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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우울한 경제, 청신호 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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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7-04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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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성장률에도 낙관적 기대 많은 하반기 경제… 뾰족수 없어 지속적 구조조정에 관건

사진/ 지속적인 경기상승 국면에 접어들 것인가. 하반기 경제전망의 핵심이슈로는 자동차, 철강 등의 수출이 꼽힌다.(이용호 기자)
‘하반기 경제가 어떨 것 같습니까? 언제쯤 형편이 좋아지는 겁니까?’

일반 서민들에게는 가장 궁금한, 경제학자들에게는 가장 곤혹스러운 질문일 것이다. 앞으로 이러저러하리라는 예견은 ‘늘’ 틀릴 위험을 안고 있으며, 더욱이 숫자가 덧붙는 전망작업은 ‘절대로, 예외없이 절대로’ 틀릴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갖고 있다.

그런데도 앞날에 대한 궁금증은 끊임없이 일고, 그에 따라 경제전망 작업도 일상처럼 끊임없이 이어진다. 막상 겪어보면 전망과는 다른 현실 앞에서 ‘또, 틀렸구먼?!’이란 빈축을 받으면서…. 다른 한편으론 이렇게 빈축을 한 이들 역시 또, 앞으로 어떻게 될까 하는 궁금증의 쳇바퀴에 빠져든다.

성장률 떨어지고 물가 올라갈지라도


경제 점(占)을 잘 봐줄 용한 점쟁이가 어디 없을까?

이런 상상을 해보자. 내가 만약 대통령이라면. 누구를 불러다놓고 앞날의 경제를 물어보게 될까? 아마 경제 부총리가 우선 꼽히지 않을까 싶다. 그 자리에 나라 안팎의 모든 경제정보가 집중될 터이니 그래도 가장 용한 점괘를 내놓지 않겠는가.

진념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을 불러 올 하반기 경제가 어떨 것인지 들어보자.

“올해 연간 경제성장률은 당초 5∼6%에서 4∼5%로 낮춰 잡고 있습니다. 이렇게 거시경제지표를 수정하고 하반기에는 경기회복에 전력을 쏟겠습니다. 실업률 목표도 예상보다 낮은 경제성장에 맞춰 3%대에서 4%대로 바꾸고 물가 상승률은 4%대 초반으로 전망되나 3%대 후반에서 억제하도록 노력할 계획입니다. 경상수지 흑자규모는 50억∼70억달러에서 100억달러 이상으로 높여 잡았습니다.”(6월27일, 청와대 보고)

사진/ 소비자들의 가계는 주름살이 늘어만 간다. 하반기에도 물가 오름세는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강창광 기자)
숫자의 나열이어서 느낌이 확 와닿지는 않지만, 뭔가 썩 좋지는 않다는 생각이 든다. 거두절미하고 요약하자면, 애초 예상보다 성장률은 떨어지고, 물가는 올라간다는 얘기 아닌가. 지엄한 대통령 앞에서 장관이 근거없이 말했을 리는 없을 테고. 가능한 한 경제사정을 긍정적으로 보고 싶을 정책당국자의 처지를 감안할 때 속으로는 더 나쁘게 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법도 하다.

경제 점쟁이가 어디 부총리뿐이랴. 한국은행,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용한 축에 든다.

한국은행의 점괘는 어떨까? 한은은 지난해 말 전망에서 올해 경제성장률을 5.3%, 물가상승률을 3.7%로 잡은 바 있다. 그러던 것을 6월21일 금융통화위원회에 보고한 전망자료에서는 성장률은 3.8%로 1.5%포인트 낮추고, 물가는 4.4%로 0.7%포인트 높였다. 경상수지는 45억달러 흑자에서 1.8배인 130억달러로 크게 늘려 잡고 있다. ‘성장-물가’의 조합에서 볼 때 한은의 전망이 좀더 어두운 편이다.

한국개발연구원은 7월 중순께 수정 경제전망치를 내놓을 예정인데, 전반적인 기조는 한은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처럼 애초 예상보다 성장률은 떨어지고, 물가는 올라갈 것으로 예견되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경제가 자꾸 나락으로 빠져드는 비관적인 징조일까?

한국은행 정명창 조사국장은 (올해 경제성장률을 3.8%로 하향조정한데 대해) “미국경제가 예상 밖으로 부진한 데 따른 영향일 뿐 우리 경제 자체의 흐름에 어떤 이상이 생긴 것은 아니다”고 진단한다. 정 국장은 “지난해 성장률이 8.7%로 높아 올해 성장률이 반사적으로 낮게 나타나는 측면도 감안해야 한다”며 “하반기중 경제가 서서히 나아질 것으로 예상하는 만큼 성장률 하향조정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물가상승률을 높게 본 것에 대해선 “하반기에도 물가는 오름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이지만 상승폭은 차차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물가상승 요인이었던 원화환율이 4월 중순을 고비로 안정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하반기에도 대체로 안정을 유지할 것이라는 데 바탕을 두고 있다.

바닥 찍은 뒤 오름세 보일 것으로 예측

사진/ “거시경제지표를 수정하고 경기회복에 전력을 쏟겠습니다.” 진념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국무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청와대사진기자단)
대외 부문이 외환위기를 맞은 97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양호하다는 것도 긍정적인 신호로 꼽힌다. 경상수지 흑자추세가 이어지고 있고, 동남아시아의 경제불안, 최근의 환율변동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주식투자자금이 빠져나가는 낌새가 없다. 또 외환보유고는 1천억달러 수준에 이르고 있다. 따라서 장기침체 또는 위기국면의 시작이라기보다는 정상궤도로 복귀하는 모습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올해 3분기에 경기는 저점에 이른 뒤 상승 분위기를 탈 것이란 희망적인 전망도 적지 않다.

한국은행은 미국경제의 완만한 회복과 최근 기업 및 소비자심리 개선 효과가 나타나면서 4분기부터는 경제성장률이 5% 수준으로 높아질 것으로 전망한다. 또 소비자물가는 하반기 들어 오름세가 둔해지면서 4분기에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줘 3%대 상승에 그칠 것이란 전망이다. 한국개발연구원, 삼성경제연구소, 현대경제연구원 등 경제연구기관들도 경기 저점을 대략 3분기로 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경제가 3분기에 바닥을 찍고 4분기부터는 다소나마 좋아질 것이란 공감대가 넓게 퍼져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낙관론을 경계하는 논리도 만만치 않다.

우선, 세계경제가 급속히 둔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한국경제에 끼치는 영향이 대단히 큰 미국의 경우 벤처버블에 바탕을 둔 주가상승 및 부의 증대효과가 없어지면서 내구 소비재를 비롯한 총수요가 급속히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KDI 국제정책대학원 유종일 교수는 “1980년대 이후 미국을 빼놓고는 제대로 경제성장을 이룬 나라가 없는 상태에서 벤처붐에 의한 버블의 붕괴로 미국경제가 약해지면 세계경제에 커다란 타격이 예상된다”고 진단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경제구조가 변해, 예전과 달리 경기하락을 반전시킬 적절한 경기부양책을 찾기도 어렵다. 금리는 이미 충분히 낮고 통화량도 넉넉해 팽창적인 통화정책에 의한 경기부양은 실효성이 없다는 것이다. 또 과거에 많이 활용된 건설투자 확대 방식이 있는데, 현재 주거용 및 사무용 건물이 전반적으로 초과공급 상태를 보이고 있어 이 또한 뜻대로 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외환보유고가 1천억달러에 이르고 있다지만, 지속적 경기하강으로 대외신인도가 흔들리면 이 또한 확실한 안전판은 되지 못한다. 타이, 인도네시아, 필리핀이 지난해 말 각각 322억달러, 281억달러, 149억달러의 외환보유고를 갖고 있어 경제규모에 비해 결코 적지 않은데도 국제 금융시장에서 외면당하고 있는 현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사실, 하반기에 우리 경제가 회복될 것이란 기대섞인 전망 뒤에도 여러 가지 단서가 깔려 있어 마냥 낙관론이라고만 보기 어렵다. 현대·대우계열사를 비롯한 부실기업의 처리 등 구조조정이 원활히 추진될지, 수출이 뜻대로 회복될지 여부에 따라 낙관론은 단번에 비관론으로 뒤집힐 수도 있다. 유가상승, 미국경제 부진 등 외생변수에 따라 지난해 말에 했던 경제전망이 적지 않게 수정된 현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단서 깔린 낙관론… 상시적 구조조정을

따라서 현재의 경제상황은 전체적으로 크게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앞으로 언제든 악화할 가능성은 남아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지속적인 구조조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이동철 KDI 연구위원은 “구조조정은 자원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미시’경제 대책이며, 경기조절은 경기에 대한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한 ‘거시’경제 대책”이라며 “구조조정은 호·불황에 관계없이 상시적으로 추진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 위원은 구조조정이 따르지 않는 경기부양으로 중장기적인 경제성장을 이룰 수 없다는 점에는 거의 이견이 없다고 덧붙였다.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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