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공모주 사면 떼돈을 번다?

363
등록 : 2001-06-13 00:00 수정 :

크게 작게

코스닥시장 신규 상장주 청약 비정상 열기… 금융·기회비용 따지면 고수익은 희망사항

사진/ 공모주청약은 열려라 참깨식 돈벌이 수단인가. 한 고객이 공모주청약 서류를 작성하고 있다.
사들인 지 며칠 새에 값이 두배, 세배로 껑충껑충 뛰는 ‘물건’이 있다면? 그보다 손쉬운 돈벌이 수단은 없을 것이다. 세상에 그런 게 어디 있을라고? 있다. 코스닥시장에 신규 상장(등록)되는 종목(주식)들이다.

올해 새로 등록된 코스닥 주식들은 대부분 거래 첫날 ‘공모가(공개모집 가격)’의 두배로 치솟고 그뒤에도 연속 상한가 행진을 이어가는 기염을 토했다. 여의도 증권가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공모주청약 열기는 여기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렇다면 새로 시장에 선을 보이는 주식을 공모할 때 사놓기만 하면 떼돈을 벌 수 있을까?

연속 상한가 행진에 투자자 대거 몰려


겉으로 드러나는 수익률 잣대로만 보면, 공모주청약만한 돈벌이 수단도 없을 것 같다. 지난 5월 말 코스닥시장에 첫선을 보인 인프론테크놀로지의 예를 보자. 이 회사의 공모가는 7천원이었는데, 거래 첫날 가격제한폭인 1만4천원으로 치솟은 데 이어 다음날도 상한가(1만5650원)를 기록했다. 이미 거래되고 있는 주식의 경우 가격제한폭이 위아래 12%로 돼 있는데 비해 새로 상장되는 주식은 거래 첫날에 한해 아래 10%, 위 100%까지 오르내릴 수 있도록 돼 있다. 인프론테크의 주식값이 첫날 1만4천원까지 오를 수 있었던 건 이 때문이다.

인프론테크에 앞서 5월28일 코스닥시장에 상장된 아이젠텍도 거래 첫날 공모가의 두배인 3700원까지 오른 뒤 3일 연속 상한가 행진을 이어가며 5800원까지 오르는 괴력을 발휘했다. 같은 달 코스닥시장에 새로 진입한 에이텍시스템, 현주컴퓨터도 거래 첫날 공모가의 두배(4400원, 1800원)로 치솟아 신규 등록주식에 대한 기대감을 든든하게 채워주었다.

정말 사정이 이렇다면, ‘땡빚’을 내서라도 신규 등록을 앞둔 회사들의 주식을 앞뒤 잴 것 없이 막 사들여야 하는 것 아닌가. 사놓고 며칠만 기다리면 거의 예외없이 값이 두배, 세배로 오르는 게 현실이지 않는가 말이다.

여기에 대한 답변에 앞서 우선, 공모주 청약제도를 간단히 살펴보자. 회사가 새로 주식을 발행, 이의 매출을 통해 기업을 공개할 때 기관 및 일반 투자자를 대상으로 공모하는 과정을 거친다. 투자자들이 여기에 응하는 것을 공모주청약이라고 한다. 이런 과정은 상장 요건 가운데 지분 분산비율을 맞추기 위한 것이다. 분산요건을 이미 갖춘 경우 이런 절차없이 직상장(등록)하는 수도 있다. 공모주청약을 받아 해당 기업은 기관투자자 65%, 일반 개인투자자 35%(우리사주조합 20% 포함)의 비율로 주식을 배정하게 된다.

공모주청약에 앞서 신규 주식발행 업무를 맡은 주간사(증권사)는 수요예측(북빌딩: book building)을 통해 공모가를 산정한다. 수요예측은 주간사가 산출한 해당 기업의 본질가치를 담은 설명회 자료를 기관투자자들에게 돌려 의견을 모아 가중평균을 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주간사와 발행사(상장을 앞둔 회사)는 가중평균값에 바탕을 두고 최종 공모가를 결정하게 된다. 공모가 산정 범위는 수요예측 가중평균의 위아래 30%까지로 돼 있다. 위아래 10%였는데, 주간사의 재량권을 넓혀준다는 목적으로 올해 들어 이렇게 바뀌었다.

이런 절차를 머리에 담고,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공모주청약을 통해 떼돈을 벌 수 있을까 하는. 신규 등록된 코스닥종목의 흐름을 전형적으로 보여준 인프론테크놀로지의 예에서 어느 정도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주간사를 맡은 동양증권은 인프론테크의 일반인 공모 한도를 한 사람당 5천주로 정했다. 공모주청약을 받을 때 주간사는 일정한 청약증거금(계약이행을 보장하는)을 내도록 하는데, 동양증권은 이번에 이를 50%로 했다. 따라서 인프론테크 5천주를 사겠다고 나선 투자자는 당장 1750만원(=7천원X5천주X50%)을 조달해야 한다. 물론, 서로 사겠다고 나선 투자자들이 많을 경우 경쟁률이 높아져 실제 배정되는 물량은 희망물량에 비해 턱없이 적다.

청약 경쟁률 높아 아무리 발품을 팔아도…

사진/ 코스닥 상장 기업의 신규 주식발행 업무를 맡은 증권사 직원들. 주간사를 맡은 증권사가 공모가를 산정한다.
인프론테크의 공모주청약은 5월16일부터 23일까지 이뤄졌으며 최종 접수 결과 경쟁률은 무려 343 대 1에 이르렀다. 따라서 5천주를 사겠다는 의사를 표시한 투자자에게 배정되는 물량은 고작 14주에 지나지 않는다. 이 정도 물량이나마 미리 어느 정도 거래실적을 쌓아놓은 고객들에게 배정된다. 이런 사정은 인프론테크뿐 아니라 코스닥에 신규등록하는 회사들의 주식 공모에서 나타난 공통된 현상이다.

인프론테크의 공모주에 한도껏 청약한 투자자가 결국 얼마나 벌었을까. 주식값이 공모가의 두배로 치솟은 거래 첫날 주식을 처분했을 경우 벌어들인 돈은 모두 9만8천원(7천원X14주)이다. 주가흐름에 비해선 대단히 실망스런 수준이라고 느낄 이들이 많을 듯하다. 반대로, 청약증거금 가운데 투자자금 9만8천원을 뺀 나머지(1740만2천원)는 청약기간이 끝난 뒤 곧바로 되돌려받기 때문에 은행에서 돈을 꿔서라도 투자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 법도 하다.

여기서 청약증거금 1750만원을 은행에서 연 9%에 꾸었다고 가정하자. 청약 기간 뒤 환불까지 8일이 걸렸으므로 여기에 해당하는 이자는 3만4327원(=1740만2천원X9%X8일/365)이다. 따라서 은행에서 땡빚을 내서 공모주 투자에 뛰어들었다 하더라도 보름 새에 6만3673원(9만8천원-3만4327원)은 벌어들인 셈이다. 은행에서 꾸지 않고 자체자금으로 공모주 청약에 응한 경우라도 ‘기회비용’(다른 곳에 투자했더라면 벌 수 있었던 수익)을 감안해야 하므로 근본적으로 크게 다를 게 없다.

올해 들어 6월8일까지 코스닥시장에 새로 참여한 회사는 모두 46개(직등록 2개)사에 이른다. 따라서 은행에서 꾸든, 자체자금으로 투자에 나서든 자금을 이리저리 지혜롭게 돌려가며 공모주청약에 잇따라 나서면 꾸준히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계산도 가능하다. 자금이 풍부한 이들이라면, 다른 사람의 명의를 빌려 여러 건 청약을 하면 한꺼번에 더 많은 수익을 올릴 수도 있다. 실제로 일부 투자자들은 이렇게 하고 있는 게 증권가의 현실이다. 이 때문에 공모주청약은 ‘발품’을 파는 부지런을 떨면 얼마든지 짭짤한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얘기도 흔치 않게 들을 수 있다.

그렇지만 인프론테크의 예에서 볼 수 있듯 짧은 기간에 몇배씩 수익을 올린다는 건 청약 경쟁률을 감안할 때 현실성이 크게 떨어진다. 더욱이 은행에서 돈을 꾸어서 투자할 경우 중도 상환에 따른 패널티(벌칙금리) 등을 감안해야 하므로 실제 거둘 수 있는 순수익은 더 떨어질 수도 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지금까지는 신규 등록된 회사의 주식이 거래 첫날 가격제한폭인 두배까지 오른 뒤에도 며칠씩 상한가를 이어갔지만, 요즘 들어 다른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첫 거래 뒤 오름세를 이어가는 힘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

지난 5월14일 신규 상장된 현주컴퓨터는 거래 첫날 공모가의 두배인 1800원까지 오른 뒤 5월25일까지 상한가를 이어가며 무려 4410원까지 올랐지만, 이후 상장된 종목들은 상한가 행진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 6월4일 상장된 한단정보통신의 경우 첫날 공모가 6만6천원보다 1만9천원 오른 8만5천원을 기록한 뒤 이튿날 곧바로 하한가를 기록했으며 6월8일까지 내림세가 이어졌다.

물론, 이는 각 회사들의 내부사정 및 등록당시의 증시환경을 감안하지 않아 그다지 정밀한 분석은 아니다. 하지만 신규 등록주식은 늘 고수익이 보장된다는 믿음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요즘 증권가의 공모주청약 열기는 지나친 면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공모주청약에 나설 뜻을 품은 투자자들이 꼭 새겨둬야할 사항이다.

상장회사 사정 모르는 묻지마 투자 행태

공모주청약 열기는 시장 전체적으로도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은 쪽으로 작용하고 있다. 증권거래소 상장심사부의 조호현 과장은 “주간사들이 월말 거래실적을 따져 공모주를 배정하다보니, 월말에 주식을 샀다가 월초에 일제히 내다파는 혼란이 반복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또 신규등록 업무 주간사 업무를 맡은 증권사로 자금이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동원증권 IPO(코스닥등록 담당)1팀 조양훈 차장은 “공모주청약을 하는 일반 투자자들 가운데 해당 회사의 내용을 제대로 알고 나선 이들이 얼마나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조 차장은 “본래 발행시장은 일반인들이 발을 들여놓기 어려운 전문적인 영역이어서 기관들의 몫인데, 국내 증시의 취약한 제도나 풍토 탓에 시장이 왜곡돼 일반인들의 참여 열기가 비정상적이다”고 말했다.

글/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사진/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