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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재벌가 오누이 “핏줄보다 돈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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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7-1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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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그룹 남매의 ‘엠씨엠 사업권’ 다툼… 위탁경영 합의서 효력 놓고 팽팽한 대립

사진/ 엠씨엠은 성주인터내셔날의 핸드백·지갑 사업부서이다. 사진은 성주인터내셔날 매장 모습.(강창광 기자)
재벌가 혈육 사이의 재산다툼은 조금의 싹만 보여도 단숨에 세상사람들의 관심사로 떠오른다. 평법한 집안의 ‘좀스런’ 재산싸움과는 달리, 기업의 경영권과 수많은 종업원들의 ‘밥줄’이라는 이해관계가 끈끈하게 얽혀 있기 때문일 터이다.

대성그룹 김영대 회장과 막내 여동생 김성주 (주)성주인터내셔날 사장 사이의 ‘엠씨엠(MCM) 사업권’을 둘러싼 공방은 재벌가 혈육 사이의 재산다툼이란 점을 빼더라도 흥미를 끄는 요인들이 꽤나 많다.

오빠의 재산찬탈인가, 여동생의 배은망덕인가


김영대 회장이 두 남동생과 벌인 경영권 다툼의 열기가 채 식기도 전에 김성주 사장과 정면으로 대립하는 모양새가 나타남에 따라 ‘이번엔 여동생과?!…’라는 한탄을 자아내며 즉각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오누이간 다툼의 한축이 자수성가한 여성 경영인의 대표격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김성주 사장이란 사실도 눈길을 잡아끄는 요인이다.

김성주 사장은 재벌(대성그룹)의 딸로 태어나 주위의 별다른 도움없이 성주인터내셔날을 차려 독립한 스타 여성 경영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경력도 화려하다. 지난 97년 세계경제포럼(WEF)에서 ‘차세대 세계지도자 100인’ 가운데 1명으로 꼽혔으며 그해 홍콩에서 열린 세계여성지도자회의 총회에서 아시아 대표 연설자로 뽑히기도 했다. 지난해 5월에는 184년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동부 명문인 앰허스트대학이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에게 수여한 명예박사 학위를 받은 바 있다. 이런 경력은 한 방송사 프로그램인 <성공시대>에 소개되기도 했다. 언론의 조명을 받을 만한 요소를 이만큼 골고루 갖추기도 어려울 듯하다.

이런 김 사장과 큰오빠 김 회장 사이는 이제 하늘과 땅만큼이나 멀어졌지만, 한 가지 일치하는 점이 있다. 두 사람은 입이나 맞춘 듯이 “이번 싸움이 ‘단순히’ 오누이 사이의 재산다툼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김 회장쪽은 “(이번 싸움에 대해) 은혜도 모르는 여동생의 배은망덕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일축하는 반면, 김 사장은 “부도덕한 대기업의 중소기업 찬탈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아버지나 다름없이 듬직할 큰오빠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듯한 막내 누이동생이 어쩌다 이렇게 막가는 사이가 됐을까. 그까짓 재산이 뭐기에. 오빠에게, 또는 여동생에게 그냥 줘버리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법도 하다.

김 회장과 김 사장 사이의 다툼의 대상으로 부각돼 있는 엠씨엠은 성주인터내셔날 매출의 60%를 차지하는 사업부문이다. 성주인터내셔날은 이브생로랑, 구찌 등 해외 명품브랜드를 국내에 들여와 판매해온 패션유통기업으로 김성주 사장이 지난 91년에 설립했다. 지금은 영국의 막스앤스펜서(M&S), 스위스의 엠씨엠(MCM: 핸드백·지갑 브랜드)과 프랜차이즈 계약을 맺고 있다. 막스앤스펜서 (의류)제품은 영국 및 홍콩에서 수입, 판매하고 있으며 엠씨엠 상품은 대성산업(주)에서 하청생산해 성주인터내셔날에서 판매하고 있다.

겉으로 볼 때 성주인터내셔날의 한 사업부인 엠씨엠은 의당 김성주 사장의 관할 아래 놓여야 마땅할 터인데, 왜 다툼의 대상이 됐을까. 이와관련해선 양쪽 주장의 차이가 워낙 커 지금으로선 한마디로 단정짓기 어려운 실정이다.

“적자기업 살리니까 잇속 챙기려 한다”

우선 김영대 회장쪽 얘기를 들어보자. 김 회장쪽을 대변하고 있는 이은우 대성산업 해외사업부장은 “외환위기 당시 자금난에 몰린 김성주 사장의 요청에 따라 대성산업이 엠씨엠 브랜드 영업을 위탁경영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 부장은 “지난해 3월 작성한 합의서에 따라 엠씨엠 사업부문은 대성산업이 맡아 적자상태를 흑자로 되돌려놓았다”고 강조했다. 요약하자면 외환위기 당시 사실상 부도상태에 빠진 걸 건져주었더니 이제 와서 보따리내놓으라고 하는 격이라는 것이다. 이 부장은 양쪽이 합의한 문서에 따르면 사업권은 2003년 말까지 대성산업이 갖기로 돼 있고 그 이전에라도 엠씨엠 사업부문 ‘기여이익’(법인세전 순이익)이 65억원에 이르면 아무런 조건없이 대성산업 소속으로 이전해주기로 돼 있다고 덧붙였다. 올해 4월까지 기여이익 합은 약 50억원에 이르고 있다고 이 부장은 밝혔다.

김영대 회장쪽에서 제시하는 합의서는 두 가지. 98년 12월 작성된 1쪽짜리와 2000년 3월 작성된 3쪽짜리 합의서가 그것이다. 98년의 합의서는 ‘김성주의 인터내셔날 주식 3만9천주(65%)에 대한 주주권 행사와 의결권 모두를 2003년 말까지 김영대에게 조건없이 위임한다’는 것을 주내용으로 하고 있다. 2000년 합의서는 ‘엠씨엠 사업은 대성산업의 김영대 부회장의 통제 아래 관리하며 2000년 1월1일부터 발생하는 기여이익(법인세전 순이익)이 65억원에 이르게 되면 엠씨엠 사업은 대성산업 소속으로 이전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합의서 문구대로라면 김영대 회장쪽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김성주 사장쪽에서 2003년 말까지는 아무런 권리도 주장할 수 없는 구조로 짜여져 있기 때문이다.

김성주 사장은 합의서의 존재는 인정하지만, 효력은 없다고 주장한다. 두 합의서 모두 강압적인 상태에서 작성된 것이며 특히, 98년의 합의서는 이사회 결의도 거치지 않고 김영대-김성주 ‘개인’ 사이에 맺어진 사적 계약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부도 협박에 잠시 맡겼을 뿐이다”

사진/ 성주인터내셔날 직원들이 대성산업이 관리하는 엠씨엠 관련서류를 가져가는 과정에서 승강이를 벌이고 있다.
“97년 외환위기 때 성주인터내셔날은 큰 어려움에 빠졌습니다. 경기불황과 엄청난 환율인상, 고금리로 290억원의 부채가 발생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당시 구찌 본사에서 프랜차이즈를 회수해가면서 250억원을 보상해줘 전액을 부채상환에 충당했습니다. 나머지 부채 중 30억원을 대성산업의 지급보증으로 금융기관에서 차입, 운용자금을 조달했고요. 이 지급보증이 엠씨엠 사업권의 위임을 불러온 빌미가 됐던 것입니다.”김 사장은 이와 관련해 “엠씨엠 사업권을 대성산업에 맡기기 전에 성주인터내셔날은 대부분의 부채를 갚아 정상화돼 있었다”며 “김영대 회장쪽에서 적자 사업부문을 흑자상태로 만들어놓았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반박했다. 김 사장은 “성주인터내셔날을 정상화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과정에서 갑상선 질환, 십이지장궤양, 위염 등 갖가지 병을 얻어 도저히 사업을 끌고나가기 어려워, 큰오빠를 믿고 사업을 잠시 맡아달라고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불리하기 짝이 없는 합의서에 왜 사인을 했느냐는 질문에 대해 김 사장은 “지급보증을 고리로 삼아 합의서에 사인을 하지 않으면 부도를 내겠다고 으름장을 놓아 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98년 12월20일이었습니다. 큰오빠가 윤당빌딩(서울시 강남구 신사동) 사무실로 저를 부르더군요. 회사운영을 맡기기로 한 뒤였습니다. 영문도 모르고 찾아갔더니 합의서를 내밀면서 5분 안에 사인하라고 몰아붙이더군요. 한편으로는, (합의서 내용대로) 주식의결권과 대표이사직을 넘겨줘야 직원들을 제대로 통제할 수 있다는 식으로 설득도 했고요. 너무 기가 막혔지만 회사를 뺏길 것이란 걱정은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그때까지도 오빠를 믿는 구석이 조금은 남아 있었거든요.”

“이듬해(99년)에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회사를 떠나 잠시 쉬려고 하던 참에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초빙교수로 와달라는 제의를 받았습니다. 그해 8월27일 떠날 계획 아래 비행기표까지 구해뒀는데… 큰오빠가 출국 며칠 전에 갑자기 주식 40%를 무상으로 내놓으라고 하더군요. 기업합병(별도 회사로 분리돼 있던 막스앤스펜서를 성주인터내셔날로 합친) 과정에서 생긴 손실을 한해(98년) 적자로 모두 반영해 처리한 데 따라 감자(자본금 감축)를 했기 때문에 어차피 주식값은 제로(0)상태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때부터 저는 큰오빠와 저 사이에 생긴 불평등 계약을 아버님(고 김수근 명예회장)에게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버님은 당연히 큰오빠에 대해 노발대발했고요.”

치열한 공방 속에 인신공격도 난무

김 사장은 백번 양보해 합의서의 유효성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엠씨엠 사업부문을 위임한 계기가 됐던 지급보증이 해소됐기 때문에 엠씨엠 사업권은 ‘당연히’ ‘즉각’ 자신에게 되돌려져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 6월 ㅈ은행에서 30억원을 꿔 대성산업의 지급보증이 붙어 있는 차입금을 다 갚았기 때문에 대성산업에서 권리를 주장할 아무런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법적으로는 이미 엠씨엠에 대한 결재권도 확보했다고 김 사장은 강조했다.

김영대 회장쪽에선 강압에 의해 합의서를 작성했다는 주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거짓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아울러 합의서 문구에서 볼 수 있듯 2003년 말까지 대성산업이 사업권을 갖기로 한 것은 지급보증 해소와는 별개의 사안이기 때문에 지급보증 해소가 사업권 위임의 원인소멸이란 주장은 억지라고 덧붙이고 있다.

김 회장쪽은 “그동안 엠씨엠 사업부문의 이익은 지난해 3월 합의서에 따라 모두 성주인터내셔날 운영자금 및 채무변제에 사용돼왔으며 2000년 1월부터 올해 4월까지 약 50억원에 이르는 기여이익까지 낸 터에 채무보증을 해소했으니 엠씨엠 사업부문을 돌려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대단히 무책임한 행태”라고 밝히고 있다. 김성주 사장이 자수성가한 성공 경영인이란 평가도 완전히 잘못된 것이란 깎아내리기도 서슴지 않는다. 대성산업 관계자는 “김성주 사장은 걸핏하면 아버지로부터 1원 한푼 도움을 받지 않았다고 얘기하는데, 사업 시작할 때 아버지와 오빠들이 출자를 해줬으며 지급보증을 통한 지원도 아끼지 않았던 사실은 뭐냐”고 반문했다.

합의서를 작성한 경위, 엠씨엠 사업부문을 대성산업에 맡긴 이유, 합의서에 대한 해석, 엠씨엠 사업부문의 자금운용 등 핵심 쟁점들에 대해 양쪽의 주장은 너무나 극명하게 엇갈려 도저히 근접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단순히 오누이 사이의 재산다툼이 아니라는 주장과 합의서를 썼다는 사실에 대한 인정을 빼놓고는 도무지 말이 맞는 구석이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없다. 또 제3자가 객관적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은 데다 중재자도 마땅치 않다. 아버지 김수근 회장은 이미 세상을 뜬 실정이고 김영대 회장의 동생이자 김성주 사장의 오빠인 김영민·김영훈 회장은 이 일에서 발을 빼고 있다. 합의서(2000년 3월)에 이름이 올라 있어 당사자의 하나일 듯한 김영훈 회장과 접촉을 시도했으나 여직원을 통해 “다른 일로 바빠 거기에는 신경 쓸 처지가 못 된다”는 짤막한 답변이 돌아왔을 뿐이다.

발빼는 다른 형제들, 법정으로 갈 듯

그렇다면, 원만한 해결의 가능성은 없는 것일까.

김영대 회장쪽은 합의서 문구와 상관없이 김성주 사장이 일정한 요건을 갖추면 엠씨엠 사업권을 넘겨주겠다고 밝히고 있다. 일정한 요건이란 스위스 엠씨엠 본사로부터 동의(위임권 환원에 대한)을 받아오고, 100여명에 이르는 직원들의 고용을 승계한다는 보장을 하는 것이다. 문제는 두 요건 모두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점이다. 엠씨엠 본사쪽은 엠씨엠 사업의 독점권은 성주인터내셔날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대성그룹의 관리운영을 전제로 달고 있는 등 태도가 명확하지 않다. 직원들의 고용승계 또한 난관이 많다. 김영대 회장의 관리 아래로 들어간 뒤 새로 뽑은 이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김성주 사장과는 관계가 껄끄러운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서다. 오누이 사이의 싸움이 법정으로 갈 가능성이 높을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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