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현혹하는 편법 보조금 되살아나… 솜방망이 처벌로 가격파괴 수수방관
경기에서 규칙이 무너지면 규칙을 곧이곧대로 지키는 사람은 바보다. 경기 자체도 역시 엉망이 된다. 요즘 국내 휴대폰시장이 딱 그런 꼴이다. 016이나 018, 019에 새로 가입을 할 때 휴대폰 단말기값을 제대로 치르는 사람은 바보이다. 왜냐하면 공짜로 단말기를 주는 데가 널려 있기 때문이다.
공짜 휴대폰 제공은 물론 규칙위반이다. 정보통신부는 지난해 6월부터 이동통신 서비스약관에 ‘보조금 지급과 의무사용기간 금지’를 못박았다. 단말기의 핵심기술과 부품을 수입해오는 처지에서 불필요한 단말기 교체는 국부유출과 낭비를 초래한다는 게 보조금 금지 사유이다. 서비스업체들끼리 제살깎기 경쟁을 막으려는 취지도 있었다.
6월 들어서 노골화… 가입 기회 내세워
그런데 올해 4월부터 보조금이 부활했다. SK글로벌이 ‘011과 017이 결합하려면 2001년 6월 말까지 시장점유율을 50% 이하로 낮춰라’라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지침을 이행하려고 4월 초부터 011 대리점에서 019 가입자를 대신 모집하기 시작했다. 그냥 모집하는 게 아니라 019 가입자 한사람당 최소 10만원에서 많게는 15만원까지 장려금, 개통수수료 등의 인센티브를 대리점에 제공했다. LG텔레콤도 자체적으로 대대적인 판촉행사에 들어갔다. 여기에 KT프리텔의 016과 018 대리점들까지 가세해 사업자들간 가입자 유치경쟁이 본격적으로 불붙고, 이 과정에서 편법 보조금이 슬금슬금 살아나 휴대폰 가격은 급락하게 됐다. 보조금 지급이 더욱 노골화한 것은 6월 들어서다. 정부는 처음에 사업자들이 대리점에 장려금을 주는 것은 허용하지만 단말기 가격에 영향을 미치면 보조금으로 볼 수밖에 없으므로 강력하게 단속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실제로 통신위원회는 지난 5월16일부터 3주간 보조금 지급실태 조사에 나서 무려 1만여건의 위법사실을 적발했다. 그런데 ‘대표이사 형사처벌’까지 들먹이던 정부가 3개 서비스회사에 막상 내린 징계는 고작 과징금 19억원이다. 7천여건의 위법행위가 적발된 SK글로벌은 초범이라는 이유로 과징금 1억원으로 때웠다. 각 사업자들은 정부의 이런 ‘솜방망이 처벌’로 마치 면죄부라도 받은 듯 더욱 노골적으로 보조금 지급경쟁에 나서게 됐다. 정부의 처벌 이전에 사업자들은 “공짜 단말기와 의무가입기간 부여는 일부 간 큰(?) 유통점들의 과잉의욕 탓”으로 돌렸다. 그러나 6월 들어서는 사업자들 스스로 당당하게 “휴대폰값이 싸졌으니까 이동전화 가입의 적기”라고 이야기한다. 서울 용산전자상가나 구의동 테크노마트의 이동전화 대리점이 밀접한 지역에서는 KT프리텔의 016·018, LG텔레콤의 019 서비스용 휴대폰은 신규가입시 대부분 10만원대 미만이다. 019의 ‘I북’은 4만∼5만원, 삼성전자의 플립형모델 ‘SPH-A2109’는 2만∼3만원대이다. 불과 한달 전 20만원대에 육박하던 모토로라의 ‘V6061’은 가입조건에 따라 공짜로 주기도 한다. 가장 비싼 삼성전자의 ‘애니콜 듀얼폴더’도 12만∼21만원선이다. 제값에 받고 가입시키는 대리점에서는 고가 경품을 제공한다. 2년 이상 할부로 가입하면 30만원 상당의 김치냉장고나 20인치 TV가 경품이다. 경품이 단말기값과 맞먹거나 더 비싸다.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휴대폰의 경우 기기값과 3년간 기본요금의 10%를 넘는 경품을 제공하면 위법이다. 소비자 볼모로 삼은 기기·부품시장 활성화
이 밖에 카드회사의 신규고객 유치행사나 인터넷쇼핑몰에서도 공짜 휴대폰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모두 이동전화 서비스사업자들이 부담하는 보조금이 공짜의 원천이다. LG그룹은 019 가입자 유치확대를 위해 전 그룹계열사 직원들까지 동원했다. 계열사별로 직원들에게 7만∼10만원을 지원하도록 하면서, 대리점 공급가격이 30만8천원짜리인 LG전자의 ‘I북’을 20여만대나 할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SK텔레콤의 점유율 축소 이행 시한은 6월 말이다. 이때까지는 KT프리텔과 LG텔레콤의 싸움이다. 그러나 7월 이후에는 017과 합병승인 절차를 마무리한 SK가 본격적으로 가세할 게 뻔하다. 이동전화 사업자들끼리 가입자 확대 경쟁은 앞으로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편법 보조금 성행에 따른 단말기값의 추가하락이 뒤따르는 것은 당연하다.
이 판에서 가장 큰 덕을 보는 쪽은 단말기 제조업체들이다. 휴대폰시장은 보조금 지급금지 조처 이후 그야말로 죽을 쒔다. 달마다 150여만대의 판매를 기록했던 내수시장이 지난해 6월부터는 70만∼90만대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그러다가 올해 3월부터 다시 판매량이 급증하는 추세이다. LG전자가 최근 집계한 월별 휴대폰 시장규모를 보면, 3월에 100만대, 4월 120여만대, 5월에는 140여만대 규모로 늘었다.
휴대폰 보조금 부활은 이처럼 이동통신 기기와 부품시장의 활성화라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서비스업자의 보조금 없이는 이동통신 기기의 기술발전이나 차세대 이동통신(IMT-2000)의 시행기반을 갖출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SK텔레콤은 6월1일부터 휴대폰으로 뉴스나 영화 등 동영상을 즐길 수 있는 주문형비디오(VOD)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 멀티미디어 동영상서비스는 동기방식 3세대 이동통신의 초기형태인 CDMA2000-1x망을 통해 최고 153Kbps의 속도로 동영상 데이터를 이동전화기에 저장해 놓고,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방식으로 제공된다. 이런 서비스에 맞춰 삼성전자나 LG전자 등 단말기 제조회사들은 새로운 컬러휴대폰을 잇따라 선보이고 있다. 단지 목소리나 단문문자데이터만 주고받아왔던 이동통신 사용환경이 앞으로는 획기적으로 달라질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그렇지만 획기적으로 달라지는 것은 기기와 서비스 사용자가 그만큼 늘어났을 때 가능하다. 여기서 관건은 소비자들이 부담없이 단말기를 구입할 수 있느냐 없느냐이다. 소비자들로서는 서비스업자가 보조금을 지급해서라도 단말기 구입부담이 줄어드는 게 나을 듯싶다. 그래서 얼핏 휴대폰 보조금은 서비스업자나 기기 제조업체, 사용자, 콘텐츠제공업체 모두에게 이익을 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형태의 보조금은 소비자들에게 단지 ‘미끼’일 뿐이다. 휴대폰을 공짜로 얻고 이동전화에 가입할 때는 ‘의무가입’이라는 조건이 따라붙는다. 보통 1년, 단말기가 조금 새것이다 싶으면 2년 이상 해지 않고 쓰겠다는 이면계약을 맺어야 한다. 이런 조건을 전제로 대리점들이 단말기값을 할부처리하고 대신 지급해주는 방식으로 신규가입계약을 맺고 있다. 만약 의무가입기간중에 단말기를 분실했거나 고장이 나서 쓸 수 없는 상태가 되더라도 가입자는 마음대로 해지할 수 없다. 단말기값을 도로 토해내야만 가능하다. 통신요금을 연체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경기 안양시의 한 019 대리점 사장은 “가입계약서상의 까다로운 조건을 2∼3년 동안 한번도 어기지 않고 휴대폰을 이용하기란 사실상 어렵다”며 공짜휴대폰에 현혹돼 불필요하게 가입한 소비자들의 피해를 우려했다. 소비자보호원에는 이미 이런 피해자들의 구제요청이 줄을 잇고 있다. 소보원 박인용 자동차·통신팀장은 “처음 계약할 때는 공짜로 단말기를 준다고 약속해놓고서 매월 할부대금을 가입자 통장에서 빼나가거나 경품형태로 단말기를 준 다음 대금을 나중에 청구하는 사례가 많다”고 전했다.
정부는 언제까지 오락가락 할 것인가
이런 사기성 계약이 아니더라도 서비스업체들의 보조금은 결국 통신요금의 형태로 소비자들에게 전가된다. 또 공짜에 현혹돼 멀쩡한 단말기를 몇 개월 쓰다가 교체하면 그것도 소비자들의 피해이다. 2000년 말 현재 국내 이동전화 가입대수는 2770만대. 중복가입을 감안하더라도 웬만한 성인은 모두 휴대폰을 보유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지난해 단말기 내수 1420만대 가운데 70%가량이 교체수요이다. 올해는 삼성전자 560만대를 비롯해 단말기 제조업체들의 내수출하목표량이 모두 1350만대에 이른다. 단말기를 구입한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바꾸는 사람이 적어도 1천만명 이상은 되어야 업체들의 목표는 달성될 수 있다. 휴대폰 보조금은 찬반양론이 팽팽해서 정부로서도 ‘뜨거운 감자’이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까지 논란에서 소비자들의 이해는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부는 업체들 사이의 이해관계에 휘둘려 오락가락 잣대를 들이대다가 급기야 ‘공권력이 완전히 무시’되는 아수라장이 벌어지는 데도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글/ 박순빈 기자 sbpark@hani.co.kr
사진/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사진/ 이동통신업체들이 진흙탕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일부 대리점은 단말기 가격보다 비싼 경품을 지급하기도 한다.
그런데 올해 4월부터 보조금이 부활했다. SK글로벌이 ‘011과 017이 결합하려면 2001년 6월 말까지 시장점유율을 50% 이하로 낮춰라’라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지침을 이행하려고 4월 초부터 011 대리점에서 019 가입자를 대신 모집하기 시작했다. 그냥 모집하는 게 아니라 019 가입자 한사람당 최소 10만원에서 많게는 15만원까지 장려금, 개통수수료 등의 인센티브를 대리점에 제공했다. LG텔레콤도 자체적으로 대대적인 판촉행사에 들어갔다. 여기에 KT프리텔의 016과 018 대리점들까지 가세해 사업자들간 가입자 유치경쟁이 본격적으로 불붙고, 이 과정에서 편법 보조금이 슬금슬금 살아나 휴대폰 가격은 급락하게 됐다. 보조금 지급이 더욱 노골화한 것은 6월 들어서다. 정부는 처음에 사업자들이 대리점에 장려금을 주는 것은 허용하지만 단말기 가격에 영향을 미치면 보조금으로 볼 수밖에 없으므로 강력하게 단속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실제로 통신위원회는 지난 5월16일부터 3주간 보조금 지급실태 조사에 나서 무려 1만여건의 위법사실을 적발했다. 그런데 ‘대표이사 형사처벌’까지 들먹이던 정부가 3개 서비스회사에 막상 내린 징계는 고작 과징금 19억원이다. 7천여건의 위법행위가 적발된 SK글로벌은 초범이라는 이유로 과징금 1억원으로 때웠다. 각 사업자들은 정부의 이런 ‘솜방망이 처벌’로 마치 면죄부라도 받은 듯 더욱 노골적으로 보조금 지급경쟁에 나서게 됐다. 정부의 처벌 이전에 사업자들은 “공짜 단말기와 의무가입기간 부여는 일부 간 큰(?) 유통점들의 과잉의욕 탓”으로 돌렸다. 그러나 6월 들어서는 사업자들 스스로 당당하게 “휴대폰값이 싸졌으니까 이동전화 가입의 적기”라고 이야기한다. 서울 용산전자상가나 구의동 테크노마트의 이동전화 대리점이 밀접한 지역에서는 KT프리텔의 016·018, LG텔레콤의 019 서비스용 휴대폰은 신규가입시 대부분 10만원대 미만이다. 019의 ‘I북’은 4만∼5만원, 삼성전자의 플립형모델 ‘SPH-A2109’는 2만∼3만원대이다. 불과 한달 전 20만원대에 육박하던 모토로라의 ‘V6061’은 가입조건에 따라 공짜로 주기도 한다. 가장 비싼 삼성전자의 ‘애니콜 듀얼폴더’도 12만∼21만원선이다. 제값에 받고 가입시키는 대리점에서는 고가 경품을 제공한다. 2년 이상 할부로 가입하면 30만원 상당의 김치냉장고나 20인치 TV가 경품이다. 경품이 단말기값과 맞먹거나 더 비싸다.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휴대폰의 경우 기기값과 3년간 기본요금의 10%를 넘는 경품을 제공하면 위법이다. 소비자 볼모로 삼은 기기·부품시장 활성화

사진/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