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 사장님들이 신용카드의 수수료율 인하를 요구하며 나섰다. 지난 10월18일 오후 서울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열린 ‘범외식인 10만인 결의대회’에서 참가자 한 명이 손팻말을 들어 보이고 있다.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목장의 비유를 더 확장시켜보자. 각 가정이 우유를 좋아하지 않는데 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의무적으로 우유를 배달시켜 먹고 있다면 어떨까? 우유 아닌 다른 것을 선택할 수 없는데다, 우윳값 결정에 어떤 영향도 끼칠 수 없는 처지라면 비싸다고 느끼지 않을까? 국내 카드시장이 꼭 이런 모습이다. 음식점 같은 가맹점들은 여신전문금융업법(19조 1항)에 따라 신용카드 결제를 거부할 수 없게 돼 있다. 고객의 요구를 거부하면 처벌을 받는다. 우유(카드) 말고, 주스(현금)를 마실 수 있는 선택권이 사실상 없다. 이를 일부 완화하려고 1만원 미만 매출에 대해선 카드 결제를 거부할 수 있게 하는 방안을 금융위원회에서 추진하다가 소비자에게 불편을 끼친다는 여론에 밀려 무산됐다. 이런 사정을 고려하면, 우윳값(가맹점 수수료)이 비싸다는 아우성을 상식적인 시장논리의 무시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다. 문제가 하나 더 있다. 각 가정의 식구들 취향이 다양해 어떤 사람은 ‘서울목장’ 우유를, 또 어떤 이는 ‘매일목장’이나 ’남양목장’ 우유를 더 좋아하는 경우다. 살림살이를 맡는 주부는 모든 목장에 연락해 따로 배달을 시켜야 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한다. 유명무실한 가맹점 결제 공동망 카드시장에 비유하면 식구들은 소비자(카드 회원)다. 음식점 같은 신용카드 가맹점들은 통상적으로 신한·현대·삼성 등 모든 신용카드사들과 계약을 맺는다. 각각 다른 카드를 들고 있는 고객을 놓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카드사 처지에선 가맹점을 대상으로 수수료를 낮게 제시하는 경쟁을 벌일 필요가 없다. 한 카드사와만 계약을 맺어도 결제되도록 공동망이 구축돼 있지만, 카드사로부터 대금을 받는 데 시일이 오래 걸리고 매출 전표를 전자 방식이 아닌 ‘실물’로 제출해야 하는 가맹점 쪽의 불편 탓에 유명무실한 상태다. 가맹점 공동 이용망 활성화는 카드업계의 기득권 유지에 불리하다. 우유 선택권과 식구들의 취향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목장을 둘러싸고 주기적으로 터져나오는 우윳값 소동을 피할 수 없다. 김영배 기자 한겨레 경제부 kimyb@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