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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푸어 반란 집값이 바꾼 선택 우파의 배반도, 좌파의 선전도 아니었다. 경기도 성남 분당 보궐선거의 승패를 가른 것은 ‘집 때문에 고통당하는 30·40대’의 분노였다. ‘4·27 하우스푸어(House Poor)의 난’이다. 정자2동에 사는 대학 교직원 김상원(45·가명)씨는 전형적인 ‘분당 하우스푸어’다. 10년 전 전세를 얻어 분당으로 이사한 뒤 2005년 2억원의 대출금을 끼고 33평형 아파트를 5억5천만원에 샀다. 참여정부 말기의 부동산 광풍에 힘입어 2007년 집값은 7억원대에 근접했다. 부자가 된 것 같았다. 매달 200만원 남짓 지출하는 이자가 가계에 부담이 됐지만 개의치 않았다. 집값 상승분이 이자 부담을 상쇄하고도 남았기 때문이다. 행복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2008년부터 내리막을 탄 집값은 1년 전부터 5억원대 초반에 머물러 있다. 금리가 떨어지긴 했지만 한 달에 170만원씩 지출되는 대출이자는 가족의 살림살이에 절대적 압박이 되고 있다. 2008년 총선에도, 지난해 지방선거에도 참여하지 않던 김씨는 4월27일 저녁,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마련된 투표장을 찾았다. 기표용구를 쥔 김씨의 손은 망설임 없이 ‘기호 2번’을 향했다. 하우스푸어는 ‘집을 갖고 있지만 무리한 대출로 인한 이자 부담 때문에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최근 한국방송 조사를 보면, 수도권에서 집을 가진 사람의 45%가 자신을 하우스푸어로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하우스푸어를 ‘집을 갖고 있어도’ 가계 압박에 시달리는 사람뿐 아니라, ‘집 때문에’ 고통받는 이들로 범위를 넓히면 수도권의 30·40대 대부분이 하우스푸어다. 전세를 살고 있지만 가파른 전세금 상승 탓에 가계 압박을 받거나, 소득의 상당 부분을 내 집 마련 저축에 쏟아붓는 대다수 30·40대 역시 ‘집 때문에’ 고통받기는 매한가지인 까닭이다. 이런 점에서 ‘중산층의 천당’이라는 분당은 ‘하우스푸어의 최대 집결지’이기도 하다. 2005년 인구주택총조사 자료가 말해준다. 보궐선거가 치러진 분당을(분당동, 수내3동, 정자1·2·3동, 금곡동, 구미·구미1동) 지역의 주택보유율은 53%다. 나머지(47%)는 전세를 얻어 산다. 문제는 이 지역의 집값과 전셋값이 모두 전국 최고의 변동률을 보여왔다는 점이다. 국민은행의 주택가격지수를 보면, 분당의 집값은 2008년을 100으로 놓을 경우 2002년 말 68에서 2007년 초 115까지 상승했다가 2011년 상반기 90까지 떨어졌다. 집값은 하락했지만 전셋값 상승폭은 가팔랐다. 2009년 2분기 3.3㎡당 677만원이던 정자동의 전셋값 평균은 1년 새 776만원으로 뛰었다. 14.6%의 상승률이다. 수도권 30~40대 총선·대선 좌우 정보기술(IT) 기업 영업부에 근무하는 공태준(43·가명)씨는 서울 도림동에 살다가 3년 전 분당 수내동의 22평형 아파트에 전세로 입주했다. 당시 1억6천만원이던 전셋값은 지난해 재계약 때 1억9천만원으로 뛰었다. 모자라는 3천만원은 대출로 메웠다. 그가 대출원리금 상환과 주택 마련 저축에 쏟아붓는 돈은 급여의 3분의 2가 넘는다. 공씨는 “분당에 입성하며 느꼈던 ‘중산층’이란 뿌듯함은 어느 순간 좌절감으로 바뀌었다”고 말한다. 물론 분당의 선거 결과를 집값 변수로만 설명하기엔 무리가 따른다. 경제적 처지가 같더라도 투표 성향은 정반대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진욱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분당 하우스푸어의 ‘정치적 해석 능력’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가 주목하는 것은 이곳 30·40대의 높은 학력 수준이다. 이 지역의 대학 이상 학력자 비율은 정자2동(64%)을 제외하면 모두 70%가 넘는다. 30·40대로 한정하면 이 수치는 80%를 상회한다. 이들은 직장 동료나 친구들과 만나 주택이나 교육 문제로 정치적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세대이기도 하다. 이 점은 보험설계사 김용주(41·가명·정자2동)씨의 말에서도 확인된다. “친구들과 만나면 경제와 부동산 문제로 이야기를 하다가 후반부는 항상 정치와 교육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선거 직전 동네 친구들 모임에서도 정부의 주택·교육·경제 정책에 대한 비판과 함께 이번에 본때를 보여야 한다는 분위기가 거셌다.” 2010년 <대한민국 정치사회 지도>란 책을 통해 주택과 투표 행위의 상관관계를 규명했던 손낙구 전 민주노총 대변인은 “수도권의 30·40대 대부분이 집 때문에 고통받는 집단임을 고려하면, 하우스푸어는 내년 총선과 대선의 결과를 좌우할 핵심 변수로 떠오를 게 분명하다”고 말한다. YTN과 한국리서치의 분당을 출구조사 결과는 ‘고학력 하우스푸어’의 정치적 결집이 어느 수준까지 이뤄질 수 있는지 가늠케 한다. 그날 분당을 30대의 72%, 40대의 68.6%가 손학규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난(亂)은 시작됐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천당 아래 분당’은 하우스푸어의 최대 집결지가 됐다. 이명박 정부 들어 경기도 성남 분당 집값은 큰 기울기로 떨어졌고, 전셋값은 가파르게 올랐다. 대출을 끼고 분당으로 들어온 30·40대는 숨이 막혔다.
평화경제 접경은 평화를 원한다 이념 대신 밥을 택했다. 4·27 강원도지사 보궐선거에서 ‘접경지역’ 강원도민 등이 민주당을 택한 것은 남북관계 악화로 인한 경제적 피해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최문순 신임 강원도지사는 지난 4월28일 열린 취임식에서 “지역은 중앙의 종속물이 아니고 독립된 존재 가치를 가진다”며 “지역의 가치를 지키고 높이는 것은 물론 강원도에서 평화와 번영의 메시지가 퍼지도록 힘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최 지사는 또 이 자리에서 알펜시아리조트·구제역 문제와 함께 대표적인 도정 과제로 금강산 관광 재개를 꼽았다. 강원 지역의 특성상 남북관계 개선과 ‘평화’의 문제가 지역 경제 활성화와 연결된다는 취지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간 닦아온 ‘평화경제’를 되살리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최문순 지사 선거캠프 관계자도 이날 <한겨레21>과의 통화에서 “선거운동을 위해 고성군 등을 방문할 때마다 문 닫은 상가가 즐비했다. 특히 고성군은 금강산 관광이 한창일 땐 안내원 등 일자리가 많았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런 점이 분명 선거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접경지역인 고성은 실향민이 많은 보수적인 지역인데도 이런 문제 때문에 민심이 한나라당에서 돌아섰다”며 “남북한 사이 긴장이 고조되는 것은 곧바로 강원도민의 생활에 타격을 준다”고 밝혔다. 이광재 전 지사는 지난해 6·2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이계진 후보를 8.73%포인트로 앞섰지만, 접경지역인 고성·인제·화천·양구에서 각각 15.43%·6.57%·8.51%·6.21%포인트 차로 뒤졌다. 반면에 이번 선거에서 최 지사는 인제·화천·양구 3곳에서 이겼고, 고성과 철원에서 엄기영 한나라당 후보와의 격차를 각각 4.38%, 3.4%포인트로 줄였다. 보수적 이념에 따라 투표해오던 ‘접경지역’ 유권자들이 경제적 이익을 투표 기준으로 바꾼 셈이다. MB 이후 침체된 고성군 경제 ‘남북관계=경제=표심’임을 보여주는 사례로 강원도의 금강산 관광 코스 관련 지역이 거론된다. 금강산 육로 관광의 집결지인 화진포 아산휴게소 주변에 있는 속초, 양양, 고성, 홍천 등이다. 금강산 관광객이 이 지역들에 잠시 들러 숙식을 해결하고 특산물도 구입해왔는데, 이명박 정권 뒤 상권이 붕괴했다는 게 최 지사 캠프 쪽 분석이다. 실제로 고성군청 통계를 보면 현내면과 고성군 전체의 숙박·음식 업체 수가 김대중·노무현 정부 이후 감소했다. 숙박·음식 업체는 2003~2006년 ‘1002곳→1016곳→1005곳→1014곳’이었으나 2008년 993곳으로 줄었다. 숙박·음식업 종사자도 2003년 2815명에서 2008년 2381명으로 크게 줄었다. 2011년 현재 일자리를 잃은 숙박·음식업 종사자 수는 더 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재·보궐 선거에서 민주당 소속 정상철 양양군수와 유태호 태백시의원이 승리한 것도 이런 해석에 힘을 싣는다. 강원도와 경기도에서 북한과 휴전선을 맞댄 ‘접경지역’의 표심 변화는 지난해 6·2 지방선거 때부터 거론됐다. ‘한나라당 텃밭’이던 파주시에서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는 44%를 득표했다. 55.9%를 얻은 김문수 지사에 뒤졌지만 예전같이 큰 차이는 아니었다. 파주시장에는 민주당 후보인 이인재 시장이 당선됐다. 김연철 인제대 교수는 “접경지역 주민들은 관광업과 땅값에 민감하다”며 “남북관계 악화로 관광업이 타격을 받고 땅값도 떨어졌다. 접경지역에서는 정부의 대북정책이 곧바로 경제와 밀접하게 연결된다”고 분석했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투표학습 효과 정치를 바꾼 경험 야당은 승리감에 환호했고, 여당은 참담함에 고개를 떨어뜨렸다. 4·27 재·보궐 선거가 가져온 결과다. 그런데 이 결과로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야당은 진짜 안심해도 될까? 여당은 진짜 회생이 불가능할까?
선거운동 마지막 날인 4월26일 최문순 민주당 강원지사 후보가 한 표를 호소하고 있다. 남북관계가 경색될수록 강원도 접경지역 주민들의 삶은 팍팍해졌다. 금강산 관광객의 발길이 끊기자 길목의 가게가 문을 닫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