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스타가 지난 5월22일 ‘투자자-국가 소송제’(ISD)에 따라 국제중재를 청구하겠다는 내용의 중재의향서를 주벨기에 한국대사관에 보냄에 따라 한국의 ‘ISD 1호 사건’이 탄생했다. 참여연대 회원들이 5월24일 서울 을지로 외환은행 본점 앞에서 ‘론스타의 외환은행 부당이득 환수 추진을 위한 주주모집’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자신만만 론스타, 중재 재판부 구성에 50% 영향력 지난해 그토록 논란이 많았던 ISD 사건이 처음 접수됐는데도 한국 정부는 이를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 금융위원회가 석가탄신일인 지난 5월28일 오후 6시쯤에 ‘론스타가 우리 정부에 협의를 요청하는 문서를 전달했다’고만 밝힌 보도자료를 내놓았다. 이 보도자료에는 ISD라는 용어 자체가 나오지 않는다. ISD를 제기한 이유도 론스타가 이틀 뒤 발표한 보도자료를 통해 한국 언론에 알려졌다. ISD 중재의향서를 접수하면 정부 공식 홈페이지에 곧바로 전문을 공개하는 미국이나 캐나다의 정부와 전혀 다른 대응이다. 론스타는 승소를 자신하고 있다. 존 크레이켄 론스타 회장은 “한국 및 해외 법률가들과 상의했고, ISD 청구가 설득력 있다는 조언을 받았다”며 “공정한 중재 패널로 구성된 ICSID에서 한국 정부가 (론스타) 투자자들의 피해를 배상하도록 하는 판정을 내릴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자신만만한 이유는 국제중재에서 외국 투자자들이 더 우호적인 대우를 받기 때문이다. 우선 중재인은 법관 같은 ‘공적 신분’이 아니다. 그래서 분쟁 당사자가 각 1명씩 선정하고 의장을 맡을 제3의 중재인만 양쪽이 합의해 뽑는다. 론스타가 중재 사건을 맡을 재판부를 구성하는 데 50%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셈이다. 한국 법원에서는 절대로 행사할 수 없는 권리다. 뒤집어 말하면, 한국 정부의 조세·금융 정책을 무력화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 재판부의 최소한 절반이 다국적기업의 변호사로 주로 일하며, 미국법의 영향을 많이 받는 해외 법률가로 채워진다는 얘기다. 실제로 ICSID에서 중재인으로 활동한 경험이 있는 미국인은 지난해 12월까지 144명에 달하지만 한국인은 1명도 없었다. 또한 중재인들은 행정소송을 다루는 한국 법관들처럼 국가정책의 정당성이나 동기를 고려하지 않는다. 상대국 정부의 어떤 조처로 인해 투자자의 자산 가치가 감소했고, 그것이 투자협정 위반이라면 정부가 배상해야 한다고 판단한다. 한국 법원에서 승소할 가능성이 희박한 론스타의 처지에서는 포기할 수 없는 마지막 카드다. 앞서 2004년 12월 서울 강남 스타타워빌딩(강남파이낸스센터) 주식을 매각한 뒤에도 론스타는 양도소득세와 법인세를 내지 않으려고 한국 법원에 행정소송을 냈다. 하지만 대법원은 지난 1월 벨기에 법인은 론스타가 조세회피 목적으로 세운 페이퍼컴퍼니에 불과해 한-벨기에 조세조약을 적용할 수 없다고 최종 판결했다. 국세청이 론스타에 세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준 것이다. 이러한 한국의 대법원 판결을 ISD를 통해 뒤집겠다는 게 론스타의 목표다. 승소해도 치를 비용 최소 200만달러 하지만 한국 정부의 처지에서는 패소하면 조세·금융 정책과 대법원 판결이 무력화되고, 승소하더라도 고액의 중재·법률 비용을 국민 세금으로 부담해야 할 상황이다. ICSID가 중재인 수당만 하루에 3천달러(약 350만원)로 책정하고 사건이 최소한 2∼3년 진행되는 탓에 중재 비용만 50만~100만달러 필요하다. 여기에다 변호사 선임 비용을 더하면 ISD 관련 법률 비용은 200만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실제로 미국 기업 포프앤탤벗이 1999년 12월 캐나다 정부를 상대로 낸 중재 청구에서는 손해배상금이 46만달러에 그쳤지만 사건이 4년이나 진행된 탓에 법률 비용은 760만달러나 들었다. 론스타는 잃을 것 없는, 한국 정부는 잃을 것밖에 없는 ISD 전투가 시작됐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