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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세금 떼먹기는 ‘식은 죽 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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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7-1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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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습적인 고액체납자들로 지자체 골머리… 재력가들의 편법 동원한 체납도 상당수

사진/ 서울시 세무운영과 직원들이 지방세 상습체납자 명단을 보며 징세대책을 의논하고 있다.(박승화 기자)
돈이 없어 먹고살기조차 힘든데도 가혹하게 세금을 거둬들인다면 분명 가렴주구(苛斂誅求)라고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렇다면 세금을 안 내고 체납하는 이들은 가렴주구에 맞서는 ‘조세저항자’들일까. 물론 아니다. 백성들의 주린 배를 쥐어짜 세금을 징수하는 게 아닌 한, 그리고 세금이 원체 ‘재산과 소득이 있는 곳에’ 물려지게 마련이란 점을 감안할 때 세금체납자들이 가렴주구를 운운하기란 어렵다. 어느 나라나 상습적인 세금체납자를 엄하게 다스리는 데는 이런 자신감이 바탕에 깔려 있기도 하지만 진짜 이유는 세금이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를 떠받치는 물적 토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울시의 이런 물적 토대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서울시의 한해 살림 10조원의 10%에 이르는 1조1200억원이 체납되고 있다. 체납액이 워낙 불어나다보니 전체 체납액 중 24%인 2700억원이 체납에 따른 가산금이다. 결국 보다 못한 서울시가 칼을 빼들고 지난 5월부터 ‘체납세 정리 100일 총력작전’에 들어갔을 정도이다. 상습적인 고액체납자들의 숨겨진 재산을 추적해 시 금고로 압류하는 전쟁에 나선 것이다. 서울시로부터 쫓기고 있는 상습체납자는 주민세 등 지방세를 100만원 이상 체납한 12만7천여명. 특히 앞으로는 500만원 이상 체납한 고액체납자 3만1200여명에 대해서는 ‘전담기동팀’을 꾸려 대대적인 금융자산 추적에 나설 방침이다. 이미 서울시내 4400여개 은행, 증권, 보험사 등 금융회사에 고액체납자 리스트를 넘겨주고 이들이 가진 계좌정보를 통보해달라고 요청해둔 상태다.

살림의 10% 체납된 서울시 칼 빼들어


탈세범이라고 할 순 없지만, 세금을 한사코 안 내는 혹은 못 내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부류일까. 도저히 낼 처지가 못 되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사람들일까. 물론 그런 사람들이라면 재산도 없고 따라서 아예 세금도 물지 않을 터이다. 자연히 고액 상습체납자는 ‘겉으로 봐도’ 재력가가 대다수이다. 실제로 500만원 이상 체납자의 체납액은 6873억원으로 시 전체 체납액의 70%에 이른다. 부유층일수록 그만큼 세금을 안 내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고액 체납자 중에는, 지방세법 69조 비밀유지조항(공무원이 업무상 취득한 과세자료를 누설할 수 없다)이 있긴 하지만, 들으면 알 만한 사람도 적지 않다. 현역 국회의원인 정아무개씨는 국세인 종합소득세에 딸려 물리는(소득세의 10%) 주민세 등 지방세 10건 3700여만원을 내지 않고 있다. 정 의원쪽은 “IMF이후 여러 곳에 보증을 서줬다가 물리는 바람에 빈털터리복가 되어버렸다”며 “세금을 내야 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어려운 환경 속에서 선거도 치렀는데 워낙 돈이 없어서…”라며 볼멘소리를 했다. 승용차도 프린스를 타고 다니는 데 20만㎞ 이상 뛴 차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해당 구청 세무과는 “의원세비를 압류했지만, 집도 이미 경매로 넘어갔고 나머지 가진 재산이라고 해봤자 다른 데서 이미 압류해놓은 것들”이라며 “그 외는 본인이 아닌 가족 명의로 돼 있어 압류할 수 없는 형편”이라고 막막해했다. 압류 물건이 낙찰되면 배당 우선순위는 국세, 지방세, 퇴직금, 금융기관채권 등의 순이지만 이는 파산이나 회사정리 때 적용되는 것일 뿐, 개인이나 금융기관이 먼저 압류해 놓았다면 세금이라도 우선 순위에서 밀릴 수 밖에 없다.

역시 현역의원으로, 주민세 등 4건에 680만원이 체납된 박아무개 의원도 “돈이 없어 세금을 낼 수 없다”는 말을 하기는 마찬가지다. 박 의원쪽은 “몇해 전 부인이 하던 기업이 부도 맞으면서 본인의 부동산들도 죄다 채권단 관리로 넘어갔고, 금융기관으로부터 2년 전부터 세비를 압류당한 상태”라며 “세금은 앞으로 해결해 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딱한 사정을 봐달라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구청 세무담당자는 “본인이 낼 의사가 있다고 하니까 세비까지는 아직 손대지 않은 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없어서 못 내는 사람, 있어도 안 내는 사람

사진/ 1300여만원의 세금을 체납하고 있는 한 지방세 체납자 소유의 빌딩. 이미 경매에 넘어간 상태다.(강창광 기자)
재산세와 종합토지세 등 4건에 1300여만원이 체납되어 있는 서아무개 전 의원에 대해서도 징수권을 갖고 있는 구청은 애만 태우고 있다. 서씨 개인 이름으로 된 부동산은 죄다 압류되어 있고 부인 등 가족 명의로 있는 재산은 건드릴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서씨는 마포에 있는 한 빌딩 소유자이지만 이 빌딩은 이미 여러 곳으로부터 가압류가 걸려 경매절차를 밟고 있는 상태다. 서씨의 체납세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구청 세무직원은 “서씨의 재산을 추적해봤지만 본인 이름으로 갖고 있는 게 없다”며 “경매에 넘어간 그 빌딩이 낙찰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형편”이라고 허탈해 했다. 서씨는 현재 수행비서를 거느린 채 지구당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다.

세금을 안내고 버티는 축에는 전직 고위관료도 끼어있다. 과거에 장관을 지냈던 ㅅ아무개(69)씨는 사업이 망해 20억대 부동산이 경매에 부쳐졌는데 이에 따른 양도차익에 대해 물리는 양도소득세할 주민세(양도세의 10%) 1억여원을 내지 않고 있다. 역시 장·차관을 지냈던 ㄱ아무개(74)씨도 수천만원대의 지방세를 내지 않아 체납자 리스트에 올라있다.

사실 지방세 체납액이 쌓여 눈덩이처럼 불어난 건 민선 자치시대와 맞물려 있기도 하다. 서울시 이성선 세무운영과장은 “세금은 시장이 징수권을 구청장한테 위임해 준 것인데 고액체납자가 국회의원 등일 경우 눈치만 보면서 징수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않아 이번에 고액체납자에 대해 시가 징수권을 되가져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참여연대 납세자운동본부 홍일표 간사도 “고액 상습체납자는 다들 지역에서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이라 구청마다 표를 의식해 강제징수를 못해온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에서 세금 체납액이 가장 많은 사람은 주민세 등 지방세 25억원를 내지 않고 있는 최아무개(62) 전 ㅅ그룹 회장이다. 부도로 그룹이 해체된 뒤 서류상으로 최씨의 재산은 한 푼도 없다. 그렇다면 정말로 그는 세금을 낼만한 돈이 전혀 없는 것일까. 용산구청 세무담당자는 “집은 가압류돼 넘어가 있고 타고 다니는 차도 최씨 이름이 아닌 법인명의로 된 것이어서 압류할 수 없다”며 “몇 개 부동산이 있긴 하지만 등기부를 열람해보면 국세청에서 먼저 압류한 것들이어서 실익이 없다”고 속만 태웠다. 그는 또 “최씨의 경우 집에 가도 만나주지도 않을 뿐더러 연락도 안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최씨는, 이 집도 이미 가압류된 상태이긴 하지만, 용산구 한남동에 있는 175평짜리 드넓은 대저택에 살고 있다. 구청 세무담당자는 “집도 절도 없고 깡통이면 과감하게 체납세금을 결손처리할 수 있지만, 부유층이 분명하고 숨겨진 재산이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자기 이름으로 된 재산이나 금융자산이 없다고 무작정 결손처리할 수는 없다”고 곤혹스러워했다.

심증 있어도 물증이 없기에 속수무책

재계쪽 체납자는 대부분, 최씨처럼, 기업이나 개인이 몰락한 경우다. 부도난 ㅎ그룹 전 회장인 정아무개(72)씨는 강남, 구로, 송파, 서초구 등에 걸쳐 무려 188건 28억4000여만원이 체납돼 있고, 한때 사채 사기사건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아무개(78)씨도 44건 7억2700여만원을 체납하고 있다. 강남구청 세무과는 “재산을 추적을 위해 이씨의 등기를 떼보면 대부분 금융기관에 저당이 잡혀있어 껍데기나 다름 없다”며 골치아파했다. 그러나 이씨는 지난해 자신의 주변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자 거액의 비실명 재원을 실명화해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내용을 밝히기도 했다. 재산을 숨겨둔 채 고의적으로 세금을 체납하고 있음을 스스로 내비친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서울시 김건진 행정관리국장은 “돈을 많이 가지고 있는 부유층일수록 고질적으로 세금을 안내고 있다”며 “고의적으로 세금을 체납하는 사람들의 경우 심증은 가지만 비밀유지조항 때문에 정보를 공개하는 건 신중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작정하고 세금을 안낸 채 “어디 재산을 찾아 압류할테면 해보라”며 버티는 악질 체납자 앞에서는 구청 세무과도 별 도리가 없는 게 현실이다. 숨겨진 재산을 쫓는 세무담당자를 비웃듯, 틈만나면 해외여행을 다니고 있는 것이다. 강남에 사는 정아무개(63)씨는 지난 99년부터 500억원대의 땅을 판 뒤 양도세, 주민세 등 18건 4억9800만원의 지방세를 내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정씨는 95년부터 17차례나 해외여행을 다녀온 것으로 드러났다. 1억6300만원을 체납한 정아무개(46)씨 역시 “세금 낼 돈이 한 푼도 없다”면서도 지난 95년부터 최근까지 56차례나 해외여행을 다녀온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시 세무운영과 이정엽 징수팀장은 “정씨가 ‘잘 나갈 때 사귀어 둔 외국 사람이 초청해서 다녀온 것 뿐’이라고 둘러대고 있다”며 어처구니없어 했다. 이 팀장에 따르면 해외여행을 자주 다니는 상습체납자들의 빤한 거짓말(?)도 갖가지다. 재산을 다 물려준 뒤 이제는 자식한테 돈을 타서 해외여행을 다니고 있는 신세라고 둘러대는 축이 있는가 하면, 부인이 해외여행 가는데 ‘가방모찌’로 함께 따라갔다고 발뺌하는 축도 있다는 것이다. 낯빛도 바꾸지 않은 채 되레 “돈이 없어서 못내겠다는 데 왜 귀찮게 괴롭히느냐”는 투로 퉁명스럽게 내뱉는 고액체납자도 있다고 한다.

감추고, 빼돌리는 재산 숨기기 백태

일부 체납자들은 예금과 주식, 각종 펀드 등 수십억원에서 수백억원대의 재산을 갖고 있으면서도 세금은 한사코 내지 않고 있다. 지방세 1200만원을 내지 않고 있는 김아무개(48)씨는 무려 3억3200만원의 든 예금계좌를 갖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예금이자만으로도 충분히 세금을 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며칠뒤 세무담당자가 계좌를 압류하러 가보니 이미 전액 빠져나가고 계좌는 빈 깡통이 돼 있었다. 지난 98년부터 40여 차례에 걸쳐 모두 1억1300만원을 체납하고 있는 차아무개(44)씨 역시 6300만원 어치의 예금과 주식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서울시가 체납액 징수작전에 나서자 서둘러 5800여만원을 빼내거나 주식을 팔아치워 장롱 속에 감춰버리기도 했다.

물론 서울시는 현재까지 일부 체납자의 금융거래 정보를 들춰 체납자 7천여명의 예금, 증권, 보험 등 금융재산 611억원을 압류했다. 이는 ‘사용목적에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 안에서 금융기관에 거래정보 제공을 요구할 수 있다’는 금융실명제법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김씨나 차씨의 사례에서 보이듯 체납자가 압류되기 직전에 예금을 빼내 감추거나 다른 사람 이름의 계좌로 옮겨버리는 사례도 많다. 서울시 이성선 세무운영과장은 “금융실명제법에 따라 거래정보 조회사실을 6개월간 본인에게 알려주지 말라고 요청했는데도 은행 직원들이 고객들에게 조회사실을 즉각 알려주기 때문”이라며 “압류절차를 밟는 데 걸리는 며칠 뒤 금융점포에 가보면 그새 인출되고 없다”고 허탈해 했다. 서울시는 통보유예 요청에도 불구하고 고객에게 알려주는 금융기관 직원은 조세범처벌범 위반이나 업무방해 등으로 고발하는 것을 검토중이다. 이에 대해 국민은행쪽은 “앞으로 본점에서 전산망을 돌려 관련 금융정보를 서울시에 건네줄 예정이지만 속전속결로 처리해야할 일인데 이렇게 하다간 은행도 힘들고 효과를 거두기도 어려운 게 아니냐”고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그렇다면 고의적으로 세금을 안내는 상습체납자들한테 밀린 세금을 강제로라도 받아내려면 숨겨진 ‘본인’의 재산을 찾아내 압류하는 길밖에 없는 것일까. 사실 세무당국이 골치를 썩이는 건 바로 이 지점이다. 미리 ‘대비’해 자기 이름으로 된 부동산이나 금융자산을 부인이나 자녀 등 다른 사람 명의로 이전해버리면 어쩔 수 없는 딱한 처지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구청 세무과와 달리, 채권추심회사들은 채권을 확보하기 위해 부부명의의 재산까지 손을 대고 있다. 서울신용정보(주) 관계자는 “우리는 앞뒤 맥락이나 시점을 따져봤을 때 재산을 고의적으로 도피시키기 위해 부인 이름으로 빼돌린 경우 허위매매로 간주해 법원에 명의이전 취소소송을 내는 식으로 채권을 확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앞으로 체납자 재산추적팀에 채권확보 전문가를 투입해 이 부분을 적극 시도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일부 체납자는 세금부과통보를 받은 지 5년이 지나면 지방세 시효가 소멸된다는 점을 악용해 서류상의 재산없이 5년을 버티기도 한다. 그러나 서울시는 “무엇이든지 한 건이라도 압류되면 시효가 중단된다”며 “악질적으로 세금을 떼먹는 체납자에 대해서는 집안에 있는 텔레비전이라도 압류해 소멸시효를 중단시킬 것”이라고 강한 의지를 나타냈다. 물론 1천만원 이상 고의적인 체납자는 출국금지조처가 내려질 수 있고 500만원 이상 체납자는 신용불량자 리스트에 올라가 금융거래에 제한을 받기도 한다.

성실 납세자의 부담이 늘어가고 있다

형사고발도 가능하다. 1년에 3회 이상 체납하거나 ‘고의적으로’ 체납한 사실이 입증되면 장닉범(장롱속에 은닉했다는 뜻)으로 형사고발 할 수 있다. 그러나 3회 체납에 걸리지 않기 위해 액수가 적은 세금은 내고 대신 고액세금은 내지 않을 경우 세무담당자도 어쩔 도리가 없다. 특히 일부러 재산을 숨기고 세금을 안냈다는 ‘고의성’을 입증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금이 제대로 걷히지 않으면, ‘월급쟁이는 봉’이란 말처럼, 세금을 꼬박꼬박 성실하게 내온 사람들이 피해를 보고 조세형평에도 어긋난다. 게다가 지자체가 떼인 세금 만큼 벌충하려고 세금을 더 많이 물리게 되면 결국 상습 고액체납자가 내야할 몫이 성실 납세자의 부담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서울시 이성선 세무운영과장은 “남들은 안 쓰고 덜 쓰면서 세금부터 내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 상습체납자에 대해서는 끝까지 추적할 것”이라며 “결국 세금을 안 내고는 못 배기게 하겠다”고 말했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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