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평한 분배 촉진할 ‘근복법’ 국회 통과… 세제·금융 지원에 경영 참가 기반 넓어져
‘화합과 협력의 시대를 향한 신노사문화 창출.’ ‘종업원지주제와 사회보장제도 강화를 통한 경제성장 성과의 공평한 분배.’
김대중 대통령의 집권 공약이다. 집권 3년 반 만에야 대통령의 이 약속을 이행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 국회는 지난 7월18일 ‘근로자복지기본법’(약칭 근복법)을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이 법의 제정은 국민의 정부가 추구해온 노동부문의 핵심 개혁과제이면서, 동시에 노사정위원회 합의사항이기도 하다. 정부가 이미 99년 중반부터 제정을 추진하고 지난해 11월 15대 국회에서 여야의원 118명이 공동발의까지 했으나, 16대 국회에서 질질 끌어오다가 이제서야 겨우 매듭을 짓게 됐다. 정부는 내년 1월1일 근복법의 본격적인 시행을 앞두고 시행령과 시행규칙 마련작업에 들어갔다.
근복법에는 현행 우리사주조합 방식의 종업원지주제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장치들이 들어 있다. 종업원지주제란 말 그대로, 종업원이 기업의 주인이 될 수 있게 하는 제도이다. 정부가 종업원들의 자기회사 주식 소유에 대한 여러 가지 정책적 지원과 유인책을 제공하는 것이다.
종업원지주제 획기적 개선 장치 만들어
그런데 지금까지 국내 종업원지주제는 본래 취지나 목적을 달성하기에는 너무나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법적 근거라고 해봐야 증권거래법 제191조 7항이 고작이다. 내용은 상장 및 등록기업이 주식을 공개하거나 유상증자할 경우 20%를 우리사주조합원에게 우선적으로 배정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증권거래소에 상장되거나 코스닥에 등록되지 않은 기업은 종업원지주제를 시행할 법적 근거가 없다. 다만 비상장·비등록기업은 회사정관에 관련 규정을 만들어 우리사주조합을 결성할 수 있지만, 배정된 주식을 처분할 때 환금성이 보장되지 않는데다 매매시 양도소득세도 물어야 하는 등 제약이 많다. 또 상장·등록기업의 종업원들에게 우리사주의 매력이 상실된 지 오래이다. 99년 초부터 신주발행시 할인된 가격으로 우리사주를 배정하는 게 아니라 시장가격을 그대로 적용하기 시작한 탓이다. 주식 매입자금을 종업원들이 자기 주머니에서 마련해야 하고, 주가의 부침이 심한 국내 증시여건을 감안한다면 시가로 배정되는 우리사주는 종업원들에게 전혀 매력이 없다. 특히 대출을 받아 우리사주를 산 경우 때를 놓치면 자칫 ‘노비문서’로 전락하기도 한다. 당연히 기회만 있으면 우리사주를 처분하게 된다. 경기대 신범철 교수는 “종업원지주제는 기본적으로 종업원들에게 자사주의 매입 확대와 장기보유를 유도해 애사심과 생산성 향상의 동기를 유발하고 그 결과 얻어지는 기업가치 향상의 성과에 대한 공평한 분배를 촉진하자는 게 목적”이라며 “그러나 현행 종업원지주제는 상장·등록기업의 종업원들에 한해 ‘우리사주 우선배정 제도’에 불과해 본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근로복지기본법은 이처럼 무늬만 남아 있는 종업원지주제를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 우선 접근 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지금까지 종업원지주제는 사실 근로자 복지나 권익향상보다는 자본시장 육성이라는 목적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쉽게 말해 종업원들의 주머니를 털어서 자본시장을 확대하겠다는 발상에서 출발한 것이다. 증권거래법에 법적 근거가 담겨 있는 배경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근복법은 이런 잘못 꿰어진 첫 단추를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소관부처도 재정경제부가 아니라 노동부로 바뀌었다. 노동부 박종길 근로복지과장은 “근복법은 비상장·비등록기업까지 대상으로 삼고 종업원지주제의 법적 근거조항을 포괄적으로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사주조합의 결성이나 관리, 운영에 이르기까지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비상장기업의 경우 우리사주의 환금성 보장이 가장 큰 난관이었는데, 근복법은 조합원의 퇴직시 기업이 외부전문기관이 평가한 가격으로 주식을 사줄 수 있도록 환매준비금을 적립하게 했다. 혜택 많아지는 대신 의무보유기간 늘려
정부와 노동계가 큰 마찰을 빚고 있는 공기업 민영화에도 종업원지주제가 윤활유 구실을 할 수 있다. 정부는 내년 말까지 5개 공기업과 그 자회사 29곳에 대한 민영화를 추진하고 있으나, 노동계에서는 ‘강력 저지’의 구호를 수그리지 않고 있다. 신범철 교수는 “공기업 민영화에 종업원지주제를 활용하면 노사갈등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특혜시비, 경제력 집중심화, 국부유출과 같은 시비도 없앨 수 있지 않으냐”면서 “종업원지주제로 전환할 수 있는 공기업은 근복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는 내년 1월1일 이후로 민영화 일정을 늦추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 공공연맹의 노항래 정책국장은 “올 연말까지 민영화 대상기업 가운데 하나인 한전의 자회사 한전기술은 1700여명의 종업원들 스스로 정당한 가격을 지불하고 회사주식 51%를 취득하겠다고 나섰지만 정부는 재벌기업에 넘겨 민간독점기업으로 전락시키려 하고 있다”며 한편으로는 종업원지주제 강화방안을 내놓으면서, 다른 측면에서는 경제민주화나 재벌개혁과 어긋나는 정책을 펴는 정부의 이중성을 강하게 비판했다.
박순빈 기자 sbpark@hani.co.kr

사진/ 근로자복지기본법 제정은 노사정위원회의 대표적인 합의사항이었다. 3기 노사정위원회 회의의 모습.(강창광 기자)
그런데 지금까지 국내 종업원지주제는 본래 취지나 목적을 달성하기에는 너무나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법적 근거라고 해봐야 증권거래법 제191조 7항이 고작이다. 내용은 상장 및 등록기업이 주식을 공개하거나 유상증자할 경우 20%를 우리사주조합원에게 우선적으로 배정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증권거래소에 상장되거나 코스닥에 등록되지 않은 기업은 종업원지주제를 시행할 법적 근거가 없다. 다만 비상장·비등록기업은 회사정관에 관련 규정을 만들어 우리사주조합을 결성할 수 있지만, 배정된 주식을 처분할 때 환금성이 보장되지 않는데다 매매시 양도소득세도 물어야 하는 등 제약이 많다. 또 상장·등록기업의 종업원들에게 우리사주의 매력이 상실된 지 오래이다. 99년 초부터 신주발행시 할인된 가격으로 우리사주를 배정하는 게 아니라 시장가격을 그대로 적용하기 시작한 탓이다. 주식 매입자금을 종업원들이 자기 주머니에서 마련해야 하고, 주가의 부침이 심한 국내 증시여건을 감안한다면 시가로 배정되는 우리사주는 종업원들에게 전혀 매력이 없다. 특히 대출을 받아 우리사주를 산 경우 때를 놓치면 자칫 ‘노비문서’로 전락하기도 한다. 당연히 기회만 있으면 우리사주를 처분하게 된다. 경기대 신범철 교수는 “종업원지주제는 기본적으로 종업원들에게 자사주의 매입 확대와 장기보유를 유도해 애사심과 생산성 향상의 동기를 유발하고 그 결과 얻어지는 기업가치 향상의 성과에 대한 공평한 분배를 촉진하자는 게 목적”이라며 “그러나 현행 종업원지주제는 상장·등록기업의 종업원들에 한해 ‘우리사주 우선배정 제도’에 불과해 본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근로복지기본법은 이처럼 무늬만 남아 있는 종업원지주제를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 우선 접근 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지금까지 종업원지주제는 사실 근로자 복지나 권익향상보다는 자본시장 육성이라는 목적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쉽게 말해 종업원들의 주머니를 털어서 자본시장을 확대하겠다는 발상에서 출발한 것이다. 증권거래법에 법적 근거가 담겨 있는 배경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근복법은 이런 잘못 꿰어진 첫 단추를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소관부처도 재정경제부가 아니라 노동부로 바뀌었다. 노동부 박종길 근로복지과장은 “근복법은 비상장·비등록기업까지 대상으로 삼고 종업원지주제의 법적 근거조항을 포괄적으로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사주조합의 결성이나 관리, 운영에 이르기까지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비상장기업의 경우 우리사주의 환금성 보장이 가장 큰 난관이었는데, 근복법은 조합원의 퇴직시 기업이 외부전문기관이 평가한 가격으로 주식을 사줄 수 있도록 환매준비금을 적립하게 했다. 혜택 많아지는 대신 의무보유기간 늘려

사진/ 종업원지주제에 의한 공평한 분배가 실현된 것인가. 종업원지주제에 관한 국회공개토론회 모습.(이용호 기자)
그렇다면 이 법이 시행될 경우 종업원지주제가 어떻게 달라질지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우선 종업원들의 자사주 취득방식이 다양화된다. 기존의 우선배정제도말고도 기업의 우리사주조합에 대한 무상출연, 사내복지기금과 같은 형태로 노사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우리사주매입기금 조성, 금융기관으로부터의 차입에 의한 자사주 매입 등 여러 방식이 동원된다. 지금처럼 종업원 자기계산으로만 우리사주를 매입하는 것은 거의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근복법은 이런 여러 가지 방식의 종업원 주식취득시 해당 종업원들은 물론, 기업과 금융기관까지 세제혜택을 부여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어놓았다. 근복법의 이 근거에 따라 앞으로 관련 세법이나 회사 관련 법률, 증권거래법, 금융감독 규정 등이 정비될 예정이다. 가령 우리사주조합에 돈을 빌려주는 금융기관에 대해서는 대출금 이자의 일정부분은 세금부과 대상에서 빼줘 금융자원이 쉽게 흘러가도록 유도하는 것 등이다. 이런 식으로 우리사주조합에 대한 세제·금융상의 지원이 강화되는 만큼 의무보유기간도 늘어나게 된다. 의무보유기간을 채우지 않고 우리사주를 처분하면 애초 취득시 제공했던 혜택을 박탈한다.
지금까지 성격이 모호한 우리사주조합에 법인격을 부여한 것도 큰 의의가 있다. 우리사주조합이 일반회사처럼 차입 등 금융거래를 할 수도 있고, 필요할 경우 자기회사 자산이나 다른 회사 자산도 사고팔 수 있다. 범위를 확대하면 우리사주조합의 지주회사 기능도 가능하다. 근복법은 이처럼 위상이 강화되는 우리사주조합이 민주적이고 투명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노사동수의 ‘우리사주운영위원회’를 설치하도록 하고, 조합 운영의 위법·부당성이 적발될 경우에는 전국 노동관서의 근로감독관이 벌칙금을 부과하고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는 장치까지 마련했다.
이렇게 근복법에 따라 확 달라지는 종업원지주제는 여러 가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먼저 종업원들에게는 자사주 매입기회가 확대됨으로써 그만큼 주주로서 회사경영에 참여할 수 있는 기반도 넓어진다. 회사의 피고용자이자 주인이기 때문에 경영개선이나 생산성 향상 노력을 배가하게 되고, 고용조정 등 회사의 주요 의사결정이나 경영성과 배분에 대한 발언권도 높아진다.
기업의 경영자로서도 종업원지주제를 다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차입형 종업원지주제를 도입하면 당장 재무구조를 크게 개선할 수 있다. 가령 자본금이 100억원이고 부채가 300억원인 기업이 있다고 치자. 이 회사의 부채비율은 300%로 금융기관이 위험수위에 이르렀다고 지적을 하면, 회사가 상환부담을 지고 우리사주조합이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을 받아 자사주에 투자하면 자본금은 200억원(+우리사주조합 추가출자 100억원)에 부채는 400억원(+우리사주조합 대출지급보증 100억원)이어서 부채비율은 200%로 떨어진다. 증권금융의 박성찬 우리사주조합 부장은 “기업이 일시적으로 현금흐름이 악화됐을 경우 종업원지주제를 강화하면 임금협상의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고, 기존 대주주의 지분율이 낮은 기업에서는 적대적 기업인수를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장치가 될 수도 있다”며 “근복법의 시행은 기업에도 큰 혜택을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공기업 민영화에 윤활유 구실 기대 
사진/ 종업원지주제를 통한 민영화를 요구하는 한전기술 노동자들이 거리시위를 벌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