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양대 선거에서 초미의 관심으로 두어야 할 질문이 있다. ‘경제권력의 교체는 과연 가능한가’이다.
물론 선거를 통한 정권 교체는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 되었다. 선거를 통한 경제권력의 교체도 과연 그러할까. 우리는 국가기구를 일종의 자동차나 비행기 같은 기계류로 생각하는 상상에 길들여져 있다. 운전석에 앉은 이는 누구든 그 자동차와 비행기를 자기 뜻대로 움직일 수 있듯, 국가기구라는 것도 어떤 집단이든 선거를 통해 청와대와 국회를 장악하기만 하면 마치 운전석에 앉은 것처럼 뜻대로 운전할 수 있는 기계로 생각하는 것이다.
경제권력, 국가기구의 중추신경
하지만 국가는 기계라기보다는 거대하고 포악한 ‘괴수’에 가깝다. 자기가 기존에 유지해온 ‘코드’나 ‘유전자’와 비슷한 것을 공유하는 집단이 고삐를 죄면 그런대로 말을 듣는 듯 행동하지만, 자기의 체질에 비추어 전혀 엉뚱하다 싶은 세력이 머리 위에 올라앉으면 말을 듣기는커녕 되레 거꾸로 새 주인을 길들여 자기 머슴으로 만들어버리거나 아니면 길길이 날뛰어 땅바닥에 태질쳐서 불구로 만들어버린다.
이 가공할 괴수인 국가기구가 스스로의 힘줄을 움직이고 그를 통해 전 사회를 뜻대로 움직이고 주무르는 핵심적 도구가 바로 경제권력이다. 따라서 경제권력을 이루는 각종의 인적·제도적 요소와 자원들은 이 가공할 괴수 국가기구가 스스로를 작동시키는 중추신경에 해당하며, 따라서 척추신경이 단단한 척추뼈 속에 안전하게 숨겨져 있듯 국가기구 작동의 핵심 부위 속 깊숙이 들어박혀 있다.
경제관료들은 경제 영역의 ‘전문성’과 경제 논리의 ‘자율성’을 내세워 이것이 이런저런 정치적 논리로부터 철저히 격리된 신성불가침의 영역이 되어야 한다고 소리 높여 주장한다. 설령 선거로 새로운 정권이 들어선다고 해봐야 이 등골 깊숙이 박힌 척추신경인 경제권력을 뽑아내고 새로운 것을 박아넣는다는 일은 실로 위험천만한데다 성공률도 대단히 낮은 수술이 된다. 20세기 이후의 세계사를 통틀어 지구 곳곳에서 무수히 많은 정권 교체가 있었지만 이 경제권력의 교체가 실제로 벌어진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으며, 아마도 그것을 시도하다가 정권 자체가 무력화되거나 날아간 숫자가 훨씬 더 많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경우, 건국 이후 아니 최소한 군부 정권이 들어선 이후 경제권력의 교체가 진정으로 벌어졌던 적이 과연 있었을까. 지난해 말 출간돼 김진균학술상을 받은 지주형 박사의 저서 <한국 신자유주의의 기원과 형성>은 한국에서 신자유주의적 사상과 정책을 신봉하는 세력이 어떻게 등장해 어떻게 국가기구를 장악하고 나아가 온 나라와 경제 전체를 바꾸어놓게 되는지를 소상하게 기술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계속 충격을 받게 되는 지점은 이러한 국가기구의 중추신경이라 할 경제권력의 형성과 변화 과정이 민주적 선거와 얼마나 무관한 것이었는가다. 그 결과 신자유주의적 계획으로의 사회 개조가 상당히 진척돼 있는 2010년대의 우리 사회는 유명 로펌, 굴지의 대기업, 각종 국영·민영의 대형 금융기관, 경제 관련 부처의 많은 고위 관료들, 건설사업을 노리는 ‘토건족’들, 그 밖에도 가지가지의 세력들이 세로로 가로로 엮이고 뭉쳐 있는 거대한 경제권력체가 사회 전체의 머리 위에 군림하는 상태가 돼 있다. 정책·제도 개혁 + 인적 청산 이뤄져야 이러한 새로운 경제권력의 부상과 지배야말로 지금 정치권에서 ‘경제민주화’ 요구가 여당·야당을 가리지 않고 터져나오게 된 시대적 원인이다. 어떤 유형의 경제권력 블록이든 사회 성원 모두에게 물질적·문화적으로 인간적 삶을 어느 정도씩 보장한다는 국민적 요구를 전면적으로 외면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현존하는 경제권력의 지난 십 몇 년간의 행태를 보면 이러한 책임을 방기하고 외면하며 나아가 거의 일방적으로 자신들의 배타적 권력과 부의 확장만을 위해 사회 전체에 혼란과 희생을 떠넘기는 일이 적지 않았다. 그 결과는 심각한 양극화와 ‘99%’의 삶의 황폐화로 나타났다. 특히 세계 경제위기가 발발한 이후 몇 년간 전세계의 추세와 발맞추어 우리나라에서도 기성 경제권력의 교체를 요구하는 다수 사람들의 목소리와 움직임이 터져나오고 있다. 그것이 이번 선거에서 복지와 경제민주화가 여야 할 것 없이 중심적 의제의 위치를 차지하게 된 배경이다. 요컨대 사람들이 이번 선거에서 이루고자 하는 진정한 목적은 단순한 정권 교체가 아니라 경제권력의 교체에 있다. 그를 통해 날로 황폐해지는 자신들의 최소한의 경제적 안정과 안녕을 보장하고자 하는 것이다. 경제권력의 교체를 실질적으로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최소한 세 가지 차원의 개혁이 필요하다. 첫째는 정책 개혁, 둘째는 제도 개혁, 셋째는 인적 청산이다. 여기에서 뒤의 것이 전제가 되지 않으면 앞의 것이 불가능하거나 심하게 무력화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음미해야 한다. 사회 곳곳에 깊숙이 촉수를 박고 있는 경제세력들과 끈끈한 유대관계를 맺고 기득권 계층으로 안착해 있는 개인과 집단 대신 새로운 경제정책의 사상과 방향을 내면화한 이들이 없다면 새로운 경제제도의 착상은 물론 운영 또한 불가능해지거나 공염불이 될 것이다. 그리고 제도적 구조와 환경이 포괄적으로 혁신되지 않는다면 정말로 변화를 가져올 새로운 정책 아이디어가 나타날 여지는 형편없이 협소해질 수밖에 없다. 이 세 가지 차원의 개혁이 현실화되려면 다시 이를 강력하게 지지할 새로운 정치적·사회적 세력이 힘있게 조직돼야 하며, 이들의 필요와 요구에 맞게 산업사회와 경제를 조직·운영할 원리를 제공하는 새로운 경제사상과 이론이 개발돼야 한다. 이러한 물질적·정신적 배경이 있을 때에만 비로소 인적 청산과 제도 및 정책 개혁이라는 수술 작업을 통해 국가기구의 척추뼈 속에 들어 있는 경제권력을 성공적으로 안전하게 교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올해 두 개의 큰 선거를 앞둔 대한민국은 경제권력의 교체라는 과제에 어느 만큼이나 준비가 돼 있을까? 최소한 지금까지는 회의적인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각 정당이 총선에 임하면서 내놓은 정책을 보나 공천으로 내놓은 인물들을 보나 정말 이들이 경제권력의 교체를 책임 있게 추진하겠다는 생각이 있는지 심히 의심스럽다. 어느 정당에서나 경제권력 교체의 국민적 요구를 그저 복지니 경제민주화니 하는 알량한 수사학 차원의 구조로 형해화해 그저 자신들의 집권 동력으로 활용하겠다는 생각만이 느껴지는 것이다. 시기상조일까, 하지만 정치는 생물 하긴 정당만 탓할 일도 아니다. 앞에서 말한 대로, 그러한 구체적인 경제권력 교체 작업의 물질적·지적 전제가 되는 새로운 경제사상과 이론의 개발, 그리고 새로운 정치적·사회적 세력의 조직과 연대라는 작업도 진척되지 못한 상황이니까. 이런 상황에서 단순한 재벌 때리기 차원이 아닌 포괄적인 구조 개혁으로서의 경제민주화를 지향하는 진정한 경제권력의 교체가 이번 양대 선거에서 벌어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섣부른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흔히들 말하듯 정치는 시시각각 표변하는 생물이다. 표를 더 얻기 위해서라도 이러한 시대적 요구를 받아안으려는 혁신적 변신이 각 정당에서 올해 진행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그래서 올해 양대 선거에서 초미의 관심이 되는 질문은 ‘경제권력의 교체가 과연 시작될 것인가’이다.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
지난해 4월20일 국회에서 열린 ‘저축은행 청문회’에 전·현 정권의 거물급 경제관료가 총출동했다. 왼쪽부터 김석동 금융위원장, 진동수 전 금융위원장, 전광우 전 금융위원장,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 진념 전 재정경제부 장관, 이헌재 전 재정경제부 장관, 김종창 전 금융감독원장, 권혁세 전 금융감독원장. <한겨레> 박종식
이 책을 읽으며 계속 충격을 받게 되는 지점은 이러한 국가기구의 중추신경이라 할 경제권력의 형성과 변화 과정이 민주적 선거와 얼마나 무관한 것이었는가다. 그 결과 신자유주의적 계획으로의 사회 개조가 상당히 진척돼 있는 2010년대의 우리 사회는 유명 로펌, 굴지의 대기업, 각종 국영·민영의 대형 금융기관, 경제 관련 부처의 많은 고위 관료들, 건설사업을 노리는 ‘토건족’들, 그 밖에도 가지가지의 세력들이 세로로 가로로 엮이고 뭉쳐 있는 거대한 경제권력체가 사회 전체의 머리 위에 군림하는 상태가 돼 있다. 정책·제도 개혁 + 인적 청산 이뤄져야 이러한 새로운 경제권력의 부상과 지배야말로 지금 정치권에서 ‘경제민주화’ 요구가 여당·야당을 가리지 않고 터져나오게 된 시대적 원인이다. 어떤 유형의 경제권력 블록이든 사회 성원 모두에게 물질적·문화적으로 인간적 삶을 어느 정도씩 보장한다는 국민적 요구를 전면적으로 외면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현존하는 경제권력의 지난 십 몇 년간의 행태를 보면 이러한 책임을 방기하고 외면하며 나아가 거의 일방적으로 자신들의 배타적 권력과 부의 확장만을 위해 사회 전체에 혼란과 희생을 떠넘기는 일이 적지 않았다. 그 결과는 심각한 양극화와 ‘99%’의 삶의 황폐화로 나타났다. 특히 세계 경제위기가 발발한 이후 몇 년간 전세계의 추세와 발맞추어 우리나라에서도 기성 경제권력의 교체를 요구하는 다수 사람들의 목소리와 움직임이 터져나오고 있다. 그것이 이번 선거에서 복지와 경제민주화가 여야 할 것 없이 중심적 의제의 위치를 차지하게 된 배경이다. 요컨대 사람들이 이번 선거에서 이루고자 하는 진정한 목적은 단순한 정권 교체가 아니라 경제권력의 교체에 있다. 그를 통해 날로 황폐해지는 자신들의 최소한의 경제적 안정과 안녕을 보장하고자 하는 것이다. 경제권력의 교체를 실질적으로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최소한 세 가지 차원의 개혁이 필요하다. 첫째는 정책 개혁, 둘째는 제도 개혁, 셋째는 인적 청산이다. 여기에서 뒤의 것이 전제가 되지 않으면 앞의 것이 불가능하거나 심하게 무력화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음미해야 한다. 사회 곳곳에 깊숙이 촉수를 박고 있는 경제세력들과 끈끈한 유대관계를 맺고 기득권 계층으로 안착해 있는 개인과 집단 대신 새로운 경제정책의 사상과 방향을 내면화한 이들이 없다면 새로운 경제제도의 착상은 물론 운영 또한 불가능해지거나 공염불이 될 것이다. 그리고 제도적 구조와 환경이 포괄적으로 혁신되지 않는다면 정말로 변화를 가져올 새로운 정책 아이디어가 나타날 여지는 형편없이 협소해질 수밖에 없다. 이 세 가지 차원의 개혁이 현실화되려면 다시 이를 강력하게 지지할 새로운 정치적·사회적 세력이 힘있게 조직돼야 하며, 이들의 필요와 요구에 맞게 산업사회와 경제를 조직·운영할 원리를 제공하는 새로운 경제사상과 이론이 개발돼야 한다. 이러한 물질적·정신적 배경이 있을 때에만 비로소 인적 청산과 제도 및 정책 개혁이라는 수술 작업을 통해 국가기구의 척추뼈 속에 들어 있는 경제권력을 성공적으로 안전하게 교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올해 두 개의 큰 선거를 앞둔 대한민국은 경제권력의 교체라는 과제에 어느 만큼이나 준비가 돼 있을까? 최소한 지금까지는 회의적인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각 정당이 총선에 임하면서 내놓은 정책을 보나 공천으로 내놓은 인물들을 보나 정말 이들이 경제권력의 교체를 책임 있게 추진하겠다는 생각이 있는지 심히 의심스럽다. 어느 정당에서나 경제권력 교체의 국민적 요구를 그저 복지니 경제민주화니 하는 알량한 수사학 차원의 구조로 형해화해 그저 자신들의 집권 동력으로 활용하겠다는 생각만이 느껴지는 것이다. 시기상조일까, 하지만 정치는 생물 하긴 정당만 탓할 일도 아니다. 앞에서 말한 대로, 그러한 구체적인 경제권력 교체 작업의 물질적·지적 전제가 되는 새로운 경제사상과 이론의 개발, 그리고 새로운 정치적·사회적 세력의 조직과 연대라는 작업도 진척되지 못한 상황이니까. 이런 상황에서 단순한 재벌 때리기 차원이 아닌 포괄적인 구조 개혁으로서의 경제민주화를 지향하는 진정한 경제권력의 교체가 이번 양대 선거에서 벌어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섣부른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흔히들 말하듯 정치는 시시각각 표변하는 생물이다. 표를 더 얻기 위해서라도 이러한 시대적 요구를 받아안으려는 혁신적 변신이 각 정당에서 올해 진행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그래서 올해 양대 선거에서 초미의 관심이 되는 질문은 ‘경제권력의 교체가 과연 시작될 것인가’이다.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