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저금리에 자금 풀려도 경기는 깜깜… 유동성 함정에 빠질 가능성 대두
서울 강남의 신용금고에선 요즘 줄서기가 한창이다. 맡긴 돈을 찾으려거나 돈을 빌리려고 장사진을 친 게 아니다. 돈을 싸들고 와 맡기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창구가 하도 붐벼 영업시간을 연장해야 할 정도이다. 하루 들어오는 돈이 7월 말 이전보다 100배가량 늘어난 금고도 있다. 지난해 연말 신용금고의 잇단 파산으로 금고 예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던 상황과 너무나 대조적이다. 어떻게 이렇게 상황이 확 뒤바뀌었을까. 돈이 그야말로 똥값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나마 돈값을 다른 금융권보다 조금 낫게 쳐주는 데가 금고이다보니 우후죽순 금고로 몰리는 것이다.
지난 7월26일 국민·주택의 통합은행장 후보로 추대된 김정태 행장은 금융시장에 핵폭탄을 때렸다. 후보 수락의 일성으로 수신금리 인하방침을 공식화했다. 국내은행 전체 예수금의 31%를 점유하고 있는 두 은행이 수신금리를 내리게 되면 다른 은행들도 따라가게 마련이다.
은행에 맡기면 실질금리는 마이너스
정부가 기대한 대형 선도은행의 기능은 그대로 현실화했다. 국민·주택은행이 정기예금과 주력상품의 수신금리를 8월1일부터 0.5%포인트가량 내리겠다고 선언하자, 곧바로 농협과 우체국에 이어 다른 시중은행들도 줄줄이 따라나섰다. 적게는 0.1%포인트에서 최고 0.6%포인트씩 수신금리를 내렸다. 이에 따라 8월1일 이후 은행 정기예금 금리가 사상 처음으로 연 4%대까지 주저앉았고, 대출금리도 7%대로 내려왔다. 든든한 은행에, 예금 지급이 확실하게 보장된 금융상품에 돈을 넣으려면 이자가 형편없는 지경에 이른 셈이다. 얼마나 심각해졌는지는 쉽게 계산해볼 수 있다. 현금 1억원을 은행 정기예금에 넣고 달마다 이자를 찾아간다면, 세금을 빼고 고작 33만∼39만원 정도이다. 1년만기 정기예금도 연 5%선 안팎이다. 올해 7월 말 현재 물가상승률이 연 5%이므로, 이자에 붙는 세금(16.5%)을 빼면 실질금리는 마이너스이다. 즉, 1억원을 은행에 맡겨두고 1년 뒤에 찾아 물건을 사려고 하면 지금 1억원어치 물건을 사는 것보다 손해를 보는 격이다. 금리는 돈의 가격이다. 상품의 가격이 수요과 공급의 균형점에서 결정되듯 돈의 가격인 금리도 돈을 쓰려는 사람이 많으면 오르고, 시중에 돈이 넘치면 떨어지게 마련이다. 실제로 올 들어서 금리는 곤두박질치고 있다. 금융기관끼리의 하루짜리 콜금리가 지난해 말 연 6.01%에서 올해 7월 말 현재 연 4.75%로, 20.8% 떨어졌다. 기업들의 체감금리지표로 볼 수 있는 3년만기 회사채 유통수익률은 같은 기간에 8.13%에서 연 6.89%로 떨어졌다. 역시 백분율로 계산하면 두자릿수(15.2%) 하락이다. 일반가계에서 느끼는 금리하락폭도 마찬가지이다. 은행의 월평균 수신금리가 지난해 12월 5.89%이던 것이 올해 7월에는 4.95%로 내려 7개월 만에 15.9%의 낙폭을 보이고 있다. 장단기 금리 모두 너무 빠르게, 또 아주 깊은 낙폭을 보이며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부와 통화당국은 경기를 살린다면서 금리를 더 내릴 작정이다. 만성적인 자금 초과수요로 고금리체제에 젖어왔던 우리 경제의 체질이 완전히 달라지고 있다. 이처럼 사상초유의 초저금리가 갑자기 몰아닥친 탓에 각 경제주체들이 우왕좌왕하고 있다. 전세살이 30대 샐러리맨들은 ‘뛰는 집값을 따라갈 수 있을 만큼의 목돈을 마련할 수 있는 금융상품’이 도무지 보이지 않고 계산을 해보면 내집 마련의 시기도 까마득하다. 그동안 힘들게 모은 돈과 퇴직금을 은행에 맡겨 이자로 먹고살아온 사람들은 대부분 생계비마저 걱정해야 할 지경이 됐다. 그러나 한빛은행 김인응 재테크팀장은 “자신의 처지에 맞는 금융기관 및 금융상품의 범위를 넓히면 금리 1%포인트 정도의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우선 똑같은 목돈마련 상품이더라도 우대금리를 적용하거나 이자소득에 대한 세금혜택이 있는 상품을 찾아 금리 더하기 알파의 효과를 충분히 활용하라는 게 그의 권유이다. 또 똑같은 은행예금에 가입하더라도 인터넷뱅킹을 활용하는 게 은행창구에 직접 찾아가는 것보다 유리하다. 이렇게 하면 은행이 창구유지에 들어가는 비용을 덜어주는 것으로 여겨 이자를 좀더 준다. 여기에 투신이나 신용금고, 조합 등 2금융권의 저과세 금융상품들도 최대한 찾아보고 금리를 서로 비교해서 선택하도록 한다. 물론 예금자보호법 적용 등 원리금보장 장치의 여부와 그 한도를 잘 살펴야 한다. 경제주체 우왕좌왕… 대출 갈아타기 필요
목돈을 굴려야 하는 경우에는 “주식투자에 눈돌릴 시기”라는 게 재테크전문가들의 조언이다. 김인응 팀장은 “현재 주가수준이 저평가되어 있는데다 금리하락에 따른 시중의 풍부한 유동성을 감안하면 주식시장의 전망은 밟다”면서 목돈의 일정부분을 직접 주식에 투자하거나 주식투자 간접금융상품으로 편입시키도록 권유했다. 요즘은 각 은행에서도 주식형 신노후연금신탁 등 간접주식투자상품의 판매가 활기를 띠고 있다.
금리하락에 대해서는 저축자뿐 아니라 은행에서 이미 돈을 꾼 사람들도 발빠르게 대응해야 한다. 이미 돈을 빌렸는데 대출금리가 더 떨어져 배만 아프다며 ‘강건너 불구경거리’쯤으로 생각하면 바보취급을 받는다. 종전의 높은 금리에서 새로운 낮은 금리로 전환하는 이른바 ‘대출 갈아타기’가 필요하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돈을 빌려준 은행들도 속으로 웃으며 그냥 내버려둔다.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 해당은행 창구에 찾아가 요청을 하면 대출금리 조정이 가능하다.
지금의 저금리추세는 정부와 통화당국이 의도적으로 만든 결과이다. 지난 6월 말 현재 총통화(M2)는 431조7천억원(평잔기준)으로, 지난해 말보다 50조6천억원이나 늘었다. 외환위기가 닥친 지난 97년 말(203조5천억원)과 견주면 총통화는 무려 112%나 늘었다. 한마디로 돈을 엄청나게 풀어 의도적으로 금리를 끌어내렸다. 이는 기업에 금융비용 부담을 가볍게 함으로써 투자를 활성화시키고, 개인들도 씀씀이를 늘리도록 하자는 의도가 깔려 있다.
그런데 이런 정책의도가 아직까지는 잘 먹혀들지 않고 있다. 금리가 계속 떨어지고 있는 가운데서도 기업들의 설비투자나 가계소비가 늘기는커녕 오히려 떨어지는 추세이다. 올해 2분기 설비투자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7% 줄었고 도소매판매 증가율도 4.3%로 뚝 떨어졌다. 거꾸로 금리인하에 따른 부작용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시중에 풀린 돈이 주식시장이나 대출시장으로 흐르지 않고 은행의 수시입출금식예금(CDMA), 투신사의 머니마켓펀드(MMF) 등 단기상품에 머무르면서 머니게임의 판돈으로 전락하고 있다. 일부 돈이 실물로 흘러들어가긴 하지만 전체 경제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수도권 일부지역에서 부동산 투기양상이 나타나고 골프회원권 시세가 올라가는 정도이다. 성장동력 재구축에 필요한 자본재 수입은 주는 대신 고가 사치품의 수입은 크게 늘었다.
이런 추세가 지속되면 최악의 시나리오는 두 가지이다. 물가는 오르는데 경기는 계속 바닥을 기어 스태그플레이션에 접어들거나, 또다른 가능성은 저금리정책이 경기부양 대신 경기침체를 가속화하는 ‘유동성 함정’(liqudity trap)에 빠지는 것이다. 유동성 함정이란, 통화당국이 화폐공급을 확대하거나 정책금리를 내리더라도 화폐수요가 마치 어떤 블랙홀에 빠진 듯 시중금리는 더 떨어지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즉 금리정책이 경기에 아무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게 되는 상태로, 일본이 온갖 정책수단을 다 동원해봐도 장기복합불황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 함정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성공회대 유철규 교수(경제학)는 현재 경제흐름을 이렇게 진단한다. “기업과 개인 모두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기업들은 경기가 실제로 좋아지는 모습을 보여야 투자를 하겠다는 자세이다. 그렇지만 아무도 투자하지 않으니까 실제로 경기는 좋아질 수 없다. 이 상태에선 본원통화를 아무리 늘려도 돈이 금융권에서만 맴돌며 신용창출이 제대로 되지 않아 금융과 실물간 괴리를 좁힐 수 없다.”
유동성 함정·스태그플레이션 오는가
그러나 한국은행은 유동성 함정이나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지는 시나리오를 기우로 보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7월 초에 콜금리를 내린 뒤 은행들이 수신경쟁 때문에 당장 반응을 보이지 않다가 최근 잇달아 여수신금리를 내리고 있고 7월에 은행 민간대출도 13조원이나 느는 등 금리경로를 통한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면서 “이것이 실물경기의 호전으로 이어지는 데는 보통 6개월에서 1년 반가량 시차가 있기 때문에 금리인하 효과가 서서히 가시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금 기다려보자는 얘기이다.
박순빈 기자 sbpark@hani.co.kr

사진/ 최근의 저금리 추세는 정부와 통화당국이 만들었다. 콜금리 인하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모습.(김종수 기자)
정부가 기대한 대형 선도은행의 기능은 그대로 현실화했다. 국민·주택은행이 정기예금과 주력상품의 수신금리를 8월1일부터 0.5%포인트가량 내리겠다고 선언하자, 곧바로 농협과 우체국에 이어 다른 시중은행들도 줄줄이 따라나섰다. 적게는 0.1%포인트에서 최고 0.6%포인트씩 수신금리를 내렸다. 이에 따라 8월1일 이후 은행 정기예금 금리가 사상 처음으로 연 4%대까지 주저앉았고, 대출금리도 7%대로 내려왔다. 든든한 은행에, 예금 지급이 확실하게 보장된 금융상품에 돈을 넣으려면 이자가 형편없는 지경에 이른 셈이다. 얼마나 심각해졌는지는 쉽게 계산해볼 수 있다. 현금 1억원을 은행 정기예금에 넣고 달마다 이자를 찾아간다면, 세금을 빼고 고작 33만∼39만원 정도이다. 1년만기 정기예금도 연 5%선 안팎이다. 올해 7월 말 현재 물가상승률이 연 5%이므로, 이자에 붙는 세금(16.5%)을 빼면 실질금리는 마이너스이다. 즉, 1억원을 은행에 맡겨두고 1년 뒤에 찾아 물건을 사려고 하면 지금 1억원어치 물건을 사는 것보다 손해를 보는 격이다. 금리는 돈의 가격이다. 상품의 가격이 수요과 공급의 균형점에서 결정되듯 돈의 가격인 금리도 돈을 쓰려는 사람이 많으면 오르고, 시중에 돈이 넘치면 떨어지게 마련이다. 실제로 올 들어서 금리는 곤두박질치고 있다. 금융기관끼리의 하루짜리 콜금리가 지난해 말 연 6.01%에서 올해 7월 말 현재 연 4.75%로, 20.8% 떨어졌다. 기업들의 체감금리지표로 볼 수 있는 3년만기 회사채 유통수익률은 같은 기간에 8.13%에서 연 6.89%로 떨어졌다. 역시 백분율로 계산하면 두자릿수(15.2%) 하락이다. 일반가계에서 느끼는 금리하락폭도 마찬가지이다. 은행의 월평균 수신금리가 지난해 12월 5.89%이던 것이 올해 7월에는 4.95%로 내려 7개월 만에 15.9%의 낙폭을 보이고 있다. 장단기 금리 모두 너무 빠르게, 또 아주 깊은 낙폭을 보이며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부와 통화당국은 경기를 살린다면서 금리를 더 내릴 작정이다. 만성적인 자금 초과수요로 고금리체제에 젖어왔던 우리 경제의 체질이 완전히 달라지고 있다. 이처럼 사상초유의 초저금리가 갑자기 몰아닥친 탓에 각 경제주체들이 우왕좌왕하고 있다. 전세살이 30대 샐러리맨들은 ‘뛰는 집값을 따라갈 수 있을 만큼의 목돈을 마련할 수 있는 금융상품’이 도무지 보이지 않고 계산을 해보면 내집 마련의 시기도 까마득하다. 그동안 힘들게 모은 돈과 퇴직금을 은행에 맡겨 이자로 먹고살아온 사람들은 대부분 생계비마저 걱정해야 할 지경이 됐다. 그러나 한빛은행 김인응 재테크팀장은 “자신의 처지에 맞는 금융기관 및 금융상품의 범위를 넓히면 금리 1%포인트 정도의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우선 똑같은 목돈마련 상품이더라도 우대금리를 적용하거나 이자소득에 대한 세금혜택이 있는 상품을 찾아 금리 더하기 알파의 효과를 충분히 활용하라는 게 그의 권유이다. 또 똑같은 은행예금에 가입하더라도 인터넷뱅킹을 활용하는 게 은행창구에 직접 찾아가는 것보다 유리하다. 이렇게 하면 은행이 창구유지에 들어가는 비용을 덜어주는 것으로 여겨 이자를 좀더 준다. 여기에 투신이나 신용금고, 조합 등 2금융권의 저과세 금융상품들도 최대한 찾아보고 금리를 서로 비교해서 선택하도록 한다. 물론 예금자보호법 적용 등 원리금보장 장치의 여부와 그 한도를 잘 살펴야 한다. 경제주체 우왕좌왕… 대출 갈아타기 필요

사진/ 기업들은 금리가 떨어져도 설비투자를 주저하고 있다. 여천공단의 한 석유화학공장의 시설 모습.

사진/ 수신금리 인하방침을 공식화한 김정태 국민·주택 통합은행장 후보.(강창광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