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대안적 통상정책 마련하자

한-중 FTA 협상 앞두고 기존 FTA 성적 보니 적자, 적자, 적자…
경제효과 검증과 통상 관료 권력 견제 등 민주적 통상 거버넌스 시급

911
등록 : 2012-05-15 15:57 수정 : 2012-05-18 13:55

크게 작게

한국은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양대 경제권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유일한 국가이자, 만일 한-중 FTA가 체결된다면 전세계에서 가장 급진적인 FTA 네트워크를 가진 나라가 된다. 지난 5월2일 박태호 통상교섭본부장(왼쪽)과 천더밍 중국 상무부장이 베이징에서 한-중 FTA 협상 개시를 공식 선언하고 있다. <한겨레> 박민희 기자
이제 곧 중국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앞두고 있다. 6년 넘게 끌어온 한-미 FTA는 격렬한 항의와 저항에도 결국 발효되고 말았고, 한-유럽연합(EU) FTA는 곧 발효 1년을 맞이한다. 이제 한국은 미국과 EU의 양대 경제권과 FTA를 체결한 유일한 나라이자, 만일 한-중 FTA가 체결된다면 전세계에서 가장 급진적인 FTA 네트워크를 갖춘 나라가 된다. 여기에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나 별도로 한-중-일 FTA가 추진된다면, 이 네트워크에 일본까지 포함하는 그야말로 세계 유일의 초FTA 국가가 되는 셈이다. 이것이 망할 길인지 살 길인지 현재로서는 뭐라 말하기는 쉽지 않다.

정부의 장밋빛 전망은 어디로 사라졌나

한국은 지난 10년간 약 40개국과 이미 FTA를 체결했고, 또 발효 중이다. 그중 가장 먼저 체결한 칠레와의 FTA를 통해 우리는 단 한 번도 무역 흑자를 기록한 적이 없다. 그리고 노르웨이·스위스·아이슬란드 등 유럽자유무역연합(EFTA) 회원국들과 이미 오래전부터 FTA를 운영해왔지만 마찬가지로 단 한 번도 흑자를 기록한 바 없다. 아니 그나마 칠레와의 FTA는 이에 반대하는 농민들로 인해 쟁점이라도 된 바 있지만, 한-EFTA FTA는 그런 것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실정이다. 한-EU FTA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발효된 지 1년 가까이 되지만, 그 어디에도 정부가 약속한 장밋빛 전망이 나타날 조짐은 없다. 관변 연구소의 추정대로라면 한-EU FTA를 통해 국내총생산(GDP)이 못해도 0.56% 추가 성장했어야 하고, 일자리 수가 2만 개 이상 늘어났어야 한다. 이런 경제효과를 찾아보는 것은 부질없는 짓으로 보이기조차 한다.

오히려 한-EU FTA가 발효된 지 10개월 남짓 만에 무역 흑자가 110억달러가량 잠식됐다. 2010년을 기준으로 한국의 대EU 경상수지를 보면 상품수지 흑자가 약 150억달러, 서비스 적자가 84억달러, 투자배당금·이자 등을 의미하는 본원소득의 수지 적자가 48억달러, 그래서 경상수지는 간신히 약 19억달러 흑자를 유지하는 수준이다. 이런 조건에서 상품수지 흑자가 자그만치 110억달러가량 잠식됐다는 말은 대EU 경상수지가 아주 불안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군다나 한국이 세계 2·3위의 서비스무역 적자 국가이고 그 적자의 대부분이 미국·EU와의 서비스무역에서 발생하고 있으니, 앞으로도 서비스무역 적자는 개선될 여지가 없다고 할 때 더욱 그러하다. 그렇다면 한-EU FTA가 보여주는 바는, 우리보다 경쟁력 우위에 있는 나라와 FTA를 해보니 남는 것은 적자밖에 없다는 것이다.

결국 이런 말이다. EU 회원국이건 아니건 우리보다 경쟁력이 강한 유럽과 FTA를 했을 때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마찬가지로 우리보다 경쟁력이 강한 미국과의 FTA가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예측할 때 유용한 경험적 준거를 제공해준다. 특히 우리나라의 EU 교역과 비교할 때 제조업 흑자, 서비스업 적자라는 유사성을 지닌 미국과의 FTA에도 이런 경향이 나타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상품무역 흑자 감소, 서비스무역 적자 증가가 가속화해 결국 우리나라의 대EU·대미 경상수지 흑자 구조가 와해되는 시나리오 말이다. 상품 쪽을 보더라도 2010년 농업의 대미 적자가 50억달러에 달하고 이 또한 매우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반면, 예컨대 우리나라가 가장 주력하고 있는 완성차 부문의 대미 흑자는 2010년 기준 60억달러 정도다. 서비스무역 적자가 아니더라도, 농업만으로 우리의 상품 흑자는 감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말이다. 여기에다 중국의 경우, 일부 하이엔드(고급) 제품을 제외한 중저가 내수시장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고, 농업의 피해 규모는 한-미 FTA의 경우를 훨씬 능가할 것이라는 예상이 제출돼 있다. 자동차 부문의 이익 여부도 한-중 FTA에선 불확실할 것이라는 전망 또한 나와 있다.

정권 말기 무분별한 FTA 중단해야


‘도대체 FTA가 가져다줄 것이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대한 분석적 전망은 경제효과만 놓고 따져본 것에 불과하다. 예컨대 이번 미국에서의 광우병 재발로 인한 식품 안전 같은 FTA의 파생 이슈, 지금도 논란이 끊이지 않는 ‘투자자-국가 소송제’(ISD) 같은 제도상의 쟁점, 자동차 환경, 안전, 기술표준 등과 같은 비관세장벽, 공공서비스 부문 민영화 등은 전혀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글로벌 경제를 주도하는 투자·금융 부문도 마찬가지다. 2010년 기준 한-미 양국의 총교역액이 800억달러인 반면, 같은 시기 양국의 직간접 투자 자본거래 총액은 3천억달러가 넘는다. 그래서 한-미 FTA에서도 투자가 중요한 부문 중 하나인 것이다.

한때 남미 등지에서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이 지배적일 때, 다분히 예외적으로 발전국가(Developmentalist State) 주도형 압축성장의 성공 사례로 꼽혔던 한국은 이제 세계 초대형 경제권의 시장쟁탈전의 전장이 될 전망이다. 물론 여기에는 과거 압축성장을 주도했던 경제관료들이 재빠르게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할 새로운 아이템으로 통상을 선택한 것도 적잖이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사정이 어떠하든 간에 이제는 더 이상 FTA에 대한 맹목과 시대에 동떨어진 낡은 통상 거버넌스를 가지고서는 새로운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그래서 대안적 통상정책의 몇 가지 출발점을 언급해본다.

첫째, FTA의 경제효과에 대해 과학적·객관적 검증이 시급하다.

둘째, FTA 위주의 통상정책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글로벌 경제의 통상은 결코 수출 증대라는 기능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글로벌 경제는 수출-생산-일자리-소득-투자의 선순환 고리를 해체시킨 지 오래다. 수출이 늘어도 고용이 늘지 않고, 성장을 해도 고용이 늘지 않게 된 것이다. 그리고 통상정책의 포괄 범위는 단순히 수출 증대 수준을 한참 벗어나 산업, 금융, 금리, 투자, 농축수산, 검역 그리고 서민들의 일상생활에 직결된 각종 공공서비스 부문에 이르기까지 국민경제의 모든 영역을 촘촘히 관할하고 있다. 특히 정권 말기의 무분별한 FTA 협상은 중단되는 것이 옳다.

셋째, 이 과정에서 통상관료의 권력이 가히 ‘통상 독재’를 우려할 정도로 광역화돼버렸다. 선출된 적도 위임된 적도 없는 통상관료의 권력은 거의 무소불위라 할 만큼, 심지어 초헌법적 양상으로까지 확장됐다. 그런 점에서 민주적 통상 거버넌스 확보가 관건이다.

‘나중에 잘되면 갚지’식의 접근 안돼

넷째, FTA가 경제민주화의 사각지대가 될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 사회의 특정 계층이나 지역, 세대의 희생을 당연시하고 또 각종 대책이라는 이름으로 전개되는, ‘나중에 잘되면 갚지’식의 접근은 더 이상 안 된다. 이런 점에서 통상의 재분배 기능이 새롭게 강조돼야 한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국제관계학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