한 실패한 정책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는 일본이 정부재정을 이용해 국민들한테 상품권을 나눠주는 ‘극약처방’까지 동원했음에도 불구하고 소비가 늘기는커녕 이를 ‘깡’해서 현금화한 뒤 다시 은행에 넣어버린 사례가 그대로 보여준다. 워낙 경기가 불투명하다보니 이자가 한푼도 붙지 않더라도 ‘안전하게’ 저축해두는 게 가장 낫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금리가 갈 데까지 내려간 뒤 다시 오른다면 어느 정도까지 회복될 것인가. 물론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이론상의 ‘균형금리’가 있을 수 있지만 현실에서 꼭 맞아떨어지는 건 아니다. 금융연구원 임병철 연구원은 “시중 실세금리가 10% 이상 되는 시절이 앞으로 한국경제에서 다시 도래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신용등급 AA 이상인 우량기업의 회사채 유통수익률이 10%대가 넘는다면 그 기업이 물건을 팔아 벌어들이는 수익률이 10% 이상 돼야 한다는 뜻이다. 고속성장 시대를 지나 안팎으로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는 현실에서 그 정도 돈을 벌어 회사채금리를 커버할 수 있는 기업은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경기 바닥 찍어도 하락세 지속될 듯

사진/ 금리 전망은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심리와 맞물려 있다. 한국은행 직원들이 신권화폐를 옮기고 있다.(이정용 기자)
금리가 다시 오를 조건은 무엇보다도 경기회복과 맞물려 있다. 그런 점에서 금리는 우리 경제의 구조조정과도 무관하지 않다. 서울은행 서종한 부부장은 “금리가 떨어지는 건 통화당국이 콜금리를 내려서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돈이 갈 곳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돈이 수익을 낼 만한 곳을 찾지 못해 떠돌기만 할 뿐 정상적인 흐름이 꺾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구조조정으로 한국경제에 드리워진 안개가 걷히고 이에 따라 자금흐름이 뚫려 돈이 돌기 시작하면 돈의 값, 즉 금리는 ‘본능적으로’ 제값을 찾아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부는 올 3분기에 경기가 바닥을 찍고 4분기부터 회복세로 돌아설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지만 시장에서는 회복이 더딜 가능성이 높다는 우울한 전망이 지배적이다. 금융전문가들은 대체로 “금리가 바닥을 찍었다고는 보는 건 섣부른 진단”이라며 “안팎의 경제상황을 볼 때 금리 하락세를 되돌리기는 어렵다”고 점친다. 금리 역시 문제는 다시 경기회복 타이밍인 셈이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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