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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대우차를 팔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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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6-0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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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의 인수제안서 제출로 매각에 청신호… 내부혁신 발판으로 기업가치 높여야

사진/ GM은 여전히 일괄인수를 거부하고 있다. 지난해 6월 입찰 관련서류를 들고 대우자동차를 찾은 GM 관계자들.(이정우 기자)
대우자동차 사태가 제너럴 모터스(GM)의 인수제안서 제출로 해결의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절차가 빠르게 진행된다면 올해 말까지는 인수작업이 마무리될 가능성도 있어 국내 자동차산업은 물론 경제전반에 긍정적인 신호를 주고 있다. 그럼에도 지난해 6월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었던 포드가 9월 중순 들어 갑작스럽게 인수포기를 선언하는 바람에 한국경제에 큰 타격을 줬던 기억이 생생하다. GM과의 협상이 무난히 마무리될 것인지 살얼음판을 걷는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부평공장 인수 여부, 고용승계, 인수가격 등 협상의 난제들이 쌓여 있어 불안감을 더하고 있다.

대우차의 기업가치는 GM과 협상을 개시한 지난 98년 이후 급속도로 떨어졌다. 단기적으로 채권 회수에만 급급한 채권 금융기관들이 기업과 산업의 특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함으로써 기업가치 보존에 실패하고 결국 채권 회수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정부와 채권단의 판단에 따르면 대우차는 독자생존의 가능성이 없다. 그래서 해외매각을 유일한 해결방안으로 여겼다. 그러나 기업은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와 같은 존재이고 내·외부 사람들이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따라 성과가 많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런 정태적 평가에 기반한 독자생존여부 판결은 기업의 역동성을 심하게 제약한다. 독자생존의 가능성 봉쇄와 해외매각 일변도 정책은 내부의 구조혁신 기회를 박탈했다고 볼 수 있다.

해외매각에 매달려 구조혁신 기회 박탈


GM, 대우차 인수 절차
2001년 5월30일인수제안서 제출
6월 초본격 협상, 추가 정밀 실사
6월 중양해각서(MOU) 제출
1~2개월계약조건 조율
(결렬될 경우 독자생존 방안 추진)
2~3개월인수법인 설립, 자산 인수
올해 말GM·대우차(가칭) 설립
대우차는 GM에 매각성사여부와 상관없이 내부혁신이 시급하다. 이는 최근 세계 자동차산업에서 인수합병과 전략적 제휴의 경계가 불분명한 점과 관련있다. 전략적 제휴에는 기술, 제품, 판매망, 부품, 자본제휴 등 여러 가지 종류가 있으며, 자본제휴 역시 3%에서 49%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편차를 보인다. 따라서 해당 회사가 어떻게, 얼마나 핵심역량을 확보해 모회사, 혹은 제휴회사와 대등하거나 거꾸로 우위에 서는 교섭력을 갖는가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대우차도 무조건 GM의 손에 운명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GM제국’ 내부에서도 꼭 필요하고 중요한 존재로 거듭나도록 해야 한다.

세부적으로 보면, 현재 대우차의 연구개발 기능과 전세계에 걸쳐 있는 생산·판매 네트워크를 유지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대우차의 몰락 요인이 규모에 대한 맹신에 빠져 기술경쟁력을 갖추는 데 실패한 것이라고 본다면, 대우차의 정상화는 당연히 연구개발 기능의 확충에 둬야 한다. 더구나 대우차는 90년대 후반 대대적인 투자를 통해 독자모델 개발을 눈앞에 두고 몰락한 상황이라면, 정부와 채권단은 기술개발 투자를 오히려 더 촉진해야 매각대상의 상품성을 높이거나 독자회생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할 수 있다.

대우차가 갖고 있는 글로벌 생산판매 네트워크의 유지여부는 축소지향의 구조조정인가, 확대지향의 구조조정인가와 연결돼 있다. GM이든 누구든 대우차를 인수해 부족한 제품과 기술을 수혈한다면(그 자체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당연히 수익성이 개선되겠지만, 그 이전에라도 자체적인 수익성 회복 노력이 있어야 매물의 가치가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수익성 회복은 인건비를 줄이는 것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수익성을 억눌러온 요인들을 철저히 분석, 그에 맞는 대응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필요하다면 자금지원도 이뤄져야 함은 물론이다.

정상적인 기업들의 경우에도 자금순환이 원활치 않은 상황인데, 하물며 대우와 같은 구조조정 대상 기업에 중장기 투자자금을 지원하라는 요구 자체가 무리일 수도 있다. 더욱이 그야말로 ‘밑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도 있고, 수만명의 금융계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잃는 상황에 견줘보면 채권단의 선택에 수긍이 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자동차산업이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감안할 때, 그리고 거꾸로 대우자동차로부터 금융과 산업간의 연관관계를 풀어나간다는 관점에서 대우차 처리과정은 많은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물론 이는 채권단만의 결단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정부와 국회 차원에서 국제결제은행(BIS)비율 적용 제외(또는 유예)나, 혹은 크라이슬러 특별법과 같은 한시 조처를 통해 돌파해야 하는 과제이다.

협상 순탄치 않을 듯… 다양한 해결책 필요

사진/ 대우차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는 협상이 필요하다. 지난 5월29일 시민단체 회원들이 대우차 헐값매각 반대와 협상내용 공개 등을 촉구하며 시위를 벌였다.(김정효 기자)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를 고려하지 못함에 따라 단기적으로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를 보자. 정부와 채권단은 채권의 최대, 최단기간 회수에 집착해 해외매각에만 매달렸다. 그 결과 이제 ‘0원에라도 넘기라’는 말을 듣는 지경에 이르렀다. 물론 이는 포드의 돌발적인 포기와 같은 우연적 외부변수도 작용했지만, 워크아웃 이후부터 대우차에 대한 구조조정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감시하는 구실을 포기한 데서 비롯됐다는 비판을 남긴다.

어차피 대우차 부채의 80∼90%를 탕감해준다고 가정한다면 과연 GM에 일방적으로 끌려가는 협상만이 능사인가 회의스럽다. 기아차의 경우에서 보듯이 오히려 부채탕감폭을 늘리고 일부 채권을 출자전환해 주가 상승을 기대하는 것이 중장기적으로 올바른 전략일 것이다. 현재 판도대로 수동적으로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이러한 부채-주식 전환(debt-equity swap)을 통해 구조조정을 선도하는 역할을 채권단에 기대한다면 국내 금융사정을 너무 과대평가한 것인가?

GM의 관심은 세계 8위의 한국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대우자판, 그리고 부평공장에 비해 최신설비를 갖춘 군산과 창원공장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부평공장을 일괄매각하려는 정부 및 채권단과 대우차의 위상을 아시아역내로 국한하려는 GM간의 협상은 수월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정부쪽은 인천지역경제 등을 감안할 때 부평공장 포기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GM 처지에선 부평공장을 인수한다는 게 세계 전략과 대우차 위상에 대한 재고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GM은 협상진척 여부에 따라 전략 자체를 수정해 부평공장을 인수할 가능성도 열려 있다고 보는 게 정확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 반대의 가능성 역시 존재하고 있다. 그것은 인수 자체를 포기하는 것이다. 현재 GM은 미국시장 침체에 점유율 하락까지 큰 문제를 안고 있다. 유럽에서도 최근 수년간 경영부진이 계속되고 있다. 수익성이 크게 악화되고 보유현금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주가 하락을 감수하면서까지 장기적 이득을 위해 대우차의 전 사업부문을 인수할 것인가? 그러기 위해서는 월스트리트의 투자자들에게 ‘헐값’에 인수했음을 자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대우차의 정상화는 정부와 정치권이 주도하는 기존의 금융-산업관계의 재설정과 그에 바탕을 둔 ‘인내하는 자본’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대우차 임직원만의 노력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 그러나 임직원들의 치열한 자구노력이 선행되지 않으면 사실 외부인들이 도와줄 명분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한 점에서 대우차의 경영진, 사무노동직장발전위원회(약칭 사무노위), 노동조합 등은 지난 2년간 분열된 모습을 보임으로써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 책임의 일단을 지고 있다. 사용자의 일방적 구조조정, 그리고 노조의 전투적 조합주의 관성과 ‘벼랑 끝 전술’이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충돌로 치닫게 된 것이다.

노조는 정리해고 결사반대, GM인수 결사반대라고 하는 전략·전술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대우차에 제품과 기술이 수혈될 필요가 있고, 전략적 제휴와 인수합병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경향이라면 노조 역시 현실을 인정하고 부평공장을 지키는 투쟁으로 전환하면서 사용자 및 사무노위와 협력할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내부 경영혁신에 중장기 투자 맞물려야

현재까지의 흐름으로 보아 GM에 대한 매각작업을 일순간에 방향전환하기는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금융 차원의 접근뿐 아니라 산업 차원의 접근을 함께 고려하고 단기적 시야가 아니라 장기적 시야를 확보해 산업발전과 채권 회수가 양립하는 길을 모색하기를 기대해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근 수익구조가 크게 개선되었다는 것에 안주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내부 경영혁신을 단행하고 채권단쪽에서도 중장기 투자에 대한 자금지원을 아끼지 않는 전략이 필요할 것이다. 이를 토대로 대우차의 기업가치에 대해 자신감을 갖는 것이 유리한 협상을 가능하게 하고 또 매각 실패에도 대응할 수 있는 길이다. 특히 부품기업들에 대한 자금지원이 지지부진할 경우 부품산업 기반 자체가 붕괴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에 유의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조성재/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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