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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고금리 횡포는 지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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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5-15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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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한이자 연 60%로 서민금융 보호 의문… 실효성 있는 이자제한법 도입 목소리

사진/ 금융이용자보호법은 고금리 횡포에 무기력하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민주노동당과 시민단체들은 이자제한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여의도 금융감독원 청사 1층 사금융피해신고센터. 요즘 들어 아주 색다른 곳에서 걸려오는 전화가 많다. 지난 4월 초 문을 연 이 신고센터에는 지금까지 주로 사채를 얻어썼다가 낭패를 당한 이들의 사연이 꼬리를 물었는데, 최근엔 거꾸로 사채업자들로부터 문의 전화가 심심찮게 걸려오고 있다. 정부가 지난 5월8일 사채업의 등록을 의무화하고, 이자율을 연 60%로 묶는 내용을 포함한 ‘금융이용자보호에 관한 법률안’을 확정·발표한 뒤부터라고 한다.

이들의 전화 문의 가운데는 “제한이자가 연 60%라고? 그런 정도의 이자를 받고 어떻게 사채업을 하느냐”는 힐난성에서 “등록은 언제·어떻게 하면 되느냐”는 정보수집형까지 다양하다.

많은 사채업자들 대부업자로 등록 꺼려


사채업자들의 귀를 쫑긋 세우게 만든 금융이용자보호법안은 사채업자들을 물 위(제도권)로 끌어올려 일정 수준을 넘는 이자를 받지 못하도록 관리·감독한다는 내용으로 돼 있다.

세부 내용을 보면, 사채업자가 개인이나 종업원 5명 이하 소규모 기업에 대해 3천만원 이하의 돈을 빌려줄 때 연 60%를 넘는 이자를 받을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연 60%를 넘는 이자는 초과부분이 무효로 규정돼 돈을 꾼 쪽이 나중에라도 되돌려받을 수 있도록 하고 최고율을 넘는 이자를 받은 사채업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무시무시한 족쇄도 마련했다.

재정경제부는 이런 내용을 뼈대로 하는 법안을 확정한 데 이어 관계기관 협의 및 입법예고를 거쳐 6월 임시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국회일정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나, 하반기에는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법안을 마련한 정부쪽 설명대로 이 법이 도입되면 서민들을 울리고 있는 고금리대출 횡포를 줄일 수 있을까.

금융당국에서도 인정하고 있듯이 이 법의 성공여부는 얼마나 많은 사채업자들이 등록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충분한 수준의 사채업자들이 법에서 규정한 ‘대부업자’로 등록해 제도권으로 편입되기만 한다면, 정부당국이 노리는 정책효과는 거의 달성될 것이란 기대감은 현실성이 있다. 행정당국에 등록함으로써 금융당국의 감시 테두리에 들어온 사채업자들을 관리·감독하기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재경부나 금감원에서는 상당수 사채업자들이 대부업자로 등록하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금융이용자보호법이 시행될 경우 등록하지 않은 채 대출(대금, 대부)업을 할 경우 지금까지와는 달리 ‘명백한’ 불법행위로 규정되는 리스크(위험)를 떠안는 부담이 있기 때문이다. 또 최고이자 상한선을 60%로 넉넉하게 잡아 수익성이 어느 정도 보장되기 때문에 제도권 편입에 따른 거부감이 그다지 크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덧붙는다.

그렇지만 이런 기대는 사채시장의 현실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터무니없는 낙관론이거나 아니면 의도적으로 현실을 왜곡하고 있는 것이란 혹평을 낳고 있다. 별도의 이자제한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줄기차게 펴온 민주노동당, 시민단체들은 물론이고 사채시장에 발을 담그고 있는 이들도 코웃음을 치고 있다.

사채전문가 오남영(이원컨설팅 대표)씨는 “정부 방안에서는 사채시장을 동질적인 한 덩어리로 보고 있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사채시장에선 개인들을 상대로 하는 소액 신용대출뿐 아니라 어음할인, 중개업 등 다양한 형태가 있는데, 이번 법안은 소액 신용대출업자만 겨냥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씨는 “국내에 진출해 있는 일본계 사채업자(대금업체)들처럼 큰 규모의 자금을 바탕으로 소액 가계대출을 하는 경우 대부업자로 등록하겠지만, 대부분의 사채업자들은 사정이 다르다”고 말했다.

사채전문가 개인의 말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 들 법도 한데, 이쪽 시장의 생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당히 설득력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오씨의 설명대로 같은 사채시장이라 하더라도 그 안에는 각양각색의 다양한 업종이 있다. 대출업·어음할인업·일일 자금업(잔액증명, 주금납입, 법인증자 등)·장외주식 거래 등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대출업, 그중에서도 직장인들을 상대로 하는 소액 신용대출에 역점을 두고 있는 경우 대부분 대부업자로 등록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들 업체의 경우 이미 사업자등록 절차를 거쳐 떳떳하게 내놓고 영업하고 있다. 따라서 신분 및 자금출처 노출에 대한 두려움이 거의 없다. 또 현재 적용하고 있는 이자율도 초고금리는 아니어서 법에서 정한 60% 안에서 영업하더라도 이익을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다. 일본계 자금에 뿌리를 두고 있는 A&O인터내셔날, 프로그레스 등이 대표적이다.

소액 신용대출업자만 ‘공신력’ 날개 단다

사진/ 대부분의 사채업자들은 대부업체로 등록하지 않을 전망이다. 서울지방국세청 직원들이 사채업자 사무실에서 탈세 관련 서류를 찾고 있다.
A&O인터내셔날의 경우 지난 4월 말 현재 대출잔액이 1천억원에 이르는데, 대손율(꿔준 돈을 떼인 비율)이 3%(지난해 기준)에 지나지 않았다. 국내 제도권 금융기관과 견주더라도 훨씬 낮은 수준이다. 현재 적용금리는 30∼90% 수준이어서 금융이용자법안에서 규정하고 있는 상한선 60%에 적응할 수 있는 바탕이 마련돼 있다. 프로그레스도 연체율이 5∼6%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비교적 건실하게 영업하고 있다. 따라서 대부업자로 등록하고 연 60%의 이자율 제한 아래에서 그럭저럭 영업해나갈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다. 정식 등록하는 절차를 거칠 경우 ‘공신력’이란 날개를 달게 되며, 더불어 홍보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는 예상도 헛말로 들리지 않는다. 이 때문에 금융권 안팎에선 금융이용자보호법이 시행될 경우 ‘대부업자 1호’ 등록 경쟁이 벌어질 것이란 재미있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문제는 대출업이 전체 사채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대략 10%)이 그다지 높지 않다는 점이다. 사채시장에서 가장 큰 비중(50% 이상으로 추정)을 차지하는 것은 어음할인업인데, 여기에 발을 담그고 있는 업체들은 거의 대부분 대부업자 등록을 하지 않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들 업체의 경우 중소기업을 상대하고 있는 데 따라 리스크가 커 정부 방안에서 정하고 있는 제한 이자율 안에서는 제대로 영업을 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 오남영씨는 “급전용 당좌수표 할인 때는 하루 1%(연 360%) 이자를 받는다 해도 10번에 1번꼴로 부도나면 본전”이라며 “기업에 따라 다르긴 하나 그 정도 부도율은 감수해야 할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요즘에는 하루 1%짜리도 없고, 대부분 2∼3%에 이른다고 덧붙였다.

또 하나, 자금줄이 드러나는 데 따른 부담감도 대부업자 등록을 꺼리게 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회사이름을 밝히고, 신문광고까지 하며 공개적인 영업에 나서고 있는 소액 신용대출업체들과 달리 어음할인업체들은 자금출처 조사에 대한 부담을 적지 않게 느낄 것이란 점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금융당국은 이 때문에 법안 마련 초기에 자금출처 조사를 면제한다는 방안을 검토하기도 했지만, 비난 여론을 감안해 이를 철회했다. 아무런 검증절차 없이 불법자금을 합법적인 공간으로 들여놓을 수 없다는 점에서, 사실 이는 너무나 당연한 귀결이다.

얼마나 많은 사채업자들이 등록을 할 것이냐는 문제를 차치하고라도 연 60%라는 제한은 터무니없이 높은 기준으로 여겨진다. 민주노동당 채진원 정책국장은 “공금리가 지금보다 훨씬 높았던 1960년대 이자제한(연 40%)보다 높으며, 저 멀리는 고려시대(연 33.3%)에 비교해서도 크게 뒤지는 시대역행적 기준”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금융이용자 ‘보호’법인지, 대부업자 ‘수익보장’법인지 모르겠다는 빈축까지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학계 일각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별도의 이자제한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물론, 이자제한법을 제정한다고 해서 고금리 대출의 폐해가 온전히 뿌리뽑힌다는 보장은 없지만 지금 정부가 내놓은 방안은 고리대 횡포에서 서민들을 보호하는 데 너무나 무력하다는 판단에서다. 현재 정부가 마련해놓은 법안으로는 사채업자가 등록을 하지 않는 경우, 소액대출을 피하고 이자율 한도를 적용받지 않는 규모로 대출서류를 꾸밀 경우, 개인끼리 계약하는 형태를 취하는 경우 등 빠져나갈 구멍이 너무나 많다. 더욱이 정부 법안은 이름은 금융이용자보호법안이지만, 실상 내용은 대부업자 양성화 방안의 성격이 짙어 법의 성격·목표가 분명치 않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따라서 모든 금전거래가 적용되고 이용자보호에 방향타를 맞춘 별도의 이자제한법이 있어야 실효성을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구멍 숭숭 뚫린 금융이용자보호법

연세대 백태승 교수는 “이자제한법 부활은 시대착오적이라는 견해가 있는데, 일본(이식제한법)·대만(민법 규정)도 이자제한 규정을 명시하고 있으며 미국의 일부 주에서도 이자제한 장치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백 교수는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직후 고금리 정책이 필요해진 시점에서, 실효성 검토없이 이자제한법을 폐지했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자제한법을 둘러싼 논란 와중에서 정부쪽은 가격(이자율)통제는 엉뚱한 역효과를 낸다며 거부감을 보이다가 이번 금융이용자보호법안에 연 60%라는 제한이자율을 둠으로써 부분적으로나마 이자율제한에 대한 필요성을 인정한 셈이 됐다. 금융이용자보호법과 이자제한법이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면 별도의 이자제한법을 검토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다.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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