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 전 명예회장 지분 매각 입장 번복… 금융시장 불신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현대 정주영 전 명예회장이 현대건설 유동성 해소용으로 내놓은 현대자동차 지분 6.1%의 향방에 금융계 안팎의 눈길이 쏠려 있다.
정 전 명예회장의 지분 매각이 현대차의 계열분리를 위한 필수사항인데다 이 정도 지분율은 경영권에도 상당한 정도의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의미있는’ 수준이란 점에서 현대사태가 다소 진정 국면에 접어든 이후 최대 관심사로 떠올라 있다. 이런 가운데 현대쪽이 정 전 명예회장의 지분을 채권단에 넘겨 매각을 의뢰키로 했다가 자체적으로 제3자에게 매각하겠다며 갑자기 애초 방침을 바꿔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는 현대가 또다시 시장에서 불신을 받고 시장 전체를 불안케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어린 전망으로 이어지고 있다.
현대차 지분 6.1% 매각은 현대자동차의 앞날은 물론 현대그룹, 나아가 재계 전체의 판도에까지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는 중대 사안이다. 현대는 지난 98년 83개였던 계열사를 올해까지 35개로 줄였다. 지난 8월13일 발표한 계열분리안에 따라 자동차 부문 8개사와 인천제철 부문 2개사가 떨어져나가면 25개의 계열사만 그룹에 남게 된다. 현대자동차에 이어 하반기에도 잇따라 계열분리가 이뤄져 연말에는 21개로 축소될 전망이다.
지분 6.1% “채권단에 넘기지 않겠다”
현대차 지분 매각이 계획대로 이뤄져 현대자동차와 인천제철이 계열에서 떨어져나가면 현대의 자산 규모는 1위에서 2위인 삼성(2000년 3월말 현재 자산 67조3840억원)과 자리바꿈을 하게 된다. 인천제철과 삼표제작소는 이미 계열분리 신청을 낸 상태이며 자동차소그룹에 편입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자동차에 이어 중공업까지 분리될 경우 현대는 LG(자산 47조6120억원)와 2위 자리를 놓고 각축을 벌이게 될 정도로 재계 판도에 영향을 끼친다. 자동차 소그룹은 자산 28조5천억원(인천제철 부문 2조4천억원 제외)으로 재계서열 5위에 자리매김될 전망이다. 계열분리가 현대차 개별회사에는 심기일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정몽구·몽헌 형제간 경영권 분쟁 이후 계속돼온 ‘불안정한 동거’ 상태가 해소된다는 점에서 조직 분위기를 추스를 수 있을 것이란 점에서다. 외형적 변화도 만만치 않다. 계열분리할 경우 현대차 소그룹은 동일기업집단에서 분리되는 셈이어서 새로운 여신한도가 설정돼 현대그룹뿐 아니라 현대차도 자금 운용면에서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된다. 물론 새로운 제약도 생겨난다. 올해 중 계열분리가 완료돼 내년 4월1일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집단 지정 때 대규모 기업집단으로 지정되면 출자총액 제한 및 소그룹 내 계열사간 상호 빚보증이 금지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계열편입 및 분리 등에 관해 공정위의 관리를 받게돼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방계회사들이 양성화되고 지금보다 계열 수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있다. 그럼에도 현대차 소그룹은 힘의 집중으로 경쟁력을 갖추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동안 남는 이익을 출자 등 형태로 다른 계열사들을 지원해온 대신 기업 핵심 부문에 재투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점 때문에 계열분리는 현대쪽이 스스로 알아서 추진한 것이었는데도 현대건설 유동성 위기를 둘러싼 ‘밀고 당기기’ 과정에서 마치 정부가 현대쪽을 압박, 계열분리 및 현대그룹 해체를 강제하는 듯한 모양새를 띠기도 했다. 공정위와 외화은행 시각차… 의혹 확대재생산
공정위를 비롯한 정부 당국은 계열분리에 따르는 분명한 이점이 있는 만큼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이 아닌 진정한 계열분리가 이뤄져야 한다며 엄격한 잣대를 내세웠다. 이 과정에서 채권단을 대표하는 외환은행이 정부와 다른 목소리를 내 의구심을 자아냈다. 이는 현대차 계열분리를 충족시키는 자동차 지분매각 문제에 쏠린 관심이 그만큼 크며 사안 자체가 미묘하다는 점을 반영하고 있다.
현대 구조조정위원회가 현대건설 자구 방안과 함께 계열분리안을 발표한 직후 채권단에선 정주영 전 명예회장 지분을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이나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회장 등에게 매각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 제기됐다. 반면, 공정위는 정세영 회장 계열의 경우 제도적으로 현대에서 분리된 그룹이기 때문에 이 지분을 가져가는 것은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다르게 해석했다.
외환은행 관계자는 “지난 13일 채권단 입장을 발표할 때 이 지분을 제3자에게 매각한다고 밝힌 것은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이나 그 특수관계인을 배제한다는 뜻”이라며 “계열분리 요건만 맞는다면 다른 사람은 괜찮은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이는 일부 언론이 현대쪽에 현대차 지분 매각을 ‘위임’했다고 보도하는 빌미를 제공했으며 심지어는 현대와 채권단간에 ‘이면계약’을 맺은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불러일으켰다.
외환은행 관계자는 이에 대해 “매각은 어디까지나 채권단이 주도하며 다만 현대가 정보 제공 차원에서 인수자를 추천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해명했다. 외환은행 다른 관계자는 “현대가 해외 투자자와 접촉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도 했다.
공정위와 외환은행간에 미묘한 시각차가 나타나 의구심이 일고 있던 터에 8월18일 오후 현대가 돌연 기존 입장을 번복하는 태도를 보여 사태는 또다시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현대는 이날 자동차 계열분리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정주영 전 명예회장의 지분 9.1% 가운데 6.1%를 (채권단에 맡기지 않고 현대가 직접) 국내외 기관과 펀드 등에 매각하고 매각 대금을 현대건설 유동성 지원에 쓸 방침이라고 밝혔다. 현대는 애초 이 지분을 채권단에 넘겨 채권단이 연내 제3자에게 매각할 예정이었으나 ‘채권단과 협의를 거쳐’ 이같이 방침을 수정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외환은행 이연수 부행장은 이날 밤 전화통화에서 “현대쪽으로부터 아무런 통보를 받은 바 없으며 기존 방침대로 채권단이 정주영 전 명예회장의 지분을 넘겨받아 제3자에 매각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채권단과 협의를 거쳤다는 현대쪽 설명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외환은행쪽의 이같은 주장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현대 관계자는 “애초 매각방식이 투명하지 못하다는 지적이 있고 시일이 오래 걸린다는 점을 감안해 직접 시장에 내다파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며 “가급적 국내외 시장에 충격을 주지 않는 방향으로 투명하고 공정하게 매각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현대증권을 매각 주간사로 삼아 이른 시일 안에 매수자를 선정, 즉시 매각할 계획이며 이런 방안을 공정위와 금감위에도 제출할 계획”이란 설명도 덧붙였다. 외환은행과 현대가 엇나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금융당국 내부에서 감지된 분위기로도 일이 뭔가 꼬이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현대쪽이 자동차 지분 매각 방침을 바꾼데 대해) 잘 생각해봐라. 그게 무슨 뜻인지…. 현대가 결국 또 시장에서 불신받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현대쪽이 갑자기 태도를 바꾼 배경은 아직 분명하지 않다. 어쩌면 현대쪽의 설명대로 현대가 직접 시장에 내다파는 게 바람직한 방법일 수도 있다. 금감원 내에서도 일부 이런 해석이 있다. 금감원의 한 임원은 지난 19일 “(현대로부터) 아직 공식 통보를 받지 못했으며 채권단과 현대가 협의해 결정하게 될 것”이라면서도 “사실 채권단이 현대차 지분을 넘겨받으면 부담되는 측면이 있어 현대가 직접 매각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채권단이 정 전 명예회장의 지분을 넘겨받은 뒤 매각작업이 원활치 못할 경우 현대건설에 지원해주는 유동성만큼 자금이 묶이는 결과가 될 것이란 지적이다.
현대의 매각 일정 꼬일 수도 있다
문제는 현대의 이런 태도변화가 금융시장에 어떻게 비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현대그룹 구조조정의 핵심으로 꼽히는 자동차 계열분리에 관한 방침을 또다시 번복한 것으로 불신을 받을 소지가 다분하다는 지적이다. 현대쪽의 설명대로 시장에 직접 내다파는 일이 수월할지도 미지수다. 매각작업이 원활치 않을 경우 8월중 자동차를 계열에서 분리한다는 애초 일정도 지켜지기 어려운 실정이어서 현대에 대한 불신감이 한층 높아질 수도 있다. 더욱이 외환은행이 처음엔 자동차 지분 매각 작업을 주도적으로 이끌겠다고 했다가 “(현대와)협의를 해보고나서…”라며 한발 물러서는 듯한 모습을 보인 것도 석연치 않은 대목이다.
김영배 기자kimyb@hani.co.kr

(사진/정주영 전 명예회장의 지분이 경영분리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가운데 현대차는 독자경영의 모양을 갖추려고 한다.사진은 지난 5원 다임러-크라이슬러와의 전략적 제휴모습)
현대차 지분 매각이 계획대로 이뤄져 현대자동차와 인천제철이 계열에서 떨어져나가면 현대의 자산 규모는 1위에서 2위인 삼성(2000년 3월말 현재 자산 67조3840억원)과 자리바꿈을 하게 된다. 인천제철과 삼표제작소는 이미 계열분리 신청을 낸 상태이며 자동차소그룹에 편입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자동차에 이어 중공업까지 분리될 경우 현대는 LG(자산 47조6120억원)와 2위 자리를 놓고 각축을 벌이게 될 정도로 재계 판도에 영향을 끼친다. 자동차 소그룹은 자산 28조5천억원(인천제철 부문 2조4천억원 제외)으로 재계서열 5위에 자리매김될 전망이다. 계열분리가 현대차 개별회사에는 심기일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정몽구·몽헌 형제간 경영권 분쟁 이후 계속돼온 ‘불안정한 동거’ 상태가 해소된다는 점에서 조직 분위기를 추스를 수 있을 것이란 점에서다. 외형적 변화도 만만치 않다. 계열분리할 경우 현대차 소그룹은 동일기업집단에서 분리되는 셈이어서 새로운 여신한도가 설정돼 현대그룹뿐 아니라 현대차도 자금 운용면에서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된다. 물론 새로운 제약도 생겨난다. 올해 중 계열분리가 완료돼 내년 4월1일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집단 지정 때 대규모 기업집단으로 지정되면 출자총액 제한 및 소그룹 내 계열사간 상호 빚보증이 금지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계열편입 및 분리 등에 관해 공정위의 관리를 받게돼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방계회사들이 양성화되고 지금보다 계열 수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있다. 그럼에도 현대차 소그룹은 힘의 집중으로 경쟁력을 갖추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동안 남는 이익을 출자 등 형태로 다른 계열사들을 지원해온 대신 기업 핵심 부문에 재투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점 때문에 계열분리는 현대쪽이 스스로 알아서 추진한 것이었는데도 현대건설 유동성 위기를 둘러싼 ‘밀고 당기기’ 과정에서 마치 정부가 현대쪽을 압박, 계열분리 및 현대그룹 해체를 강제하는 듯한 모양새를 띠기도 했다. 공정위와 외화은행 시각차… 의혹 확대재생산

(사진/현대자동차 지분매각을 놓고 공정위와 채권단의 시각차가 드러나고 있다.이남기 공정거래위원장은 현대의 진정한 계열분리를 촉구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