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역마진으로 갈수록 눈덩이 손실… 도입하며 계약자에 중도 해약 강요로 물의 빚기도
생명보험업계가 기로에 섰다. 시중금리의 지속적인 하락에 따른 금리 역마진으로 심각한 위기에 몰리고 있는 것이다. 생보사들은 ‘줄일 수 있는 비용은 모두 줄인다’는 각오로 조직과 인원을 감축하는 과정에 들어갔다.
1997년 IMF사태 이후 조직과 인원을 꾸준히 줄여왔지만, 지금 생보업계에 닥친 현실은 그때보다 더 엄혹하다. 앞으로 3∼4년 동안 누구도 생보업계의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지난 10여년간 금리 역마진이 누적돼 97년 이후 7개 생보사가 줄줄이 파산한 일본 생보업계의 악몽까지 거론되고 있다.
금리확정형 저축성보험이 골칫덩이로 전락
국내 생보업계의 뇌관은 금리 역마진이다. 보험가입자에게 지급하기로 약속한 금리인 예정이율보다 자산을 운용해 벌어들이는 수익이 훨씬 낮은 것이다. 금리 역마진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하반기 경기가 침체하면서부터다. 2000년 한햇동안 금리 역마진으로 인한 손실은 약 2조6천억원에 이른다. 평균 7.8%의 예정이율로 고객에게 상품을 팔았지만 금리 하락과 증시 침체로 실제 운용자산수익률은 평균 4.7%에 그쳤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은 앞으로도 그리 개선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개발연구원 나동민 금융연구팀장의 연구에 따르면, 생보업계의 금리 역마진은 2001년(회계연도 기준·2001년 4월∼2002년 3월) -1.75%포인트, 2002년 -1.54%포인트, 2003년 -1.3%포인트, 2004년 -1.1%포인트로 계속 누적될 전망이다. 시중금리 변화에 연동되지 않는 금리확정형 저축성보험의 비중이 전체 생보 상품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다는 점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현재 업체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국내 생보사의 장기확정금리 상품 비중은 65%에 이른다. 이중 76% 정도가 연 7% 이상의 금리를 주는 것으로 돼 있다. 특히 97년 말과 98년 고금리를 좇아 자금이 은행으로 이동하는 것을 막기 위해 생보사들이 연 9.5∼10.5%를 보장하며 집중 판매한 만기 5∼10년의 저축성 보험이 골칫거리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삼성생명의 ‘듬뿍저축보험’의 경우 97, 98년 2년 동안 모두 18만7606건, 교보생명의 ‘우대저축보험’은 12만8187건, 대한생명의 ‘파워저축보험’은 35만9687건이나 된다. 현재 예정이율이 5.5∼6.5%, 국고채금리가 5%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이 상품들의 부담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금리 역마진을 누적시킬 이 상품들의 만기는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돌아온다. 앞으로 3∼4년이 고비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올해 들어 생보사들은 설계사를 동원해 이 상품들을 해지하고 종신보험에 가입할 것을 적극 유도하고 나섰다. 올해 상반기 동안 해지된 계약만 3만여건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보험사들이 손실을 계약자에게 일방적으로 떠넘기는 데 있다. 보험을 중도에 해약하면 정해진 이자를 지급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생보 상위 3사의 설계사들에 따르면, 예컨대 만기 때 600만원을 받아야 할 이자가 100만원, 198만원 받아야 할 이자가 10만원으로 줄어드는 사례가 비일비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생보사들은 종신보험에 가입하기 위해 가입자들이 자발적으로 해약에 동의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가입자들과 설계사들의 설명은 다르다. 상당수 설계사들이 1인당 5건의 해약을 유도할 것을 사실상 ‘강요’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설계사들은 실적이 저조하면 경력이 오래되고 월수입이 100만원 안팎인 설계사들부터 줄인다는 압력을 받고 있다고 호소하고 있다. 설계사 줄이며 잔여수당 떼먹기 일쑤
이 때문에 설계사들은 해약하게 되면 이자를 거의 받지 못한다는 점을 가입자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교보생명의 한 설계사는 “가입자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이자를 거의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안다면 해약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며 “오랫동안 친밀하게 접촉해온 가입자를 속이는 게 싫은 일부 설계사들은 자기 돈으로 이자 차액을 물어주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생명 한 설계사도 “실적을 채우기 위해 자신과 가족 명의의 보험부터 해약하고 있다”며 “양심상 회사를 그만둬야 할 것 같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생보사들의 감축작업도 시작됐다. 설계사의 대부분인 여성설계사를 줄이고 텔레마케팅, 사이버마케팅 등 사업비가 적게 드는 판매방식을 도입하기 위해서다. 판매조직을 분사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생보사들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 6월 말 국내 21개 생보사들의 설계사 수는 20만4581명으로, 3월 말 21만4793명에 비해 1만여명이 줄었다. 이는 지난해 3월에 비해선 약 4만명이 줄어든 수치다. 이들 중에는 일을 제대로 하지 않고 적만 올려놓고 있는 설계사뿐 아니라 해약 유도 실적이 저조해 ‘잘린’ 설계사들도 상당수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재 삼성생명은 인력 및 조직 구조조정을 추진하기 위해 경영컨설팅회사인 매킨지에 의뢰한 경영평가 결과가 나오는 대로 직원과 보험설계사를 감축하고 영업소와 지점 등 조직을 더욱 축소할 계획이다. 판매 채널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영업조직을 고능률 설계사로 정예화한다는 전략에 따라 현재 5만8천명인 설계사 수를 4만명대로 줄인다는 게 삼성생명의 계산이다. 4만5천여명 수준인 설계사를 보유한 대한생명도 올해 말까지 2천∼3천여명을 더 줄일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설계사 축소는 생보업계에 또 하나의 뇌관을 형성하고 있다. 보통 설계사들은 계약 1건을 성사시키고 보험료를 13번 이상 거둬들이면 수당이 30만원가량 나온다. 이 돈은 한달에 1만원씩 30개월로 나눠받는 게 보통이다. 문제는 생보사들이 설계사를 자르면서 나머지 잔여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실제로 노동조합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쫓겨난 대한생명의 한 설계사는 “잔여수당 1700만원을 받을 게 있는데 보험사쪽이 이를 지급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전국보험모집인노조 이순녀 위원장은 “98년부터 이렇게 보험사들이 지급하지 않고 있는 수당이 3조원가량으로 추정되고 있다”며 “일부 설계사들이 잔여수당을 지급받기 위한 법정소송을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금융기관 사이의 업무장벽이 허물어지면서 생보업계를 둘러싼 금융환경도 바뀌고 있다. 대형 생보사들에 가장 위협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은행이 보험을 겸업하는 방카슈랑스이다. 은행이 방카슈랑스를 통해 시장을 급속히 잠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현재 방카슈랑스에 가장 적극적인 것은 독일계 보험그룹인 알리안츠가 대주주로 있는 하나은행과 알리안츠제일생명 등 외국계 생보사와 은행들이다. 민영화할 은행을 누가 가져갈 것이냐도 생보업계 판도 변화의 변수이다. 실제로 영국은 방카슈랑스 도입 이후 생보시장에서 차지하는 은행의 시장점유율이 92년 10%에서 99년 20%로 두배나 증가했다. 생보업계가 전반적으로 2003년 8월로 예정된 방카슈랑스 도입 일정을 앞당기는 것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방카슈랑스가 한국 실정에 맞을 것이냐도 논란을 겪고 있다. 생보사 상품의 80%가 설계사를 통해 이뤄지는 한국적인 ‘연고 판매’의 상황이 단시간 안에 바뀌기 어렵다는 게 그 근거이다. 은행 창구에서 보험을 판매할 경우 가입자들에게 정확한 정보 제공과 상품 설명이 이뤄지지 않아 가입자의 피해가 더욱 클 것이란 전망과 우려도 나오고 있다.
방카슈랑스 도입 논란…뾰족수 보이지 않아
생보업계는 탈출구를 찾고 있다. 보험사 신탁상품이라고 할 수 있는 실적배당형 변액보험이 종신보험에 한해 도입되기는 했지만, 주식시장 침체로 호응은 적은 편이다. 때문에 현재 5.5∼6.5%인 예정이율을 추가로 낮춰 보험료를 올려달라는 건의를 감독당국에 하고 있다. 지난 4월 예정이율은 1%포인트 낮아졌다는데, 오는 10월께 추가로 1%포인트를 내려달라는 것이다. 예정이율이 1%포인트 낮아지면 보험료가 15∼20%가량 높아진다. 이럴 경우 생보사 손실을 가입자에게 떠넘긴다는 비판 여론이 커질 수 있다. 곳곳에 지뢰밭, 시계 제로. 이것이 생보업계의 현 상황이다.
조준상 기자/ 한겨레 경제부 sang21@hani.co.kr

사진/ 생보사는 여성설계사 수를 줄이면서 잔여수당을 지급하지 않았다. 생보사의 해고 조처에 항의하는 여성 성계사들.
국내 생보업계의 뇌관은 금리 역마진이다. 보험가입자에게 지급하기로 약속한 금리인 예정이율보다 자산을 운용해 벌어들이는 수익이 훨씬 낮은 것이다. 금리 역마진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하반기 경기가 침체하면서부터다. 2000년 한햇동안 금리 역마진으로 인한 손실은 약 2조6천억원에 이른다. 평균 7.8%의 예정이율로 고객에게 상품을 팔았지만 금리 하락과 증시 침체로 실제 운용자산수익률은 평균 4.7%에 그쳤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은 앞으로도 그리 개선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개발연구원 나동민 금융연구팀장의 연구에 따르면, 생보업계의 금리 역마진은 2001년(회계연도 기준·2001년 4월∼2002년 3월) -1.75%포인트, 2002년 -1.54%포인트, 2003년 -1.3%포인트, 2004년 -1.1%포인트로 계속 누적될 전망이다. 시중금리 변화에 연동되지 않는 금리확정형 저축성보험의 비중이 전체 생보 상품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다는 점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현재 업체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국내 생보사의 장기확정금리 상품 비중은 65%에 이른다. 이중 76% 정도가 연 7% 이상의 금리를 주는 것으로 돼 있다. 특히 97년 말과 98년 고금리를 좇아 자금이 은행으로 이동하는 것을 막기 위해 생보사들이 연 9.5∼10.5%를 보장하며 집중 판매한 만기 5∼10년의 저축성 보험이 골칫거리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삼성생명의 ‘듬뿍저축보험’의 경우 97, 98년 2년 동안 모두 18만7606건, 교보생명의 ‘우대저축보험’은 12만8187건, 대한생명의 ‘파워저축보험’은 35만9687건이나 된다. 현재 예정이율이 5.5∼6.5%, 국고채금리가 5%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이 상품들의 부담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금리 역마진을 누적시킬 이 상품들의 만기는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돌아온다. 앞으로 3∼4년이 고비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올해 들어 생보사들은 설계사를 동원해 이 상품들을 해지하고 종신보험에 가입할 것을 적극 유도하고 나섰다. 올해 상반기 동안 해지된 계약만 3만여건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보험사들이 손실을 계약자에게 일방적으로 떠넘기는 데 있다. 보험을 중도에 해약하면 정해진 이자를 지급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생보 상위 3사의 설계사들에 따르면, 예컨대 만기 때 600만원을 받아야 할 이자가 100만원, 198만원 받아야 할 이자가 10만원으로 줄어드는 사례가 비일비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생보사들은 종신보험에 가입하기 위해 가입자들이 자발적으로 해약에 동의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가입자들과 설계사들의 설명은 다르다. 상당수 설계사들이 1인당 5건의 해약을 유도할 것을 사실상 ‘강요’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설계사들은 실적이 저조하면 경력이 오래되고 월수입이 100만원 안팎인 설계사들부터 줄인다는 압력을 받고 있다고 호소하고 있다. 설계사 줄이며 잔여수당 떼먹기 일쑤

사진/ 생보사들은 금리 역마진을 줄이기 위해 새로운 상품을 내놓고 있다. 한 여성설계사가 고객에게 신상품을 권하고 있다.(이정용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