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헌재 전 재경부 장관은 금융감독위원장 시절부터 외부인사를 영입해 '경제 두뇌 사단'을 형성했다)
8·7개각으로 이헌재라는 걸출한 스타 장관은 퇴장했다. 이 전 장관이 퇴진하면서 관심의 초점은 이른바 ‘이헌재 사단’의 진로에 쏠리고 있다. 이헌재 사단이란 이 전 장관이 금융감독위원장 시절 외부에서 영입해온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이 장관은 물러났지만 금감위 안팎에 포진하고 있는 이헌재 사단은 아직 건재하다. 맡고 있는 업무가 막중할 뿐 아니라 능력을 인정받고 있어 새 경제팀에서도 요긴하게 쓰일 것이란 전망이 많다. 하지만 새 경제팀과 색깔이 맞지 않아 스스로 그만두는 경우가 생겨날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이를 뒷받침하듯 소임만 끝나면 떠나겠다고 공공연히 밝히는 이들도 있다. 
이헌재 사단으로 분류되는 이들 중 인연이 가장 질긴 사람은 이성규 기업구조조정위원회 사무국장이다. 지금은 대우구조조정추진협의회 의장을 맡고 있는 오호근 전 기업구조조정위원장과 호흡을 맞춰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을 초창기부터 이끌어왔다. 치밀하면서도 무리없는 일처리로 채권단쪽으로부터도 호평을 받고 있다. 
 
소임 끝나면 기업체 등으로 떠날 수도 
 
  (사진/위쪽부터 오호근 대우구조조정추진협의회의장/ 이성규 기업구조조정위원회 사무국장/ 최범수 금감위 자문팀장/ 서근우 금감위구조개혁기획단 심의관) 
이헌재 장관과 이 국장간의 인연은 1985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당시 이 장관은 한국신용평가 초대 사장이었는데 이 국장이 한신평 창립멤버로 참여한 것. “대학원(서울대 경제)을 마치고도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던 터에 한신평이라는 회사에서 사람을 뽑는다는 공고를 보고 원서를 냈죠. 총무부장이란 사람을 만났더니 이력서를 보고는 다른 데 더 알아보고나서 여기로 오라고 해서 좀 황당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 국장은 “이헌재 사장과 첫 대면, 면접했던 때의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면서 “몇십개 업체에 대한 평점을 즉석에서 척척 내리는 신기에 가까운 일처리 솜씨를 보여줬다”고 기억했다. 이 국장은 이후 제일제당 영상사업부, 음반회사인 EMI코리아 등으로 자리를 옮겨다니며 특이한 경력을 쌓았는데 고비마다 이 전 장관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 
이 국장은 98년 3월 1년 정도 미국서 공부할 요량으로 비자까지 받아놓고 준비하던 중에 한신평 시절부터 이 국장을 눈여겨본 이헌재 당시 금감위원장으로부터 부름을 받고 금감위 매크로팀장에 발탁됐다. 그해 6월부터는 구조조정위 사무국장으로서 기업구조조정작업의 한축을 이룬 워크아웃을 설계하고 틀을 짰다. 이 국장은 “워크아웃 작업을 마무리짓는 대로 빨리 뜨고 싶다”면서도 “금융감독기관이나 금융기관에는 가지 않을 것이며 일반 기업체로 가고 싶다”고 말했다. 
금감위의 기업구조조정 작업을 실무적으로 총지휘해온 서근우 국장(구조개혁기획단 제2심의관)도 비교적 일찍 이 전 장관과 인연을 맺은 경우. 이성규 국장보다 2년 늦은 87년 한신평에 입사하면서부터였다. 한신평 입사는 지도교수였던 정운찬 교수 추천에 따른 것이었다. 정 교수와 이 전 장관은 고교(경기고) 동문으로 이때부터 잘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고 한다. “정 교수께서 ‘한신평이라고 사장이 아주 똑똑한 회사가 있으니 젊을 때 한번 같이 일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라고 하대요.” 
물론 이때의 인연이 곧바로 금감위 영입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서 국장이 금감위에서 일하게 된 데는 아주 우연한 계기가 작용했다. 지난 97년 12월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 시절 비상경제대책위원회(위원장 김용환)에 관여하고 있던 김민석 의원(민주당)이 실무팀을 꾸리는 과정에서였다. 김 의원은 실무팀의 일원으로 금융연구원에 있던 지인을 뽑으려 했는데 그 사람이 서근우 국장(당시 금융연구원 부연구위원)을 대신 추천해 비대위에서 일하게 됐고 금감위로 이어졌다. 당시 이 전 장관은 비대위 실무기획단장으로 활약하고 있었다. 서 국장은 금감위 출범(98년 4월 1일) 때부터 대우그룹을 비롯한 굵직굵직한 기업구조조정 작업에 뛰어들어 실무를 전담해왔다. 지금은 서 국장의 역할이 많이 축소돼 금감원으로 이관된 업무가 많다. 서 국장실에 대거 파견나와 있던 금감원 실무자들도 대부분 복귀했다. 이 때문에 서 국장이 조만간 친정인 금융연구원 등으로 옮길 것이란 추측도 나돌고 있다. 
 
구조조정 전반을 이끌고 있지만… 
(사진/위쪽부터 이성남 금감원 검사총괄실장/ 오갑수 금감원 부원장보/ 장기영 금감원 전문심의위원/ 최장봉 금감원 부원장보) 
 대우구조조정추진협의회 오호근 의장은 중량감 등 여러 면에서 이헌재 사단으로 분류하기엔 적절치 못한 점이 있으나 이 전 장관의 강력한 권유에 따라 기업구조조정위원장을 맡아 워크아웃을 이끌어온 인연은 무시할 수 없다. 이 장관과 오 의장은 경기고 선후배(오 의장이 2년 위) 사이일 뿐 이렇다할 친분이 없었다. 첫 공식적인 만남은 85년. 당시 한국종금 사장이었던 오 의장은 한신평 출자기관의 대표로서 이헌재 한신평 사장을 처음 대면했다. 볼보자동차(스웨덴)의 어드바이저(자문역)로 일하고 있던 98년 6월 이헌재 금감위원장의 요청으로 기업구조조정위원장을 맡게 된다. 
오 의장은 대우자동차 매각작업이 마무리되는 대로 의장직을 떠날 생각이다. 빠르면 9월 초쯤 대우차 매각작업이 최종 매듭지어질 것으로 보이며 이때쯤 오 의장의 거취도 결정될 전망이다. 오 의장의 오른팔 격인 이성규 국장은 “아마 외국계 회사로 가게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지난번 개각에서 금감위원장이 교체된 뒤 특히 주목을 끌고 있는 김기홍 금감원 부원장보도 이헌재 사단의 일원으로 볼 수 있다. 김 부원장보는 충북대 교수로 재직하던 중 금감원 출범 때(99년 1월) 영입돼 이헌재 금감위원장 휘하에서 보험사 구조조정 작업을 이끌어왔다. 지금은 삼성·교보 생명 상장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금감위원장이 바뀐 데 따라 주목을 끈다는 것은 생보사 상장 문제가 신임 위원장의 개혁성을 평가하는 잣대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생보사 상장은 거대 그룹 삼성과 한판 전쟁을 치러야 할 사안이어서 ‘현대 사태’가 끝난 뒤 쟁점으로 떠오를 공산이 크다. 이근영 신임 위원장 앞에 가로놓인 난제 중 난제인 셈이다. 
김 부원장보는 “보험사 계약자에게 제 몫을 찾아줘야 한다는 소신에 변함이 없으며 전력을 기울여 이를 관철시킨 뒤 학교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흔히 김 부원장보는 이헌재 전 장관과 조세연구원 시절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둘 다 조세연구원에 잠깐 몸담은 적은 있으나 재직기간이 어긋나 만나지 못했다. 금감원 출범 전 금감위의 보험사 경영평가위원회에서 일하면서 이 전 장관 눈에 들었다는 게 정설이다. 재미있는 것은 98년 12월 금감원 부원장보에 내정된 사실을 제일 먼저 알고 알려준 이가 삼성생명의 임원이었다는 점이다. 김 부원장보는 그때 ‘삼성의 정보력’에 새삼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최범수 금감위 자문팀장은 금융, 기업 할 것없이 구조조정 전반에 대한 고언을 하는 역할을 맡아왔다. “금감위 출범할 때니까 98년 4월이었겠지. 이헌재 위원장이 불러서 갔더니 뜬끔없이 ‘나 내년에는 여기 없을지도 몰라’ 그러데. 그래서 ‘알고 있습니다’고 했지. 그랬더니 대뜸 ‘너 내 자문관이야’ 하더라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여기(금감위)를 못 빠져나가고 이렇게 있어, 허허.” 최 팀장은 이헌재 위원장이 말한 ‘여기’는 한국을 말한 것이었으며 구조조정을 세게 하다보면 여론에 밀려 위원장을 그만둬야 할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는 비장함을 표현했던 것 같았다고 말했다. 김영삼 정권 시절 금융개혁위원회에서 일하며 이헌재 장관과 인연을 맺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파견나와 있는 신분이며 수틀리면(?) 언제든 복귀할 자세가 돼 있다. 
 
“시대를 풍미한 인물과 일한 소중한 경험” 
 
금감원 출범 때 ‘홍일점’ 국장으로 화제를 모았던 이성남 검사총괄실장은 정운찬 교수를 통해 이헌재 장관을 알게 됐다. 이 실장과 정 교수는 대학교 1학년 때 영어회화클럽 ‘센추리’에서 만나 교분을 맺은 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금감위원장과 첫 대면 때(정운찬 교수가 추천한 것으로 알고) 사적인 추천에 따라 이뤄지는 채용이라면 사양하겠다고 했더니 정 교수뿐 아니라 여러 통로를 통해 6개월 이상 지켜본 결과 영입키로 했다고 해서 국장직을 수락했어요.”  
이 밖에 오갑수 부원장보, 정기영 전문심의위원, 최장봉 부원장 등도 이헌재 장관이 평소부터 눈여겨보다 금감원에 영입해온 이들로 꼽힌다. 
이헌재 장관은 자신이 뽑아왔지만 뒤는 전혀 봐주지 않는다. 지난 7월 중순 만난 이성규 국장에게는 “너 아직도 거기 있냐”며 뜬끔없이 힐난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뒤를 봐주지 않는 데 대한 섭섭함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헌재 사단으로 분류되는 ㅇ씨는 “이헌재 장관의 캐릭터(성질)상 뒤를 봐줘야 할 정도의 인물이라면 아예 뽑지도 않았을 것”이라며 “시대를 풍미한 인물과 같이 일해본 경험을 소중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