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통 제품의 30% 밀수품 추정… 외제 선호도에 높은 세금도 밀수 부추겨
스위스와 독일의 어느 국경지역. 한 할아버지가 오토바이에 자갈을 가득싣고 하루가 멀다하고 두 나라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매일같이 자갈을 실어 나르는 걸 본 두 나라의 세관원들은 뭔가 밀수를 한다는 수상한 냄새를 맡았지만 물증은커녕 조그마한 실마리조차 잡을 수가 없었다. 자갈 속에 분명 무엇을 숨겨 밀수하는 것 같긴 한데 불시에 검문을 해도 번번이 나오는 것은 자갈덩어리뿐이었다. 도대체 무얼 어떻게 숨겨 밀수를 하는 것일까. 양쪽 나라 세관원들은 궁금해서 잠을 이루지 못할 지경이었다. 밀수 단속은 아예 관심 밖이 될 정도로 궁금증은 커져 하루는 할아버지를 붙잡고 물었다.
“할아버지, 밀수하시는 거죠?” “….” “에이∼말씀해 보세요, 뭘 밀수하시는지. 너무 궁금해서 우린 잠도 못 자요. 눈 딱감아 줄 테니 뭘 밀수하는지만 말씀해 보세요∼오.”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던 할아버지의 대답은 이랬다. “아, 보면 몰라? 오토바이잖아.”
어떤 상표는 90%나 밀수로 국내 유통
자갈 할아버지의 오토바이 밀수처럼 웃고 넘기기 어려운 사실이 하나 드러났다. 올해 상반기에 가장 많이 밀수입된 품목이 골프채였다는 것. 관세청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6월 말까지 전국 세관에서 적발한 밀수입품 1846억6400만원어치 가운데 골프채를 비롯한 운동구류가 335억4300만원어치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이들 운동구류는 지난해 상반기 2억5700만원어치가 적발돼 14개 분류품목 가운데 적발액 기준 열세 번째에 그친 바 있다. 골프가 대중화됐다고는 해도 여전히 일반인들로부터 ‘사치성 귀족스포츠’라는 눈흘김을 받고 있는 터에 밀수 이미지까지 덧씌워짐으로써 씁쓸함은 더해진다. 밀수 행위에 대한 처벌 강도가 녹록지 않음에도 큼직큼직한 골프채 밀수사건은 그동안 간단없이 이어졌다. 올해 3월 부산·경남세관본부에서 적발해낸 한·일 공조 밀수조직사건이 최근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세관에 꼬리를 밟힌 이 조직은 지난 99년 9월부터 (주)혼마골프 오사카대리점에서 혼마골프채와 그립(손잡이) 등 시가 330억원어치를 구입, 자동차 폐배터리로 속여 밀수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에 걸려든 밀수사건이 올해 상반기 골프채 밀수의 거의 전부를 차지하며 이 때문에 상반기 밀수품 통계 순위에는 다소 왜곡의 소지가 있다는 풀이도 있다. 하지만, 혼탁한 골프채시장의 특성으로 볼 때 드러나지 않은 밀수사건이 상당수에 이른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골프용품업계에 따르면 국내 골프채시장 규모는 대략 3천억∼3500억원 수준이며 이 가운데 30% 안팎이 밀수품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국내에서 인기가 높은 일본 혼마 제품은 90%가량이 밀반입된 제품이라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을 정도로 시장이 극도로 혼탁한 실정이다.골프채 밀수가 번성하고 있는 배경에는 높게 매겨진 특별소비세가 자리잡고 있다. 밀수를 통해 국내에 들여올 경우 특소세를 비롯한 세금을 피할 수 있어 큰 이익을 올릴 수 있다. 밀수를 하다가 걸려들 수 있는 리스크(위험)를 기꺼이 감수할 정도로. 골프채는 사치품으로 분류돼 특소세 30%, 교육세 30%, 농어촌특별세 10%, 부가가치세 10% 등 갖가지 세금이 매겨진다. 여기서 교육세와 농특세는 특소세액에 바탕을 두고 부과된다. 외제 브랜드의 경우 여기에 8%의 관세가 덧붙여져 과세표준 가격(CIF)의 무려 68.7%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 국산품에 붙는 세금은 출고가의 56.2%에 이른다. 과세표준가격이 300만원인 골프채 풀세트(13개 기준)의 예를 들어보자. 여기에 붙는 세금은 관세 24만원, 특소세 90만원, 교육세 27만원, 농특세 9만원, 부가세 45만원 등 모두 195만원에 이른다. 밀수로 들여올 경우 이 모든 세금을 피할 수 있기 때문에 대단한 가격경쟁력을 얻게 된다. 물론, 이런 세금체계만으로 외제 골프채의 밀수가 성행하는 현상을 다 설명하기는 어렵다. 국산 브랜드에도 특소세 등 50%를 웃도는 높은 세금이 붙기 때문이다. 이는 그만큼 외제 골프채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는 해석으로 이어진다. 외제에 대한 소비자들의 욕구가 높은 현실이 위험을 감수하는 밀수를 충동질한다는 것이다. 국산품이 국경 넘나들며 외제로 둔갑
그렇다면 외제가 국산품에 비해 그만큼 우수한 걸까. 아니면 외제라면 사족을 못쓰는 소비자들의 천박성에서 비롯된 것인가.
골프채의 브랜드가 다양한 현실에서 두부모처럼 딱 자를 수는 없지만 외제를 선호하는 게 단순히 소비자들의 천박한 심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외제를 선호하고 있는 데는 그럴 만한 사연도 배어 있다는 것이다.
골프채 전문회사 (주)나이센의 김완기 사장은 “국제통화기금(IMF)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국산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수요도 많이 늘어났는데, 실제 써본 소비자들이 실망을 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고 전했다. 국산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는 것을 배경으로 갖가지 국산 브랜드가 생겨나면서 품질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국산품 전반에 대한 인식이 나빠졌다는 것이다. 국산 골프채의 시장점유율(추정)이 IMF사태 직후 20% 수준까지 뛰었다가 지금은 15% 아래로 떨어진 데서도 이를 엿볼 수 있다.
김 사장은 이와 관련해 “품질로 승부를 걸지 않고 광고를 통해 시장점유율을 높여온 몇몇 업체들이 요즘 들어 부쩍 어려움에 빠져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고 덧붙였다.
잘못 정착된 골프문화에서 비롯된 단순 외제선호 경향도 여전히 큰 것으로 보인다. 골프치는 이들이 골프를 레저 활동으로 여기기보다는 자기과시 수단으로 삼는 행태가 뚜렷하다는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는 골프채의 질을 요모조모 따지기보다는 골프채에 붙어 있는 상표만으로 구매를 결정하게 된다.
코오롱 엘로드(골프사업부) 박종현 차장은 “소비자들의 외제 선호도가 높다보니 국내에서 기획해 대만, 중국 등에서 생산하고 일본에서 최종 마무리작업을 거쳐 ‘Made In Japan’을 찍어 들여오는 수입품도 상당수에 이른다”고 말했다. 사실상 국산품이 국경을 넘나들면서 외제로 둔갑한다는 것이다. 이는 그나마 정품이다. 아예 가짜 외제품을 국내로 들여와 정품인 것처럼 속여 파는 경우도 부지기수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주)랭스필드 이해철 상무는 “미국쪽의 통상압력에 따라 지난 96년부터 외국산 골프채에 수입통관 필증을 붙이지 않도록 하면서 가짜가 대거 나돌기 시작했다”며 “애프터서비스(A/S)용 부분품으로 들여올 경우 특소세를 물지 않는다는 점을 악용해 국내에서 조립, 완제품 형태로 파는 사례도 많다”고 말했다.
따라서 국내 골프숍, 특히 소규모 용품점에 진열된 외제 골프채 가운데는 수입통관을 거친 정품, 밀수로 들여온 정품, 부분품으로 통관돼 국내에서 조립된 완제품, 밀수로 들여온 가짜품 등이 갖가지로 뒤섞여 있다는 것이다. 외제와 국산품의 질적 차이를 따지기에 앞서 정품이냐 아니냐를 감안해야 한다는 것인데, 문제는 일반인들로선 이를 감별하는 게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무조건 외제를 선호하는 행태는 지혜롭지 못함을 알 수 있다.
모든 밀수가 다 그러하겠지만, 골프채 밀수도 두 가지 점에서 나라경제에 커다란 해악을 끼친다.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세금포탈뿐 아니라 외화낭비를 불러일으키는 면이 많다. 이는 밀수업자들이 해외 현지서 구입하는 가격이 정식 수입상의 구입가격보다 훨씬 높기 때문이다.
김완기 사장은 “먹고살 만하면 사람들의 관심이 레저·스포츠로 가는 게 자연스런 현상”이라며 “국내 골프인구가 300만명이 넘는 현실에서 이제 골프 관련 세제에 대한 재검토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골프채의 가격수준에 따라 특소세를 차등해 매기는 등 세제개편 없이는 밀수를 근본적으로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세금포탈에 외화낭비 끊을 묘책은 없나
특소세율과 골프채 밀수 사이의 함수관계를 명확히 규정지을 도리는 없지만 단속강화만으로 밀수를 뿌리뽑을 수 없다는 건 엄연한 현실이다. 그렇다고 현재 골프에 대한 대중의 인식으로 보아 특소세를 함부로 조정하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끊임없이 벌어지는 골프채 밀수사건이 가뜩이나 어려운 나라경제에 우울한 과제를 하나 더 보태고 있다.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사진/ ˝골프채 판매는 브랜드에 달려 있다.˚국내에서도 다양한 골프채가 생산되고 있지만 소비자들의 눈길을 끌지 못하고 있다.(박승화 기자)
자갈 할아버지의 오토바이 밀수처럼 웃고 넘기기 어려운 사실이 하나 드러났다. 올해 상반기에 가장 많이 밀수입된 품목이 골프채였다는 것. 관세청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6월 말까지 전국 세관에서 적발한 밀수입품 1846억6400만원어치 가운데 골프채를 비롯한 운동구류가 335억4300만원어치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이들 운동구류는 지난해 상반기 2억5700만원어치가 적발돼 14개 분류품목 가운데 적발액 기준 열세 번째에 그친 바 있다. 골프가 대중화됐다고는 해도 여전히 일반인들로부터 ‘사치성 귀족스포츠’라는 눈흘김을 받고 있는 터에 밀수 이미지까지 덧씌워짐으로써 씁쓸함은 더해진다. 밀수 행위에 대한 처벌 강도가 녹록지 않음에도 큼직큼직한 골프채 밀수사건은 그동안 간단없이 이어졌다. 올해 3월 부산·경남세관본부에서 적발해낸 한·일 공조 밀수조직사건이 최근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세관에 꼬리를 밟힌 이 조직은 지난 99년 9월부터 (주)혼마골프 오사카대리점에서 혼마골프채와 그립(손잡이) 등 시가 330억원어치를 구입, 자동차 폐배터리로 속여 밀수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에 걸려든 밀수사건이 올해 상반기 골프채 밀수의 거의 전부를 차지하며 이 때문에 상반기 밀수품 통계 순위에는 다소 왜곡의 소지가 있다는 풀이도 있다. 하지만, 혼탁한 골프채시장의 특성으로 볼 때 드러나지 않은 밀수사건이 상당수에 이른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골프용품업계에 따르면 국내 골프채시장 규모는 대략 3천억∼3500억원 수준이며 이 가운데 30% 안팎이 밀수품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국내에서 인기가 높은 일본 혼마 제품은 90%가량이 밀반입된 제품이라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을 정도로 시장이 극도로 혼탁한 실정이다.골프채 밀수가 번성하고 있는 배경에는 높게 매겨진 특별소비세가 자리잡고 있다. 밀수를 통해 국내에 들여올 경우 특소세를 비롯한 세금을 피할 수 있어 큰 이익을 올릴 수 있다. 밀수를 하다가 걸려들 수 있는 리스크(위험)를 기꺼이 감수할 정도로. 골프채는 사치품으로 분류돼 특소세 30%, 교육세 30%, 농어촌특별세 10%, 부가가치세 10% 등 갖가지 세금이 매겨진다. 여기서 교육세와 농특세는 특소세액에 바탕을 두고 부과된다. 외제 브랜드의 경우 여기에 8%의 관세가 덧붙여져 과세표준 가격(CIF)의 무려 68.7%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 국산품에 붙는 세금은 출고가의 56.2%에 이른다. 과세표준가격이 300만원인 골프채 풀세트(13개 기준)의 예를 들어보자. 여기에 붙는 세금은 관세 24만원, 특소세 90만원, 교육세 27만원, 농특세 9만원, 부가세 45만원 등 모두 195만원에 이른다. 밀수로 들여올 경우 이 모든 세금을 피할 수 있기 때문에 대단한 가격경쟁력을 얻게 된다. 물론, 이런 세금체계만으로 외제 골프채의 밀수가 성행하는 현상을 다 설명하기는 어렵다. 국산 브랜드에도 특소세 등 50%를 웃도는 높은 세금이 붙기 때문이다. 이는 그만큼 외제 골프채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는 해석으로 이어진다. 외제에 대한 소비자들의 욕구가 높은 현실이 위험을 감수하는 밀수를 충동질한다는 것이다. 국산품이 국경 넘나들며 외제로 둔갑

사진/ 골프의 대중화인가, 밀수의 대중화인가. 한 골퍼가 스윙연습을 하고 있다.(김정효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