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가 인기를 끌고 있다. 다른 술에 비해 많은 영양성분이 들어 있을 뿐만 아니라 피로물질을 제거하는 데도 좋다. 서울 영등포시장 대폿집에서 사람들이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 사진 한겨레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수다꾼 박문영·신지원·최동수·이인숙
동수: 대학 시절 농촌 봉사활동을 갔을 때 농부 아저씨들이 주시던 막걸리가 생각나네요. “아! 달다” 하시던 그 술맛은 잘 몰랐지만 논일을 하다가 새참으로 막걸리를 꼭 마셨어요. 고된 농사일에 추임새 역할을 막걸리가 했지요. 흥을 아는 민족이라 그런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술을 즐겼던 것 같아요. 인도를 갔을 때 만난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한국 사람들은 술을 참 좋아한다고 말하더군요. 지정된 상점에서만 술이 판매되는 그 나라 사람들이 더불어 사는 우리네 술 문화를 이해하기는 어렵겠지요. 인숙: 컬컬하고 거친 맛으로 푸대접을 받던 막걸리가 다시 주목을 받는 이유는 뭘까요? 요즘은 여성이 더 즐겨 마신다고 하던데. 막걸리의 분위기가 사뭇 달라진 듯해요. 막걸리의 색깔도 다양해지고, 담아내는 그릇도 화려하고, 곁들이는 먹을거리도 담백해져 이름만 막걸리고 예전의 정겨운 허술함을 찾을 수 없어요. 세련되고 멋있어졌지만 텁텁한 맛과 시큼한 향에서 오는 걸쭉함은 전만 못하더군요. 사람들의 입맛에 따라 발효 조건을 바꾼 걸까요? 동수: 막걸리를 마시고 혈당이 낮아졌다는 사람, 변비가 없어졌다는 사람, 지루하고 힘든 암 투병 생활을 가끔 마시는 막걸리로 이겨냈다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막걸리는 다른 술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영양성분이 들어 있어요. 각종 유기산들은 갈증을 해소하고 체내의 피로물질을 제거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해요. 발효의 찌꺼기로 남겨진 섬유질은 장에 이롭고요. 게다가 허기를 달랠 수 있는 술이기 때문에 농사일로 지친 몸과 맘을 달래기 위해 막걸리를 새참으로 즐겼겠지요. 지원: 생막걸리에 들어 있는 효모는 어떻고요. 효모는 그 자체가 단백질 덩어리예요. 다양한 아미노산이 풍부하게 있고, 유전이나 단백질 합성을 지배하는 중요한 물질인 핵산도 풍부해요. 비타민도 풍부하고요. 더욱이 밝혀지지 않은 효모의 생리활성 물질들은 막걸리를 더욱 빛나게 하는 영양성분이에요. 고혈압 유도 효소를 저지하는 효과도 있고 암세포의 성장을 억제하는 효과도 있다네요. 하지만 이런 핑계로 도를 넘어 마신다면 독이죠. 문영: 유산균도 빼놓을 수 없어요. 요구르트와 비슷한 정도이거나 더 많이 들어 있기도 해요. 유산균이 장속에 들어가면 장내 산도가 높아져 잡균의 번식을 막을 수 있어요. 유산이나 구연산, 호박산 등의 유기산도 적당히 있어요. 유기산은 신진대사를 촉진해 피로회복에 좋고, 피부미용에도 좋아요. 지원: 피부미용 하니까 생각나는데, 누룩을 찾으려고 인터넷 쇼핑몰을 검색하니 분말로 만든 마사지용 누룩 팩이 많이 있더라고요. 보습과 미백, 주름 개선 기능까지 한다니 웬만한 기능성 화장품보다 다재다능하단 생각이 들던데요. 게다가 화학첨가물 없는 제대로 된 천연 화장품이잖아요. 기다림의 술이자 성급한 술 문영: 그렇게라도 우리 누룩이 상품이 되어 팔린다니 마음이 놓이네요. 막걸리가 인기지만, 누룩 수요는 별로 늘지 않았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거든요. 시중에 파는 보통의 막걸리는 발효를 위해 백국균(아스페르길루스 카와치)을 써요. 원래는 일본에서 증류식 소주를 만들기 위해 선별된 균주예요. 백국균은 산 생성력이 아주 세서 주변을 산성으로 만들고, 이런 환경은 잡균의 오염을 방지해줘요. 이런 효과가 발효 속도를 높이고 술의 실패율을 낮춰주고요. 동수: 누룩은 곡물에 누룩곰팡이를 번식시킨 것인데 한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우리 누룩을 만드는 과정이 나오더라고요. 곡식을 쪄서 발로 밟아 둥그렇게 빚어 자연발효를 하는 거예요. 누룩곰팡이는 현재 알려진 게 50가지 정도 되는데, 자연발효 과정을 거친다는 것은 여러 가지 균이 배양된다는 의미이지요. 일본식 누룩은 홑임(낱알) 누룩으로 보통 곡식을 찐 뒤 뭉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아요. 오히려 낱알로 잘 펴서 종균을 뿌려줘요. 마치 우리가 요구르트를 집에서 만들 때 우유에 유산균을 넣어주는 것과 비슷하게요. 우리 누룩은 곰팡이가 피려면 한 달 이상 기다려야 하지만, 일본식으로 하면 이틀만 지나도 술을 빚을 수 있대요. 더구나 하나의 균만 있으니 발효 뒤 술맛도 일정하고요. 인숙: “아! 시원~하다.” 모진 땀을 한 잔 술에 날려버리던 우리네 농부들이 내뱉던 탄성은 누룩곰팡이에서 오는 걸까요? 가슴속까지 타고 흐르던 막 발효된 막걸리의 거친 숨소리고, 목젖을 적시던 발효균의 탄성이 아니었을까요? 우리네 막걸리는 발효를 위해 시간이 필요한 기다림의 술이에요. 하지만 마저 기다리지 못한 미완의 변주이기도 하지요. 가라앉히고 거르는 정제 단계를 거치지 못한 성급한 술이에요. 그래서인지 막걸리는 기다리다 순간을 참지 못하고 어리석음을 범하는 보통 사람들의 삶과 닮았어요. 문영: ‘좀더 빨리, 좀더 많이’가 요구되는 세상이니 우리 누룩은 경제성이 떨어지는 발효제 취급을 받아 설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네요. 하지만 우리 누룩으로 빚은 막걸리도 있어요. 그 막걸리 주인이 인터뷰한 것을 봤는데, 이사를 가서 누룩을 만들어 술을 빚었더니 술맛이 다르더래요. 그래서 할 수 없이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왔다는군요. 지원: 메주의 수만 가지 미생물 중에서 알려진 것은 10%가 안 된대요. 우리 누룩도 생전분을 그대로 사용해 메주처럼 빚어서 자연발효하기 때문에 밝혀지지 않은 미생물들이 발효 과정에 참여해요. 공기 중의 곰팡이, 효모, 세균 등…. 한마디로 미생물의 총체라 할 수 있어요. 그러니 표준화하는 작업이 쉽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사람들의 입맛이 다양하듯 다양한 누룩의 막걸리가 지역의 문화를 담아 더 많이 보급된다면 우리 문화의 풍요로움으로 이어지겠죠.
한 양조장에서 발효된 술을 젓고 있다. 막걸리 발효에는 알려지지 않은 미생물들이 작용한다. 사진 한겨레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