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들은 정부의 자구책이 독일과 프랑스 은행들을 위한 것이라고 반발한다. 5월5일 그리스 시위대가 수도 아테네의 의사당 인근에서 경찰에게 돌을 던지고 있다. REUTERS/ JOHN KOLESIDIS
국제통화기금(IMF)과 유로존 국가들은 무려 7500억유로에 달하는, 우리나라의 1년 국내총생산 규모에 해당하는 엄청난 재정안정 메커니즘 조성에 합의했지만, 앞으로 그리스 사태가 단기간에 해결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재정 위기가 속성상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자구책이 원만히 시행될 것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시장은 그리스를 비롯한 문제 국가들의 정부와 국민이 자구책을 성공적으로 실행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국가들은 허리띠를 잔뜩 졸라매야 할 형편이지만 당장 재정 건전화 방안만 해도 그리스 국민이 격렬히 반대하고 있다. 자구책은 주로 간접세 인상과 임금 삭감, 연금제도 개악 등 일반 국민의 실생활에 악영향을 미치는 방식인데, 그리스 국민은 위기의 원인이 독일 등 유로 핵심국의 이익 추구와 자국 고소득자의 탈세에 기인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스 국민은 이번 구제금융을 독일·프랑스 등 유로존 주요국의 ‘자국계 은행 지키기’로 본다. 그리스가 외국계 은행에서 차입한 2362억달러의 외채 중 유럽계 은행이 보유한 것이 80%에 이르고 그 대부분을 프랑스와 독일계 은행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그리스 국민의 고혈을 쥐어짜서 이 은행들의 투자 손실을 메워주는 꼴이란 것이다. 경기과열과 제조업 몰락 그러면 이런 위기를 부르는 유로존의 구조적 문제점은 무엇인가? 가장 큰 문제점은 경제 체질이 다른 여러 주권국가를 하나의 단일통화로 묶은 데서 오는 근본적 불일치에 있다. 단일금리와 단일통화를 사용함으로써 취약한 국가들의 경기가 과열되면서 경제 체질이 더 약해지는 악순환이 만들어진다. 좀더 쉽게 얘기하자면 상황은 이렇다. 그리스 등 취약국가들은 유로존에 가입함으로써 독일 국민과 같은 유로화를 사용하고 유사한 이자율 수준을 누리게 됐다. 이 이자율은 그리스 같은 상대적 후진국에는 지나치게 낮은 수준이므로 과도한 투자 등 경기과열을 유발하게 된다. 경기과열은 스페인이나 그리스에서 본 바와 같이 부동산 버블로 연결되며, 강한 유로화로 수출제조업은 몰락한다. 만성적인 경상수지 적자가 이어진다. 실제로 그리스와 포르투갈 등은 유로존 가입 이후 10년 동안 GDP의 10%에 달하는 경상수지와 상품수지의 적자를 겪어왔다. 그리스 국민은 갑자기 자신이 부자가 된 것으로 착각했고 금융기관들은 이러한 위험한 부자에게 더 쓰라고 돈을 빌려주는 꼴이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지속될 수 없다. 경상수지 적자가 계속되면서 나라 경제는 빚더미에 올라앉고 부동산 버블은 심각한 후유증을 낳게 된다. 2008년 이후 닥친 글로벌 경제위기는 버블 경제에 결정타가 됐다. 격투기에서는 도저히 체급이 맞지 않으면 자기 체급을 내려야 한다. 하지만 유로존에서는 이것이 어렵다. 취약국가들이 유로존에서 일단 나가서 자국 경제를 평가절하한 다음 다시 들어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유로존에는 탈퇴 매뉴얼이 존재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한 국가가 탈퇴하면 국제 투기자본들이 다른 약체국을 계속 공격할 것이다. 이 경우 유로존은 붕괴할 수 있다. 성장의 불일치는 한 국가 내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 어느 지역이 발전하지 않고 경제 체질이 약하면 중앙정부가 다양한 투자계획을 세워서 지역개발을 할 수 있고 교부금을 내려줄 수도 있다. 그러나 유로존의 경우 회원국은 재정정책에 대해서는 각자 자기 나라에 한해서만 권한을 갖고 있기에 다른 나라에 개입하기가 쉽지 않다. 캘리포니아 주정부가 파산 상태지만 캘리포니아 위기가 미국의 위기로 전염되지 않는 것은 캘리포니아가 통화·금융·재정 정책이 완전히 통합된 미합중국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대안은 ‘유럽 합중국’뿐 앞으로 남유럽 재정 위기의 해결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 문제 국가의 유로존 탈퇴는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가시화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가 나간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스가 나간다면 국제 투기자본은 다른 희생자를 찾을 것이고 유로존 방어 비용은 크게 올라간다. 그리스가 유로존에 남아 있다면 비정상적 조처로라도 그리스를 살릴 수밖에 없다. 구제금융 지원 과 채무 재조정, 또는 유럽중앙은행의 국채 인수 등 충격요법도 얘기되고 있다. 어느 방법을 사용하든지 시장의 신뢰는 금이 갔고 유로존의 구조적 문제점이 부각됐다. 한때 달러화의 대안으로 언급된 유로화에 대한 신뢰도는 땅에 떨어졌고, 앞으로 몇 년간 달러 패권은 유지·강화될 것이라는 것이 시장의 한결같은 믿음이다. 유로화가 시장의 신뢰를 되찾으려면 재정 부문에 대한 추가 규율 도입 등 유로화 지키기를 위한 경제 통합의 심화 이외에는 방법이 없을 것 같다. 즉, 유럽 통합을 더욱 진행시켜 ‘유럽 합중국’을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유럽인들이 이 제안에 동의할지는 의문이다. 동의하지 않는다면 유로화의 미래는 지극히 불확실하다. 김흥종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세계지역연구센터 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