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으로 연결되는 디지털 가전제품 봇물… 홈네트워크 최대 걸림돌은 비싼 가격
“DVD(디지털 비디오 디스플레이) 영화를 즐기다 화면에 친구의 전자메일이 도착했다는 메시지 발견. 답장을 써 보내고는 거실 냉장고 문에 붙은 LCD(액정화면)에서 몇 가지 문자메시지를 체크한다. 오늘 저녁 우리 가족 식단. 곧 전자레인지가 인터넷에서 다운받은 조리 방법에 따라 선택한 요리 시작. 그동안 뒤편의 세탁기는 빨래감의 특성에 맞는 물살을 쏟아내며 저혼자 작업을 끝마치고는 곧 ‘빨래 끝’ 메시지를 안방의 텔레비전 화면으로 보내온다….”
텔레비전, 전자레인지, 냉장고, 세탁기, 컴퓨터, 휴대폰 등 우리 가정생활에서 날마다 쓰이는 가전제품들이 서로 네트워킹된 ‘디지털 하우스’의 모습이다. 스스로 알아서 모든 가전을 관리하고 통제하기 때문에 이런 집은 마치 ‘살아 있는 듯’하다. 아무도 없어도 컴퓨터와 인터넷에 의해 저절로 조절되는 모습이 미래를 그린 공상과학영화의 한 장면 같기도 하다. 주부든 남편이든 고통스럽게만 생각되어온 ‘가사 노동자’는 이제 인터넷화면을 보면서 힘든 집안일을 쉽게 처리할 수 있게 됐다. 아날로그 시대 주부들이 ‘어깨가 결리고 허리가 휘도록’ 해온 힘든 가사노동은 벌써 오래 전 얘기인 것만 같다.
인터넷 화면 보면서 집안일 처리
우리나라 3대 가전자인 삼성전자, LG전자, 대우전자 등은 이런 디지털 기술 개발에 발빠르게 뛰어들어 이미 세계 수준에 올라 있다. 디지털 기술에 관한 한 어떤 분야에서는 세계 최강으로 인정받기도 한다. 일본과 미국, 유럽의 기술력에 눌려 있던 삼성전자 연구원들은 그래서 “아날로그시대 3위, 그러나 이제는 세계 1위”라며 훨씬 큰 자신감을 보인다.
디지털 기술을 이용한 홈네트워크 사업에는 정부도 관심이 높다. 지난 5월 산업자원부와 민간 가전업체들이 합동으로 ‘인터넷 가전협의회’를 구성해 이 분야에 대한 공동투자와 개발에 나서기로 했다. LG전자 디지털 어플라이언스팀의 한 연구원은 “우리나라 홈네트워크 사업 분야의 기술은 98년 컨셉제품 발표에 들어간 해외 선진업체와 비슷한 수준”이라며 “홈네트워크 사업에 핵심인 통신은 아직 미국·일본 업체가 주도하지만 가전부문에서 국내 업체가 세계시장에서 인정받고 있어 유리하다”고 평가했다.
세계적 수준 기술로 디지털 가정 선도
덕분에 가사노동에 찌들린 우리 엄마와 아내들도 세상을 바꾸는 디지털 시대를 다른 나라보다 좀더 먼저 경험할 수 있게 될 듯싶다. LG전자는 인터넷으로 요리 프로그램을 다운로드받아 수백 가지 종류의 음식을 자동으로 조리할 수 있는 인터넷 전자레인지(‘인텔로쉐프’, ‘네비쉐프’)를 출시한 데 이어 지난 6월 인터넷 기능이 합쳐진 최첨단 냉장고(‘디오스’)를 개발해냈다. LG의 국내 최대 경쟁업체인 삼성전자의 디지털 냉장고(‘지펠’)와 인터넷 전자레인지도 비슷한 기능을 가진 제품이다. 대우전자도 이에 질세라 디지털 냉장고를 올해 하반기중 개발해 출시할 예정이다.
‘인텔로쉐프’와 ‘네비쉐프’는 조리법과 재료정보는 물론 조리시간과 가열강도 등 모든 정보를 내장형 모뎀에 의해 인터넷을 통해 다운받아 스스로 요리해 주는 전자레인지다. 전자레인지에 부착된 LCD화면을 통해 사용자가 주요 식품회사의 홈페이지를 찾아내 정보를 얻고 식품을 주문할 수도 있다.
‘디오스’와 ‘지펠’은 주방에서 가족생활의 중심에 자리잡는 가전이 냉장고라는 점에 착안한 정보가전이다. 음식물을 보관하는 고유기능 외에 인터넷뿐만 아니라 동영상 전화통화도 가능하기 때문에 가족의 커뮤니케이션이 냉장고 앞에서 이뤄진다. 15.1인치 LCD와 LAN포트를 장착해 인터넷상으로 농산물 시세나 주식정보 등 다양한 시장정보를 실시간에 검색할 수 있다. TV방송과 이메일 수신을 물론 MP3음악파일도 다운로드받아 재생할 수 있다. 냉장고 몸통에 부착된 LCD창을 통해 냉장고의 온도상태를 비롯해 보관중인 식품의 유효기간, 조리방법, 필터 교환시기 등을 알려주는 ‘똑똑한’ 백색가전이다.
결국 냉장고를 중심으로 한 주방의 역할이 요리와 식사하는 장소에서 정보와 엔터테인먼트를 즐기고 커뮤니케이션을 실시하는 공간으로 바뀌는 것이다. 이 제품이 처음 발표됐을 때 사람들은 모두 냉장고 안에 노트북을 하나 장착시킨 것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을 했지만 이런 생각은 좀 틀렸다. LG전자쪽의 설명은 이렇다. “냉장고에 노트북 PC가 끼워진 것으로 보지 말고 PC 안에 냉장고가 들어간 것으로 이해하라.”
PC에 냉장고 들어가… 안방 극장 대중화
홈네트워크의 핵심은 뭐니뭐니 해도 인터넷 TV다. 삼성전자 디지털가전총괄부문의 한 관계자는 “지금까지 PC가 인터넷의 중심이었다면 앞으로는 남녀노소 모두에게 가장 친숙한 TV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인터넷방송 수신용 셋톱박스가 내장된 인터넷 TV 제품 발표회를 가졌다. 이 신제품은 방송 시청과 인터넷 이용이 동시에 가능하다. 최근 500여개를 넘는 인터넷방송은 물론이고 각종 VOD영화, 멀티미디어 교육 및 홈쇼핑 등을 시청할 수 있다. 또 컴퓨터에서나 가능하던 웹메일 방식의 전자우편, 문서작성과 프린트 기능 등을 지원함으로써 홈서버의 기능을 맡도록 했다. 이 밖에 국내 증권사와 은행들과 제휴를 맺고 홈트레이딩, 홈뱅킹을 TV를 통해 실시하는 ‘T-코머스’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대우전자도 지난 97년부터 이미 인터넷 TV를 출시했다. 무선 키보드나 무선 리모콘을 통해 자유롭게 웹서핑을 즐길 수 있는 제품이다. 미국에는 이미 수출에 성공했고 국내에서도 올 가을부터 출시한다는 계획이다.
이 밖에 세탁기로는 삼성전자가 지난달 중순 시장에 선뵌 ‘파워드럼 세탁기’가 있다. 세탁기 조작판에 역시 LCD화면이 있어 이를 통해 인공지능 시스템을 간단히 조작해 두면 빨래감의 특성에 따라 물 온도, 회전방향, 회전속도를 최적으로 제어해주는 디지털식 가전제품이다. 특히 세탁통과 세탁판의 운동방식이 단독회전 또는 정회전 방식에서 상호 역회전함으로써 334가지 다른 물살을 만들어낸다.
소비자 부담을 어떻게 줄일 것인가
이런 첨단 정보가전을 이용한 홈네트워크화는 이제 겨우 초기단계에 있긴 하지만 미국,일본,유럽에 비해 결코 뒤처지지 않은 상태다. 국내 가전 3사는 한결같이 우리나라 인터넷 등 정보통신분야에서 선진국과 비교해 뒤지지 않을 만큼 거대 시장이 형성되어 있는데다 가전 기술에서도 축적된 노하우가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해외 선진국에 일고있는홈네트워크화 물결을 우리도 빨리 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문제는 비용이다. 홈네트워킹에 필요한 디지털 가전제품들이 소비자들에게는 너무 비싸다는 것이다. 예컨대 LG전자의 인터넷 냉장고 ‘디오스’는 한대에 1천만원이다. 디지털식 인터넷 TV도 고급 LCD 덕분에 가격은 보통 TV 가격과는 비교하기 힘들 만큼 비싸다. 서민들이 보기엔 아직 남의 얘기일 수밖에 없다. 국내 가전업체들은 그래서 홈네트워크화에 참여하는 통신업체와 인터넷 서비스업체가 이 부담을 조금씩 나눠 가짐으로써 소비자의 부담을 줄여가겠다는 시장전략을 짜고 있다. 이동통신 서비스 요금을 조금 올리는 대신 휴대폰 단말기를 값싸게 제공해 우리나라 모든 국민의 손에 휴대폰을 쥐어주는 전략과 비슷하다.
홈네트워크의 또다른 문제점은 보안이다. 네트워크 과정상의 어느 한 부분에 구멍이 날 경우 전체 네트워크가 고스란히 공개돼 피해를 보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몇 가지 문제점이 있지만 홈네트워크화는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것 같다. 가전업계에서는 오는 2005년 정도면 우리나라의 웬만한 가정에서 홈네트워크화가 거의 완성되어 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는 미국, 유럽 같은 선진국과 비슷한 시기다. 이렇게 홈네트워크가 급속히 진행되는 배경에는 아무래도 국내 가전업체들의 ‘피 터지는’ 경쟁이 있다. LG전자 김쌍수 부사장은 “디지털 가전제품을 출시해도 워낙 비싸 많이 팔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면서 “우리는 꿈에 그리는 홈네트워크를 앞당기기 위해 앞선 디지털 가전제품을 하루라도 빨리 개발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디지털 가전제품을 선도하고 있는 인터넷 TV.삼성전자 인터넷TV 시제품발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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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LG전자 인터넷 냉장고와 인터넷 전자레인지)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면서 직장뿐 아니라 우리 가정도 네트워크화되고 있다. 디지털화한 이른바 정보가전 제품들이 인터넷이라는 전세계적인 통신수단에 의해 서로 연결되면서 한몸처럼 작동되고 통제된다. 이른바 ‘홈네트워크’(Home Network)다. 홈네트워크의 기술적 근거는 이제 우리 일상생활에서도 익숙하게 들리는 디지털 기술이다. 0과 1의 두 가지로 세계를 표현하는 이 단순하지만 혁명적인 기술은 가정생활을 시간과 공간의 제약에서 자유롭게 벗어나게 해 가족의 일상사를 지적이고 편리하도록 도와주고 있다.
홈네트워크는 단순히 백색가전이 서로 기능을 공유하는 것과는 다르다. 예컨대 텔레비전과 VCR이 연결되어 있다든지, 오디오와 텔레비전이 연결돼 스피커를 함께 사용하는 그런 차원이 아니다. 홈네트워크에서는 다양한 기능을 가진 백색가전들이 인터넷에 의해 연결돼 정보를 검색·보관·출력·교환하기 때문에 사실은 네트워크상에 있는 모든 가전제품들이 고유기능을 수행하면서도 하나의 컴퓨터와 같은 기능을 하게 된다. 주방에 가면 냉장고와 전자레인지가, 욕실에 가면 세탁기가, 거실이나 안방에는 텔레비전이 서로 연결돼 정보를 주고받는 온라인 상태의 컴퓨터인 셈이다. 가정의 여러 장소에 놓인 정보가전들이 연결돼 집안을 통합적으로 관리한다.
(사진/전화기한대로 인터넷 접속과 전자메일 송수신 뿐 아니라 화상통화도 할수 있다.삼성전자 화상전화기 '애니웹')

(사진/인터넷TV는 방송시청과 인터넷 이용이 동시에 가능하다. 대우전자 인터넷TV시연회모습)

(사진/똑똑한 냉장고가 나온다.인터넷 냉장고는 정보검색은 물론 동영상전화기로도 이용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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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홈네트워크 시대를 앞당기는 데는 최근 폭발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이른바 ‘빌트인(Built-in) 가전’ 시장도 한몫을 하고 있다. 빌트인 가전은 쉽게 말해 붙박이형 가전이다. 주방이나 거실 등의 공간 활용도를 높이고 내부 인테리어 관점을 고려해 집안 구조와 가족의 생활방식에 맞도록 설계하고 디자인하고 제작한 가전제품이다. 인터넷이 우리 일상생활과도 밀접한 관련을 맺으면서 디지털 가전제품을 중심으로 빌트인 시장도 급속도로 커지고 있다. 최근 수도권을 중심으로 전국에 건설중인 사이버 아파트에서 주로 디지털형 빌트인 가전제품을 채용하고 있어 가전업체들도 이에 적합한 제품들을 속속 출시하고 있다. 빌트인 제품은 기존 가전제품이 벽면에 돌출해 있거나 실내 구석에 두어야 하는 단점을 없애고 가구처럼 벽면에 들어가게 하는 형태여서 우선 공간 절약형인데다 첨단 디지털제품을 통해 홈네트워킹에 기여할 수 있다는 면에서 인기가 높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부터 정보가전 총괄부서 내에서 빌트인 백색가전 사업추진팀을 두고 이 분야에 관심을 쏟고 있다. 대표적인 빌트인 제품인 지펠 냉장고와 시스템 멀티에어컨의 개발을 완료해 올해부터 본격 판매에 들어간 상태다. LG전자도 김치독냉장고와 가스오븐레인지, 식기세척기를 빌트인 형태로 출시했다. 이미 대우전자 등 가전 3사 모두가 거실이나 안방을 더 넓게 사용할 수 있는 벽걸이형 PDP텔레비전을 개발해 인기를 끌고 있다. 빌트인 가전시장은 전자업체에 앞서 주방가구 전문업체들이 지난 93년부터 진출해 국내 시장확산을 도모해왔다. 97년 하반기부터 불어닥친 경제위기로 주택경기가 침체하고 부동산가격이 하락하면서 주춤해졌다가 지난해부터 다시 점차 확산되어가고 있다. 가전업계에서는 지난해 1천억원대 시장으로 성장한 빌트인 가전시장이 올해에는 3천억원 이상으로 크게 늘어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특히 분양자율화 조처로 중대형 아파트 보급이 확대되고 고급 주택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내부 인테리어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늘고 ‘과시욕구’도 살아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빌트인 가전이 확산되면서 인터넷 가전에 대한 수요는 더욱 늘고 있다”며 “이는 결국 우리나라 홈네트워크화를 앞당기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김성재 기자/ 한겨레 경제부seong68@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