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전경련, 조석래 회장 빈자리가 시리다

후임자 선임 어려워 공백 장기화할 수도… 조 회장 건강 문제로 효성 경영체제 변화에도 관심 쏠려

819
등록 : 2010-07-13 23:14 수정 : 2010-07-15 16:53

크게 작게

“(조석래 회장의) 건강이 안 좋은 것 같다는 얘기는 있었지만, (전경련 회장직) 사임은 발표 전까지 전혀 몰랐다.”

지난 7월6일 조석래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회장(효성그룹 회장)의 사임 발표는 전경련 간부의 말 그대로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효성그룹의 대다수 임직원들도 눈치채지 못했다고 한다. 조 회장은 2007년 3월 31대 전경련 회장에 취임한 뒤 지난해 2월 2년 임기의 회장직을 연임해, 임기를 7개월여 남겨두고 있었다.

“두 아들 검찰 수사 때문” 사임 이유 ‘수군수군’

지난해 11월17일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 참석한 조석래 회장. 7월6일 그는 건강 문제로 전경련 회장직 사임 의사를 밝혔다. 한겨레 이종근 기자

조 회장의 표면상 사임 이유는 건강 문제다. 전경련과 효성에서는 조 회장이 지난 5월 말 건강검진에서 담낭에 종양이 있는 것이 발견돼 6월 초에 수술을 받았다고 설명한다. 조 회장은 보름 정도 입원 치료를 받고 퇴원한 뒤에도 주한 일본대사 이임 인사 등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제대로 일을 못했다. 조 회장은 사임 발표 당일에도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다음날 퇴원했다. 조 회장의 수술 이후 경과나 향후 완쾌 가능성에 대해서는 딱 부러진 설명이 없다. 다만 효성 쪽에서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조 회장이 75살의 고령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낙관만 하기 어려운 상황임을 짐작하게 한다. 일부에서는 조 회장의 병명이 췌장암이라는 얘기도 돈다. 췌장암은 말기 이전에는 발견이 어려워 생존율이 한 자릿수에 불과할 정도로 치료가 어려운 암으로 알려져 있다. 효성 쪽에서는 “(조 회장) 가족들에게 물어봤는데 아니라고 한다”며 부인한다.

조 회장은 평소 병치레를 한 적이 거의 없을 정도로 노익장을 과시해왔다. 일벌레인 조 회장은 해외 출장으로 국내에 없을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빠짐없이 서울 마포의 그룹 사옥으로 출근했다. 그는 전경련 회장으로 재임한 3년4개월 동안 총 30차례, 130여 일간 해외 출장을 다녔다. 거리로는 지구를 7바퀴 돌고도 남을 정도다. 바쁜 경우에는 한 달에 두세 번씩 해외 출장을 강행했다. 전경련의 한 임원은 “새벽에 공항에 도착해 시차 적응도 없이 바로 회사로 출근하거나 행사장으로 직행한 적이 많아, 주변의 젊은 사람들도 혀를 내둘렀다”고 전했다. 조 회장 스스로도 “일을 하다 보면 아플 시간이 없다”고 말했을 정도다. ‘조 대리’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조 회장의 꼼꼼한 성격은 재계에서도 유명하다. 조 회장 자신은 건강 비결을 묻는 질문에 “일본 사람들처럼 매일 아침저녁으로 규칙적으로 샤워하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주변에서는 두 아들의 해외 부동산 불법 취득 혐의와 관련한 검찰 수사도 조 회장의 사임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검찰은 지난해부터 조 회장의 두 아들이 미국 등 해외 부동산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회사 돈을 불법적으로 끌어다 쓴 정황을 포착해 수사를 벌여왔다. 검찰 수사는 마무리 단계여서 조만간 결과가 발표될 예정이다. 전경련이나 효성 쪽에서는 이번 사임과 검찰 수사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손을 내젓는다.

전경련 50년 역사에서 회장이 임기 중에 그만둔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21~23대인 최종현 SK 회장이 1998년 8월 건강 문제로 중도 사임했다. 또 24~25대인 김우중 대우 회장이 1998년 10월 대우그룹 부도 사태로, 28대인 손길승 SK 회장이 2003년 10월 SK 분식회계 사태로 각각 그만뒀다.


거론되는 회장 후보들 모두 고사

재계에선 조 회장이 지난 3년간 정부와 협조 관계를 유지하며 재벌들에 눈엣가시로 여겨지던 출자총액제한제도 등 굵직한 규제들을 폐지하는 등 나름의 성과를 거두었다고 평한다. 이런 배경에는 이명박 대통령과 사돈- 조 회장의 조카인 조현범 한국타이어 부사장이 이 대통령의 셋째딸 이수연씨의 남편- 이라는 특수 관계와 정부의 친기업 정책이 주요하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때 “차기 대통령은 ‘경제 대통령’이 돼야 한다”며 사돈 지지 발언을 하는 등 정치적 오해를 살 수 있는 행보를 한 것은 오점으로 지적된다.

조 회장의 건강 이상으로 효성의 경영체제 변화에도 관심이 쏠린다. 조 회장의 세 아들은 아직 분가를 하지 않고 3세 경영 시대를 준비 중이다. 장남인 조현준(42) 사장은 그룹의 섬유와 무역 사업을, 차남인 조현문(41) 부사장은 중공업 사업을 각각 맡고 있다. 막대인 조현상(39) 전무는 그룹 전략본부 소속이다. 주변에서는 조 회장의 건강 이상으로 경영권 승계 속도가 빨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효성의 홍보실장인 엄성용 전무는 “당장 현 경영체제에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효성은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을 통해 사업부문별 책임경영 체제를 구축했다. 그룹 경영촐괄은 전문경영인인 이상훈 부회장이 맡고, 최종적으로 조 회장이 지시하는 체제다. 효성 쪽에서는 “조 회장이 직접 결재를 안 했기 때문에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지만, 그것은 형식적인 얘기다. 조 회장이 여타 재벌총수 이상으로 그룹 경영에 절대적 지배력을 행사해왔기 때문이다.

전경련은 조 회장 사임 이후 즉각 후임 회장 인선 작업에 착수했다. ‘재계 수장’으로 불리는 전경련 회장은 선출이 아니라 추대 형식으로 선임된다. 전경련 부회장사인 20개 재벌그룹 총수들과 재계 원로들의 의견이 중요하다. 전경련의 고민은 마땅한 후임자가 없다는 점이다. 재계에서 바라는 후보들은 모두 강력히 고사하고, 내심 의욕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후보들에 대해선 이런저런 결점이 지적된다. 그룹 위상이나 인물, 연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이건희 삼성 회장이나 정몽구 현대차 회장, 구본무 LG 회장이 오래전부터 적임자로 거론됐지만 본인들의 고사로 번번이 불발로 끝났다. 이 회장은 3년 전에도 재계 추대가 있었으나 고사했다. 더구나 지금은 비자금 사건으로 유죄판결을 받고 경영에서 물러났다가 정부의 사면복권으로 지난 3월 말 경영 복귀를 한 터여서 더 어려워 보인다. 정 회장은 일부 의사타진설이 돌았는데, 현대차 쪽에서 즉각 펄쩍 뛰며 부인했다. 김봉경 홍보부사장은 “사업장이 전세계에 포진해 있어 해외 출장도 잦고 사업상 너무 바빠 현실적으로 전경련 회장을 맡기 힘들다”고 말했다. LG그룹은 계속 전경련과 거리를 둬온 터여서 말 붙이기도 어려운 상태다. 4대 그룹 중 나머지 한 곳인 SK의 최태원 회장은 연륜으로 볼 때 아직 이르다고 할 수 있다.

‘재계 리더’ 찾기가 왜 그렇게 힘든가

역대 전경련 회장은 이병철·정주영·구자경·최종현·김우중 회장 등 재계 상위그룹 총수들이 맡으면서 재계의 구심점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1999년 김우중 회장이 대우 부도 사태로 물러난 뒤에는 상위그룹 총수들이 맡지 않았다. 전문경영인인 손길승 SK 회장을 제외하고는 김각중 경방 회장, 강신호 동아제약 회장, 조석래 회장 등 모두 중하위그룹 총수들이다. 이번에도 중하위그룹에서 자천타천으로 거론되는 후보들이 있다. 이준용 대림산업 명예회장, 김승연 한화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주인공들이다. 하지만 당사자들은 모두 고사의 뜻을 밝혔다.

결국 전경련의 고민은 재계 위상, 경륜과 신망, 리더십, 깨끗한 이미지를 두루 갖춘 재계 수장감이 없다는 점이다. 이는 경영적으로 성공한 기업인은 많아도 국민 앞에 당당히 나설 재계 리더는 찾기 어려운 한국 경제계의 현실을 보여준다. 전경련 주변에서는 벌써 한두 달 안에는 후임 회장 선임이 어려워 공백이 장기화할 것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전경련으로서는 효성 관련 수사로 일종의 무기력증에 빠져 있다가 올봄 이후 겨우 기운을 되찾는가 싶더니 다시 표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럴 경우 지난해 착공한 신사옥 건축, 300만 명 신규 고용 창출 프로젝트 같은 안팎의 현안은 물론 당장 오는 11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와 연계한 비즈니스서밋(경제인 정상회의) 개최에도 차질이 예상된다.

곽정수 기자 jskwak@hani.co.kr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