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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하지 마!’ 대신 ‘안 하면 좋겠어~’

동반성장위, 중소기업 적합업종 및 품목 선정 진행… 재벌의 무분별한 중소기업 시장 진출 제동 기대 속 강제 없어 효과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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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5-03 17:53 수정 : 2011-05-09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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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의 무차별적인 중소기업 시장 진출에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동반성장위원회는 4월29일 6차 전체회의를 열어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 가이드라인을 확정했다. 여기에는 △제도 운영 효율성(시장참여 중소기업 수, 시장 규모) △중소기업 적합성(1인당 생산성, 중소기업 종사자 비중) △부정적 효과 방지(소비자 만족도, 협력사 피해, 수입 비중, 대기업의 수출 비중) △중소기업 경쟁력(매출액 대비 투자 비중, 중소기업 경쟁력 수준) 등 4개(세부 11개) 기준이 담겨 있다.

8월, 업종 및 품목 선정해 고시 예정

동반성장위원회는 5월 한 달간 중소기업의 신청을 받아 가이드라인에 따라 심사를 한 뒤 8월 중소기업 적합업종 및 품목을 선정할 계획이다. 이어 중소기업청은 9월에 청장 이름으로 고시를 발표하게 된다.

지난 4월29일 오전 서울 반포동 팔래스호텔에서 열린 6차 동반성장위원회에서 정운찬 위원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가이드라인을 선정하기까지 동반성장위원회는 진통을 겪었다.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주장이 엇갈렸기 때문이다. 이날 전체회의에 참석한 서병문 비엠금속 대표이사는 “대기업, 중소기업, 학계 등이 참여한 실무위원회가 작성한 안인데도 대기업 쪽 관계자들은 이미 진출한 기업은 예외를 두자거나 적합업종 기준을 줄이자는 등 반발했다”고 말했다.

대기업의 반발에도 가이드라인이 확정된 것은 대기업 탓이라는 지적이 많다. 이명박 정부 들어 대기업의 몸집이 엄청 커졌는데도 고용이나 투자는 크게 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반면에 중소기업은 일궈놓은 시장을 잃는 피해를 입었다.


예를 들면 한방샴푸나 스팀청소기는 중소기업인 두리화장품과 한경희생활과학이 개척한 분야지만 해가 갈수록 시장점유율이 줄고 있다. 시장이 커지자 아모레퍼시픽이나 LG생활건강, 애경 등이 한방샴푸를,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스팀청소기를 시장에 내놓았기 때문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가능성 있는 시장인 재생타이어, 막걸리, 상조업 등 다양한 분야에 대기업이 진출했다.

이런 상황 전개와 맞물려 대기업의 계열사는 늘어났다. 2009년 4월에는 자산총액 5조원 이상인 기업집단이 48개, 계열사는 1137개였다. 하지만 2년 뒤인 2011년 4월 현재 55개 기업집단에 1554개의 계열사가 있다. 평균 계열사가 23.7개에서 28.3개로 늘어났다. 정부 정책도 대기업의 시장 확산에 도움을 줬다. 2006년 대기업이 중소기업 시장에 진출하는 것을 막는 ‘중소기업 고유업종제도’가 폐지된 데 이어 출자총액제한제도 2009년 사라졌다. 출자총액제한제는 자산총액이 10조원 이상인 기업집단 소속이자 자산총액 2조원 이상인 회사는 순자산액의 40%(출자한도액)를 초과해 다른 회사의 주식을 취득하거나 소유하는 것을 금지한다. 이렇게 풀어줬는데도 대기업에 의한 고용은 늘지 않았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1999년 이후 10년간 중소기업에서는 347만 개의 일자리가 생겨났지만 대기업에서는 거꾸로 49만 개가 줄어들었다.

이 때문에 대기업을 제어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가 나오는 것이다. 중소기업연구원의 김세종 선임연구위원은 “그동안 정부 개입이 대기업 투자를 막는다고 ‘정부 실패’를 주장해 중소기업 고유업종제도 등을 없앴다”며 “오히려 대기업이 시장을 독식해 중소기업이 고사하는 시장의 실패가 나타나 가이드라인 등의 정부 개입이 필요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따르지 않아도 제재 없어

진통 끝에 나온 결론이지만, 효과는 미지수다. 강제성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 말라’ 대신 ‘하지 않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따르지 않아도 제재는 없다. 지난 2월 경기 파주에 문을 연 ‘신세계첼시 프리미엄 아울렛’은 중소기업청의 일시정지 권고에도 지금도 영업 중이다. 동반성장위원회의 갈 길이 아직도 멀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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