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저지를 위한 비상시국선언대회 참가 인사들이 10월5일 오전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한 참석자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4) 2010년 대미 무역수지를 본다면 제조업의 상품수지가 126억달러 흑자인 데 비해, 서비스산업 수지는 123억달러 적자다. 경쟁력이 미국의 절반도 안 되는 수준에서 서비스 수지는 빠른 속도로 악화되고 있다. 그런데 한-미 FTA는 서비스 시장의 개방과 관련해 포괄주의(네거티브 리스트) 방식을 취했다. 개방 안 할 것만 부속서 I·II에 나눠 등재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되면 여기에 등재되지 않은 산업, 특히 미래의 서비스 산업은 그것이 무엇이든 자동적으로 개방된다. 한국 경제의 미래 밥줄이 위태로워진다. 5) 외환위기와 같은 비상 상황에서 정부는 긴급 외환송금 제한조치, 곧 세이프가드 조치를 취할 수 있다. 그런데 제한조치를 취하더라도 대한민국 정부는 “미 합중국의 상업적·경제적 또는 재정상의 이익에 대한 불필요한 손해를 피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만에 하나 미국에 투자한 한국 자본이 손해를 볼 때, 미 합중국은 그럴 의무가 있을까? 없다. 대한민국 정부만의 일방 의무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외국인 직접투자와 연계된 지급 또는 송금”은 제한할 수도 없다. 예컨대 KT의 지금 주인이 누구인가. 바로 미국계 사모펀드다. 이 펀드는 2002년 KT가 민영화된 이후 사실상 KT의 최대 주주들이다. 매년 수천억원에 달하는 배당금을 송금한다. 하지만 이들은 ‘직접투자’에 해당되므로 송금을 제한할 수 없다. 미국 정부가 기업의 특허권 보호 6) 허가-특허 연계 조항이란 것이 있다. 우리가 먹는 약은 대부분 오리지널 약이 특허 만료된 뒤 나오는 복제약이고, 국내 제약업계 대다수는 복제약을 생산한다. 그런데 허가-특허 연계 조항이란 복제약을 만들어 식품의약품안전청에 시판 승인을 요청할 때, 이를 특허권자에게 통보하도록 법으로 정하는 것이다. 통보를 받은 특허권자는 이런저런 핑계로 소송을 제기해 복제약의 시판을 늦춤으로써 사실상 특허 연장의 실익을 누리고자 한다. 하지만 그 기간에 의약품 소비자는 비싼 약값을 지불해야 한다. 이처럼 의약품에 한해, 기본적으로 사권(私權)에 불과한 특허권을 국가가 나서서 보호하는 제도다. 이것이 시행되면 약값이 인상되고, 미국의 제약회사들은 막대한 이익을 누리게 된다. 기본적으로 서민들의 의약품 접근권을 심하게 제약하는 이 조항은 심지어 미국 민주당조차도 과거 부시와 ‘신통상정책’ 합의시 삭제를 요구했다. 실제 미-파나마, 미-콜롬비아 FTA에서는 재협상을 통해 이 조항을 삭제했다. 하지만 한국은 예외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라는 이유에서다. 지난해 12월 재협상 과정에서 허가-특허 연계 조항에 대해 3년 유예를 받았다고 정부는 자랑한다. 그러나 이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다. 해당 조항 전부를 유예한 것이 아니라, 그중 일부만 유예한 것이다. 그리고 그 독성으로 인해 유럽연합(EU)에서는 이 조항을 허용하지 않는다. 7) 한-미 FTA에 의해 “저작물의 무단 복제, 배포 또는 전송을 허용하는 인터넷 사이트를 폐쇄”할 수 있게 됐다. 세계에서 처음이다. 물론 미국은 아니다. 한국의 해당 사이트만 폐쇄할 수 있다는 말이다. 8) 한국이 자동차 관련 한-미 FTA 협정을 위반했을 경우 미국이 철폐한 자동차 수입관세 2.5%를 환원시킬 수 있다. 이른바 스냅백(Snap-back) 조항이다. 협정 의무 위반시 대개 시정 조치를 취하거나 보상을 하면 된다. 하지만 한-미 FTA는 없애버린 관세를 다시 되돌리는 조항을 만들어 넣은 것이다. 9) 한-미 FTA 협정문에는 개성이란 말 자체가 등장하지 않는다. 개성공단은 협상 당시 우리 쪽이 ‘전략적’ 이해가 걸린 사안이라고 했던 문제다. 하지만 온갖 단서조항을 줄줄이 달아놓아 ‘한반도 역외가공지역 위원회’가 제구실을 못하게 만들어놓았다. 게다가 미 의회에 제출된 이행 법안의 시행령에 따르면 개성산 제품은 사실상 ‘메이드 인 코리아’가 아니다. 따라서 미국에 수출될 수 없다. 송도·제주도 영리병원 못막아 10) 미래의 최혜국 대우 조항, 곧 앞으로 우리가 체결할 FTA에 한-미 FTA보다 더 유리한 조항이 있으면 미국도 자동적으로 이 혜택을 누린다는 조항이다. 미국은 항공·원자력 등 제한적인 몇 개 분야만 개방을 유보했기 때문에, 이 조항은 미국에만 유리할 뿐이다. 11) 보건의료 서비스와 관련된 유보 리스트(부속서II)에 따르면 미래에 우리 정부는 우리나라 땅에서 보건의료 서비스 관련 규제 조치를 취할 수 있다. 그러나 인천 송도와 같은 경제자유구역이나 제주도 등에서는 예외다. 따라서 이곳에 영리병원이 들어설 때, 한국 정부는 이를 되돌릴 수 없다. 한-미 FTA에 담긴 독소조항들을 한두 가지로 요약하는 일은 힘들다. 그나마 중요한 내용을 추리고 추려서, 최대한 요약해도 위와 같은 양이 된다. 한-미 FTA는 독소, 불평등, 문제 조항의 교과서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국제관계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