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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닷컴을 뒤덮는 ‘굴뚝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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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07-1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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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들 자본력으로 인터넷 산업 점령 태세… 틈새 노리던 벤처기업은 초긴장 상태 역력

비지니스에 뛰어들고 있다. 굴뚝산업계 대표들이 대거 참여한 e-CEO협의회)
Brick(벽돌, 이른바 굴뚝산업)들의 Click(인터넷 산업)으로의 진출이 활발해지고 있다. Blick으로 대표되는 국내 대기업들이 앞다퉈 닷컴 비즈니스로 상징되는 Click 산업에 물량공세를 펼치고 있는 것이다.

국내 대기업은 앞으로 ‘Brick&Click’이 시장 경제를 이끌어 나갈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오프라인에서의 강점을 온라인으로 이끌어 상승효과(Synergy)를 도모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미 삼성, LG, SK, 코오롱 등 대기업들이 인터넷 비즈니스에 대한 투자를 공식 선언한 상태이다. 탄탄한 자금력을 기반으로 인터넷 비즈니스를 선점해 가겠다는 것이 이들 기업들의 공통된 각오들이다.

올해 초부터 방향전환 모색해 융단폭격


서울 강남구 테헤란밸리 닷컴기업들은 이러한 대기업의 움직임에 초긴장 상태이다. 대기업이 자본력을 앞세워 치고 들어오면 더이상 버틸 여지가 없다는 반응들이다. 대기업들이 기동성과 전문성을 요하는 닷컴산업 영역까지 무차별 융탄폭격을 가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다. 닷컴기업들을 중심으로 최근 불어닥치고 있는 자금 악화 상황도 이러한 불안감을 키우는 하나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대기업의 인터넷 비즈니스로의 방향전환은 올 초에 본격화했다. 그동안 물밑에서 진행되던 작업들이 최근 들어 서서히 수면 위로 부상하기 시작한 것이다.

주회사로 탈바꿈할 계획이다. 쇼핑몰을 운영하는 삼설물산 인터넷 사업부 직원들)
삼성그룹은 디지털 경제를 총괄하는 기구로 ‘e삼성’을 설립했다. e삼성은 전체적인 밑그림을 그려가며 관련 인터넷 비즈니스 업체간 정리작업을 수행하는 기구의 역할을 담당한다.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해 자본금 1천억원 규모인 ‘e삼성 인터내셔널’도 설립했다. e삼성 인터내셔널은 국내외를 연결하면서 시너지 효과를 창출해 내는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재 일본, 미국, 중국, 싱가로프 등에 e삼성 지부가 만들어져 있다.

e삼성은 올해 안으로 10여개의 닷컴기업을 만들 계획이다. 이미 ‘오픈 타이드’, ‘올앳’, ‘이누카’, ‘시큐아이닷컴’ 등을 설립한 바 있다. 오픈 타이드는 웹 에이전시 분야를 담당하며, 이누카는 개인화 서비스, 그리고 시큐아이닷컴은 중국 내 정보보안 사업 진출을 위한 목적이다.

삼성은 e삼성과 함께 삼성물산, 삼성SDS 등 계열사별로 인터넷 비즈니스의 적극적인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의료포털인 캐어캠프닷컴과 사이버아파트 전문 씨브이네트 등에 지난해부터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삼성물산은 2005년까지 100여개 투자회사를 거느리는 인터넷 전문 지주회사로 탈바꿈한다는 계획도 가지고 있다.

e삼성을 전두지휘하는 사람은 이건희 회장의 장남인 재용(33)씨다. 재용씨는 e삼성에 대한 60%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재용씨를 중심으로 현재 삼성그룹의 인터넷 비즈니스의 전략을 수립하고 실무적인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인력들은 대부분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 출신들이다. 신응환 이사를 비롯해 구조조정본부 인력들이 새로 만들어지는 닷컴기업 곳곳에 포진해 있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가신(家臣)들이 디지털 경제에 대해 전체적인 실무작업을 하나하나씩 구축해가고 있는 중”이라며 “어느 정도 그림이 마무리되면 재용씨를 ‘주인’으로 옹립할 계획인 것 같다”고 말한다.

삼성·SK, 핵심인물이 직접 사업 챙겨

SK그룹은 최근 M-Commerce(무선전자상거래)를 강화하기 위해 ‘와이더댄닷컴’(www.widerthan.com)이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SKT 출신 인력들이 중심이다. 와이더댄닷컴 사장은 SK텔레콤의 서진우 상무가 맡고 있다. 이를 통해 경쟁 우위에 있는 SK텔레콤의 무선인터넷 분야에 대한 시장을 선점한다는 계획이다. 와이더댄닷컴은 SK(주)의 최태원 회장이 직접 관장하고 있는 회사라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SK(주)는 이와 함께 사이버 LMC(Local Multimedia Center)가 중심이 돼 올해 안으로 1천여억원을 투자해 100여개 OK시리즈를 담당할 닷컴기업을 설립한다는 전략이다. 풍부한 콘텐츠를 확보한 뒤 이를 SK텔레콤의 엔탑(nTop)과 연계시켜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SK주유소를 통한 인터넷 비즈니스도 활기를 띨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중고차 매매 중개 서비스인 엔카(www.encar.com)를 얼마 전 시작했다. SK의 한 관계자는 “온라인에 웹이라는 연결망이 있다면 우리는 오프라인의 강력한 네트워크인 주유소를 전국에 구축해 놓고 있다”고 강조했다. 즉 온라인의 웹과 오프라인의 SK주유소를 통한 ‘Brick&Click’ 모델을 지향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LG그룹 구조조정본부는 얼마 전 2003년까지 지주회사 체제로 지배구조를 전환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출자회사인 지주회사와 사업자회사로 구조를 재편하고 지배주주는 지주회사 지분만 보유키로 한 것이다. 1단계로 2001년까지 LG화학과 LG전자를 중심으로 관련업종을 계열화하고 지주회사 기능을 담당할 이들 2개 회사에 대한 지배주주의 지분율을 20∼25%까지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 LG그룹은 그동안 정보 인프라 구축에 힘을 쏟아왔다. LG-EDS, 상사, 경영개발원 인화원을 중심으로 계열사 직원들에게 인터넷 비즈니스에 대한 재교육을 벌이고 있다. 또한 혼자 힘으로는 역부족이라는 판단아래 기존 닷컴기업에 지분을 출자하는 등 ‘동반자 구축’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코오롱그룹은 인터넷 비즈니스를 철저하게 양분시키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우선 기존 오프라인 기업의 온라인화 작업과 신규 인터넷 비즈니스에 대한 접근을 분리, 운영하고 있다. 이웅열 회장은 “기존의 우리 산업을 온라인으로 이끌어 더욱 경쟁력 있게 키워가는 것이 그룹 인터넷 비즈니스의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늘 강조하고 있다.

코오롱은 이러한 전략에 따라 올 5월까지 자신들의 온라인 작업에 필요한 업체들에 약 180억원을 투자한 상태이다. 코오롱상사가 넥스프리에, 코오롱건설이 초고속인터넷 서비스업체인 테크게이트에 투자를 했고 나머지 계열사들도 여러 닷컴기업들과 제휴를 맺고 있다.

코오롱은 신규 비즈니스 진출에도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특히 아시아, 태평양권을 겨냥한 기업간 거래(B2B)와 무선인터넷에 주목하고 있다. 이를 위해 설립된 회사가 아이 퍼시픽 파트너스(I Pacific Partners)이다. 지난 5월 자본금 100억원 규모로 만들어진 IPP는 코오롱그룹 회장 비서실 출신인 이진용 사장이 키를 잡고 있다.

이 사장은 “현재 중국의 통신장비업체인 중흥통신과 협의중이며 홍콩의 경우 왑헤드(WAP Head)와 한국 내 조인트 벤처를 설립하기로 합의했다”며 “앞으로 아시아 각국에 협력업체를 구성해 시장진출을 서두를 것”이라고 말했다. 아시아 지역의 현지법인과 파트너스를 연속적으로 구축, 아시아·태평양에 강력한 네트워크를 마련한다는 전략이다.

IPP는 국내 벤처업계에 대한 투자도 진행하고 있다. 리눅스업체인 팜팜테크, 무선게임업체인 CECraft, 그리고 무선복합단말기 제조업체인 HNT 등에 투자했다. IPP는 그러나 투자의 원칙을 2, 3대 주주에 머무는 것에 한정하고 대주주가 되는 것은 피하고 있다. 이를 두고 이 사장은 “경영권을 침해하지 않겠다는 목적”이라며 “IPP의 투자는 그들과 함께 협력하는 것이 목적이며 우리 것으로 만들겠다는 의도는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대기업들의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테헤란밸리 닷컴 CEO들은 “대기업의 인터넷 사업 진출 자체를 두고 뭐라 말할 수는 없지만 현재의 방향성을 보면 모든 것을 자신들이 다하겠다는 의도가 녹아 있는 것 같다”고 비판하고 있다. 겉으로는 벤처기업과 손을 잡고 함께 시장을 키워갈 것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속으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이들의 공통적인 시각이다. 삼성이 최근 웹에이전시 전문업체인 오픈 타이드를 설립한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기존 웹에이전시 벤처기업들이 삼성의 이같은 움직임에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지난해 17억원의 매출을 올린 홍익 인터넷의 노상범 사장은 “대기업이 웹에이전시를 거느리고 있는 만큼 계열사 물량을 독점하는 것은 뻔한 이치”라며 “그룹 내 물량 독점을 넘어 오프라인의 인맥 등을 동원한 대형 프로젝트 선점 등으로 나아가면 기존 중소업체들의 도산은 막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대기업이 자본만을 앞세운 문어발식 경영을 정보기술(IT)에까지 연장하고 있으며 삼성의 진출에 따라 다른 대기업들도 진출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사태가 심각하다고 하소연했다.

문어발식 경영으로 벤처의 영역 잠식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이금룡 회장도 “대기업이 인터넷 비즈니스로 뻗어나가는 것은 시대적인 흐름”이라고 전제하면서도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틈 타 전문적인 분야까지 모두 선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즉 대기업이든 벤처기업이든 인터넷 분야의 발전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모습이 중요한데 벤처기업의 기동성과 전문성을 요하는 영역까지 치고 들어오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는 설명이다.

대기업들의 인터넷 비즈니스 전략은 아직까지 큰 물줄기만 나와 있는 상태이다. 조만간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대기업과 벤처기업의 마찰이 상당부분 빚어질 수 있다는 것이 업계의 판단이다.

정종오/ 아이뉴스24 인터넷팀 기자ikokid@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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