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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허걱! 이거 전기요금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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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8-0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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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진제 강화로 에어컨 쓰면 10만원 넘기 일쑤… 한전 민영화 대비 수익성 높이려는 의도인가

사진/ 전력요금 누진제는 민영화와 무관하지 않다. 한전 노조의 민영화 반대시위.(박승화 기자)
푹푹 찌는 불볕더위에 전력소비량이 연일 사상 최대치를 깨던 7월28일, 주부 김영희(36·서울시 동대문구 이문동)씨는 우편함에 든 전기요금 고지서를 받아들고 화들짝 놀랐다. 11만6130원. 이거 전기요금 맞아? 뭔가 잘못된 게 아닐까. 전달에 낸 전기요금 3만9820원의 3배나 더 많은 고지서가 날아왔으니 놀란 게 당연했다. 찬찬히 들여다봤지만 주소지는 분명 자신의 집으로 돼 있었다. 지난 17일께 한국전력에서 검침해 간 사용량은 480kw/h(시간)로, 전달 사용량 296kw/h보다 184kw/h가 늘었을 뿐이다. 사용량은 60% 늘었는데 요금은 3배나 더 나온 이유를 도대체 알 수 없었다.

올 여름 평균 7만원선 각오하라

아뿔싸. 그거였구나. 스치듯 뭔가 생각난 그는 한국전력에서 엊그제 보낸 안내장을 서랍에서 꺼내 꼼꼼히 읽어보았다. ‘에어컨 좀 돌렸더니 전기요금이 3배나 나왔어요!’란 제목을 달고 있는 안내장은 주택용 전력요금의 경우 한달 300kw/h 이상 쓰면 누진제가 적용돼 요금이 껑충 뛰게 되니 조심하라는 내용이었다. 김씨의 눈은 저도 모르게 방 한쪽에 놓인 에어컨에 가 있었다. 7월 들어 에어컨을 너무 많이 틀었나. 에어컨을 당장 껐지만 속은 것도 같고 울화도 치미는 게 김씨의 마음은 영 편치 않았다.


한국전력 홈페이지(www.kepco.co.kr) ‘고객의 소리’ 방에는 최근 전기요금 고지서를 받아본 뒤 김씨처럼 낭패를 겪은 사람들의 분노섞인 항의성 글이 빗발치듯 올라오고 있다. “가정용 누진요금은 수탈적이다”, “누진제 무서워서 에어컨은 틀지도 못하고…”, “300kw/h의 근거를 대라”, “봉이 김선달보다 더한 한전” 등. 사실 김씨는 황당한 경험을 조금 일찍 한 편이다. 무더위가 본격화된 7월 검침분에 대한 고지서가 날아오는 8월이면 에어컨을 가진 수많은 가정마다 엄청나게 부과된 요금에 경악할 것이다. 물론 어처구니없을 때 터져나오는 한숨이 뒤섞인 채로. 그렇다면 올 여름 가정집마다 전력요금 대란에 떨게 만든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란 무엇인가.

한국전력은 지난해 11월부터 전기요금구조를 바꿔 주택용에 7단계 누진제를 적용하고 있다. 가정용 전기요금은 기본요금에다 전력량요금을 합한 뒤 여기에 10%의 부가세를 덧붙여 산정하는데 기본요금은 가구당 390원에서 1980원까지 6단계다. 문제가 된 건 전력량요금이다. 전력량요금은 사용량에 따라 kw/h당 34.5원에서 639.4원까지 7단계로 나누고 있으며 특히 한달 300kw/h 이상 넘으면 누진폭이 크게 늘어나게 된다(표 참조). 전기를 많이 쓰는 집은 상대적으로 적게 쓰는 집에 비해 무려 18.5배나 비싼 요금을 물게 되는 셈이다. 이에 대해 한전 요금제도팀은 “전기 절약을 강화하기 위해 누진제를 개편하게 됐다”며 “300kw/h 이상 쓰는 집에는 에너지를 절약하지 않은 데 따른 누진요금을 크게 높인 것”이라고 말했다. 이른바 ‘벌칙성 요금’을 물리고 있다는 얘기다. 한전은 또 “기업체에서 쓰는 산업용과 191kw/h 이하를 쓰는 가정(전체 가구의 60%)은 기업 경쟁력과 서민보호를 위해 원가에도 못 미치는 요금으로 공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꼭 부유층이 아니라도 가정마다 냉장고, 전기밥솥, TV, 컴퓨터, 세탁기 등 가전기기 보급이 확대됐다는 점을 감안할 때 여름철에 에어컨을 켜면 300kw/h를 훌쩍 넘기기 십상이다. 한국전력 노동조합은 평균적으로 달마다 2만5천원가량 내던 집이 주택용 누진제에 따라 올 여름에 7만원선을 내야 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물론 기름 한 방울 안 나오는 우리나라에서 전기절약운동에 딴죽을 걸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진제는 에어컨 등 비싼 가전기기를 사들여놓고 사용하지 말라는 것일까.

사진/ 한국전력이 보낸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 안내장.
절약 장려냐, 비싼 기업 만들기냐

지난해 말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를 도입할 때 산업자원부는 한달에 300kw/h 넘게 쓰는 가정은 전체 가구의 6.7%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에어컨 보급이 급속히 늘면서 지난해 8월 300kw/h를 초과한 집은 257만 가구로 전체 가구의 15.6%나 됐다. 한전은 또 지난해 300kw/h 이상 가구는 전체 가구의 8.8%에 불과하고 나머지 91.2%는 전력요금에 대한 불평이 없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열두달을 평균한 것일 뿐 전력수요가 집중되는 여름철에는, 지난해 8월 257만 가구에서 보이듯, 300kw/h 이상 가정이 크게 늘어난다. 게다가 846만대가 보급된 가정용 에어컨 보급률은 36%에 이른다. 한국전력에 따르면 18평형에서 에어컨(소비전력 2kw/h짜리)을 하루 5시간 켤 때 전기사용량은 한달 323kw/h가 나온다. 계절과 상관없이 아파트 가구당 한달 평균 210kw/h를 쓴다는 점을 고려하면, 켜다 마는 정도가 아닌 한 에어컨을 쓰는 집은 300kw/h를 넘을 수밖에 없다.

물론 주택용 누진제는 지난 70년대부터 도입됐다. 그러나 지난해 말 300kw/h 이상 사용량에 대한 누진제를 강화한 데는 한전의 말대로 “전력을 아껴쓰자”는 것 외에 다른 이유는 없는 것일까. 민주노총 오건호 정책부장은 한전의 요금개편은 한전 민영화와 직접 맞물려 있다고 분석한다. 그는 “한국전력을 해외매각하려면 기업가치를 높여줘야 한다”며 “민영화를 위한 전력산업구조개편 법안이 국회를 통과한 뒤 한전이 매각을 쉽게 하기 위해 요금누진제를 기획한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에서 팔리려면 수익성 있는 기업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 한전이 누진제란 편법을 써 요금을 인상했다는 얘기다. 한전 민영화가 벌써부터 소비자들의 부담으로 다가오는 있는 것이다.

한국전력 노동조합도 “한전이 요금인상을 꾀한 건 충분히 예상된, 민영화에 뒤따른 조처”라며 “300kw/h 기준은 전체 요금을 한꺼번에 대폭 인상할 경우 빚어질 국민들의 반발을 의식해 전기절약을 명분으로 많이 쓸수록 왕창 내게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전 노동조합 문용철 정책국장은 “해외매각하든 대기업에 넘기든 전력 민영화를 위해서는 적정 이윤을 보장해줘야 하고 그러려면 요금을 지금보다 40%가량 올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전 민영화에 뛰어들겠다는 해외 투자자들은 정부에 투자보수율(투자수익률)을 회사채금리보다 높은 9∼13%로 보장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 한전 투자보수율은 3∼4%선으로, 해외 또는 민간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 투자보수율 13%를 보장해줄 경우 전기요금은 지금보다 약 40% 인상될 수밖에 없다. 이는 정부가 300kw/h 초과사용량에 대해 누진제요금을 20∼40% 인상한 것과 일치한다. 민영화가 해외자본의 배만 불리고 소비자들한테는 큰 부담을 지우게 되는 꼴이 누진제로 벌써부터 현실화하고 있는 셈이다. 이미 민간에 매각된 엘지파워열병합발전소는 정부가 투자보수율을 12%로 높여주자 올해 초 난방비를 40% 인상했고, 이에 따라 엘지파워로부터 지역난방을 공급받는 안양·평촌지역 주민들이 크게 반발하고 나서기도 했다.

산업자원부 전기위원회도 누진제와 이에 따른 요금인상이 민영화 조처와 무관하지 않다는 점을 내비치고 있다. 산자부 전기소비자보호과쪽은 “한전이 독점체제에서 민영화된 경쟁체제로 바뀌는 마당에 수익성 있는 기업으로 가야 한다”며 “전기요금도 경쟁체제에 맞게 바꿔야 하며, 이렇게 해서 시장에서 수익을 낼 수 있어야 민간이 참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물가당국이 전기요금을 강력하게 억제해온 탓에 국민들이 ‘너무 싼’ 전기에 익숙해져 있지만 이제 민영화로 가는 만큼 ‘비싼’ 전기도 감당해야 한다는 논리다.

검침일 따져 사용량 관리하자

바꿔 말하면 한달 2만∼3만원 하던 전기요금은 잊어버리고 이제 10만원도 넘을 수 있다는 사실을 빨리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누진제로 인한 이번 여름철 전력요금 대란에는 민영화에 따라 전기료 껑충 뛸 때 일어날 국민들의 저항을 미리 차단하고 ‘비싼 전기료’에 익숙해지도록 길들이겠다는 정부의 의도가 숨어있다.

산업자원부는 소비자들의 항의가 빗발치자 300kw/h 기준이 가혹한지 여부를 따져 하반기에 누진율을 재검토하기로 했다. 그러나 에어컨 사용 등으로 전력소비가 급증하는 여름 한철이 지난 뒤에 요금구조를 개편하는 건 눈가리고 아웅하는 격밖에 안 된다. 요금인상 효과는 모두 거두고 난 뒤에 소비자들의 불만을 달래주겠다는 식이다.

그렇다면 당장 가정집마다 누진제에 지혜롭게 대처할 길은 없는 것일까. 물론 아예 에어컨을 안 틀면 되겠지만, 한푼이라도 아끼려면 검침일을 따져 치밀하게 계산해보는 방법도 있다. 전기요금 납부일은 요금 고지서에 나와 있다. 납부일이 25일인 집은 검침일이 1일부터 5일까지이고, 말일인 집은 7일부터 11일까지, 다음달 5일인 집의 검침일은 13일부터 17일까지이다. 또 납부일이 다음달 10일이면 검침일은 19일부터 23일까지, 납부일이 18일인 집은 지난달 말일이 검침일로, 검침날짜에 맞춰 300kw/h를 넘는지 따지면서 사용량을 ‘관리’하면 된다. 산자부 전기소비자보호과 관계자조차 “나도 에어컨을 안 돌리고 차단시켜버렸다”며 “한달 월급으로 10만원이 넘는 전기요금을 어떻게 내냐”고 볼멘소리를 했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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