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살림 살찌우는 낮은 담뱃값 논란… 높은 흡연율로 인한 사회적 손실 극심
담배 피우는 이들이 어느날 갑자기 약속이나 한 듯이 모조리 담배를 끊어버린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모르긴 해도 나라의 곳간을 지키는 이는 꽤나 상심이 클 것이다. 지방의 시·군 단위 자치단체는 재정난을 견디지 못해 부실기업처럼 파산에 이를 수도 있을 터이다. 물론 골초의 아내나 아이들은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겠지만….
재정경제부에 따르면, 지난해 담배소비세는 2조91억원으로 전체 지방세 18조8473억원의 10.7% 수준이었다. 지방자치단체별로 담배소비세가 지방재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7.2(서울)∼20.6%(군 단위)로 나타났다. 지난 한해 담배에서 거둬들인 국세(주로 부가세)도 만만치 않아 1조3514억원에 이르렀다. 담배없이는 나라살림살이에 감당하기 어려운 구멍이 생길 것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세계 1위의 남성 흡연율
그렇지만 나라 곳간지기나 지방자치단체장들이 그다지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담배가 어떤 ‘물건’인데, 그렇게 쉽사리 끊을 수가 있겠는가. 담배에 부과되는 각종 세금과 부담금이 늘어나도 흡연율은 꾸준히 오름세를 타고 있는 게 우리나라 현실이다. 세계보건기구(WHO)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성인 남자의 흡연율은 68%로 세계 1위이다. 청소년과 여성의 흡연도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이처럼 나라 살림살이에서 담배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흡연율이 비정상적으로 높은 현실과 관련해 정부의 담배가격 책정에 관한 시비가 그동안 끊임없이 일었다. 정부가 재정수입에 급급해 ‘낮은 담뱃값-높은 흡연율-높은 재정수입 기여’라는 고리를 끊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었다. 그다지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이런 시비가, 올해 하반기 들어 담배제조권의 독점체제 붕괴로 담배의 가격결정구조가 바뀌면서 또다시 화두로 떠올랐다. 담뱃값 인상만큼 피부에 와닿지는 않지만 국내 담배시장은 알게 모르게 예전과는 크게 다른 구조로 변하고 있다. 지난 88년 7월 담배수입 개방(판매독점 폐지) 조처 이후 13년 만에 담배제조 독점권도 폐지됐다. 올해 7월1일부터 시행된 개정 담배사업법에 따른 것이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뜻이 담겨 있다. 담배시장 역시 경쟁체제로 바뀌었다는 산업적 측면의 변모와 담배값 결정권이 정부에서 담배사업자로 넘어왔다는 가격결정 방식의 변화가 그것이다. 물론 법·제도상 변화가 당장 현실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국내 담배시장의 진입을 가로막는 장벽은 원칙적으로는 없어졌지만 현실적인 걸림돌이 남아 있다. 담배사업법상 자본금 300억원 이상과 연간 50억개비 이상의 담배를 제조할 수 있는 시설, 그것도 원료가공 궐련제조 제품포장 등 담배생산을 위한 완전공정 시설을 갖추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당장 담배인삼공사와 경쟁할 담배사업자가 나타나기는 힘든 실정이다. 가격결정 역시 정부의 통제에서 당장은 벗어나기 어렵다. 독점권 폐지로 원칙적으로는 담뱃값을 담배사업자가 가격결정권을 행사하고 정부에는 사후에 신고하도록 되어 있지만, 아직도 정부가 대주주인 담배인삼공사가 정부 뜻을 거스를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일부 변화의 싹은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우선, 외국계 회사들이 한국에 공장을 세울 목적으로 부지를 물색하고 있다. 영국계 BAT(던힐)는 충북 청원, 충남 연기지역에 공장을 설립한다는 방안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계 필립모리스는 경남 양산에 담배공장을 세울 것이란 소문이 돌기도 했다. 이에 따라 2∼3년 뒤면 외국계 담배회사가 국내에 공장을 차려 만든 담배를 맛보게 될 것이란 얘기도 나오고 있다. 담배제조독점권 폐지로 가격변화 조짐
올해 7월부터 담배제조 독점권을 폐지한 대신 수입담배에 대한 관세를 10%씩 매기기 시작한 것도 외국계 진출을 촉진하는 계기로 작용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수입담배에 대한 관세율은 해마다 10%포인트씩 올라 오는 2004년 7월부터는 40%의 관세율이 적용된다. 외국계 담배회사는 이 정도 관세율을 부담하고는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 따라서 국내에 담배제조공장을 짓는 외국 회사들이 늘어날 전망이다.
한편 담배인삼공사와 경쟁하는 국내 회사도 이미 등장했다. 벤처기업인 (주)구강물산(대표 주미화)은 바이오공법으로 개발한 담배 이프(if)를 중국 윈난성 담배회사에 위탁생산하는 방식을 통해 7월 중순부터 시판한다고 밝혔다. 구강물산쪽은 지금은 수입하는 방식으로 국내에 들여오지만 국내에서 생산하는 방안도 마련하고 있다고 밝힌다.
이같은 담배산업의 구조변화가 담뱃값에 어떤 영향을 줄지는 확실치 않다. 독점에서 경쟁체제로 변하면 값이 떨어진다는 경제논리가 담배시장에선 통하기 어렵다. 담뱃값의 경우 정부정책 변수에 따라 움직이는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요즘 가장 잘 팔린다는 1300원짜리 ‘디스’의 예를 들어보자. 디스에는 담배소비세 510원, 교육세 255원, 폐기물부담금 4원, 국민건강증진기금 2원, 부가세 106.35원 등 모두 877.35원에 이르는 갖가지 세금과 준조세가 붙어 있다. 담뱃값은 거의 전적으로 세제를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흡연율이 가장 높은 반면, 담뱃값은 가장 싼 나라로 꼽힌다. 세계은행이 99년 기준 담뱃값을 국제비교해본 결과, 우리나라는 1.02달러였다. 노르웨이 7.28달러, 영국 6.27달러, 미국 3.26달러, 일본 2.30달러 등에 비해 대단히 낮은 수준이다. 값은 싼 반면 높은 흡연율과 대량 소비로 담배로 인한 재정수입이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한다. 전체 조세수입에서 담배세가 차지하는 비율이 지난 99년 3.46%로 덴마크 2.03%, 미국 0.44% 등에 비해 크게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현실을 감안해 정부가 세금을 ‘왕창’ 올려 ‘낮은 담뱃값-높은 흡연율’이란 연계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물론 이를 위해선 ‘재정수입’에 대한 미련을 버리는 어려운 선택도 따라야 한다.
조세수입 명목으로 담배소비 방조 말라
최재천 변호사(법무법인 한강)는 “지금까지 정부의 담뱃값 책정에 대한 태도를 보면, 흡연으로 인한 보건·경제적 손실을 막기 위한 금연 유도보다는 담배재배 농민들을 위한다는 명목과 조세수입을 늘리려는 목적 아래 담배소비를 조장하고 방조해왔다”고 비판했다. 최 변호사는 담배 관련 세금이 지방자치단체의 주요재원을 제공하기 때문에 자치단체별로 치열한 판촉 전쟁을 펼칠 수밖에 없는 조세환경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을 단적인 예로 들고 있다. 이 밖에 다른 나라에 비해 낮은 담뱃값은 아주 드물게 인상하는 대신 고가의 신종담배를 꾸준히 출시해온 점, 신종담배 출시와 더불어 중등품 정도의 담배를 다시 낮은 값에 판매하는 점 등도 꼽힌다. 물론, 세금인상을 통해 담뱃값을 올릴 경우 애연가들의 저항이 거셀 것이 뻔하다. 여기에는 담뱃값 인상이 흡연율을 낮추는 데 그다지 효과가 없다는 반박도 덧붙는다.
최근 정부가 건강세 신설이나 국민건강증진기금 인상 등 담배세 인상 방안을 내놓은 데 대해 한국애연가동맹(상임대표 김기창)은 “애연가들의 주머니를 털어 건강보험 재정을 확충하려는 것”이라며 정부의 담배세 정책을 비난하는 궐기대회를 열기도 했다. 담배인삼공사의 권봉순 마케팅부장은 “가격을 올리면 흡연율이 줄어들 것이라고 보나 초기에 다소 감소하다가 다시 원상회복되는 것으로 나타난 연구결과도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조세연구원 석명재 박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우리나라 담뱃값이 가장 싸며 소득수준에 견줘서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석 박사는 “담배제조회사나 수입업자, 애연가들은 담배에 붙는 세금이 너무 많다고 주장하지만 선진국에선 흡연을 줄이고 국민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해 담배세를 대폭 올리는 게 공통된 현상”이라며 “국내 담배세율은 선진국에 견줘 상당히 낮은 수준이기 때문에 담배세를 올릴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진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담배세 인상을 단지 재정확충의 수단으로 삼아서는 곤란하다는 견해가 많다. 현재 2원인 국민건강증진기금을 150원으로 올리려는 정부의 계획이 전형적인 예로 꼽히는데, 이는 단순히 구멍난 건강보험재정을 메우려는 급조정책이란 것이다. 정부안대로 건강증진기금을 올릴 경우 2천원급 담배는 7.4%, 1300원급은 11.4% 오르는 데 그쳐 소비억제 효과가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담배는 기호품이어서 가격에 대한 수요의 탄력성이 아주 낮다. 반면, 중장기적으로 볼 때 흡연은 건강보험재정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분석은 보건·의료계의 연구결과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
가격 올리려면 왕창 올려야 효과 있다
따라서 담뱃값은 올리려면 정말 애연가들이 경제적 부담 때문에 주저할 정도로 세금을 대폭 올리되 건강증진기금처럼 쓰임새가 정해진 준조세보다는 일반세인 담배소비세를 조정하는 게 더욱 효과적이고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최재천 변호사도 “캐나다, 미국, 핀란드, 파푸아뉴기니 등에서 이뤄져 학계에 보고된 연구결과를 보면 담배소비는 가격탄력성이 낮기 때문에 과감한 인상을 통해서만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고 전했다. 그는 이와 함께 “담배의 가격을 올리는 대신 대체용으로 저가의 담배를 판매할 경우 실질적으로 담배소비에 미치는 효과는 반감된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순빈 기자 sbpark@hani.co.kr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그렇지만 나라 곳간지기나 지방자치단체장들이 그다지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담배가 어떤 ‘물건’인데, 그렇게 쉽사리 끊을 수가 있겠는가. 담배에 부과되는 각종 세금과 부담금이 늘어나도 흡연율은 꾸준히 오름세를 타고 있는 게 우리나라 현실이다. 세계보건기구(WHO)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성인 남자의 흡연율은 68%로 세계 1위이다. 청소년과 여성의 흡연도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이처럼 나라 살림살이에서 담배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흡연율이 비정상적으로 높은 현실과 관련해 정부의 담배가격 책정에 관한 시비가 그동안 끊임없이 일었다. 정부가 재정수입에 급급해 ‘낮은 담뱃값-높은 흡연율-높은 재정수입 기여’라는 고리를 끊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었다. 그다지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이런 시비가, 올해 하반기 들어 담배제조권의 독점체제 붕괴로 담배의 가격결정구조가 바뀌면서 또다시 화두로 떠올랐다. 담뱃값 인상만큼 피부에 와닿지는 않지만 국내 담배시장은 알게 모르게 예전과는 크게 다른 구조로 변하고 있다. 지난 88년 7월 담배수입 개방(판매독점 폐지) 조처 이후 13년 만에 담배제조 독점권도 폐지됐다. 올해 7월1일부터 시행된 개정 담배사업법에 따른 것이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뜻이 담겨 있다. 담배시장 역시 경쟁체제로 바뀌었다는 산업적 측면의 변모와 담배값 결정권이 정부에서 담배사업자로 넘어왔다는 가격결정 방식의 변화가 그것이다. 물론 법·제도상 변화가 당장 현실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국내 담배시장의 진입을 가로막는 장벽은 원칙적으로는 없어졌지만 현실적인 걸림돌이 남아 있다. 담배사업법상 자본금 300억원 이상과 연간 50억개비 이상의 담배를 제조할 수 있는 시설, 그것도 원료가공 궐련제조 제품포장 등 담배생산을 위한 완전공정 시설을 갖추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당장 담배인삼공사와 경쟁할 담배사업자가 나타나기는 힘든 실정이다. 가격결정 역시 정부의 통제에서 당장은 벗어나기 어렵다. 독점권 폐지로 원칙적으로는 담뱃값을 담배사업자가 가격결정권을 행사하고 정부에는 사후에 신고하도록 되어 있지만, 아직도 정부가 대주주인 담배인삼공사가 정부 뜻을 거스를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일부 변화의 싹은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우선, 외국계 회사들이 한국에 공장을 세울 목적으로 부지를 물색하고 있다. 영국계 BAT(던힐)는 충북 청원, 충남 연기지역에 공장을 설립한다는 방안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계 필립모리스는 경남 양산에 담배공장을 세울 것이란 소문이 돌기도 했다. 이에 따라 2∼3년 뒤면 외국계 담배회사가 국내에 공장을 차려 만든 담배를 맛보게 될 것이란 얘기도 나오고 있다. 담배제조독점권 폐지로 가격변화 조짐

사진/ 한국 남성의 흡연율은 68%나 된다.(정진환 기자)

사진/ 외국산 담배업체들이 국내 제조공장을 지을 전망이다. 한 외국산 담배업체가 주관하는 테니스대회를 반대하는 시민들.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